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9 00:28

김부식을 위한 변명 역사

김부식...

전근대 한국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이 까이는 역사가라고 생각된다. 현대에는 사대주의자라고 까이는가 하면, 조선 시대에는 중화를 존중하지 않은 '이단'으로 까이고....

김부식을 깐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논고라면, 단재 선생님의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을 들 수 있다.

김부식의 생애 가운데 가장 찬란했던 시기, 바로 묘청의 난에 총사령관으로 출정하여 묘청을 쳐부순 사건. 단재는 이 사건을 일컬어 근 천년 이래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 말한다. 이 사건이야 말로 仙·佛과 儒, 독립과 사대, 진보와 보수의 일대 격돌이며, 김부식이 묘청에 승리함으로써 선,불교와 독립과 진보가 사라지고 유교와 사대주의와 보수사상이 활개치게 되었다는 말씀....

이 한편의 논문으로부터 김부식은 마침내 사대주의자로 낙인찍혔으며,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대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 되었다. 급기야 재야사학과 같은 날조사학마저 단재의 권위를 빌려 김부식을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사대주의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김부식은 '골수 사대주의자'이다.

그러나, 김부식의 사대주의는 조선 시대의 사대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김부식의 사대주의를 조선 시대와 구분하여 억지로 이름을 붙여 보자면, '문화적 사대주의', 즉, '모화(慕華)'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그가 유교와 중화의 문명, 문물을 절대가치로 숭상하는 모습을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고유의 개념이나 전통문화를 서술할 때 나타나는 그의 논평은 언제나 중국의 문물, 법도, 학문을 근거로 비판을 가한다. 그의 논평에서 풍기는 어조를 그대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중국의 법도에 따르면 몹쓸짓이나 차마 빼버리는 것은 옳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기록한다



이렇게 보면 정말 김부식은 골수 사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부식은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서는 조선의 꼴통 사대주의와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삼국이 외적의 침략을 받아 그것을 물리치고 극복하는 것에 대한 서술이 매우 풍부하며, 심지어 고-당 전쟁의 결과가 중국의 사서에 올바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어 중국 사가의 곡필에 통렬한 비난을 가하기까지 한다. 그런가 하면 당이 신라의 내정에 간섭하려 한 것, 그리고 그것을 거부한 사실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김부식의 인식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사론에 있어서,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을 이야기한 부분을 살펴보면,

큰나라와 화친하지 않고 무모한 전쟁을 벌여 멸망에 이르렀다

이 정도의 평가일 뿐이다. 진정한 사대주의자에게 어울리는 사론이라면, '어디 위대한 중화랑 맞짱을 떠!' 라고 말했을 것이다. 즉, 김부식은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서는 매우 현실적인 수준의 '사대'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작은 나라이므로 큰나라에게 개기지 말고 다같이 잘먹고 잘살자

이 정도의 개념이었다는 말씀.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낙인찍은 가장 중요한 사건인 '묘청의 난'은 실상 김부식이 '사대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식 사대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묘청이 주장한 북벌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당시 국제정세는, 새로이 흥기한 여진족의 '금'이 중화인 송을 남쪽으로 밀어내고 중원을 차지했던 역사의 격변기였다. 묘청이 주장한 북벌이란, 사실 사대주의의 대상과 하등 관계없는, 북방의 강자 여진족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식 사대주의자라면, 중국이 북방민족에게 중원을 빼앗기고 어려움에 처해있으니 소중화(小中華)인 고려가 마땅히 중국을 도와 여진족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실상 묘청이 주장하는 북벌과 방법 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김부식은 북벌의 불가함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판단한다. 여진족이 중화인 송을 남쪽으로 밀어내고 중원을 차지한 것은 김부식이 한창 활약하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김부식은 북송이 몰락하던 시기에 중국으로 사행(使行)을 가 그 생생한 현장을 직접 체험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결국, 묘청의 난이 벌어진 시기는 여진족이 한창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여진족이 아직 결집하여 세력을 형성하기 이전에 벌어졌던 '여진 정벌'에서조차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던 고려이다. 기록의 면면으로만 살펴본다면 고려는 척준경이라는 먼치킨 장수가 아니었으면 여진 정벌에서 완벽하게 패배해야 했을지도 모를 정도이다. 이를 생각한다면 고려와 금의 일전의 결과는 처참하리만큼 명백하다.


김부식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북벌 등을 반대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물론, 김부식이 묘청을 토벌한 것은 권력의 암투라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부식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가가 이러한 국제정세의 흐름을 생각치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고로,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몰았던 대표적인 논고 '조선역사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에서 이야기하는 근거 가운데 일부는 오히려 김부식이 사대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부식의 사대주의는 지극히 현실적인 외교 정책이었다.

물론, 문화적 측면에서는 심각한 '중국빠'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측면의 인식도 현대의 관점에서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역시 근대적 사상의 세례를 받아 우리 전통 문화를 고리타분한 것, 미신 등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조금 거칠게 비유하자면, 김부식의 문화에 대한 인식 역시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덧글

  • 초록불 2007/09/09 09:19 # 답글

    저는 심지어 조선의 유학자들에 대해서도 그들을 현대적 개념의 사대주의자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점은 나중에 한번 생각해보고...

