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2/06 21:32

잡담 - 두루뭉술한 글 쓰기 잡담

1. 지난 토요일에는 역밸 정모에 다녀 왔다.

워낙에 많은 인원이 모인지라... 통일된 뭔가를 하지는 못하고 그냥 삼삼오오 모여서 떡밥이나 풀다 끝난 듯... 뭐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일찍 나오기도 했고... 나 자신이 새로운 떡밥을 풀 수준이 못되는지라... 그냥 듣기만 하다 온 것 같다.


2. 경군 님이 주신 것은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근데 너무 어렵다능. ㅋㅋ



3. 지난 주 목요일부터 며칠 동안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잠깐 도와달라는 요청이 와서 모종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특별할 건 없는, 회사를 다니던 때 항상 하던 일이지 뭐... 그래도 오랫동안 떠나 있다가 다시 일을 잡고 보니 여러가지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필요로 하는 글이라는 건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설명하는 글이다. 그런데 저 일반인이라는 것도 사실 수준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라, 초등학생 수준을 대상으로 하느냐, 중·고생, 성인, 모두 어떻게 써야 하는지가 다 다르다.

뭐, 저런 것을 구분해서 쓰는 전문적인 교육 같은 것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해왔던 일들이 있다보니 "어려운 글"을 풀어서 쉽게 쓰는데는 나름 이골이 났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려운 용어를 풀어서 쓴다든가, 이것저것 다 집어치우고 조사만 적절하게 붙여줘도 난이도가 대폭 조정된다.


그런데, 그냥 쉽게 풀어 쓰기만 하면 만사형통이 아닌지라... 어느 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글의 분량은 정해져 있다. 한정된 분량, 어려운 내용. 이 두 가지가 뭉치게 되면 나름 골치가 아파진다.


이럴 때 자주 사용하곤 하는 진리의 꼼수가 있다. 이름하여 두루뭉술한 글 쓰기...

XXX 단체는 YYY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XXX는 YYY, ZZZ 등 다양한 효능이 있다.


편리한 꼼수지만, 동시에 참 무책임한 말이다. 다양한데 뭘 어쩌라구? 다양한 그게 뭔데?..

대부분의 경우 전문적인 글에는 "일반인"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는 정보가 많다. 전문가에게는 중요한 정보일수도 있고, 어쨌든 알아 두면 나쁠 것은 없지만, 알아도 별로 의미가 없는 정보. 이를테면 어떤 약품 성분의 나열이라던가, 어떤 단체의 연혁이라던가, 어떤 생물의 생김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라던가... 백과사전에서 흔히 나올 법한 설명들 말이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국 이런 설명들은 대폭 삭제되거나 축약되고 그 자리를 다양한, 이러한, 일반적인 등의 단어가 점령한다. 좋게 말하면 "중요한 점만 뽑아내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극적인 부분만 남겨두는 것"이다. 또 다른 면으로는, 태클을 걸 수 없을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요약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틀린 것은 없지만, 그래서 너무 애매모호한 글 말이다........


어쩌면, 비겁한 글쓰기일지도 모르겠다.



한창 일하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오랜만에 일을 하게 되니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내 마음대로 내용을 잘라내고 요약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내면서 분량을 맞추기 위해 중요한 점만 요약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과연 이 글을 보게 될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읽으면서 피식 웃어버릴지도 모른다. 참 교묘하게 말을 잘 만들어냈네. 틀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내용은 교묘하게 피해 가면서 말야... 이런 식으로 쓰는 거라면 누구나 할 수 있겠다.


이번 기회에 한 번 내가 글을 썼던 전시관들을 좀 찾아다녀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두루뭉술하게, 비겁하게 글을 썼는지 확인이라도 좀 해보게....


덧글

  • 셔먼 2012/02/06 21:38 # 답글

    XXX 단체는 YYY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XXX는 YYY, ZZZ 등 다양한 효능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분량이 지나치게 많을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써야 하지만, 전자의 경우는 생각 없이 썼다간 빼도박도 못하게 성의없는 글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높겠군요.
  • 야스페르츠 2012/02/06 21:43 #

    그, 그렇죠?..... 근데 저도 모르게 저렇게 쓰고 있더군요..... 그 동안 써 왔던 글들이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 셔먼 2012/02/06 21:49 #

    괜찮습니다, 조금만 연습하시면 나아질 겁니다. 그리고 저런 것에 너무 크게 구애받진 마세요.
  • dunkbear 2012/02/06 22:33 # 답글

    '배꼽'이라는 책에 있는 에피소드가 떠오르네요.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시나리오를 써서 제작자에게 갖다줬는데, 그 제작자가 시나리오
    를 짧게 요약해서 가져오라고 시킵니다. 그래서 그 작가는 2-3 페이지로 시나리오를 요
    약해서 갖다줬는데.... 빠꾸당했다네요.

    제작자 曰 "이건 안돼. 안나 까레리나잖아."

    별 다른 의미는 없고 야스페르츠님의 글을 보니 생각나서 주절거려봤습니다. (^^)
  • 야스페르츠 2012/02/07 09:35 #

    ㅎㅎ 복수극은 다 몬테크리스토인 거죠. 암요. ㅋㅋ
  • 초록불 2012/02/06 22:39 # 답글

    현실이 그런데 자학하는 건 도움이 안 돼요. 요약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 요약으로부터 다음 단계로 도약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여기서 의도적으로 오도할 만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따름...
  • 야스페르츠 2012/02/07 09:36 #

    자학이랄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좀 무서워졌어요. -_-;;
  • 마법의활 2012/02/07 09:31 # 답글

    거참...어떤 모임이었길래 야하스님도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나올 수 밖에 없었는 지 궁금하군요. 이글루스 고수들 총 집합?
  • 야스페르츠 2012/02/07 09:36 #

    저는 원래 떡밥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
  • 누군가의친구 2012/02/08 00:31 # 답글

    다음에는 떡밥을 들고 오셨으면 합니다.ㅎㅎ;;
  • santalinus 2012/02/20 19:27 # 답글

    ㅋㅋㅋㅋ가끔은 선동하는 글도 써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진짜 미치는 겁니다...
  • 야스페르츠 2012/02/21 20:31 #

    선동하는 글은 뭔가 손발이 오그리토그리....
  • santalinus 2012/02/21 21:53 #

    오글토글.... 번역하는 것 만으로도 얼굴이 빨개지는;;;
  • 2012/02/28 17: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2/02/28 17:27 #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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