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5 21:45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에 언급된 임나일본부설 역사

임나경영설은 뇌내망상이 아닙니다.

4・5・6세기의 일한관계라고 하면, 그 중심적 과제 중 하나로써 ‘임나’문제를 들 수 있다. 이전에는 ‘임나일본부’라는 것이 한반도의 남부에 존재하며, 왜왕권의 파견기관 내지는 반도경영의 거점으로서 기능을 한 것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견해가 크게 변경되어, 사료용어로써 ‘임나’ 또는 ‘임나일본부’가 사용되는 경우는 있지만, 반도남부의 역사는 가야 제국과 그 흥망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래서 본론에서는 4~6세기의 일한관계를 이해하는 오늘날의 시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략)
5세기에 관해서는 우선 왜의 5왕이 중국남조의 송에 요구한 관작의 해석이 문제가 된다. 이러한 것들은 군사권의 위임을 보일 뿐이고 민정권이나 영토지배에 대해서는 관계가 없다고 이해되기에 이르렀지만, 그 중에서 진한・모한에 무언가 실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바이다. 진한의 실태는 분명하지 않지만, 모한에 관해서는 1980년대에 그 존재가 확정된 한반도 서남부 전라남도 영산강유역의 전방후원분을 둘러싼 논의가 중요하다. 고고학적 입장에서는 영산강유역이 완전히 백제의 문화권에 들어가는 것은 6세기 중엽 이후의 일로써, 전방후원분은 그 최종적 대립의 양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6세기 전반 무렵까지 백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백제와 관계를 돈독히 해가면서도 왜국 내의 여러 세력, 특히 규슈의 중・북부 세력, 그리고 대가야와도 제휴하는 독자적 세력이 존립하고 있었다고 보고 여기에 ‘慕韓’, 즉 馬韓의 잔존세력의 존재를 상정하면 어떨까 한다. 단, 그 문화적 특징으로 보아 이 지역은백제도 아니고 가야도 아니며 물론 왜국의 영토도 아니다. 이러한 자립적 지역의 존재와 다원적 외교의 가능성이 5세기의 일한관계를 특징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5세기의 왜와 한반도 諸國의 다원적 관계가, 왜-백제관계 일변도가 되는 것이 6세기이며, 가야 諸國을 둘러싼 백제와 신라의 분쟁 발발, 그 가운데 기본적으로 백제 지지입장으로 끼어있는 왜의 존재가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의 이해가 문제가 된다. 이것은 ‘재안라제왜신등’이 당시의 표기에 가깝고, 그 실태는 가야지역에 거주하는 왜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왜국의 조정과는 독자적인 입장에 있었지만 본국인 왜국의 조정, 또는 각각의 출신호족과도 몇몇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어서 무엇보다 스스로의 존립・활동의 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독립 유지를 희망하는 안라 등 잔존 가야 諸國과 공동으로 백제와 신라, 왜국, 나아가서는 고구려와도 외교 교섭을 하고 그 때마다 최선의 방책을 모색하는 행동을 취했다. 또한 왕권의 성장이라는 점에서는 6세기 중엽의 가야 諸國 멸망 후에, 왜 왕권은 이러한 지방호족의 독자적 활동이나 외교권을 접수하여 7세기에 중앙집권국가 확립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 모리 기미유키(森公章), 하마다 고사쿠(濱田耕策, 1장), 〈古代 王權의 成長과 日韓關係〉,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2010

본문까지 정리하기는 귀찮아 국문 초록에서 발췌...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상 중간에 한 문단 빼고 국문 초록 전문에 해당합니다. 물론 일본어판 논문도 존재하며, 당연히 근본적으로 내용에 차이는 없습니다.

濱田 : 제 견해를 말씀 드리자면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특히 神功皇后紀 49년조 또는 52년조 등 한반도 남부지역, 가야, 백제를 중심으로 한 일본 중심의 역사상이라는 것은 그 이야기를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소를 음미하면서, 분해해 가야만 하는 그런 사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가운데 무엇이 남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런 관점에서 ≪일본서기≫의 이른바 한반도 관계기사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자세입니다.
49년조는 분명히 고구려, 백제, 신라가 神功皇后의 군대에 의해 정복된 이후 조공을 서약했다는 그런 기사였다고 기억합니다만, 그 기사의 액면 그대로는 부정되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후세에 ≪일본서기≫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제까지의 일한, 한반도의 지역과 여기서 말하는 일본의 야마토 조정이든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를 어떻게 되돌아보면서 구성할 것인가? 그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자의적인 역사상입니다만, 전혀 황당무계한 망상이라고는 저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를 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森 : 49년조는 가야 7국 평정 아닙니까?

