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3 20:55

고구려 수묘제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 역사

1. 김현숙 <廣開土王陵碑를 통해 본 高句麗守墓人의 社會的 性格> 한국사연구. 1989

광개토왕릉비에 나타난 수묘인연호條를 본격적으로 검토한 초기 논문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한 논문들은 상당수가 일본에서 발표한 것인지 출전과 제목에 일어가 보인다. 그러므로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 눈에 띄는 국내 논문으로는 북한에서 발표한 것으로 보이는 손영종의 논문과 조인성의 <한국사시민강좌>에 게재된 논문이 있다. 조인성의 논문이 상대적으로 쉽게 쓰여졌을 것으로 보이므로 후배들에게 1차적으로 읽어보도록 하였다.

주요 논지는
 1) 장수왕대에 행해진 수묘제 정비의 원인, 내용, 운영에 대하여 검토
    => 이전 시대의 수묘제 운영이 미숙하였으며, 광개토왕이 이를 지적, 개선 방안을 교언하여 장수왕이 적절한 수정 후에 시행하였음.
       ★ 330가의 수묘인이 광개토왕 이전의 모든 묘역을 관리한 것으로 파악
       ★ 수묘역의 매매에 대하여 고찰

 2) 수묘인의 출신지역과 존재양상을 추론
    => 구민 110가는 5부를 제외한 피지배층, 新來韓穢 220가는 광개토왕대 복속된 피정복민으로 규정. 특히 신래한예는 주로 백제와의 전쟁 과정에서 복속된 신민으로 파악함. 구민의 경우 기존에 수묘역에 종사하였던 민으로 파악함.

 3) 수묘인의 사회적 성격
    => 국연을 豪民층과 같은 지배층으로 파악, 일반 下戶로 파악한 간연을 통제하는 존재로 규정. 수묘인을 양인과 노예의 중간적 존재인 特殊職役人集團으로 그 성격을 규정함.

주목할 것은, 수묘역의 매매 금지 조항에 대하여 심도있는 고찰을 한 유일한 논고이다.



2. 이도학 <광개토왕릉비문의 國烟과 看烟의 性格에 대한 再檢討 - 被征服民 施策과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연구 28. 2002

발표 연대 상으로는 세번째이나, 조법종의 논문이 너무 긴 관계로 프린트하지 못해서 두번째로 살펴보았다.

주요 논지
 1) 비문의 祖王先王과 祖先王 고찰
    =>'선대의 모든 왕'이 아닌 祖王 고국원왕과 先王 고국양왕으로 파악하여, 330가가 광개토왕을 포함 3기의 묘역을 관리한 것으로 규정함. 특이사항으로, 비의 위치와 주변 고분 배치, 기록 등을 통해 곽개토왕, 고국원왕, 고국양왕의 능을 비정하였음.

 2) 수묘인의 출신지역과 존재양상을 추론
    => 국연과 간연을 각기 '국도의 연'과 '지방의 연'으로 파악, 국연은 국도로 사민된(혹은 인질로 끌려온) 피정복민, 간연은 해당 지방에 거주하는 민으로 규정. 국연을 지배층으로 보아 국도로 사민되었다고 봄.



3. 김락기 <高句麗 守墓人의 구분과 立役方式 - 廣開土王陵碑 守墓人烟戶條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연구 41. 2006

주요 논지
 1) 비문의 阿旦城雜珍城合十家爲看烟 고찰
    => 아단성과 잡진성의 간연이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여, 비문이 세워질 당시까지도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간연은 국강상으로 사민되지 않았다고 추론.

 2) 수묘인의 출신지역과 존재양상을 추론
    => 아단성, 잡진성의 간연 문제, 수묘인의 출신지역을 명기한 이유 등을 통해 간연을 결원에 대비한 예비 수묘인으로 규정.

3) 일본의 수묘제와 비교 검토
    => 番上制 수묘역, 수묘를 관장하는 관청의 존재, 烟이라는 표현 사용

4) 수묘인의 입역방식 추론
    => 국연이 묘역으로 사민되어 수묘를 전담하였던 것으로 추정, 간연은 결원에 대비한 예비 수묘인으로 규정.



결론은...............

명확한 답이나, 가장 믿을 만한 추론도 없다는 말씀.......

전부 다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

완전 좌절........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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