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8 15:57

《천년의 금서》에 대한 역사적 비판 - 2 유사역사학 비판

대한의 유래


실상 대한제국의 국호가 된 韓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께서 밝혀주신 바 있다. 아니, 누가 딱히 밝혔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애초에 《고종실록》에 몇 차례나 대한이라는 국호가 어디서 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냥 읽어 보기만 하면 바로(?)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조병세(趙秉世)가 아뢰기를,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다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역시 새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억만 년 무궁할 터전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니, 심순택이 아뢰기를,
“삼대(三代)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기자가 옛날에 봉해졌을 때의 칭호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성상의 분부가 매우 지당하니, 감히 보탤 말이 없습니다.”
하였다. 조병세가 아뢰기를,
“각 나라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년토록 태평 시대를 열게 될 조짐입니다. 신은 흠앙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告由祭)의 제문과 반조문(頒詔文)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
《고종실록》 34년(1897) 10월 11일

보다시피, 삼한(三韓)이 통합되어 지금에 이르렀으니 대한이라고 국호를 정하자는 내용. 여기서 말하는 三韓이 무엇인지는, 사실 역사적으로 매우 분명하다. 이 삼한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아니다. 이는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이틀 뒤 선포한 조령(詔令)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으며,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왕후(王后)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큰 의식을 비로소 거행하였다. 이에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노라.
《고종실록》 34년(1897) 10월 13일

마한, 진한, 변한이라 써 놓고 고구려, 신라, 백제로 읽는다.


비록 마한, 진한, 변한이라 써 있지만, 고려 때 통합되었다는 것만 보아도 실제 마한, 진한, 변한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종의 관용구로,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라 말 최치원의 언급부터 시작해서 고려-조선시대 내내 삼한은 삼국을 가리키는 관용적, 상징적인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조금 더 그 연원을 파고들어보자면, 이미 삼국시대 당시-물론 통일기 무렵에 한정되지만-에도 삼한과 삼국을 동일시하는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당 고종의 조서에도 삼국을 삼한으로 칭하고 있을 정도이다. 아래는 최소 삼국에서 통일신라 시기 동안의 삼한에 대한 기록을 대강 정리한 것이다. 물론 김부식이나 일연의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는 삼한은 제외한 것, 즉 최대한 당대 기록에 가까운 것만 모은 것이다.

그러나 생각컨대, 선왕 춘추도 자못 어진 덕이 있었으며 더구나 생전에 어진 신하 김 유신을 얻어 한마음으로 정치를 하여 삼한을 통일하였으니, 그의 공업이 크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然念先王春秋, 頗有賢德, 生前得良臣金庾信, 同心爲政, 一統三韓, 其爲功業, 不爲不多.


《삼국사기》 신문왕 12년조, 신문왕이 당중종에게 보낸 답신

해동의 세 나라는 개국의 역사가 오래되고 국토가 나란히 붙어 있으니, 국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이다. 근대 이래로 마침내 사이가 벌어져 전쟁이 계속 일어나니 거의 편안한 해가 없었다. 이에 따라 삼한의 백성들은 목숨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상황이 되었으며, 무기를 쌓아 놓고 분노하는 일이 아침 저녁으로 이어졌다.

海東三國, 開基日久, 列疆界, 地實犬牙. 近代已來, 遂構嫌隙, 戰爭交起, 略無寧歲. 遂令三韓之氓, 命懸刀, 築戈肆憤, 朝夕相仍.

《삼국사기》 의자왕 11년조, 당고종이 백제에 보낸 조서


신은 우둔하고 못났으니 어찌 국가에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오직 다행스럽게도 현명하신 임금께서 의심없이 등용하였고, 의심없이 임무를 맡겼기에, 대왕의 밝은 덕에 힘입어 약간의 공로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지금 삼한이 한 집안이 되고 백성들이 두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니 비록 태평무사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저 편안하게 되었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臣愚不肖, 豈能有益於國家, 所幸者, 明上, 用之不疑, 任之勿貳, 故得攀附王明, 成尺寸功, 三韓爲一家, 百姓無二心, 雖未至太平, 亦可謂小康.