濱田 : 가야 7국 평정이었습니까? 조금 전에 369년은 백제, 신라, 가야, 고구려를 평정했다는 기사라고 말했습니다만, 모리 선생님의 지적으로 가야의 칠국평정기사라고 정정합니다.

(중략)

김태식 : 우선 神功紀 49년조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왜에 조공한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가야 7국 평정에는 뭔가 좀 사실성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그렇습니까?

濱田 :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견해를 도출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그 안에서 어떤 사실을 반영한 기사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야 7국을 평정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의미에서는 ‘평정’이 아니겠지만, 이 369년의 반도와 열도의 국제관계를 생각해 볼 때, 고구려와 백제가 싸우고 있는 가운데 그 때에 왜인 병사들도 백제군에 참가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학설이 일본에는 있습니다. 그런 학설을 논하는 사람들은 그 왜인 병사들은 가야지역에서도 어떻든 공동행동을 취했을 것이라고, 그런 공동행동을 후세에 어떻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역사상으로 기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에서 ≪일본서기≫의 神功皇后紀 49년조가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런 입장인가의 여부와는 별개로 그 역사서는 완전히 공상, 자기에게 유리한 공상이라고 부정하는 자세가 아니라, 이것이 역사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문헌사학자인 제가 해석하는 자세입니다. 단, 가야 7국을 평정했다는 것은 그것은 부정되겠지요. 평정이라는 오늘의 시각에서 보는 해석으로 말하는 군사적으로 제압하여 점거했다는 의미의 ‘평정’이라면 그것은 그렇지않겠지요. 그렇다면 이 49년조는 완전히 싹 지워버려도 되나 하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그 핵이 되는 것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 위 논문에 대한 토론문

위 인용문은 해당 발표에 대한 토론문에서의 언급입니다.


이상의 내용이면 솔까역사 님의 이러한 말씀에 대한 반론으로는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고 사료됩니다. 이것은 일본인 학자의 견해이며, 물론 한국 학자들과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합의점은 솔까역사 님의 주장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심지어 위에 솔까역사 님의 말씀과도 무지막지한 차이를 보이는군요.

뭐, 역사책 같은 건 읽기 싫어하신다더니, 그래도 저런 말씀을 하실 때는 적어도 확인은 한 번 해보셔야 하지 않았을런지요?



ps1. 한국 학자들이 무엇을 인정했을지는 아래 인용문으로 충분하지 않을런지요?


그렇다면 왜 5왕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장군호를 보유한 백제를 포함시킨 한반도 남부 지역의 諸軍事號를 자칭했다는 것이 무리라는 점은 자명해진다....(중략).... 그러므로 정동장군 고구려왕이 제일 높았고, 그 다음이 진동장군 백제왕이었으며, 안동장군 왜국왕이 가장 하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한 장군호는 5세기 당시의 중국이 매긴 각국의 실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김태식, 〈古代 王權의 成長과 韓日關係 -任那問題를 包含하여-〉, 위의 책

ps2. 조법종 교수는 동방변군에 왜가 조공을 할 때 한반도의 국가의 부용국 자격으로 조공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음. 물론 일본인 학자는 식겁해서 토론할 때 그게 뭐냐고 묻고 있지만... 물론 조법종 교수도 그걸 명쾌하게 해명하지는 못했으니 그냥 조법종 교수가 제기한 가능성 정도에 불과하다 하겠음

덧글

  • 파랑나리 2012/04/25 22:28 # 답글

    역시 명불허전 솔까역사. "솔"직히 구라"까"는 "역사". 남선경영설을 믿으면서 자신이 민족감정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사실을 파악했다고 착각하는 솔까역사 이 ㅌ ㅇ. 역사책이나 읽고 뭘 떠들라지 그래요. 역사책을 읽기 싫어하면서 함부로 지껄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은 배우는 태도부터 글러먹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2/04/26 01:21 #

    ... 노코멘트
  • 굔군 2012/04/25 22:32 # 답글

    근데 사실 "일본부"라는 명칭은 별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건 한국측이 주장하다가 오히려 일본측으로부터 논파당한 떡밥으로 알고 있는데...ㅡㅡ;;
  • 야스페르츠 2012/04/26 01:21 #

    애초에 그쪽으로는 아무도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데 혼자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ㅡㅡ;;
  • 파랑나리 2012/04/26 10:26 #

