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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망양(五胡望洋) 30 -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409년의 새해가 밝았다. 남연의 궁궐에서 신년을 여는 조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번의 조회는 무엇인가 허전했다. 황실의 위엄에 걸맞는 웅장한 태악이 울려 퍼져야 했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어설픈 풍악 뿐이었다. 요흥의 진 정권에 태악의 악기와 악공들을 모두 바쳤기 때문이다. 남연 정권의 황제 모용초는 잃어버린 태악을 다른...

오호망양(五胡望洋) 27 - 모용씨 상봉기

난세에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져 서로를 찾아 헤메는 비극이 어디 하나 둘이겠냐마는, 이 시대에 특히 눈에 띄는 이산가족(?)들이 있었다. 바로 모용씨 일족들.부견의 인물됨이 관대하 공장장 뺨을 칠 정도였다고는 해도, 한때 천하를 셋으로 나눠 차지하고 있던 적수 가운데 하나인 모용 선비도 한없이 관대하게 대하기는 어렵다. 부견 자신의 이상주의도 한몫을 하기...

오호망양(五胡望洋) 22 - 남연과 북연

398년 초, 황하 남동쪽의 활대(滑臺)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흥분으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업에서 빠져나와 활대로 들어온 모용덕이 나라를 정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용덕을 뒤쫓아 온 모용린은 모용덕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으나, 모용덕은 이를 거부하고 형인 모용수가 했던 전례를 따라 연왕(燕王)을 자칭했고, 연호도 고쳐서 "원년"을 칭했다. ...

오호망양(五胡望洋) 21 - 사분오열

397년 5월, 이제 후연의 구도(舊都)가 되어버린 중산으로 한 무리의 군대가 입성했다. 용성으로 도망쳐 가던 모용보가 마지막 양심(?)으로 파견한 원군이었다. 고녹관기(庫傉官驥)가 이끄는 원군은 고립무원으로 농성전을 벌이던 중산으로 어렵사리 입성하였다. 그러나 성 안에서 벌어진 일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연의 고녹관기가 중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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