《삼국사기》 김유신열전 3, 김유신이 죽기 전 문무왕에게 한 말


이로 말미암아 삼한을 병합하여 한나라가 되고 온 세상을 통일하여 한 집안을 만들었다.

由是三韓而爲邦, 掩四海爲家.

《삼국유사》 원종흥법 염촉멸신조, 〈촉항분예불결사문〉을 요약한 내용


신라 황륭사의 승 원광은 속성이 박씨요, 본래 삼한(변한, 진한, 마한)에 살았으니, 원광은 즉 진한 사람이다.
新羅皇隆寺釋圓光, 俗姓朴氏, 本住三韓, 卞韓‧辰韓‧馬韓, 光卽辰韓人也.
《삼국유사》 원광서광조, 《속고승전》 13권을 인용


이보다 더 많은 삼한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여기에는 삼국을 의미하는 것만 정리하였다. 실제 삼한의 용법을 살펴보면 삼국을 의미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한반도 일대의 땅을 통칭하는 용법으로도 종종 사용된다. 바로 위에 인용된 원광의 경우도 삼한 자체는 삼국의 강토 전체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삼한일통이라는 당대인의 발언은 잠깐 역사밸리에서 언급이 되었던 삼국-신라-고려의 계승 관계에 대한 논쟁에 좋은 시사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각설하고 이미 삼국시대 당시에도 삼한을 삼국의 대체어로 사용하는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은 분명하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 이러한 의식은 더욱 강화되며, 특히 고려는 후삼국의 통일을 또 다시 삼한일통이라 자칭하고 강조함으로써 중요한 프로파간다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이러한 삼한에 대한 인식이 더욱 발전(?)하여 고대 사료 속의 삼한이 삼국의 전신(前身)이라는 해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미 김부식부터가 최치원의 말-"마한=고구려, 변한=백제, 진한=신라 -을 인용하면서 다른 여러 설들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으며, 권근이 여기에 태클을 걸긴 했는데, 그 태클이라는게 마한=백제, 변한=고구려, 진한=신라라는 내용... ㄷㄷㄷ 이후 서거정이 이러한 인식을 비판하면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삼한에 대한 인식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전근대 학자들의 주장은 순암의 《동사강목》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참고로 해 보자.



이렇게 길게 삼한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추적(?)한 것은, 사실상 김진명의 《천년의 금서》 근간에 흐르는 인식을 비판하고자 함이다. 김진명의 역사관(?)을 잘 보여주는 해당 책의 주옥 같은 구절을 한 번 읽어보자.


우리나라는 새로운 국명을 지을 때 화려한 과거를 계승하려 했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지어졌고 조선은 과거의 조선 즉, 고조선을 잇겠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고조선이 무척 왜소하게 그려져 있지만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던 당시까지는 고조선이 대단한 나라였다는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국명이 고구려를 따고 조선의 국명이 고조선을 따듯,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지을 때 한(韓)을 택한 건 한이라는 글자에 과거의 화려한 영광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에 한이 처음 등장한 것은 물론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다. 그러나 당시 두만강 압록강을 국경으로 두고 있던 조선이 고작 한반도 남부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을 잇고자 대한제국이라고 국호를 지었을까? 특히 당시는 외압을 떨치고 조선의 기개를 펴겠다는 웅혼한 기상에서 국명을 바꾸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삼한은 그전에 이미 한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한은 한반도에 갇힌 조선이 본받고 싶었던 강력하고 거대한 나라가 아닐까?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김진명, 위의 책, 80~81페이지
한줄요약. 삼한 찌끄레기들 쪽팔려! 나의 대한은 그렇지 않아!

여기서 좀 무서운(?) 점 한가지. 저 인용문구는 "논문 개요"이다. 논문 말이다. 저게 논문이라고?? 심지어 "것은"을 "건"이라 쓰고 있는 파격적인 논문이라니.... 에세이라면 모를까, 논문을 저따위로 쓰는 학자가 주요 캐릭터라는 이야기인데... 레알 공포다.