    일본어는 쓰기와 읽기가 심하게 다른 경우가 많아서 조심해야합니다. 굔군님이 말한 "일본부"만 해도 읽을 때는 야마토노 미코토모치라 읽습니다. 아먀토야 굳이 말할 게 없고(원래 오늘날 나라현의 옛이름이니까요.) 노는 매김이음토씨고 미코토모치는 우리말로 원, 사또란 뜻이니 나라현에서 다른 곳에 보낸 사또라는 뜻이지요. 당시 왜국이 정말 군현제를 시행했는가와는 다른 얘기입니다.
  • 굔군 2012/04/26 12:25 #

    호오, 야마토가 원래 지명이었습니까? 그건 몰랐네요.
  • 진성당거사 2012/04/25 22:35 # 답글

    역시............
  • 야스페르츠 2012/04/26 01:21 #

    허허....
  • 해색주 2012/04/25 22:45 # 답글

    그당시 일본이 아니라 왜국 아닌가요?
  • 굔군 2012/04/25 22:52 #

    일본이든 왜국이든 어차피 훈독으로는 모두 "야마토"라고 읽기 때문에 별 차이는 없습니다.

    실제로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도 야마토로 읽으라는 주석이 달려있기도 하고...
  • 야스페르츠 2012/04/26 01:22 #

    일본부라는 명칭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거든요. 우리가 지증왕이 국호를 확정짓기 이전의 신라를 신라라고 불러도 아무런 상관이 없듯이 말이죠.
  • 2012/04/26 04:0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2/04/26 09:14 #

    차라리 자조적인 수준이라면 낫죠....-_-;;
  • Crescent Moon 2012/04/26 04:27 # 답글

    솔까역사글보고 참 뭐라해야할지......... 헛웃음만...
  • 야스페르츠 2012/04/26 09:15 #

    뭐, 예전부터 참 거시기하긴 했습니다만, 이렇게 스스로 삽질을 하는데야 참을수가 있어야죠. ㅠㅠ
  • hyjoon 2012/04/26 08:28 # 답글

    애당초 무시하고 있던 대상이군요. (『일본서기』를 사실처럼 들고 설칠 때 game over ㅇㅅㅇ)
  • 야스페르츠 2012/04/26 09:15 #

    그게 현명한 처사입니다. 허허
  • 2012/04/26 10: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2/04/26 16:57 #

    뭐...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법이죠. ㅡㅡ;;
  • 2012/04/26 12: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에효 2012/04/26 13:48 # 삭제 답글

    사료의 글 한 줄을 가지고 확대해석하여 왜국이 임나일본부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점유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렇다 하여도 고고학적 연구성과는 또 어찌할까요 5세기 후반까지도 일본열도에서 자체적으로 철을 생산하지 못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출토 병장기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4세기 왜인들의 무장수준이 국가단위의 정규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준이 아님도 밝혀졌지요. 고고학증거로 영산강 전방후원분만 주구창장 주장하는데 순수하게 고고학적 유물을 토대로 상황을 말하면 이런게 되죠 당시 무장이 빈약한 단검과 단창 보병만 운용가능한 왜열도의 세력이 철갑기병대와 집단적 정규군을 운용하는 백제,신라,가야를 신묘한 병법으로 쳐부셔 신민으로 삼았고 더불어 자신들이 사용하는 철을 수입하는 철생산지 가야를 군사적으로 정복해 지배했음에도 이후 150년간 이 철생산의 비법은 전수받지 못하여 가야에서 계속 수입만 할 뿐 왜열도에서 철은 생산조차 못 하였다. 더불어 자신들이 정복한 백제와 가야의 유물은 왜열도에서 위신제의 역할을 하였음 ㅡㅡ; 고고학적으로 보면 한반도와 왜열도 양지역의 기술적 우열과 격차가 지나치게 비대칭적이라 5세기 후반 6세기 초 일본이 기내지역을 중심으로 왜국이 통합되기 이전까지 어떤 기술통제나 제약이 있지 않았나 추정할 정도입니다. 4세기 초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아직도 주장되는게 솔직히 개그죠
  • 야스페르츠 2012/04/26 17:01 #

    허허... 그렇게 자세한 건 모릅니다. 잉여 환까의 한계 ㅡㅡ;;
  • 긁적 2012/04/26 20:02 # 답글

    ......... 너무 강하게 발랐잖아요. 이건. (.....)
  • 긁적 2012/04/26 20:03 #

    근데 이렇게 발리고도 할 말이 있다니 (...) 좀 대단.
  • 누군가의친구 2012/05/01 22:57 # 답글

    어짜피 그자에게는 안들리겠죠.
  • 파랑나리 2012/05/17 22:06 #

    이태엽은 최문석, 이희진과 유형만 다를 뿐 병신이라는 같은 범주에 들어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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