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9 15:34

다산 정약용의 요동론 역사

이성계, 요동을 점령하다 2  => 초록불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이성계의 요동 점령 기사를 내가 처음 접한 것은, 부끄럽지만 지금도 소장하고 있는 모 환빠성 저작을 통해서였다. 스스로를 농초라 칭하는 재야사학자 박문기 씨가 지은 '貊耳' 그래도 환빠 중에서는 나름 한문을 하는 모양인 사람이다. 주장하는 바도 매우 온건한 환빠로 분류할 만 하다.


아무튼, 고등학생 때 이 책에 실려 있는 여러 논문들 가운데 하나에 실려있는 이성계의 요동 원정 기사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책의 논지 자체도 그러하지만, 이성계가 요동을 점령하고도 군량을 태워먹고 회군한 사실을 좋게 봐주기는 어렵다. 게다가 당시에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극히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것도 정권다툼과 같은 정치적 측면에서 부정적이 아니라, 영토 수복을 포기한 사대주의적 행동이라는 면에서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이후 환독에서 해독되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이 기사를 발표 주제 속에서 다시 한번 접하게 되었다. 발표 주제는 '고려 공민왕 대의 대외정책'에 대한 것. 이 당시 나는 몽골 역사에 한창 빠져있던 터라 단번에 낚여 버렸다. 이 발표에서 이성계의 요동 정벌은 그저 곁가지로 다루어질 내용이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전혀 듣도 보도 못했을 내용인지라 일부러 강조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 발표를 준비하면서, 이성계의 선택, 요동에서의 철군이나 위화도 회군과 같은 선택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당시 고려의 국력으로 과연 요동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성계의 선택이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통감했다. 사대주의 따위는 기실 명분이라는 양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다, 얼마전 모 카페에서 고려의 요동 점령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 글을 읽으면서 그와 함께 소개된 다산의 요동론(遙東論)을 읽게 되었다.


고전적인 표현이지만,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탁견이었다. 현대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 요동을 차지하지 못한 조선을 무능력한 국가로 보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200년 전의 사람이 이토록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인식을 보여준다니. 다시 한번 다산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되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나라를 이끌지 못하고 스러져가야 했다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수 있을까...


초록불님의 글을 읽으면서 얼마전 접했던 요동론이 생각나 이렇게 올려본다.


<與猶堂全書> 第一集詩文集第十二卷 '遙東論'
 
고구려 때는 강토를 멀리 개척하였다. 그 북부는 실위(室韋)[지금의 만주로 또한 북부에 들어있다]에 접했고,  그 남부는 개모(蓋牟)[지금의 산해관(山海關) 이동이 모두 그 땅이다]에 이르렀다.

고려 이래로부터 북부남부는 모두 거란이 차지하였고, 금, 원 이후 다시는 우리 것으로 되찾지 못하였고 압록강 일대가 천연의 경계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 세종, 세조 때에 이르러 마천(摩天) 이북으로 천리의 땅을 개척하고 육진을 바둑돌처럼 설치하였으며, 밖으로는 창해에 닿았다. 그러나 요동은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다른 여러) 논자는 그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신(臣)은 요동을 되찾지 못한 것이 국가에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동은, 화이(華夷)가 왕래하는 요충지이다. 여진은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중국에 도달할 수 없고, 선비, 거란은 요동을 얻지 않으면 그 적을 제어할 수 없으며, 몽고는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여진과 통할 수 없다. 진실로 삼가고 온순하여 무(武)가 없는 국가가 요동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화친하면 사신을 맞아들이는 큰 비용과 병정을 징발하는 부역에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화친을 잃으면 사면이 적이니 병화가 없는 때가 없을 것이므로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이조(二祖 : 태조와 태종?) 때는 대명이 북경에 도읍을 정하여 요동과 심양의 사람들이 기내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를 엿보아도 차지할 수 없었다. 설령 요동과 심양이 오히려 여러 오랑캐에 속했다 해도 이조(二祖)께서 이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척박한 황무지로 이득이 없는 땅을 얻고 천하에 적을 늘리는 행동은 영명한 군주라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당 때에도 오히려 주, 진 때의 옛 일을 살펴 도읍을 관중에 정한 후에 위세를 얻어 천하를 제어하였다. 고로 중국의 지략가들이 논한 바는 오로지 동서 이경(낙양과 장안)의 우열뿐이었다.

