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26 03:18

소왕 사후 전국연의 역사 역사

연나라는 고조선의 어디까지 침략했는가?(고조선, 연 국경 문제)


이런 주옥 같은 개드립이 있었으니, 과연 소왕 사후 연나라가 얼마나 쳐발리기 급급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합시다.


연소왕은 기원전 312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279년에 사망하였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소왕 대 연나라는 절치부심 끝에 제나라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합니다. 제나라가 얼마나 심하게 연나라에게 발렸는가를 보여주는 《사기》의 기록을 봅시다.

소왕 28년, 연나라는 부강해져서 병사들이 쾌락에 빠져 전쟁과 같은 일에 관심이 없어졌다. 이에 악의(樂毅)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진(秦), 초(楚), 삼진(三晉 : 趙, 魏, 韓)과 모의하여 제나라를 정벌하였다. 제나라 병사들은 패하였고 민왕(湣王)은 성을 버리고 외지로 도망쳤다. 연군은 홀로 북으로 추격하여 임치(臨淄 : 제나라 수도)까지 점령하고 제의 보물을 노획하고 궁실과 종묘를 불살랐다. 6년 동안의 전쟁으로 제나라의 성 중 함락되지 않은 곳은 오직 요(聊), 거(莒), 즉묵(即墨) 뿐이었으며, 그 외에는 모두 연나라에 복속되었다.
二十八年,燕國殷富,士卒樂軼輕戰,於是遂以樂毅為上將軍,與秦、楚、三晉合謀以伐齊。齊兵敗,湣王出亡於外。燕兵獨追北,入至臨淄,盡取齊寶,燒其宮室宗廟。齊城之不下者,獨唯聊、莒、即墨,其餘皆屬燕,六歲。

한때 진(秦)과 함께 천하를 양분하던 강대국 제나라를 겨우 3개 성만 남겨놓고 완전히 쳐발라 버린 것입니다. 오오!! 전투종족 연소왕! 그리고 악의! 여담이지만, 이때 외지, 즉 위나라로 도망친 민왕은 온갖 사고를 치며 추, 노나라 등을 전전하다가 결국 객사하고 맙니다. ㅡㅡ;;

279년, 소왕이 33년 동안의 재위를 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뒤를 이은 혜왕은 악의와 관계가 좋지 못했고, 결국 악의는 사령관직에서 해임된 뒤 조나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악의가 물러나고 난 뒤 연군은 제나라의 반격으로 결국 점령한 영토를 모두 탈환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타격으로 인해 제나라는 전국칠웅의 쟁패에서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50여 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제나라의 활동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제나라는 전쟁도 한 번 치르지 않은 채 시황제에게 항복하여 멸망하였습니다.

즉, 일단 279년 당시 연의 국력은 그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해외원정군이 패배를 겪긴 했지만, 정작 대부분은 무사히 퇴각했으며, 점령한 제나라의 영토만 다시 반환(?)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떨까요?


혜왕은 7년 동안 재위했으며, 특별한 활동은 없었습니다. 다만 혜왕이 사망할 무렵인 기원전 272년에 연나라는 한(韓), 위(魏), 초(楚)의 세 나라에게 연합 공격을 당합니다..... 무려 삼국이 연합을 했으니 뭔가 거창한 공격일 것 같은데, 삼국의 세가(世家)를 모두 살펴보아도 자세한 경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위세가에는 아예 기록 자체가 없고(육국연표에 간략하게 연나라를 공격했다[燕擊]고만 나타남), 한세가에도 단순하게 연나라를 공격했다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초세가에 약간 자세하게 나타나긴 하는데, "3만 명의 병사를 보내 삼진의 연 정벌을 도왔다(使三萬人助三晉伐燕。)"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전쟁의 주체인 삼국입니다. 아래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한, 위, 초 세 나라 모두 연나라와는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습니다... ㅡㅡ;; 뭐, 이 시기에는 국경이 맞닿아 있지 않아도 멀쩡하게 전쟁이 벌어진 기록이 수두룩한지라 크게 문제가 될 점은 아닙니다만, 기록 자체도 워낙에 대수롭지 않게 되어 있고, 전쟁의 주체들도 이 모양인지라 이 전쟁으로 연나라가 뭔가 특별한 피해를 입은 것은 없어 보입니다.


