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1 01:24

정인보의 백제산동진출설 떡밥 유사역사학 비판

대체 "백제 산동 진출설"의 근거는 뭘까..


나는 일전에 위의 포스팅을 통해 백제산동진출설이라는 괴설이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바 있다. 요 근래에 불미스럽게도 촉발된 정인보 논쟁 덕분에, 그리고 기연(?)에 힘입어 드디어 백제산동진출설의 출처(?)를 찾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이미 위 포스팅에서 밝혔듯이 백제와 산동지방의 연관성을 조금이라도 추측해 볼 수 있는 기록은 위덕왕 18년(571년)의 동청주자사 제수 기사가 유일하다. 뭐, 그외에 동성왕 표문에 등장하는 지명을 산동지방으로 비정하는 경우도 있긴 하나, 이것 역시 근거가 모호할뿐만 아니라 "기존부터 존재하고 있는 백제의 산동반도 영토"를 먼저 상정하지 않는 한 애초에 성립되지도 않는 망상이니 다시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상 산동진출설의 단초 자체는 단재의 《조선상고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정작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는 하나도 없다. 요서 영유에 대해서는 근거를 대고 있으나 산동 영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근구수왕이 기원 375 년에 즉위하여 재위 10 년 동안에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한 번 평양 침입이 있었으나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을 경략 하여 선비 ( 鮮卑 ) 모용씨 ( 慕容氏 ) 의 연 ( 燕 ) 과 부씨 ( 符氏 ) 의 진( 秦 )을 정벌하여 , 지금의 요서 ( 遼西 ) · 산동 ( 山東 ) · 강소 ( 江蘇 ) · 절강 ( 浙江 ) 등지를 경략하여 넓은 땅을 장만하였다 .

이런 기록이 비록 백제 본기에는 오르지 않았으나 양서 ( 梁書 ) 와 송서 ( 宋書 ) 에 "백제가 요서와 진평군 ( 晋平郡 ) 을 공략하여 차지하였다 ( 百濟 略有遼西晋平郡 ) · ”고 했고 , 자치통감 ( 資治通鑑 ) 에는 “부여 ( 扶餘 ) 가 처음에 녹산 ( 塵山 ) 에 웅거하였다가 백제에게 격파당해 서쪽 연 ( 燕 ) 가까이로 옮겼다."(扶餘 初據鹿山 爲百濟所殘破 西徒近燕 ) ”고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

대개 근구수가 근초고왕의 태자로서 군국 ( 軍國 ) 대사를 대리하여 이미 침입하는 고구려를 격퇴하고 , 나아가서 지금의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고는 해군을 확장하여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에 침입하여 모용씨를 쳐서 요서와 북경( 北京 )을 빼앗아 요서 ( 遼西 ) 진평 ( 晋平 ) 두 군을 설치하고 , 녹산 ( 塵山 )---지금의 합이빈 ( 哈爾濱 ) 까지 들어가 부여의 서울을 점령하여 북부여가 지금의 개원 ( 開原 ) 으로 천도하기에 이르렀으며 , 모용씨가 망한 뒤 지금의 섬서성 ( 陝西省 ) 에서는 진왕 ( 秦王 ) 부견 ( 符堅 : 역시 선비족 ) 이 강성해지매 , 근구수왕이 또 진과 싸워 지금의 산동 ( 山東 ) 등지를 자주 정벌하여 이를 피곤하게 하였으며 , 남으로 지금의 강소 · 절강성 등지를 차지하고 있는 진 ( 晋 ) 을 쳐서 또 한 얼마간의 주군 ( 州軍 ) 을 빼앗았으므로 여러 책의 기록이 대략 이러한 것이다 .

《조선상고사》 제7편 2장




그런데 부여 님의 제보(?)와 엔하위키 검색을 통해 우연찮게도 산동진출설의 시초가 위당임을 알게 되었다. 엔하위키 요서경략설 항목에 떡밥의 대강이 정리되어 있는데, 여기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솔직히 위당의 백제해상진출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계속 피식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실로 엄청난 개그 센스다. 본인의 희망사항을 역사에 억지로 끼워맞추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이 일어나는지를 너무나도 여실하게 보여준다. 위당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려 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저작이 가진 자가당착과 논리적 비약을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의 백제해상진출설을 대략 정리해 보자.