아무튼 조선의 국호가 조선이 된 사연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많은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모두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고조선이 대단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 국호를 딴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아니, 엄밀히 말해 대단한 나라여서 그 국호를 딴 것은 맞는데, 그게 "무척 왜소하지 않은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크고 아름다운 나라라서 국호를 딴 것은 아니라는 것. 일단 기자조선에 대해서 공부하고 와야 할 듯 싶다.

물론 고려가 고려가 된 사연 역시 저 저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궁예-왕건이 나라를 세운 곳이 어디인지부터 생각해보자. 견훤은 백제의 어디가 그렇게 크고 아름다워서 후백제를 세웠을까?


솔직히 저 글을 보는 순간 참 엄청난 허탈감이 밀려왔다. 진정, 레알, 정진정명 초딩식 발상이 아닌가? 물론, 이런 초딩식 발상이 국호 간택의 이유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실제 국호 선택에 대한 여러 기록들에는 그런 뉘앙스 역시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오로지 그것만 선택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 법이다. 명분, 실리, 학문-철학적 해석, 역사적 상관관계, 기타 등등. 수많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김진명의 발상은 참으로 간단하다.


크고 아름다우니까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 초딩의 심리로다.



덧글

  • 누군가의친구 2011/11/28 15:59 # 답글

    아놔! 할말을 잊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11/28 16:49 #

    초딩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응?)
  • 푸른화염 2011/11/28 16:12 # 답글

    뭐.. 김진명이 그모양인건 새삼스러울게 없지요.^^ 치욕도 크게 확장하면서 민족의식 어쩌고 하는 사람을 뭘 바라겠습니까. ㄱ- (여기서 치욕-은 아시겠지만 명성황후 시간설 그겁니다. 명성황후 자체는 싫지만 어쨌던 국모가 외국인에게 피살당한 일이니 치욕은 치욕이지만 거기에 있지도 않았던 시간설 넣을 필요가 있는지...)
  • 야스페르츠 2011/11/28 16:49 #

    허허... 다른 책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걸 읽고 선동당했던 과거도 잊고 싶다능. 허허허
  • Allenait 2011/11/28 16:26 # 답글

    ...진짜 할 말을 잊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11/28 16:49 #

    초딩입니다. 존중해주세요. (2)
  • 진성당거사 2011/11/28 16:35 # 답글

    삼한이 쪽팔린다는 심리...........아아....할 말을 잊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11/28 16:49 #

    초딩입니다. 존중해주세요. (3)
  • hyjoon 2011/11/28 16:36 # 답글

    지못미 나무......
  • 야스페르츠 2011/11/28 16:50 #

    지못미.
  • 2011/11/28 16: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11/28 16:50 #

    사학도가 아니어도 논문을 저렇게 쓰면 욕 처먹습니다. 문학 쪽 논문도 저렇게는 안쓸듯.
  • 리리안 2011/11/28 16:53 # 답글

    크고 아름다운걸 좋아하는 김진명 씨군요.(...)
  • 야스페르츠 2011/11/29 08:58 #

    초딩입니다. 존중해주세요. (4)
  • 미스트 2011/11/28 17:36 # 답글

    김진명이 원래 좀 그렇죠... .....
  • 야스페르츠 2011/11/29 08:58 #

    쩝...
  • 눈시 2011/11/28 19:46 # 답글

    위대한 우리 역사를 자랑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를 까고 축소시키고 밟아야 되는 거군요 _-)b
  • 야스페르츠 2011/11/29 08:58 #

    초딩입니다. 존중해주세요. (5)
  • Mr 스노우 2011/11/28 20:15 # 답글

    나이가 몇살인데 저리 초딩놀이를...;;
  • 야스페르츠 2011/11/29 08:59 #

    근데 사실 역사를 보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심리도 저기서 별반 다를 건 없을 겁니다. 물론 그걸 이렇게 공개적으로 인증하는 건 별개의 문제이고... ㅡㅡ;;
  • 대공 2011/11/28 21:16 # 답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까지가 좋았죠. 물론 깔거리는 수두룩하지만.
  • 야스페르츠 2011/11/29 09:00 #

