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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망양(五胡望洋) 24 - 요동 전쟁

398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후연 정권의 최고 통치자가 된 장락왕 모용성. 그의 치세를 살펴보자면, 1000여 년 뒤 조선에서 군림하였던 광해군의 치세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잔혹한 숙청과 친국, 처형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광해군을 연상케하는 것이 모용성의 짧은 치세였다.모용성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사주로 모반을 일으켰던 모용기를 처형하는 것으...

오호망양(五胡望洋) 23 - 가화만사성

부견의 몰락 이후 10여 년, 이 격동의 세월을 헤쳐나왔던 난세의 영웅 모용수와 요장이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후계자들이 있다. 이 후계자들은 모두 걸출한 아버지를 둔, 어찌보자면 불쌍한(?) 남자들이다. 사사건건 아버지와 비교될 것이 분명할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 후계자들이 10여 년이 걸려 쌓아올린 금자탑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 결과는 서로 정 ...

오호망양(五胡望洋) 22 - 남연과 북연

398년 초, 황하 남동쪽의 활대(滑臺)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흥분으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업에서 빠져나와 활대로 들어온 모용덕이 나라를 정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용덕을 뒤쫓아 온 모용린은 모용덕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으나, 모용덕은 이를 거부하고 형인 모용수가 했던 전례를 따라 연왕(燕王)을 자칭했고, 연호도 고쳐서 "원년"을 칭했다. ...

오호망양(五胡望洋) 21 - 사분오열

397년 5월, 이제 후연의 구도(舊都)가 되어버린 중산으로 한 무리의 군대가 입성했다. 용성으로 도망쳐 가던 모용보가 마지막 양심(?)으로 파견한 원군이었다. 고녹관기(庫傉官驥)가 이끄는 원군은 고립무원으로 농성전을 벌이던 중산으로 어렵사리 입성하였다. 그러나 성 안에서 벌어진 일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연의 고녹관기가 중산으...

오호망양(五胡望洋) 20 - 인종 전시장

387년 말, 장대예와 왕목의 반란을 진압함으로써 여광의 양주(凉州) 평정은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여광은 양주를 평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389년 2월에 삼하왕(三河王)을 자칭하였고 396년에는 천왕(天王)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량(大凉)이라 정하였다. 그러나, 여광의 희망대로 양주가 평정되었던 것은 아니다.양주 일대는 원래부터 이민족들이 많이 ...

아놔. 넘버링 미스...

오호망양 연재를 다시 시작한지 1달이 다되가도록 모르고 있던 실수를 오늘에야 발견했다.연재를 잠시 중단한 것이 12편이었는데, 다시 시작할 때도 12편으로 시작했다는.....아놔. >.,<어느새 연재가 19편이나 되었군화.이런 연재 속도라면 이번에는 30편으로도 어림없을 것 같다능.ㅠㅠ

오호망양(五胡望洋) 19 - 콩가루 집안

396년 4월, 모용수가 진중에서 병사하면서 위기에 빠졌었던 탁발규의 대 정권은 기사회생한다. 뒤를 이은 모용보는 X맨이 되어 활약(?)하고 있었고, 탁발규는 하늘이 내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력을 다시 회복해 나간다. 모용수에게 빼앗겼던 세력을 즉시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연의 북방에서 번속해 있던 유현의 잔당을 토벌하여 연의 영토로 향하는...

오호망양(五胡望洋) 18 - 虎父犬子

참합피의 패배는 한창 사방으로 힘을 뻗어 나가고 있던 연나라에게 뼈아픈 타격이었다. 그러나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다. 홀로 말을 달려 패주한 모용보가 귀환하자마자 복수전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연의 국력은 충실했다. 모용수 역시 북방의 위협을 좌시할 군주는 아니었다. 모용보가 주장한 즉각적인 반격은 기각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치밀하게 반격을 준비하기...

오호망양(五胡望洋) 17 - 참합피의 비극

황하의 누런 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때는 초가을, 적군의 곡식을 거둬들인 것도 넉넉하다. 전황은 그 어느때보다 좋았다. 3만에 달하는 민호를 잡아들였을 정도였고, 적은 도망치기에 바쁘다."강을 건널 배를 만들어라."모용보(慕容寶)는 간단하게 명령을 내리고 다시 황하의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적의 척후가 눈에 띈다. 어차피 강을 격하고 있으니 저들...

오호망양(五胡望洋) 16 - 환영의 왕국

때는 383년, 부견이 한창 비수에서 삽질을 하고 있을 때이다. 농서(隴西)의 선비족 걸복부(乞伏部) 부락은 긴장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부락에서 모인 사람들을 앞에 두고 걸복국인(乞伏國仁)이 입을 열었다. "부씨는 백성을  피폐하게 하고 병사를 멋대로 부려서 아마도 곧 망할 것이니 나는 마땅히 여러분과 함께 한 지방에서의 대업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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