1. 고이왕 13년, 8월에 위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와 대방태수 왕준과 함께 고구려를 치자 왕은 그 틈을 타서 좌장 진충을 보내 낙랑의 변민을 쳐 빼앗았다. 유무가 이를 듣고 노하니 왕은 침범당할까 두려워하여 민구(民口)를 돌려주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中

=> 위당 曰, 고이왕이 요동에 있는(....) 낙랑을 공격하기 위해 좌장 진충을 보내 바다를 건너 공격했다. (ㅡㅡ;;;) 그런데 낙랑태수가 "이놈!"하자 쫄아서 그냥 돌아 왔다........


2. 책계왕 13년, 9월에 한(漢)이 맥인(貊人)과 함께 쳐들어오므로 왕이 나아가 막다가 적병에게 해를 입어 죽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中

=> 위당 曰, 漢은 당시 서진을 말하고 맥(貊)은 선비족을 말한다. 서진이나 선비족이나 바다 건너 백제까지 쳐들어올리는 없으니 이는 책계왕이 요서 해안에 상륙하여 거점을 만들었다가 서진-선비 연합군에 패배한 것이다. (... 근거는? 근거는? ㅡㅡ;;;)
ps. 이때의 일을 전하는(?) 위당의 설명은 그야말로 걸작인데, 왕을 잡아 죽인 엄청난 전투였는데도 중국 사서에 이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이는 책계왕이 몸소 요동 해안에서 작은 세력으로 고분군투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저들이 왕을 죽인줄도 모르고 기록을 안했다는 식.............


3. 분서왕 7년, 2월에 몰래 군사를 보내 낙랑의 서쪽 현을 공취하였다. 10월에 왕이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죽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中

=> 위당 曰, 분서왕이 설욕을 위해 책계왕이 죽었던 그 교두보를 점령하였고, 분서왕의 군세가 강력해서 이에 맞대항할 수 없었던 낙랑태수는 자객을 보내 분서왕을 죽였다.(.....) 역시 이 기록이 중국에 없는 이유는 저들이 왕인줄도 모르고 그냥 암살한 거라는 설명......... 여기에 더해서 이 무렵에 백제가 산동반도에 일부 근거지를 두고 요서로 함대를 보냈다는 설이 나온다.


4. 기본 근거 사료는 없음. 간접적인 사료로는 《삼국사기》 〈최치원열전〉의 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壯)에 나타나는 "고구려, 백제가 전성기 때는 강병이 100만이었으며 남으로는 오월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유·연·제·노의 지역을 흔들어서 중국의 큰 두통이 되었다."는 기록과 "(산동 지방) 황현(黃縣)의 서남쪽 25리의 옛 현성에 백지래왕(百支萊王)의 사당이 있다."는 《제승(齊乘)》의 기록이 언급됨

=> 위당 曰, 제와 노 지방(산동반도)을 공격했다는 기록도 있고, 이 지역에 백지래왕의 사당이 있는데 백지=백제(.....)니까 여기도 백제가 점령한 것임! 여기를 점령한 것은 비류왕 3년 쯤일 것이다. 이유는 이무렵 산동반도의 동래군 황현에서 진나라의 현령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비류왕 3년에 토벌되었기 때문.(뭐??) 동래군에서 진나라 현령이 반란을 일으킨 걸 보니 이때는 백제 땅이 아니었고, 그 다음에 혼란한 틈을 타서 먹었을 것이다는 말씀.;;;;;;;;;;;;;;;;;;;;;;;;;;;;;;;;;;;


5. 처음에 부여가 녹산(鹿山)에 있었는데 백제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쇠산(衰散)하였고 서쪽으로 도주하여 연나라에 근접하였다. 《자치통감》 《진기(晉紀)》 中

=> 위당 曰, 녹산은 이러저러해서 아마 요서였을 것이니 이때 백제가 요서에 있는 부여를 공격하였고, 부여는 서쪽으로 도주하여 연나라 인근으로 옮겨갔다. 이때가 아마 비류왕 재위기 어느 때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비슷한 시기 연나라의 기록에서 도성 인근에 거주하는 포로 고구려, 백제, 우문부, 단부의 백성들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나타나니, 이 무렵에 백제랑 모용부랑 맞장을 떴을 것이다.....


