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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五胡)의 쟁패 14 - Genocide

348년, 석호의 태자 석선이 참혹하게 처형당하면서 조의 태자 자리는 비게 되었다. 벌써 두번이나 태자를 갈아치운 석호로서는 새로 세우게 될 태자도 안심할 수 없었다.어찌하여 오로지 나쁜 아들만 낳아서 나이가 20세만 넘으면 번번히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가!何爲專生惡子,年逾二十輒欲殺父!석호는 결국 10세의 어린 아들 석세(石世)를 태자로 삼아 ...

오호(五胡)의 쟁패 13 - 북방의 사자 연(燕)

단부의 공격과 모용인의 반란으로 한때 멸망의 위기까기 겪었던 모용황은, 곧 전열을 재정비하고 모용인과 전쟁을 시작한다. 334년 11월에 모용인을 공격한 모용황은 요동의 중심인 양평(襄平)을 함락하여 모용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모용인은 요동반도 안쪽으로 쫒겨가서 수세를 취했으며, 전선은 고착되었다. 이러한 소강 상태는 336년까지 계속되었다.3...

오호(五胡)의 쟁패 12 - 성한의 흥망

물산이 풍부하고 천혜의 지형이 지켜주고 있는 촉(蜀) 땅에서 번영하던 성 왕조는 30년에 걸쳐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태평성대의 꿈을 깨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후계자 문제.성의 황제 이웅(李雄)은 황후에게 자식을 얻지 못했다. 후궁의 소생으로 1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웅은 이렇게 여러 아들들은 내버려둔 채 형인...

오호(五胡)의 쟁패 11 - 전설의 폭군

역사상 많은 폭군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산군을 대표로 꼽을만 하고, 전 세계에도 많은 폭군들이 있었다. 누명을 썼던 폭군들도 많았을 것이고, 개혁을 추구한 것이 포악한 정치로 기록된 군주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짜 악덕을 짊어지고 악명을 떨친 폭군들도 있다. 그들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울 폭군이 있다. 후조(後趙)의 3대 황제 석호(石虎)가 ...

오호(五胡)의 쟁패 10 - 승자의 혼미

329년, 상규(上邽 : 감숙성 천수)를 점령하고 전조의 마지막 숨통을 끊음으로써, 석륵의 후조는 화북의 패권을 놓고 벌어진 전쟁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전조에 복속되어 있던 저족의 수령 포홍과 강족의 수령 요익중은 후조에 항복했으며, 농서(隴西)의 걸복부는 후조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서쪽으로 도망쳐 버렸다. 화북에 남아있는 독자적인 세력은 사실상 하...

오호(五胡)의 쟁패 9 - 북방의 사정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북흉노가 멸망한 이후 주인이 사라진 몽골 초원을 차지했던 종족이 있다. 선비(鮮卑)가 바로 그들이다.단석괴(檀石槐) 이후 우문부(宇文部)·모용부(慕容部)·탁발부(拓跋部)·단부(段部)·걸복부(乞伏部)의 5부로 분열되었던 선비는 때로는 중국의 북방을 침범하기도 하고, 중국에 신속하기도 하는 등 복잡한 역사를 걸었다. 그리고 5호가...

오호(五胡)의 쟁패 8 - 낙양의 결전

328년 7월, 후조의 장수 석호(石虎)는 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지관(軹關)을 지나 전조의 하동(河東)을 공격하였다. 전조가 병주 지역에 가지고 있던 최후의 거점을 공략한 것이다. 하동은 곧 무너지고, 석호는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포판(蒲阪)을 공격하였다. 포판이 떨어지고 나면, 전조의 수도인 장안까지는 그야말로 코앞이었다.석호의 공격 소식을 전달받은...

오호(五胡)의 쟁패 7 - 두 개의 조(趙)나라

근준의 반란이 한창이던 318년 겨울, 유요는 죽은 유찬을 대신해서 한(漢)의 황제에 즉위하고 석륵을 조공(趙公)에 임명한다. 당시까지 유요와 석륵은 미묘한 협력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유요는 자기 세력 안에서 최대의 세력인 석륵을 적당히 우대해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근준이 토벌되고, 토벌되는 과정에서 미묘한 대립각을 세우게 된 양대 세력은 정해진 수...

오호(五胡)의 쟁패 6 - 난세의 별천지

300년 경, 팔왕의 난, 311년 영가의 난을 거치면서 중국 대륙은 혼란의 극한을 향해 치달았다. 동서남북, 중앙과 변방, 한족과 호족의 구분 없이, 중국 전토는 수많은 이민족의 준동, 셀 수도 없는 반란으로 끔찍한 혼란 속에 있었다. 인세가 혼란스러우니 하늘도 혼란스러웠는지, 각지에는 기근이 들어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그러나 이러한 혼란 시대에도 ...

오호(五胡)의 쟁패 5 - 석륵과 유요

흉노가 건설한 한(漢)은 상당히 정체가 모호한 국가였다. 국가의 핵심은 흉노였다고 하지만, 유연의 직계 일족들조차도 군사력이 압도적이지는 않았고, 거의 동등한 군사력을 갖춘 여러 군단, 그것도 흉노족이 아니었던 군단들이 존재하고 있다. 갈족의 석륵을 비롯하여, 한족 출신의 왕미, 유연의 일족이기는 하지만 직계는 아니었던 유요, 그 외에도 제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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