    사실 그 책은 읽다가 재미 없어서 집어던졌다능. 딴 책들은 몇 권 읽었지만.ㅡㅡ;;
  • 을파소 2011/11/29 00:13 # 답글

    너무 단순하여 감탄하였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11/29 09:00 #

    초딩입니다. 존중해주세요. (6)
  • 레드칼리프 2011/11/30 00:10 # 답글

    씁쓸하지만 저런 인식이 어느 정도는 대중적인 합의가 아닐런지요.
    수요가 없으면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판이 부족하니 수요는 더 증가하고.
  • 야스페르츠 2011/11/30 11:51 #

    그렇지요. 게다가 이렇게 반대 방향의 공급은 원활(?)하니... ㅡㅡ;;;
  • 2011/11/30 01:19 # 삭제 답글

    신라정통론에도 한방 먹이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1/11/30 11:52 #

    뭐, 그쪽으로 나름 생각은 있습니다만, 논할 만한 지식은 없어서요. ^^;;
  • 굔군 2011/11/30 23:41 # 답글

    690년에 죽은 고구려 유민 고현(高玄) 묘지명에서도 고현을 '요동삼한인(遼東三韓人)'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 동안 이해가 안 갔었는데, 이제 보니 그냥 '한반도'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 것 같네요. ^^;

    당 고종이 말했던 '해동삼국(海東三國)'과 같은 의미인 듯합니다.
  • 웰컴웴컴 2011/12/11 21:51 # 답글

    소설은 소설입니다. 그냥 그렇게 이해하는게 정신적으로 편할듯 ㅋㅋ

    덤 : 그 천년의 금서 보니까 진나라라고 하면 진번아니냐는 우리 정식사학계의 말에 이정서가 "그 진나라는 진번이 아니라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입니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한자부터가 다른데;;;; 순간 어이상실했죠
  • 야스페르츠 2011/12/11 23:21 #

    그냥 본격 역사학자 능욕 소설입니다요. ㅡㅡ;;
  • 웰컴웴컴 2011/12/17 01:21 #

    하긴.. 그렇죠. ㅋ
  • 부여 2012/07/16 00:33 # 답글

    저 논문 개요랍시고 설정된 찌끄래기를 요약하면 "아닐까? 어쩌면 아닐까? 아닐까? 분명 그럴 것이다"로 간단히 정리되는군요(...) 아 씨바 할 말을 잃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2/07/16 00:24 #

    에세이도 저렇게 쓰면 욕먹습니다. ㄷㄷㄷ
  • 부여 2013/01/01 23:34 #

    덤. 반년동안 민족사관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어쩌다 덧붙이게 되는 사실인데, 기자정통론이 주류이던 당시에는 "단군→기자→마한(삼한)→무통(삼국)→신라"의 계보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시각으로 삼한은 곧 조선을 계승한 후신으로 조선사의 정통이요, 정통을 강조하는 유교적 인식으로는 하등 꿀릴 게 없는 호칭인 셈이지요. 이런 유교적인 왕조 정통론은 1900년대 신채호가 민족사관을 제창하면서 사라지지게 되지만...
    여튼 작은 뒷북이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폴룩스 2012/10/01 03:20 # 답글

    크고...아름다워...!
  • 야스페르츠 2012/10/01 14:32 #

    근데 실제로는 별로 크지 않다는게 함정. ㅋㅋ
  • 혹시 2014/01/03 11:03 # 삭제 답글

    이 글이 엔하위키 미러의 삼한 문서에 트랙백되지 않았나요?
  • 오덕이냐능 2014/12/10 16:14 # 삭제 답글

    이곳이 할일없는 오덕들만 모여있다는 그 곳인가요?? 성지순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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