이하는 일반적인 요서백제 사료와 같으므로 생략

백제의 요서 진출에 대한 위당의 주장 자체도 여러 면에서 심각한데, 그쪽은 일단 넘어가련다. 산동 진출에 대한 것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新羅 崔致遠 上太師侍中壯高麗百濟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蠱라 한 것이 史書本傳에 실렸으니 麗濟 二國中 勢力齊魯間에 미쳤던 것은 그때만해도 確實傳述이 있던바요.


2.

齊乘, 古蹟條를 보면 黃縣西南二十五里, ?百支萊王祠廟가 적혀 있으니 百支는 곧 百濟. 百濟가 번대 에서 譯寫한 것이므로 하여 도 되었는데 함은 過去에 그 가 많아 우선 三國志東夷傳馬韓五十四國月支가 곧 慰禮()()이니 百濟百支로 쓰임이 또한 例事. 萊王東萊地方이라는 말이니 이는 百濟留守하던 大守萊王를 가지고 海上統制하던 사람이라.


최치원의 해당 기록은 워낙에 자주 나오는 떡밥이므로 굳이 이야기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런데 두번째 근거가 좀 기괴하다. 《제승》은 원나라 때 찬술된 제(齊) 지방의 지방지(地方志)로 곧 산동지방의 역사와 인문지리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산동지방의 여러 고적들을 싣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것이다. 황현 인근에 백지래왕(百支萊王)의 사당이 있다는 것.


일단 래왕(萊王)이라는 칭호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그것이 참으로 걸작이다. 산동반도의 주요 거점 중 하나로 동래(東萊)가 있다. 백제가 이 동래를 점령하고 그 지역의 태수를 두었으니 그의 책봉명이 래왕이라는 것. 그 근거로 대고 있는 것이 동성왕 대의 표문에 등장하는 각종 왕들이다. 실제 동성왕은 자신의 중신의 책봉을 요청하면서 이들을 면중왕, 팔중후 등으로 호칭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동래 지방의 태수에게 래왕이라는 책봉명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럼 언제 동래를 백제가 점령했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306년에 토벌된 동래군 황현 현령의 반란 이후라고 추정(?)하고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산동 지방에 일정한 근거지는 있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


이러한 증명(?)을 통해서 백제의 산동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 위당이다. 참............


엔하위키에는 이러한 위당의 주장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반론이 제기되어 있다. 《한서》 〈지리지〉에 이미 백지래왕사(百支萊王祠)가 나타난다는 것.... 《한서》의 편찬 연대를 생각하면, 그리고 〈지리지〉의 기록이 원시 2년(서기 2년)의 것임을 생각해보면, 위당의 주장에 따르면 306년 이후에나 비로소 성립되었을 백제의 동래 경영과 백지래왕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덧붙여, 306년 이후 백제가 동래를 경영했을 것이라는 위당의 추정 역시 완전히 허당이다. 위당에게는 불행하게도, 바로 이 무렵의 기록을 주마간산 격으로라도 훑어본 이가 바로 필자이니 위당의 추정을 산산히 무너뜨리는 증거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307년, 흉노족이 세운 한(漢)의 여러 군단 중 하나인 왕미의 군대가 청주 일대를 석권한 바 있다. 게다가 이에 대항해서 서진 정부는 국선(鞠羨)을 동래군의 태수를 임명하여 왕미를 토벌하게 하기도 했으며, 결국 이 태수는 왕미에게 죽었다. 위당의 자신만만한 추정이 무색하게도 겨우 이듬해에 벌어진 일이다......... 이후 국선의 아들 국팽(鞠彭)이 뒤를 이어 동래태수가 되었고, 이후 왕미의 부장 조억과 계속 싸웠다. 그리고 319년에 세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 바다를 건너 모용외에게 항복하였다. 무려 10년이 넘도록 동래에 진 왕조의 세력이 건재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왕미-조억을 거쳐 석륵이 청주 일대를 지배했으며, 후조가 멸망한 뒤에는 연(燕)이 관서를 석권하고 역시 청주를 지배하였다. 356년에 연의 모용각은 청주 일대를 평정한 뒤에 동래태수를 임명하였는데, 재미있게도 과거 동래에서 쫒겨났던 국팽의 아들 국은(鞠殷)이 태수가 되었다.

