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6 10:22

삼국의 역사편찬에 대한 잡상 역사

한국의 역사가 1

초록불 님의 포스팅을 보고 갑자기 필을 받아 쓰는 역사 잡상입니다.


위의 포스팅에서 언급되는 삼국의 역사 편찬 사업은 사실 해석상에 약간의 난제가 있습니다. 저것이 역사를 편찬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저 사업을 통해 기록된 이름인 《서기(書記)》, 《유기(留記)》, 《국사(國史)》라는 "역사서"가 편찬되었다는 사실은 명징하지 않죠.



백제의 경우, 해당 편찬 기사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백제는 개국한 이래 문자로 사실을 기록한 일이 없었다.
百濟開國已來 未有以文字記事

이 언급을 염두하면서 뒷 구절을 읽어보면...

비로소 書記를 갖게 되었다.
始有書記
서기(書記)라는 것을 책의 제목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됩니다. "書와 記를 갖게 되었다"라고 해석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즉, 이때에 비로소 역사를 기록하는 제도가 확립되었다는 의미로도 통하죠.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

《신집》의 경우에는 5권이라는 권수까지 명시되어 있어 역사서, 그리고 그 책의 제목이라는 점이 분명하지만, 《유기》는 다릅니다. 특정한 책의 제목이 아니라, 남겨진 역사 기록, 즉 사료나 사초, 실록이라는 의미로도 통합니다. 그 앞의 언급인 100권이라는 숫자 또한 단순히 많다는 관용적 표현일 가능성도 있지요. 또 그 앞의 사람 또한 어떤 사람이 100권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닌, 역사를 기록하는 직책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즉, 국초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꾸준히) 있어 많은 사료/사초가 전해졌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신라 역시, 國史라는 것은 책의 제목이 될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나라의 역사라는 일반 명사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럭저럭 우리나라의 학계나 교과서 등에서는 저 기록들을 특정 역사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유명사가 아니라 역사의 기록이라는 일반명사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글

  • 파랑나리 2012/04/16 11:08 # 답글

    이렇게 되면 서기, 국사, 유기가 왜 일서인지도 납득이 되네요. 애초에 무슨 문헌이 아니니까. 그래도 저게 문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중에 발굴되면...
  • 야스페르츠 2012/04/16 12:29 #

    뭐,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 zerose 2012/04/16 11:30 # 답글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궁요.
  • 야스페르츠 2012/04/16 12:31 #

    제목만 전해지는 책이 많지만, 그게 어쩌면 제목조차 아닐 가능성에 대한 잔인한 추측이죠ㅋㅋ
  • 솔까역사 2012/04/16 11:57 # 답글

    백제의 서기(書記)에 <백제기百濟記>, <백제신찬百濟新撰>, <백제본기百濟本記>등이 포함될 수도 있겠군요.
  • 야스페르츠 2012/04/16 12:31 #

    그럴지도 모르죠.
  • 솔까역사 2012/04/16 12:41 #

    始有書記가 375년의 일이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백제삼서의 기록은 그 이후의 기록이니 분명 백제삼서는 375년의 書記는 아닙니다.
    백제삼서가 375년 이후의 書記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 파랑나리 2012/04/17 00:08 #

    우와 이태여...ㅂ 아니 솔까역사다. 남선경영설이 맞다고 우기고, 전두환의 광주학살을 옹호하고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이 역사를 더 제대로 알 수 있다고 감히 역사학자를 우습게 알고 까부는 솔까역사다. 솔까역사. 솔직히 까놓고 말하는 역사? 아니. 솔직히 구라까는 역사.
  • 명림어수 2012/04/16 12:14 # 삭제 답글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삼서의 편린을 보건데,
    그게 백제 서기의 한부분이었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백제 서기가 백제의 일반역사이든, 특정 책제목이든 상관없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2/04/16 12:32 #

    그런 쪽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12/04/16 13:28 # 답글

    말씀하신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가, 라는 측면에서는 공연히 길어지는 것 같아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 근거에 대해서는 오향녕 선생이 깊이 다룬 바 있어서 대체로 역사서로 보는 통설을 따른 것이 맞습니다. 어차피 2편이나 3편쯤에서 대강 이야기하게 될지도... (먼산)
  • 야스페르츠 2012/04/16 18:05 #

    ㅎㅎ 오항녕 선생의 언급이 있나요? 저는 잘 몰라서.. 이래서 학계의 논의를 꾸준히 살펴야 하는데 말입니다. ㅡㅡ;;
  • 초록불 2012/04/16 20:00 #

    간략히 말하면, 말씀하신 의문이 있는 게 사실인데 사서의 제목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 굔군 2012/04/16 16:06 # 답글

    그 이전의 왕들의 계보나 업적 같은 것은 설화나 서사시 같은 구전 문학의 형태로 전승되다가, 저때에 와서 처음 문자로 기록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신빙성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겠죠(...)
  • 야스페르츠 2012/04/16 18:06 #

    뭐, 그점이야 분명하죠. 저는 다만 그것이 확실한 한 권의 책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록되었다는 사실의 서술인지에 대한 해석 문제를 언급한 것일 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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