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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망양(五胡望洋) 24 - 요동 전쟁

398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후연 정권의 최고 통치자가 된 장락왕 모용성. 그의 치세를 살펴보자면, 1000여 년 뒤 조선에서 군림하였던 광해군의 치세와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잔혹한 숙청과 친국, 처형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광해군을 연상케하는 것이 모용성의 짧은 치세였다.모용성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사주로 모반을 일으켰던 모용기를 처형하는 것으...

오호망양(五胡望洋) 22 - 남연과 북연

398년 초, 황하 남동쪽의 활대(滑臺)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흥분으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업에서 빠져나와 활대로 들어온 모용덕이 나라를 정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용덕을 뒤쫓아 온 모용린은 모용덕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으나, 모용덕은 이를 거부하고 형인 모용수가 했던 전례를 따라 연왕(燕王)을 자칭했고, 연호도 고쳐서 "원년"을 칭했다. ...

오호망양(五胡望洋) 21 - 사분오열

397년 5월, 이제 후연의 구도(舊都)가 되어버린 중산으로 한 무리의 군대가 입성했다. 용성으로 도망쳐 가던 모용보가 마지막 양심(?)으로 파견한 원군이었다. 고녹관기(庫傉官驥)가 이끄는 원군은 고립무원으로 농성전을 벌이던 중산으로 어렵사리 입성하였다. 그러나 성 안에서 벌어진 일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연의 고녹관기가 중산으...

오호망양(五胡望洋) 19 - 콩가루 집안

396년 4월, 모용수가 진중에서 병사하면서 위기에 빠졌었던 탁발규의 대 정권은 기사회생한다. 뒤를 이은 모용보는 X맨이 되어 활약(?)하고 있었고, 탁발규는 하늘이 내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력을 다시 회복해 나간다. 모용수에게 빼앗겼던 세력을 즉시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연의 북방에서 번속해 있던 유현의 잔당을 토벌하여 연의 영토로 향하는...

오호망양(五胡望洋) 18 - 虎父犬子

참합피의 패배는 한창 사방으로 힘을 뻗어 나가고 있던 연나라에게 뼈아픈 타격이었다. 그러나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다. 홀로 말을 달려 패주한 모용보가 귀환하자마자 복수전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연의 국력은 충실했다. 모용수 역시 북방의 위협을 좌시할 군주는 아니었다. 모용보가 주장한 즉각적인 반격은 기각했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치밀하게 반격을 준비하기...

오호망양(五胡望洋) 17 - 참합피의 비극

황하의 누런 물이 도도하게 흐른다. 때는 초가을, 적군의 곡식을 거둬들인 것도 넉넉하다. 전황은 그 어느때보다 좋았다. 3만에 달하는 민호를 잡아들였을 정도였고, 적은 도망치기에 바쁘다."강을 건널 배를 만들어라."모용보(慕容寶)는 간단하게 명령을 내리고 다시 황하의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드문드문 적의 척후가 눈에 띈다. 어차피 강을 격하고 있으니 저들...

오호망양(五胡望洋) 15 - 악연의 끝, 잉여의 끝

요장이 장안으로 가다가 신지보(新支堡)에 이르렀는데 병이 위독해져 수레를 타고 빨리 나아갔다. 꿈에 부견이 천관(天官)의 사자를 이끌고 귀신 병사 수백으로 군영에 돌입하니 요장이 두려워하여 궁 안으로 달아났다. 궁인이 요장을 모시고 귀병을 베려 하였는데 실수하여 요장의 음부를 찔렀다. 귀병이 서로 이르기를 "한 가운데가 죽을 곳이다." 라고 하였다. 창...

오호망양(五胡望洋) 14 - 두 개의 연, 두 개의 진

390년대 초, 화북의 판도는 아주 기묘했다. 후연(後燕)과 서연(西燕), 전진(前秦)과 후진(後秦), 관동과 관중에 각각 같은 국호를 가진 국가가 둘 씩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 후대에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들로서는 간단하게 전, 후로 구분하거나 방위로 구분해서 부르면 간단한 일이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기묘한 느낌이었을까.물론...

오호망양(五胡望洋) 11 - 풍운의 정령(丁零)

오호십육국 시대 전반부에서 요양이 이끄는 강족이 강호를 떠도는 풍운의 종족이었다면, 후반부에서 돋보이는 종족은 정령족이다. 정령족은 원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살던 유목민족으로, 혹자는 투르크족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 종족이 어떤 존재였건 간에 저 멀리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이주해와 중원 한복판에서 분탕질을 하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풍운의 종족이다.지금까지 있...

오호망양(五胡望洋) 7 - 중산 정도(定都)

모용수가 나라를 일으킨 이래, 하북 각지에서 전진 측 세력과 후연 측 세력은 치열한 공방을 계속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후연 측의 우세가 두드러졌지만, 전진 측의 반격도 만만치는 않았다. 여기에 기회주의적인 독립세력으로 정령족 적진(翟眞)·적요(翟遼) 등도 하북 각지를 전전하며 치열한 전투를 계속했다. 1년에 걸친 참혹한 공방전 때문에, 하북은 황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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