부견이 화북을 통일한 이후인 380년에는 유주 일대를 근거로 반란을 일으킨 부락(苻洛)을 토벌하기 위해 석월(石越)이 동래에서 바다를 건너 요서를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에도 여전히 산동반도가 백제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야기. 또한 재미있게도 이때의 기록에서 백제가 언급된다. 반란을 일으킨 행당공 부락은 유주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 당시 유주의 동쪽 경계는 요동군이었다. 부락의 반란에 있어서 오른팔 역할을 하던 평규는 당시 그들의 세력권을 언급하는데, "연 전체를 점거하여 동해에 이르렀고 북으로는 오환과 선비를 총괄하고 동으로 구려와 백제를 끌어들인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요서경략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언급이기도 하다. 산동경략설은 말할 것도 없고.

비수대전 이후 산동 지방은 후연과 동진의 각축장이 되었다. 물론 결국 후연이 대부분 장악하게 되며, 후연이 쇠퇴하고 난 뒤에는 남연이 산동 지방을 근거로 발흥해서 세력을 떨쳤다. 그리고 유유의 북벌을 통해 산동 지방은 온전히 동진의 세력이 된다. 동진의 뒤를 이은 유송 역시 산동반도를 영유하고 있었으며, 북연이 멸망하기 직전인 432년에는 북연의 사신이 바다를 건너 동래에 도착하기도 했다. 이후 유송이 막장으로 치달아 가면서 청주를 비롯한 회수 북방의 여러 지역들이 북위에 투항하는 기막힌 일도 벌어진다. 이때에도 동래가 잠시 언급된다.


이상으로 보다시피, 백제의 산동 영유, 적어도 동래를 영유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산동반도는 비수대전 이전까지 확고하게 오호제국의 세력 하에 있었으며, 이후에도 10여 년간 후연과 동진의 각축장이었다. 백제가 설사 산동반도의 일부를 점유했다고 한들 이러한 쟁패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위당이 과연 306년 이후의 기록을 몰랐을까?? 알았다면 이렇게 터무니없는 실수는 하지 않았으리라. 《한서》 〈지리지〉의 기록조차 살펴보지 않았으니 그보다 더 복잡하고 긴 오호쟁패의 기록을 찾아보았을리 만무할 것이다. 이는 의욕만 앞서고 치밀하게 자료를 조사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줄요약. 위당의 산동진출설은 근거가 희박하다 못해 아예 없는 억측이다.


위당이 독립을 위해 민족의 역사 의식을 일깨우려 한 의도는 십분 이해한다. 그렇기에 단재와 위당의 연구들이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이런 좋은 뜻으로 한 일이라고 해도, 엄정한 눈으로 비판하지 않으면 안된다. 위당의 주장과 논증들은 거의 대부분이 의욕만 앞선 억측이라고 봐야 한다. 아무리 "너희들이 위당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며 독심술 운운을 해도 별반 달라질 것은 없는 일이다. 그런 것으로 변호하기에는 위당은 너무 무리수를 많이 두고 있다.

어째 마무리가 누군가의 분탕질에 대한 뒤끝인 것 같다. 뭐, 어떻게 보든 할 말은 없다. 그저 긍휼히 여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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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초록불 2011/12/21 01:34 # 답글

    아직 역사학의 발전도 미비하고, 자료도 제대로 찾아볼 수 없던 시절에 추측과 희망으로 만들어놓은 해석을 지금에 와서도 옳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선배의 오류도 수정할 줄 모르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사학도가 되는 것이죠.
  • 야스페르츠 2011/12/21 01:46 #

    으허허허... 그런 그들을 보며 위당과 단재가 하늘에서 비분강개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 2011/12/21 01: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12/21 01:47 #

    이건 달려들만한 건덕지가 없을 거 같은데요. 아무튼 ㄷㄷㄷㄷ
  • 리리안 2011/12/21 01:49 # 답글

    그분들의 위업까지 폄하할 수는 없지만 ,그 분들의 자료미비로 인한 잘못을 신격화하는 건 다른 문제죠. 당시 오호의 국력을 생각해봤을 때 백제가 실제로 그곳을 영유했을 가능성이란 참....
  • 야스페르츠 2011/12/21 08:29 #

    일전에 오호십육국 연재를 하면서 대륙백제 떡밥을 건드리려 했는데 어느샌가 잊어버렸죠. 이번에 그 떡밥을 제대로 파해쳐봤네요. ㅎㅎ
  • 부여 2011/12/21 02:01 # 답글

