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1 12:13

한국의 역사가 4.5 역사

한국의 역사가 4

초록불 님의 한국의 역사가 연재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이렇게 스핀오프(?) 포스팅을 해 봅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사학사를 수강하면서 고려시대 파트를 맡았었는데, 그때 알게 된 것들을 조금 추가하고자 합니다.


1. 고려 최승로(927~989)

고려사절요 성종 원년
정광 행선관어사 상주국(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 최승로(崔承老)가 글(시무28조)를 올렸다.


최승로는 고려 초기에 시무 28조를 올린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원래는 신라의 6두품 출신으로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넘길 때 최승로도 아버지와 함께 고려로 넘어왔다고 한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고려 태조에게 불려가 《논어》를 읽었으며, 원봉성학생(元鳳省學生)이 되었다고 하니 국왕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국비장학생이 된 셈이다. 그 이후 문병(文柄)이라는 관직(?)을 맡았다고 하는데 정확이 어떤 직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40년이 넘도록 특별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지만 성종 때에는 상당한 요직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성종 원년, 성종이 5품 이상의 관료에게 모두 "시정의 잘잘못을 논하는 글"을 올리라고 명하였는데, 아마도 그 중에서 장원으로 뽑히게 된 것이 바로 최승로가 올린 시무28조가 되겠다.

시무28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부분은 태조부터 경종까지 5대 국왕의 치적을 논한 오조치적평이고 뒷부분이 바로 시무28조이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22조 뿐이지만... ㅡㅡ;;) 오조치적평에는 최승로의 역사 인식을 잘 보여주는 내용들이 한가득 들어 있고, 그 자체로도 5대 국왕의 사적과 당대인의 평가가 담긴 훌륭한 역사서(?)이기도 하다. 최승로가 딱히 역사서를 남기거나, 남겼다고 전해지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히 역사가라고 분류하여 스핀오프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 오조치적평이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려 초기 태조부터 목종 때까지 약 100년 동안의 기록이 거란의 침입과 함께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기록이 소실되었기 때문에 현종은 황주량에게 명하여 태조부터 목종까지 7대의 사적을 모아 실록으로 엮도록 명하였는데, 시무28조 가운데 6조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지만 오조치적평을 비롯한 상당한 내용이 복원(?)될 수 있었다. 고려 초기, 가뜩이나 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5대 국왕의 치적을 논한 기록은 대단히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었다.

여하튼, 최승로는 시무28조가 채택되어 이듬해인 983년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임명되었다. 이 관직은 3성6부 중 2성의 역할을 통합한 내사문하성의 차관급으로 정2품의 고위 관료이다. 그리고 988년에는 마침내 문하수시중(門下守侍中)에 임명되어 관료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위에 오르게 된다. 사실상 재상이나 마찬가지인 직위이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관직에 임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승로에 대한 기록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듬해인 989년에 사망하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관직은 높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행적이나 치적을 남겼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무래도 현종 때 소실된 기록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당시 고려 조정의 필두급 인사였던 만큼 성종 초기의 여러 치적들이나 개혁에 최승로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2. 황주량(생몰년 미상)

고려사 열전 황주량

처음에 거란이 쳐들어와 도성이 함락되고 궁궐이 불탈 때 서적들도 불타 재가 되었다. 황주량이 명을 받아 각지를 찾아다니며 묻고 수집하여 책으로 만드니 태조부터 목종까지 7대의 사적 36권이다.


현종 즉위 초에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불타면서 고려 초기의 사초들이 모두 불타버렸다. 고려는 일찍부터 사관을 두어 역사를 기록하게 하였는데, 이때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이에 현종은 사관들에게 태조부터 목종까지 7대의 사적을 다시 수집하도록 명하였다. 아마도 이 기록이 그것일 것이다.

이부상서 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 최항(崔沆)을 감수국사(監修國史)로, 예부상서 김심언(金審言)을 수국사로, 예부시랑 주저(周佇)와 내사사인(內史舍人) 윤징고(尹徵古)ㆍ시어사(侍御史) 황주량(黃周亮)ㆍ우습유(右拾遺) 최충(崔冲)을 모두 수찬관(修撰官)으로 삼았다.
고려사절요 현종 4년

이때까지만 해도 황주량은 수찬관, 즉 실무직원이었고 전체를 주관하는 책임자는 최항이었다. 그러나 연로했던 최항이 사직하고 1024년에 사망한 뒤에도 편찬 작업은 계속되었으며, 1034년에 완성되었을 무렵에는 황주량이 총책임자였던 것 같다. 칠대실록의 편찬은 위의 기록에도 나타나듯이 전국 각지를 발로 뛰며 온갖 사적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소실되었던 훈요십조가 발견되기도 했다. (발견자는 최승로의 손자 최제안) 부족한 기록은 노인들에게 일일이 묻는 수고를 했다고도 하니, 직접 발로 뛰는 좋은 역사가의 자질을 황주량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황주량은 현종시기에 본격적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한 관료로 덕종을 거쳐 정종 시기까지 활약하였다. 그의 열전에는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는 기록이 나오지만 구체적인 치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귀화한 여진족의 처리 문제를 놓고 서눌과 설전을 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물론 이때 승자(?)는 황주량이다. 그외에 현종 시기 개경에 나성을 쌓는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이때의 동료였던 왕가도가 거란과의 전쟁을 주장했을 때 이에 반대하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황주량은 학문도 뛰어나 사관이나 한림원 등 학문과 관련된 관직을 많이 맡았다고 한다. 실록 편찬의 대임을 맏았던 사람이니 그 학문적 식견이 오죽할까.


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던 모든 사람을 역사가라고 일일히 언급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실록 편찬의 전통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시기, 무에서 실록을 찬술해 낸 황주량은 고려시대 초기를 대표하는 역사가로 한 번 쯤 언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학생 때 강의 발표 때문에 조사를 해서 자료가 있었다는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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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초록불 2012/04/21 13:25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2/04/21 17:12 #

    ^^ 간만에 예전 발표 자료를 훑어보니 참 재미있었습니다.
  • 셔먼 2012/04/21 13:56 # 답글

    시무 28조의 나머지 6조 떡밥은 아직도 유효하겠군요. ㅇㅠㅇ
  • 야스페르츠 2012/04/21 17:12 #

    그건 다 김부식이 삭제한 거라능! (응?)
  • 솔까역사 2012/04/21 16:44 # 답글

    역사책은 읽기 싫은데 이런 글은 재미있군요.
  • 야스페르츠 2012/04/21 17:12 #

    ㅡㅡ;;
  • 굔군 2012/04/21 18:51 # 답글

    한국사에서는 유독 최씨들이 저런 것을 자주 올리더군요. 주로 신라말~고려시대에...^^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최승로의 시무 28조
    최충헌의 봉사 10조
  • 야스페르츠 2012/04/21 21:22 #

    아앍 최충헌까지.. ㅋㅋㅋㅋ
  • 질유키 2012/05/25 17:15 #

    근데 최승로를 제외하곤 무시당하고 말았습니다..
  • 파랑나리 2012/04/22 18:19 # 답글

    거란 족이 고려 초 사초를 모두 태우고 임진왜란에 일본군이 고려실록을 몽땅 태웠으니 이래저래 외침은 역사학의 적입니다. 명태조가 이런 걸 알고 당시는 몽골이 중원을 침략하지 못하도록 친정하여 상도를 박살내었으니....
  • Crescent Moon 2012/04/24 14:35 # 답글

    잘읽었습니다!

    부족한 지식에 +가되었네요
  • 야스페르츠 2012/04/25 22:05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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