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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망양(五胡望洋) 41 - Brand New Age

북연 정권의 군주는 한족인 풍씨 가문이었다. 풍발이 고운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래, 북연은 요서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발톱을 곤두세운 고양이마냥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414년, 위의 탁발사는 우십문(于什門)을 연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때 기묘한 힘겨루기가 있었다.북연은 위 정권의 적국인 유연, 호하과 동맹을 맺어 위 정권을 적대시하는 것을 분명...

오호망양(五胡望洋) 37 - 숨고르기

숨가쁘게 달려온 역사의 대하(大河)에서 잠시 눈길을 돌려 크고 작은 지류(支流)들을 살펴보자.먼저 머나먼 서역, 옥문관 밖에서 나라를 세운 서량(西凉)에 눈을 돌려 본다. 이고(李暠)가 400년에 건국한 서량은 주천(酒泉)을 수도로 하여 서역을 통제하며 20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 하서 회랑의 입구인 주천을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남쪽 장액(張掖)...

오호망양(五胡望洋) 25 - 양, 양, 양, 그리고 양

1. 나쁜 凉한때 양주(凉州)를 완전히 장악하고 황하 너머 걸복부 정권까지 넘보던 후량 정권. 한 번 삐끗 했다가 밑천까지 날릴 뻔 했고, 겨우 본전은 건져서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 남북에서 번갈아 가면서 털어대는 통에 정신도 못차리겠는데, 천왕 여광이 399년 말에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태자(嫡子)는 형(序子) 여찬(呂纂)에게 밀려...

오호망양(五胡望洋) 20 - 인종 전시장

387년 말, 장대예와 왕목의 반란을 진압함으로써 여광의 양주(凉州) 평정은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여광은 양주를 평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389년 2월에 삼하왕(三河王)을 자칭하였고 396년에는 천왕(天王)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량(大凉)이라 정하였다. 그러나, 여광의 희망대로 양주가 평정되었던 것은 아니다.양주 일대는 원래부터 이민족들이 많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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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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