    와 뭐 이거 업로드 속도가 이리 빠릅니까;
    이 떡밥은 제가 먼저 트랙백으로 치고 나가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야스페르츠님이 잘 써주실 것 같아서 도중에 관두길 잘했습니다 ㅋㅋㅋ 솔직히 태풍의 핵으로 파고들어서 비로긴들의 태클을 받아주기에는 잉여인의 귀차니즘이 너무 심해서...
  • 야스페르츠 2011/12/21 08:32 #

    으허허허... 태풍의 핵이었군요. ㄷㄷㄷ
  • 2011/12/21 02: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12/21 08:32 #

    수정했습니다.
  • ㅈㄷㅈㄷ 2011/12/21 02:22 # 삭제 답글

    온갖 사서의 기록은 전부 지 생각만으로 다 떡밥이고 근거도 없다고 무시하고 내놓는 근거는 정작 엔하위키. ㅋㅋㅋㅋ
    하기는 백제, 북위 전쟁 기록을 보고도 북위가 바다를 건너서 한반도에 있는 백제를 침공했다고 판타지 소설을 쓰는 애들이니 이해는 한다.

    한줄요약. 위당의 산동진출설은 근거가 희박하다 못해 아예 없는 억측이다.이라고? 노노
    한줄요약. 너의 이 무개념글은 근거가 희박하다 못해 아예 없는 억측이다.가 맞지.

    그런데 너도 논리에서 밀리면 곧잘 아이피 차단에 덧글 삭제 잘하던데 곧 특기가 발휘되겠네 ㅋㅋㅋㅋ
  • 부여 2011/12/21 02:29 #

    너무 길고 횡설수설해서 정독하지는 않았다라... -ㅈ-

    바쁜 사람들을 위한 세줄 요약.
    ① 정인보 가로되 "산동에 백지래왕의 사당이 있네? 백지는 백제고 여기는 백제 땅."
    ② 근데 서기 2년 수집된 한서 지리지에 이미 백지래왕의 사당이 나오네?
    ③ 백제가 건국된 지 20년 만에 산동으로 쳐들어갔나? 그럴 리가 없잖아.

    ⓐ 그리고 사당이 있다고 그 나라 땅이면, 관제묘가 있는 조선은 촉나라 땅이고, 만동묘가 있는 조선은 명나라 땅이고, 신라명신사가 있는 일본은 신라 땅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엔하위키의 한서 지리지 정보 관련해서는 한서 지리지의 기록을 여기 링크하니, Ctrl+F를 통해 '百支萊王'으로 검색하면 뜰 겁니다. 엔하위키 문서는 제가 피와 눈물과 밤샘으로 쓴 글이니(?!) 반달할 생각은 하지도 마십쇼.
    http://zh.wikisource.org/wiki/%E6%BC%A2%E6%9B%B8/%E5%8D%B7028%E4%B8%8A
  • 부여 2011/12/21 02:32 #

    그러고 보면 박영규씨가 왜 굳이 산동에 하북 위례성을 비정해서, 산동에서 백제가 건국되었다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혹시 백지래왕의 사당에 맞추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을 다시 한 번 봐야겠네요.
  • ㅈㄷㅈㄷ 2011/12/21 02:39 # 삭제

    남제서의 그 기록도 전부 한반도내에 있던 곳을 얘기한다고 하실건가요?
    역사를 이야기함에 우리는 먼저 기본 상식을 가지고 해야합니다.
    국사 교과서의 백제 산동 진출 언급도 유사역사학인지 유사엿사학인가요?
    다 사서에 그만한 근거가 나오기때문에 언급하는 것입니다
    아닌 말로 실제로 존재했던 자국의 역사도 어떻게든 비하, 축소해서 없었던 것으로 만들기때문에 얘네들이 바로 식민빠 소리듣는 것이죠.
    저는 내일 출근도 해야하고 이만 자야되니 얘가 저를 아이피 차단안하면 내일 다시 얘기하십시다.
  • 야스페르츠 2011/12/21 08:35 #

    1. 판타지 소설은 너희가 쓰는 것이겠지. 200년 동안이나 산동반도 일대에서 오호와 중국이 쟁패를 벌인 사실들을 모다 모아서 보여줬더니 이 지랄을 떠는구나. 이런 걸 두고 멘탈붕궤라고 하는 거다.

