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4 01:10

기자의 세계에 대한 잡설 역사

기자조선과 마한의 세계世系와 관련하여

hyjoon 님의 위 포스팅에 덧붙일만한 내용을 대충 찾아보았다.

나는 상고하건대, 기자의 뒤를 이어온 임금에 대해서는 동사(東史)에서 전혀 상고할 수가 없는데, 새로 간행(刊行)된 행주 기씨(幸州奇氏)의 족보(族譜)에 의하면 기자 이후의 세서(世序)를 자세히 열록(列錄)하고는,
“우리 기씨(奇氏)로 말하면, 호남(湖南) 광주(光州)에서 도랑을 파다가 비석(碑石)을 얻었는데, 거기에 기자 이후 기씨의 세계(世系)가 매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하였고, 기자의 후손(後孫)이 실국(失國)한 후에 다시 마한왕(馬韓王)이 되었던 그 이후의 세계도도 매우 자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마디 한마디마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기에 지금 채록(采錄)한다.

대체로 주 무왕(周武王) 기묘(서기전 1094)주1)에 기자가 조선에 와서 살다가 이어 임금이 되었고, 한 혜제(漢惠帝) 1년(정미)에 기준(箕準)이 마한왕(馬韓王)이 된 때까지 모두 9백 29년인데, 지금 여기에 41대(代)이고 보면 1천 36년주2)이 되니, 이것이 의심스럽다. 또 41대 가운데 동사(東史)에는 기부(箕否)ㆍ기준(箕準) 양대(兩大)의 이름만 있을 뿐인데, 지금 여기에는 기부가 없으니 이것이 의심스러운 것이고, 삼국(三國 신라ㆍ백제ㆍ고구려) 중엽 이후부터 비로소 시법(諡法)이 있었는데, 기씨(奇氏) 족보에 열록된 것이 모두 다 시호(諡號)인 듯하니 이것도 의심스러운 것이고, 동사(東史)에는 기준을 마한(馬韓)의 시조로 삼고 호강왕(虎康王)이라 호칭하였을 뿐, 그 뒤를 계승한 임금은 없는데, 기씨 족보에는 호강왕(虎康王)은 없고 강왕(康王) 탁(卓)으로 으뜸을 삼았으니 이것 역시 의심스럽다. 기씨의 족보에 열록된 것은 다음과 같다.

“태조(太祖)인 문성왕(文聖王) 기자(箕子)가 40년(年), 장혜왕(莊惠王) 송(松)이 25년, 경효왕 (敬孝王) 순(詢)이 27년, 공정왕(恭貞王) 백(伯)이 30년, 문무왕(文武王) 춘(椿)이 28년, 태원왕(太原王) 찰(札)이 44년, 경창왕(景昌王) 장(莊)이 11년, 흥평왕(興平王) 제(提)가 14년, 철위왕(哲威王) 조(調)가 18년, 선혜왕(宣惠王) 영(縈)이 59년인데, 이때까지는 국가(國家)가 편안하여 아무 일도 없었다. 이어 의양왕(誼襄王) 사(師)가 53년, 문혜왕(文惠王) 염(炎)이 50년, 성덕왕(盛德王) 월(越)이 15년, 도회왕(悼懷王) 직(職)이 65년, 문열왕(文烈王) 우(優)가 15년, 창국왕(昌國王) 목(睦)이 13년, 무성왕(武成王) 평(平)이 26년, 정경왕(貞敬王)이 19년, 낙성왕(樂成王) 회(懷)가 28년, 효종왕(孝宗王) 존(存)이 17년, 천로왕(天老王) 효(孝)가 24년, 수도왕(修道王) 양(襄)이 19년, 휘양왕(徽襄王) 이(邇)가 21년, 봉일왕(奉日王) 삼(參)이 16년, 덕창왕(德昌王) 근(僅)이 18년, 수성왕(壽聖王) 삭(朔)이 42년, 영걸왕(英傑王) 여(藜)가 16년, 일민왕(逸民王) 강(岡)이 17년, 제세왕(濟世王) 곤(鯤)이 22년, 청국왕(淸國王) 벽(璧)이 35년, 도국왕(導國王) 징(澄)이 19년, 혁성왕(赫聖王) 즐(騭) 28년, 화라왕(和羅王) 요(耀)가 16년, 설문왕(說文王) 하(賀)가 8년, 경순왕(慶順王) 화(華)가 19년, 가덕왕(佳德王) 허(詡)가 27년, 삼로왕(三老王) 욱(煜)이 25년, 현문왕(顯文王) 석(釋)이 39년, 장평왕(章平王) 윤(潤)이 28년, 종통왕(宗統王) 휼(恤)이 12년, 애왕(哀王) 준(準)이 28년, 마한(馬韓)의 강왕(康王) 탁(卓)이 한 혜제(漢惠帝) 2년(무신)에 즉위하여 3년, 안왕(安王) 감(龕)이 32년, 혜왕(惠王) 식(寔)이 13년, 명왕(明王) 무(武)가 31년, 효왕(孝王) 향(享)이 40년, 양왕(襄王) 섭(燮)이 15년, 원왕(元王) 훈(勳)이 26년, 계왕(稽王) 이름은 실전(失傳)되었다. 이 16년이었는데, 계왕 16년인 한 성제(漢成帝) 18년(계묘)에 백제왕(百濟王) 온조(溫祚)에게 병탄(幷呑)되었다.”

