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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五胡)의 쟁패 15 - 새로운 주인공

화북의 패자였던 조(趙)에서 벌어진 대학살과 대혼란. 조를 둘러싼 여러 세력들은 이 혼란을 기회로 조의 영토를 넘보면서 이합집산을 시작했다. 연왕 모용준은 량의 장중화와 동맹을 맺었으며, 저족의 포홍은 동진의 관작을 받았다. 석민의 집권에 반발하여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군들 역시 제각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강족을 이끌던 요익중은 관중 지...

오호(五胡)의 쟁패 8 - 낙양의 결전

328년 7월, 후조의 장수 석호(石虎)는 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지관(軹關)을 지나 전조의 하동(河東)을 공격하였다. 전조가 병주 지역에 가지고 있던 최후의 거점을 공략한 것이다. 하동은 곧 무너지고, 석호는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포판(蒲阪)을 공격하였다. 포판이 떨어지고 나면, 전조의 수도인 장안까지는 그야말로 코앞이었다.석호의 공격 소식을 전달받은...

오호(五胡)의 쟁패 7 - 두 개의 조(趙)나라

근준의 반란이 한창이던 318년 겨울, 유요는 죽은 유찬을 대신해서 한(漢)의 황제에 즉위하고 석륵을 조공(趙公)에 임명한다. 당시까지 유요와 석륵은 미묘한 협력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유요는 자기 세력 안에서 최대의 세력인 석륵을 적당히 우대해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근준이 토벌되고, 토벌되는 과정에서 미묘한 대립각을 세우게 된 양대 세력은 정해진 수...

오호(五胡)의 쟁패 3 - 영가의 난

310년 6월, 유연이 병사하자 뒤를 이어 맏아들 유화(劉和)가 즉위하였다. 그러나 유화는 병권을 나누어 가지고 있던 여러 동생들, 특히 많은 전공을 세운 바 있던 유총(劉聰)을 두려워하였다. 마침 유화에 의해 재상이 되었던 외숙부 호연유(呼延攸)도 유총을 숙청하고 황권을 공고하게 할 것을 진언하였고, 유화는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총을 비롯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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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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