    2. 일단 남제서의 그 기록들이 한반도가 아니라는 증거부터 가져오삼. 산동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남북조 쟁패를 더 찾아다 보여드릴깝쇼?
  • 야스페르츠 2011/12/21 08:52 #

    깜빡할 뻔 했네. 넌 차단. 아이피 차단 당하는게 자랑은 아닐텐데 말야. 로그인으로 오면 하늘이 두쪽이 나도 차단 안한다니까? 로그인으로 오시게나. 얼마나 유리멘탈이길래 로그인으로는 못오는게야?
  • 객관적진리추구 2011/12/21 21:11 #

    그건너
  • 누군가의친구 2011/12/21 02:34 # 답글

    유명한 위인의 말이라고 무비판적이면 그거야 트위터에 유명인들 발언에 아무 비판없이 추종하는거와 다를게 없지요.
  • 야스페르츠 2011/12/21 08:36 #

    정작 이들은 무비판이 아니라 위당을 능욕하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위당이 하늘에서 이놈들을 보면 피눈물을 흘릴 듯...
  • hyjoon 2011/12/21 08:43 # 답글

    떡밥은 죽지 않는다. 그저 낡아갈 뿐이.......(도주)
  • 야스페르츠 2011/12/21 09:56 #

    낡은 떡밥이군요. ㅠㅠ
  • Allenait 2011/12/21 10:53 # 답글

    역시 낡은 거였군요
  • 야스페르츠 2011/12/21 20:36 #

    ㅠㅠ
  • 리얼스나이퍼 2011/12/21 11:45 # 답글

    야 어떻게 상식적으로 남제서에 나오는 그 지역 이름들이 한반도가 될 수 있냐?
    그리고 논리적으로 할말없으니 비로그인 아이피 차단하면서 무슨 변명이 많아?
    유리멘탈같은 소리하지말고 그러려면 차라리 비로그인 덧글 비허용하던지.
    각종 기록을 보면 백제가 산동에도 영역을 확보했다는 것을 잘 알수 있는데.
    너도 네교주처럼 북위 수십만 기병이 배타고 바다를 건너서 한반도의 백제를 공격하다가 패했다고 공상소설을 쓸래?
    이건 뭐 역사를 논하기앞서서 일반적인 상식이 있어야 할 것 아냐.
    이봐 정신차려.
  • 부여 2011/12/21 14:56 # 삭제

    그 각종 기록이란 것 좀 봅시다.
  • 야스페르츠 2011/12/21 20:36 #

    그 각종 기록이란 것 좀 봅시다. (2)
  • 리얼스나이퍼 2011/12/21 11:47 # 답글

    이말하면 또 네가 차단시킨 비로그인분하고 동일인이니 뭐니 할 거 같아서 말하는데 동일인 아니다.
  • ㅁㅁㅁㅁ 2011/12/21 14:32 # 삭제

    리얼스나이퍼/ 비로긴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면서 다르다고 우기냐 이 마광팔아 ㅋㅋㅋㅋ
  • 객관적진리추구 2011/12/21 21:13 #

    자랑스럽게 오신 비로긴의 정체는 리어스나이퍼ㅋㅋㅋ
  • 굔군 2011/12/21 19:32 # 답글

    정작 일제 식민사학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들이 위당과 단재의 권위를 빌려 민족주의자 행세를 하려는 꼴이 참 호가호위가 따로 없죠. ㅡㅡ;
  • 야스페르츠 2011/12/21 20:37 #

    선현들께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 푸른화염 2011/12/22 00:18 #

    오죽하면 제가 제 글 태그에 "위당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썼겠습니까.(먼산)
  • Warfare Archaeology 2012/03/17 21:55 # 답글

    엉? 이 포스팅을 이제사 봤네요...

    흐음. 백지래왕이라...흐음~이건 처음 듣는군요~~
  • brightbeer 2012/06/04 21:57 # 답글

    저로서는 백제 요서경락설도 잘 이해가 안되는데
    요서백제는 남조의 기록에밖에 없지 않은지?
  • 진충보국 2013/12/29 10:26 # 삭제 답글

    댁들이 그러니까 밖에 나가면
    인정못받지 입으로는 학문적 어쩌구
    하면서 아집에 사로잡혀 뻘짓만
    하니까 자꾸 따당하고 국제적으로
    무시만당하지 쯧쯧 학문하는 마음이
    아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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