또 상고하건대, 마한(馬韓)은 강왕(康王) 탁(卓)으로 으뜸을 삼고 그 아래로 일곱왕(王)을 열록하였는데, 동사(東史)에는 그냥 ‘마한은 한 혜제(漢惠帝) 2년(무신)에서 시작하여 성제(成帝) 18년(계묘)에 백제왕 온조에게 멸망되었다.’고만 하였으나, 이 기간이 의당 1백 76년이 되어야 할 것이니 이것 또한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동사에서 이따금 이 사실을 특서(特書)하여 신적(信蹟)으로 삼고 있으니, 이는 온당치 못한 듯하다.

주1) 기원전 1094년은 기묘년이 아니라 정미년이다. 민추에서 이 책을 번역할 때 아마도 뒤의 혜제 1년 정미와 헷갈린 것 같다. 기묘년의 일반적으로 공인된 연대는 기원전 1122년이다.
주2) 실제로 다 더해보면 1076년이다. 이규경이 덧셈에 좀 약한 듯...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19세기 중엽

이규경이 19세기 중엽에 정리한 일종의 백과사전적 저작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언급된 기자의 세계에 대한 고찰이다. 강조한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세기의 어느 때인가 새롭게 간행된 기씨의 족보에서 기자조선의 역대 목록이 들어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던 것 같긴 하다만...


이렇게 날조된 기자조선의 역대 군주 목록은 겨우 몇십 년 뒤에 편찬된 《기자지》에 이르면 당당한 기자조선의 군주 목록으로 그 이름을 올리게 되는데, 이때 이규경이 지적하였던 문제점이 매끈하게(?) 고쳐진 상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 40대 왕인 종통왕의 이름이 휼(恤)에서 부(丕)로 변경
* 연대를 맞추기 위해 몇몇 왕의 재위기간을 변경 (태원왕을 44년에서 4년으로, 선혜왕을 59년에서 29년으로, 도회왕을 65년에서 2년으로, 수성왕을 42년에서 41년으로, 제세왕을 22년에서 21년으로, 청국왕을 35년에서 33년으로, 장평왕을 28년에서 19년으로, 애왕을 28년에서 27년으로)
* 마한의 초대 왕을 강왕에서 애왕(준왕)으로 변경


나름 매끄럽게(?) 수정을 하긴 했는데, 그래도 기씨 족보에 억지로 맞도록 만들다보니 마한의 초대 왕이 된 준왕은 즉위하자마자 사망,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미년(기원전 194년)에 마한으로 이동해오자마자 사망. ㅡㅡ;;



그렇다면, 우리의 위대한 날조찌라시 《환단고기》는 이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자조선 같은 건 우걱우걱 하고 있는 이유립은 번한의 왕계보의 말미에야 비로소 기자의 후손을 끼워 넣고 있다.

