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전연 요약보기전체보기목록닫기

1

모용연 치하의 부여와 부여인

북표 라마동 부여족 인골과 가장 가까운 집단은 한국인번동아재 님의 글에서 필(ㅡㅡ;;)을 받아 트랙백 했습니다. 나름 5호16국시대를 관통해서 자료를 찾아보고 연재를 했던 만큼 당시에 대한 사료, 최소 자치통감 정도는 읽어본 터라, 번동아재 님의 글에서 나타난 부여의 행적에 대해서 좀 더 정밀하게 추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트랙백을 ...

오호(五胡)의 쟁패 24 - 하늘이 불타던 날

호뢰관 서쪽 땅 내놓으라능.엄친아 부견이 빚을 청구하자, 모용평과 모용위에게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달랜다고 그대로 줄 수도 없는 노릇. 결론은 어떻게든 무마시켜야 한다. 그러나 모용평이 한 대답은 세련되지도 못했고 현실적이지도 않았다. 물론 아무리 세련되고 현실적이라도 부견은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지난번에 땅을 잘라준다는 것은 사신이 잘못 ...

오호(五胡)의 쟁패 23 - 사냥개를 삶다

환온의 북벌군이 일패도지함으로써 "토끼 사냥"은 끝났다. 사냥개를 삶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냥꾼 모용평에게는 두 마리의 사냥개가 있었다. 하나는 언제든지 삶아 먹을 수 있는 손 안의 개였지만, 다른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 비싼 대여료를 약속하고 빌려온 개였다. 빌려온 개를 삶아 먹을 수는 없으니,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냥개부터 삶아야 한다.모용평의 ...

오호(五胡)의 쟁패 22 - 북벌 No. 3

356년에 요양을 물리치고 낙양 일대를 장악하였던 2차 북벌 이후, 환온은 10년이 넘도록 북벌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모용각이 이끄는 연군과 치열하게 싸운 끝에 365년, 낙양과 하남 일대의 광대한 영토를 상실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모용각이 357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환온과 동진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연에서 권력을 잡은 모용평...

오호(五胡)의 쟁패 21 - 一人之下萬人之上

360년대의 중국은 옛부터 천하 쟁란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하는 정족지세(鼎足之勢)가 구축되어 있었다.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솥발처럼 늘어선 천하의 모습을 화북, 강동, 촉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 천하삼분지계의 원조는 항우와 유방이 서로 싸우던 시기에 고안된 것이다. 관중, 관동, 하남(강남)으로 분열된 것이 그 원래 형태...

오호(五胡)의 쟁패 18 - 관동의 패자

연의 모용준이 염위를 멸망시킴으로써 화북의 동쪽, 즉 관동 지역의 패권은 연에게 넘어갔다. 고만고만한 세력들이 아직 곳곳에서 준동하고 있었지만, 관동에서 연보다 강력한 세력은 없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해서 모용준은 352년 11월에 황제에 즉위하였다. 모용준이 남정(南征)을 개시하기 전인 349년, 동진은 모용준의 칭왕을 인정하...

오호(五胡)의 쟁패 15 - 새로운 주인공

화북의 패자였던 조(趙)에서 벌어진 대학살과 대혼란. 조를 둘러싼 여러 세력들은 이 혼란을 기회로 조의 영토를 넘보면서 이합집산을 시작했다. 연왕 모용준은 량의 장중화와 동맹을 맺었으며, 저족의 포홍은 동진의 관작을 받았다. 석민의 집권에 반발하여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군들 역시 제각기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강족을 이끌던 요익중은 관중 지...

오호(五胡)의 쟁패 13 - 북방의 사자 연(燕)

단부의 공격과 모용인의 반란으로 한때 멸망의 위기까기 겪었던 모용황은, 곧 전열을 재정비하고 모용인과 전쟁을 시작한다. 334년 11월에 모용인을 공격한 모용황은 요동의 중심인 양평(襄平)을 함락하여 모용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모용인은 요동반도 안쪽으로 쫒겨가서 수세를 취했으며, 전선은 고착되었다. 이러한 소강 상태는 336년까지 계속되었다.3...
1



유사역사학 방지

얼마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