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22 00:04

동해 바닷길에 대한 추론 역사

'바다는 고대인의 고속도로이다'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아주 멋진 말이다. 보통, 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바다를 장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과 일본의 역사를 들 수 있겠다. 건너편이 바라다보일 정도로 좁은 해협을 두고 유럽 대륙과 떨어져 있는 영국은 그로 인해 유럽의 전화에 휩쓸리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다고 흔히 말한다. 일본 역시, 몽고습래를 제외하면 단 한번의 침략도 받지 않았다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바닷길의 역할은 언제나 중요했다. 침략을 벗어날 수 있었다는 영국은, 중세에는 현 프랑스 영토의 서쪽 절반을 경영하였고, 이는 실상 프랑스의 해안 대부분을 말한다. 바다를 장벽이라 생각한다면, 이러한 영국의 영토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로마 제국이 지중해를 장악하여 로마의 내해로 만들었던 사실 역시 마찬가지. 바다를 장벽으로 여기는 역사관으로는, 지중해 주변의 해안 지역만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로마가 어떻게 3대륙에 걸친 초강대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 깨닫기 어렵다. 중부 유럽에서 출발하여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까지 이주했던 반달족을 이해하는 것 역시 어려울 것이다.



일전에 모 게시판에서, 우산국을 놓고 대륙빠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대륙빠의 논지는 어차피 중구난방, 울릉도에서 신라, 대마도로 가는 뱃길은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아득바득 우기면서도 대만에서 절강, 복건으로 가는 뱃길은 안전하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논쟁이었다. 그러나 그 논쟁 속에서 새록새록 생겨난 의문점은 분명 있었다.

바다, 항해에 대해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나침반도 없던 시대에 동해안에서 울릉도로 향하는 뱃길은 매우 어려워보인다. 울릉도에서 동해안으로 오는 길이야 어차피 해지는 방향으로 열심히 노저으면 어디든 도착하니 관계없지만, 동해안에서 울릉도라는 조그마한 섬으로 향하는 길은 얼마나 위험한가. 까딱 방향을 잘못 잡으면 망망대해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그러나, 논쟁 이후에 뇌내망상을 통해 고찰해본 결과, 울릉도로 향하는 바닷길은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저 유명한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계산법'을 통해 내려진 결론이다.

울릉도와 동해안 사이의 거리는 약 160Km, 지구 둘레 40,000Km를 통해 160Km에 대한 중심각 1.44˚를 얻었다. '동해안의 어느 지점 A에 직각으로 접하는 직선'과, '울릉도와 지구의 중심을 관통하는 선'이 만나서 이루는 각은 88.56˚, 이를 통해 계산하면 160.88Km를 얻는다. 이를 지구의 반지름과 직각을 이루는 직각삼각형으로 상정하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의하여 울릉도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가 약 2Km가 나온다. 즉, 동해안에서 바라볼때 해발 2Km 높이의 섬이면 160Km 거리에서도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울릉도 성인봉의 높이가 984m. 간단하게 생각해볼 때, 동해안에서 동쪽으로 약 80Km를 항해하면 성인봉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고대의 항해기술이 아무리 뒤쳐졌다고 해도 80Km 정도는 하루 안에 항해가 가능할 것이다.(80Km면 일반적인 사람이 20시간 동안 걷는 거리) 그러므로 울릉도로의 항해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 (물론 계산방법이 맞는지는 모른다...먼산...)


동해의 바닷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역시 <삼국지>의 읍루條일 것이다.

其國便乘船寇盜, 鄰國患之

동양 최초의 해적이라고 볼 수 있는건가? 아무튼 읍루가 최초로 동해의 바닷길을 이용한 이래 동해는 역사 판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초기 신라를 끊임없이 위협하였던 왜구, 이사부가 정복한 우산국 등등.

또한, 역사에 직접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으나 바닷길을 생각치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신라가 내물왕 무렵부터 강릉을 경영하였다는 것과, 진흥왕 대 신라의 북진이다.

<삼국사기>에 하슬라가 최초로 등장하는 때는 내물왕 42년(397년)이다. 그러나 이는 공취한 기사가 아니라 구휼한 기사이다. 그러므로 하슬라는 그 이전부터 신라의 영토였다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기림왕 3년(300년)에 현재의 안변으로 비정되는 비열홀에 순행한 기사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를 통해 강원도의 동해안 일대는 신라의 영향권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억측은 아닐것 같다. 비록, 지리지에는 하슬라(명주), 비열홀(삭정)이 원래 고구려의 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음으로, 진흥왕 대 신라는 함경도 남부 해안지대까지 장악했다. 그 증거는 바로 마운령비와 황초령비. 비록 진흥왕 이후 상실하였다고 하지만 그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동해의 바닷길이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또한 발해와 일본 간의 사신 내왕 역시 동해 바닷길을 이용한 것이었다. 발해 사신이 지나간 길은 일본 호쿠리쿠 지방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즉, 동해를 곧바로 가로질러 사신을 파견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후 동해 바닷길은 역사의 무대에서 한발짝 물러선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동서가 좁고 서쪽에 중요 지역이 몰려있는 한반도의 지형과 그러한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하는 국가의 등장이 그 원인이 될 것이다. 또한 對 중국 관계가 가장 중요했던 우리 역사에 있어서 일본을 제외하면 망망대해였던 동해는 관심에서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일본은 사실 동해라기보다 남해라고 해야할게다)