※ 환드모트가 이 지도의 연나라가 요하를 넘지 않았다고 가가대소할 것이 눈에 선하다... ㅡㅡ;;
근데 지도가 마땅한게 없어 씨발 ㅋㅋㅋ


이후 혜왕의 뒤를 이은 무성왕 7년, 제나라의 공격을 받아 연은 중양(中陽)을 빼앗깁니다. 역시 이것 말고 다른 특별한 언급은 없습니다. 국경 지방의 성 하나를 빼앗긴 수준입니다. 무성왕은 재위 14년만인 기원전 258년에 죽었고, 효왕이 뒤를 이었으나 별일 없이 3년 뒤에 사망하였으며 드디어 기원전 254년, 연나라의 마지막 왕 희(喜)가 즉위합니다.


연왕 희는 즉위한지 4년만에 바로 옆나라인 조나라를 공격합니다. 당시 조나라는 10여 년 전에 벌어진 장평대전(長平大戰)에서 40만의 병사를 모조리 잃고 휘청대던 때였습니다. 이 공격 당시 연나라와 조나라의 세력비, 그리고 연나라의 동원 병력에 대한 《사기》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왕이 창국군 악간(樂間 : 악의의 아들)을 불러 이것에 대해 물었다. 이에 악간이 대답하길 "조나라는 사면이 적국이며, 그 백성들은 병사일에 익숙합니다. 정벌은 불가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우리가 다섯으로써 하나를 칠 수 있다"라 하니 다시 대답하길 "그래도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연왕이 노하였으며, 여러 신하들도 모두 (악의가 틀렸고) 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결국 두 부대를 편성하고 전차 2천 승을 마련하여 장군 율복(栗腹)에게는 호(鄗)를 공격하게 하고 장군 경진(卿秦)은 대(代)를 공격하였다.
王召昌國君樂間問之。對曰:「趙四戰之國,其民習兵,不可伐。」王曰:「吾以五而伐一。」對曰:「不可。」燕王怒,群臣皆以為可。卒起二軍,車二千乘,栗腹將而攻鄗,卿秦攻代。

무려 5대 1의 숫적 우세를 점칠 수 있을 정도로 연과 조의 세력차가 큽니다. 물론 당시 조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의 간당간당한 상황이긴 했지만. 게다가 동원한 병력을 보면 또 입이 떡 벌어집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병력을 편성하는 기준은 전차로 일종의 교범화 되어 있었는데, 천자, 즉 전성기의 주나라가 1만 승의 전차를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하며, 제후국 중에서도 대국이 천 승의 전차를 동원한다고 평가되었습니다. 전차 한 승은 병사 100명과 대체로 같다고 볼 수 있고, 그에 따르면 2천 승의 전차는 20만 명의 군대와 동의어(?)입니다. ㄷㄷㄷ

물론, 어느 정도의 과장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주나라가 최전성기라고 해도 만승, 즉 100만 명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었을리는 없겠지요. 그러나 어쨌든 전차의 대수는 당시, 적어도 춘추시대까지 열국의 국력을 가늠하는 지표(?)의 하나로 언급되곤 했습니다. 2천 승의 전차는 당시 기준으로도 엄청난 수준의 동원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야심찬 전쟁은 결국 참사로 끝나고 맙니다. 원정군은 모조리 격파되었고, 오히려 반격을 당해 수도까지 포위당하는 수모를 겪었거든요. 물론 이후 강화조약을 통해 포위는 풀렸습니다만...

연왕 희 12년에 다시 연나라는 조나라의 공격을 받아 무수(武遂)와 방성(方城)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연나라는 2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조나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했습니다. 성을 빼앗기기는 했습니다만 곧바로 2만 명이나 되는 병력을 동원할 수 있고 조나라와도 어느 정도 맞상대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후 연나라는 상대적으로 진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평온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연나라가 진의 위협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29년 경의 일로, 이 위협에 맞서 연의 태자 단(丹)은 형가를 자객으로 보내 진왕 정을 암살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암살건으로 인해 연나라는 진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고, 결국 기원전 226년, 진의 공격을 받아 수도 계가 함락되고 태자 단이 사망하기에 이릅니다. 연왕 희는 요동으로 도망쳐 4년 동안 목숨을 부지했고, 마침내 기원전 222년에 진군이 요동까지 쳐들어와 연나라의 숨통을 끊었습니다.


이상이 소왕 이후 연나라의 역사입니다. 자, 과연 연나라가 전국 여러나라에게 쳐발리기 급급했는지 한 번 하나씩 살펴봅시다.