    같은 제목의 글이 제게 있습니다. 트랙백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7/09/09 11:41 # 답글

    초록불님 // 하하... 같은 제목.... ㅡㅡ;;
    사대'주의'라는 것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었지요... 알고 있으면서도 항상 잊어버리는...
  • 이천풍 2007/09/09 19:47 # 삭제 답글

    저는 김부식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김부식은 "사대"를 했지만, 고려와 송, 요, 금을 놓고 보면, 분명히 고려를 가장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의 사대주의자들은 조선을 명이나 청보다 뒤에 놓았죠. 대표적 위인이 율곡 이이나 퇴계 이황이고, 유성룡도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론할 필요도 없겠죠.
  • 야스페르츠 2007/09/09 22:48 # 답글

    이천풍님// 하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명분론을 내세우며 가히 시대착오적이라 할만한 정책을 내세운 바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그들이 조선을 명이나 청보다 뒤에 놓았다고 보는 것은 조금 억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여, 병자호란 무렵의 일부 골수 명분론자들은 그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율곡이나 퇴계, 서애까지 그러한 범주에 넣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뭐, 율곡이나 퇴계는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냉혹한 선택을 요구받은 일이 없으니 제쳐두더라도, 서애가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의 와중에 보여주는 행적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서애는, 가히 편집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신착란을 보이는 선조를 보필하면서,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전란 속의 조선을 이끌어나간 위대한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명분을 조선보다 중요시여겼다면, 압록강을 건너려는 선조를 목숨걸고 말린 수많은 중신들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며, 일본군 뺨치는 만행을 저지르는 명군과 피말리는 작전을 전개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서애에 대한 오해를 풀어보시기 위해서라도 징비록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난세에서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진정한 정치가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저도 아직 완전히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ㅡㅡ;;)
  • 야스페르츠 2007/09/09 23:09 # 답글

    제가 이 포스팅에서 말한 조선 후기 막장 사대주의라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며, 당대의 현실에 걸맞지 않는 형태로 전개된 소중화주의입니다. 청이라는 절대강국을 상대로 비현실적인 대명 사대를 주장한 것이나, 명이 멸망한 이후 현실적인 사대의 대상인 청과 별도로 소중화를 내세우며 망국을 사대한 것 등등...
    그러나, 현재의 학계는 그러한 소중화주의조차 당대의 현실에서 조선이라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최선은 아니라고 해도 나름대로의 고뇌를 거친 선택이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청과 명 사이에서 인조 정권이 선택한 길을 비판하는 것은, 결과를 모두 알고 있기에 가능한, 공평하지 못한 행위이기도 하죠. 나치즘에 빠져든 독일을 현재의 관점에서 비난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 이천풍 2007/09/11 14:29 # 삭제 답글

    반대로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30년 동안 신하들에게 휘둘려 왔던 왕이 과연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런 왕을 편집증이니 정신 착란이니 하는 식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현재의 관점"일 뿐입니다. 조선이 왕조국가이고 왕권이 절대성을 가지는 국가이니, 그러한 관점에서 우선 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도대체 왜 조선을 논하는데 그런 관점을 쏙 빼고 현재의 관점에서 논하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 야스페르츠 2007/09/11 15:39 # 답글

    선조의 행적을 두고 편집증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저의 사견일 뿐이지만, 그러한 편집증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것이야말로,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추측하는 것이죠. '평가'와 '추측'은 다릅니다.
    그리고 자꾸 논점을 바꾸시는데요, 이천풍님의 논점은 조선이 자기부정적인 막장 사대주의를 했다는 것이고, 저는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것입니다. 적어도 자기부정적으로 사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고려에 비해 극한으로 뻗은 소중화주의도 당대 조선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의 최선이었다는 것이죠. 선조가 정신착란인 것은 이 주제와 하등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 논점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지 말아주세요.
  • 공손연 2010/06/07 15:12 #

    쓸데없이 복잡하고 효율이 극도로 떨어져서 쓸데없는 전쟁을 자초했다는 면에서 조선의 대명사대와 그 이후의 소중화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힘을 길러서 멍에를 벗지는 못할 지언정 섬기던 나라가 약해지면 줄을 잘서서 화를 피해야지....임란은 어쩔수 없더라도 호란의 경우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조선유학자들의 정신적인 장애의 결과물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6/07 16:15 #

    전형적인 사후약방문식 평가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과 명분이 있는 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소중화의식은 물론이고, 양호란도 최근에는 "불가항력적인 전쟁"으로 보는 것이 대세입니다. "인조가 대명사대를 하느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전쟁을 자초했다"는 것이 왜곡된 사실이라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오항녕 선생님이 쓴 <조선의 힘>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 공손연 2010/06/08 11:24 #

    사후약방문이라는데 근거가 명확해야 할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과 명분이 있다면 그게 조선만의 것이서는 안될것입니다. 적어도 동양삼국인 중국,일본과 비교해서 가치성이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할수준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보거든요.

    양호란도 불가항력적인 전쟁으로 보고싶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속을 넘어서는 침략의도를 후금이 가지고 있을때 해당한다고 볼일이지 단지 조선당국자들인 국왕과 성리학자들만의 정신적인 생리를 근거로 해서 대내적인 가치문제를 근거로 한다면 아주 틀려먹은 소리라고 하고 싶군요. 설마 그럴리는 없다고 보고 싶습니다.
  • 이천풍 2007/09/11 18:02 # 삭제 답글

    죄송합니다. 제가 내용을 착각했습니다(사대에 대한 이야기에 갑자기 압록강이 나오고, 편집증이니 하는 말이 나오다 보니).
  • 토치로 2009/07/26 12:57 # 삭제 답글

    놀랍습니다. 저도 김부식선생의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통념을 거부하지만 님처럼 단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곤란했는데, 정말 명확한 설명이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7/27 12:55 #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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