덧글

  • 초록불 2007/09/21 23:49 # 답글

    울릉도는 날이 좋으면 강원도 동해안에서 보인다는 기록이 있고, 실제 보았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 야스페르츠 2007/09/21 23:57 # 답글

    초록불님// 으악!!! 두시간 동안 수학공식과 씨름해서 얻어낸 결과가....ㅠㅜ

    그걸 알았으면 저 대륙빠를 단번에 박살낼 수 있었을텐데....ㅠㅜ
  • 초록불 2007/09/22 01:48 # 답글

    음... 그런데 동해에서 울릉도가 보인다는 기록은 많은 반면, 동해안에서 울릉도를 본 사람은 제가 찾은 경우가 단 한 건이었습니다. 그것도 망원렌즈를 통해서...

    따라서 이런 자료로는 대륙빠와 싸우면 곤란할 수도 있죠. 대륙빠들은 울릉도가 동해안에서 보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조선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니까요. 조선 시대에는 동해 해수면이 지금보다 낮았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야!)

    나로서는 조선시대 기록이 과장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대륙빠들에겐 통하지 않을 소리기도 하죠.
  • 야스페르츠 2007/09/22 09:22 # 답글

    고대에는 해수면이 오히려 높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현재의 해안선은 대부분 고대의 해안선보다 더 멀리 있잖아요........

    아.... 그건 퇴적 때문인가????(먼산..)
  • 한단인 2007/09/22 23:29 # 답글

    '바다는 고대인의 고속도로이다'

    라는 말은 해양사 전공의 윤명철 교수님의 저서인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 인거 같군요.
  • 야스페르츠 2007/09/23 13:59 # 답글

    한단인님 // 아 그렇군요... 사실 저는 저 말을 어떤 만화에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ㅡㅡ;;
  • 이천풍 2007/09/23 15:30 # 삭제 답글

    고대의 해수면은 지금보다는 조금 높았다고 합니다. (그와 비슷하게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울릉도는 해발 1천 미터도 되지 않습니다. ㅡㅡ; 위의 계산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죠. 또한 바다는 물결이 생기고 그에 따라 빛이 산란하면서, 시각을 방해합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더욱 짧아집니다. (반대로 신기루와 비슷한 현상 때문에 먼곳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난 "헛것"이니까 논외로 합니다.)
    160킬로의 절반인 80킬로만 되더라도 해발 1천미터인 물체를 보기는 대단히 힘들어집니다. 참고로 성인봉은 984미터입니다.
  • 이천풍 2007/09/23 15:33 # 삭제 답글

    또한 대륙삼국설의 논거 가운데 하나인 "대륙형 메뚜기"는 과거의 날씨가 지금보다 따뜻했음을 들어 논파할 수 있습니다. 대륙형 메뚜기가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같은 종인데 조금 더 이동성이 활발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개와 늑대가 같은 종인 것과 비슷한 논리이죠. (개는 늑대의 아종 또는 품종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현대 기후가 아열대로 바뀔수록 사료에 나타난 대륙형 메뚜기는 한반도에서도 등장할 수 있게 됩니다.
  • 이천풍 2007/09/23 15:56 # 삭제 답글

    고대의 바다가 지금보다 좀 더 높았다고 하더라도 사실 해발 고도의 차이는 2~3미터 정도입니다. 그게 아주 멀게끔 여겨지죠. 실제 수천년 전보다 해당 지역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퇴적물이 쌓였거든요. 예를 들면 김해평야를 보면 해발 고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고작해야 1~2미터도 굉장히 높습니다. 그러니 2~3미터이면 거의 수킬로에서 수십킬로는 더 이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톈진 시가지나 상하이 시 전체는 3천년 전에는 바닷속이었습니다. 베이징 근처에는 그 당시에 항구가 있었죠. ㅡㅡ;
    게다가 제가 사는 전남 순천시도 고려 중기까지만 해도 현재의 순천 구시가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습니다. 신시가지는 당시에는 바다 밑이었고요. 순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사이에 산이 있는데 죽"도"봉입니다. 원래는 죽도인데 바닷물이 빠지면서 육지에 연결되었다네요.
  • 이천풍 2007/09/23 16:07 # 삭제 답글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주강현 씀,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05년) 추천.
  • 야스페르츠 2007/09/23 19:57 # 답글

    이천풍님//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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