무술년(기원전 263년), 수한(水韓, 번한의 왕)이 죽었는데 후사가 없자 기후(箕詡)가 명을 받아 군령을 대행하였다.
《환단고기》

기후는 기자조선의 계보에서 가덕왕을 말하는데, 《기자지》의 세계에 따르면 무술년보다 훨씬 이른 기묘년(기원전 342년)에 즉위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자의 후손들의 재위년, 즉위년은 《기자지》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역시나 《기자지》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기자조선의 역대 군주를 그대로 보고 베꼈다. ㅡㅡ;;

그리고, 어떻게 보자면
이유립의 빈곤한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한데, 번한의 왕계보에서 기준부터 시작해서 은나라 멸망 연대, 즉 기자조선이 시작된 기묘년까지의 군주 수가 정확하게 41명이다..... 기자조선을 그렇게도 배격하면서도 기자조선 전승(?)은 참 잘 따르고 있는 《환단고기》가 되시겠다.


오늘은 피곤해서 대충 《기자지》와 날조찌라시만 훑어봤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보다 더 확장된 기자조선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다른 책들도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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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굔군 2012/05/04 02:17 # 답글

    오오, 역시 환단고기처럼 기자 계보도 수정의 흔적이...

    그런데 알고 보면 기자의 후손을 자칭한 것도 후한대에 중국쪽 선우씨들이 먼저더군요. 한국의 기자의 후예(?)들도 이런 것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뭐, 계보까지 창작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었겠지만...
  • 야스페르츠 2012/05/04 12:50 #

    《기자지》의 세계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우씨의 탄생에 대한 내용이죠.
  • 누군가의친구 2012/05/04 02:25 # 답글

    계보 조작하는것도 따라한다면...ㄲ

    하여간 그래서 사실 전 족보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2/05/04 12:51 #

    원래 족보는, 특히 시조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믿을 게 못됩니다.
  • 대공 2012/05/04 06:36 # 답글

    기씨도 한씨도 자기들이 후예라니....
  • 야스페르츠 2012/05/04 12:51 #

    기씨, 한씨, 선우씨 등등이 있지요.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 마에스트로 2012/05/04 09:04 # 답글

    이 자료들의 원 출처가 궁금하군요. 뭐지?
  • 야스페르츠 2012/05/04 12:52 #

    일단 원 출처는 기씨족보가 분명합니다. 기씨 족보에서 대놓고 "비석을 발견했는데 거기 새겨져 있었다"라고 뻥을 치고 있으니... ㅡㅡ;;
  • 마에스트로 2012/05/04 18:29 #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드는군요ㅠㅠㅠㅠ
  • 굔군 2012/05/04 22:19 #

    사실일 리는 당연히 없겠지요. 기자조선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텐데...
  • 마에스트로 2012/05/04 22:41 #

    그렇기도 하지만 고조선사의 너무 지겨운 답보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니....ㅠㅠㅠ
  • 진성당거사 2012/05/04 11:01 # 답글

    이 얘기는 헐버트의 책에도 똑같이 나오지요. 이 내용의 첫 출처가 도대체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2/05/04 12:52 #

    기씨 족보에서 날조한 것이라는 게 그나마 가장 신빙성있을 것 같습니다.
  • 로자노프 2012/05/04 11:12 # 답글

    다음 글도 기대되네요.
  • 야스페르츠 2012/05/04 12:53 #

    초록불 님이 쓴 대한제국 역사교과서 관련 포스팅에도 나오죠. ^^
  • hyjoon 2012/05/04 13:58 # 답글

    위사僞史도 나름의 계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재미라면 재미입니다. ㅎㅎ
  • 야스페르츠 2012/05/04 15:38 #

    그렇지요. 점점 살이 붙고 내용이 충실해지는 계보..
  • 마에스트로 2012/05/04 18:30 #

    층층이 쌓여 이루어진 역사=> 위사
  • DreamersFleet 2012/05/04 14:58 # 답글

    머지않아, 환단고기가 대한민국 족보에 영향을 주는 날이 오는 건가?

    100년후엔 환단고기가 기씨족보에 화랑세기가 김해경주 김씨 족보에 오르는 걸 보게떠요. ^^.
  • 야스페르츠 2012/05/04 15:40 #

    댁이 여기에 댓글을 달 자격은 없다는 걸 잊은 모양이군요? 아니면 그 동안 당한 모욕을 잊었던가.
  • 파랑나리 2012/05/11 21:18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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