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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망양(五胡望洋) 31 - 부활

중조(重祚) 또는 재조(再祚)라는 말이 있다. 왕위에 2번 즉위한 케이스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충렬왕과 충선왕이 중조라는 희한한 정치쇼(?)를 벌인 일이 있다. 중국사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혼란기인 오호십육국시대에는 이 중조가 국가 단위로 벌어진 일이 있다. 나라가 멸망했다가 다시 부활했던 사건.농서 일대에서 할거하던 마이너 국가 걸복부의&nb...

오호망양(五胡望洋) 30 -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409년의 새해가 밝았다. 남연의 궁궐에서 신년을 여는 조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번의 조회는 무엇인가 허전했다. 황실의 위엄에 걸맞는 웅장한 태악이 울려 퍼져야 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어설픈 풍악 뿐이었다. 요흥의 진 정권에 태악의 악기와 악공들을 모두 바쳤기 때문이다. 남연 정권의 황제 모용초는 잃어버린 태악을 다른...

오호망양(五胡望洋) 29 - 용오름

때는 391년, 탁발부의 군대가 오르도스의 흉노 부락을 급습하였던 때의 일이다. 새외를 동서로 나누어 서쪽 절반을 다스리던 유위진(劉衛辰)의 세력이 탁발부의 기습으로 어이없이 무너졌던 그날, 유위진의 일족은 모두 차디찬 시체가 되어 황하에 버려졌다. 유일하게 살아서 도망칠 수 있었던 이는 유위진의 막내아들 유발발 한 사람 뿐이었다. 탁발규의 추...

오호망양(五胡望洋) 28 - 호랑이, 이빨이 빠지다.

405년 여름, 장안의 궁정에 유유의 사신이 찾아왔다. 사신은 진 정권과 평화조약을 맺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 조건이 참으로 기묘했다. 남향(南鄕)을 비롯한 12개 군의 할양을 요구했던 것이다. 6년 전, 진 정권이 낙양을 점령했을 당시 회수와 한수 이북의 여러 지역이 진 정권에 투항했던 일이 있다. 이들 지역 대부분에 해당하는 12개 군을 평화의 대...

오호망양(五胡望洋) 27 - 모용씨 상봉기

난세에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져 서로를 찾아 헤메는 비극이 어디 하나 둘이겠냐마는, 이 시대에 특히 눈에 띄는 이산가족(?)들이 있었다. 바로 모용씨 일족들.부견의 인물됨이 관대하 공장장 뺨을 칠 정도였다고는 해도, 한때 천하를 셋으로 나눠 차지하고 있던 적수 가운데 하나인 모용 선비도 한없이 관대하게 대하기는 어렵다. 부견 자신의 이상주의도 한몫을 하기...

오호망양(五胡望洋) 26 - 용호상박

오르도스.많은 유목민족들의 터전이자 한족 왕조들이 유목민족들을 경영하였던 땅이다. 오호십육국 시대의 혼란기 속에서 오르도스 지방에는 흉노 철불부의 유위진(劉衛辰)이 세력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탁발부가 흥성하면서 철불부를 멸망시켰고 오르도스를 삼켜버렸다. 이로써 탁발부의 위와 강족의 후진 정권은 오르도스 사막을 경계로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위와 후진, ...

오호망양(五胡望洋) 25 - 양, 양, 양, 그리고 양

1. 나쁜 凉한때 양주(凉州)를 완전히 장악하고 황하 너머 걸복부 정권까지 넘보던 후량 정권. 한 번 삐끗 했다가 밑천까지 날릴 뻔 했고, 겨우 본전은 건져서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 남북에서 번갈아 가면서 털어대는 통에 정신도 못차리겠는데, 천왕 여광이 399년 말에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태자(嫡子)는 형(序子) 여찬(呂纂)에게 밀려...

오호망양(五胡望洋) 24 - 요동 전쟁

398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후연 정권의 최고 통치자가 된 장락왕 모용성. 그의 치세를 살펴보자면, 1000여 년 뒤 조선에서 군림하였던 광해군의 치세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잔혹한 숙청과 친국, 처형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광해군을 연상케하는 것이 모용성의 짧은 치세였다.모용성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사주로 모반을 일으켰던 모용기를 처형하는 것으...

오호망양(五胡望洋) 23 - 가화만사성

부견의 몰락 이후 10여 년, 이 격동의 세월을 헤쳐나왔던 난세의 영웅 모용수와 요장이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후계자들이 있다. 이 후계자들은 모두 걸출한 아버지를 둔, 어찌보자면 불쌍한(?) 남자들이다. 사사건건 아버지와 비교될 것이 분명할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 후계자들이 10여 년이 걸려 쌓아올린 금자탑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 결과는 서로 정 ...

오호망양(五胡望洋) 22 - 남연과 북연

398년 초, 황하 남동쪽의 활대(滑臺)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흥분으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업에서 빠져나와 활대로 들어온 모용덕이 나라를 정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용덕을 뒤쫓아 온 모용린은 모용덕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으나, 모용덕은 이를 거부하고 형인 모용수가 했던 전례를 따라 연왕(燕王)을 자칭했고, 연호도 고쳐서 "원년"을 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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