대명의 성조 문황제는 세상을 뒤덮을 뛰어난 지략이 있었으나 강성한 몽고와 여진을 멀리서 제어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마침내 대명[부](大名[府] : 北京)에 귀속시켰다. 이후 중국의 주인은 이를 바꾸지 않았고 대명[부]는 중국의 도읍이 되었다. 이러한즉, 요동에 대해 다시 말할 수 있었겠는가?

또 우리나라의 지세는 북으로 두 강[두만과 압록이다]을 경계로 삼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강역의 형태가 혼연히 천혜의 요새이니 요동을 얻는 것은 반대로 군더더기를 붙이는 것이다. 어찌 유감으로 여기겠는가?

그렇지만 진실로 나라가 부강하고 병사가 강성하여 하루아침에 천하를 다툴 뜻이 있고 한걸음이라도 중원을 엿보려 할 경우에는, 먼저 요동을 얻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서로 요동을 얻고 동으로 여진을 평정하고 북으로 경계를 넓혀 흑룡강의 근원까지 올라가고 우측으로 몽고와 버틴다면 충분히 큰 나라가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통쾌한 일이다.


高句麗之時。疆土遠拓。其北部接于室韋。[今滿州。亦入北部。]其南部至于蓋牟。[今山海關以東皆其地。]自高麗以來。北部南部。悉爲契丹所據。金元以降。不復爲我有。而鴨綠一帶。遂成天限。至我世宗世祖之時。摩天以北。拓地千里。六鎭棋置。外薄滄海。而遼東終不能復。論者恨之。臣謂遼東之不復。國之幸也。遼東者。華夷往來之衝也。女眞不踰遼東。不達中國。鮮卑契丹不得遼東。不能控制其敵。蒙古不過遼東。不通女眞。苟以愿順不武之邦。而擁有遼東。其害可勝言哉。和附則使价供億之費。兵丁調助之役。竭一國之力而不能支也。失和則四面受敵而兵革無已時。竭一國之力而不能支也。二祖之時。大明已都北京。遼瀋人爲畿甸。闚之固不可得。設令遼瀋尙屬諸胡。二祖不取矣何者。得荒鹵無益之地。而增敵於天下者。英主不爲也。漢唐之世。尙按周秦之故都於關中而後。方得以威制天下。故中國智謀之士所論。唯東西二京之優劣而已。大明成祖文皇帝英略蓋世。知蒙古女眞之強。不可以遙制也。遂以大名爲歸。而後之主中國者。莫得以易之也。大名爲中國之都。則遼東豈可復言哉。且我邦地勢。北以二河爲界。[豆滿及鴨綠。]三面環以海水。疆場之制。渾然天成。得遼東反爲贅也。何爲恨之哉。雖然苟使國富而兵強。一朝有抗衡天下之志。而欲窺中原一步者。非先得遼東。不可爲也。不然西得遼東。東平女眞。北拓境上。窮黑龍之源。而右與蒙古抗。斯足爲大國。亦一快也。

원문 출처 : 민족문화추진회


덧글

  • 서군시언 2007/09/29 17:31 # 답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국력이야 어쨋건(...) 마지막 줄이 끌리는 것은 사실이군요^^;;
  • 초록불 2007/09/29 20:16 # 답글

    저는 사실 마지막 문단이 정약용의 속내를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나면 조선의 4군 6진 개척 이야기를 하면서 당시 요동 문제를 한번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07/09/29 20: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07/09/29 22:34 # 답글

    서군시언 님// 사실 저도 그래요. 마지막 문단에서 후끈 달아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초록불 님// 아쉽기도 하지만, 차지했다고 해도 유지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요동 때문에 휘청댔을지도 모르죠. 어차피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건 의미없는 것이긴 하지만...
  • 을파소 2007/09/30 00:22 # 답글

    정약용 말 그대로 '진실로' 나라가 부강해야 여토를 획득해도 유지할 수 있지 능력도 없이 집쩍거리면 그건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요동은 원래 조선 거라는 인식은 실록을 보면 중국에서도 있어썬 거 같지만, 그렇다고 조선이 능력없이 고토수복을 부르짖지 않은 건 현명한 일이죠.
  • 야스페르츠 2007/09/30 14:19 # 답글

    을파소님// 맞습니다. 요새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전쟁과 세도정치를 빼면, 조선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도 나름 최선이나 차선 수준을 달린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보헤미오 2011/08/15 16:32 # 답글

    이거... 빅토리아2로 구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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