* 기원전 278년 : 제나라에서 패퇴, 그러나 원래 세력은 대체로 유지함
* 기원전 272년 : 한, 위, 초 연합군에게 침략을 받음. 그러나 별로 타격은 없어 보임
* 기원전 265년 : 제나라의 공격으로 중양을 빼앗김.
* 기원전 251년 : 전차 2천승의 대군으로 조나라를 공격. 그러나 완전히 개박살남
* 기원전 243년 : 조나라의 공격으로 2개 성을 빼앗김.
* 기원전 242년 : 2만 명의 병력으로 조나라를 공격하나 패배함.
* 기원전 226년 : 진나라의 공격으로 수도를 빼앗기고 요동으로 도망침
* 기원전 222년 : 진나라에게 완전히 멸망.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발린 끝에 진나라에게 멸망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자면 결코 "쳐발리기 급급하다"는 표현은 쓰기 어려워 보이는군요.

적어도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나라는 한때 천하를 넘보던 강대국 제나라를 발라버리기도 했고, 수만 명 단위의 원정군을 파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침략을 당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록을 살펴봐도 "자기 나라 본토가 공격당해서 망하기 일보직전이라 청천강 북부까지 지속적으로 영역을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비슷할 정도로 곤란했던 때는 기원전 251년에 수도를 포위당한 경우가 유일할 것 같군요. 그것도 그다지 큰 곤란은 아니었을 겁니다. 채 10년도 지나기 전에 2만 명의 대군을 동원할 정도로 국력이 나름 충실했으니까요.

진나라에게 발리던 무렵을 이야기해봤자, 그 진나라가 요동까지 점령하고 고조선을 명목상으로나마 속국화했던 것을 보면 별로 설득력이 없을 듯 합니다. 게다가 진나라에게 발려서 환드모트의 말대로 망하기 일보직전인 때는 요동을 점령한 시점에서 자그마치 70년이 넘게 지난 시기입니다. 그 말대로라면 최소 70년이 넘도록 청천강 이북 지역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든 지경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고갱님. 그대와는 대화보다는 개념이 절실하다고 느낄 때가 많군요.


물론 환드모트에게는 통하지 않을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만... 그냥 재미삼아 거연(巨燕) 이후의 역사를 한 번 뒤져봤습니다. 진개의 침입 이후의 고조선을 논하는데 있어서 그 이후 연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이겠지요.

그런 전차로 이런 야심한 시간까지 잉여의 넋두리를 하게 되었으니 여러 제현들의 많은 의견 바랍니다. ㅎㅎ

참고로 위키백과가 전하는 또 다른 전국시대 지도를 첨부함




이런 지도가 과연 어떤 근거로 그려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당시의 실질적인 지배 범위를 생각해볼만한 단초는 제공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요동 일대의 생산력(?)이 어느 정도였을지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연의 지배 거점이 겨우(?) 저 정도에 불과했을지, 아니면 요동 일대의 실질적인 인구 분포가 요따구었는지는 여러모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잉여는 사라집니다. ㅎㅎㅎ

덧글

  • 리리안 2011/10/26 03:58 # 답글

    나의 연나라는 그렇지 않다는~을 외쳐야겠군요^^
  • 야스페르츠 2011/10/26 08:33 #

    나의 연나라는 크고 아름다워요. (응?)
  • 굔군 2011/10/26 04:06 # 답글

    환드모트의 저 개드립은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답답하시네요.
    유적이고 뭐고 간에 장수왕이 죽고 나서 여기저기서 백제, 신라, 수, 당 여러나라에 쳐발리기 급급하던 고구려가 무슨 수로 압록강 이북 요동 지역까지 지속적으로 영역을 유지한단 말이오?
    자기 나라 본토가 공격당해서 망하기 일보직전인데.
    제발 좀 상식적으로 생각합시다.
    님들 같은 부류들하고는 그냥 상식적으로 통하는 대화가 절실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결론 : 사실 알고 보면 전혀 상식적이지 않음.
  • 야스페르츠 2011/10/26 08:33 #

    ㄲㄲㄲ 고구려 지못미
  • 소하 2011/10/26 05:46 # 답글

    고구려에게 수도가 함락당하고, 왕이 살해되던 시기에, 무슨 수로 위나라와 전쟁을 벌이며, 요서를 점령하나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죠. 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10/26 08:34 #

    으악 백제 지못미
  • 원더바 2011/10/26 08:43 # 답글

    글 잘봤습니다

    그러고보니 글 읽다가 무성왕 하니 황비호가 자동으로 떠오르는군요 ㅋㅋ
  • 야스페르츠 2011/10/26 14:49 #

    만악의 근원 소달기로군요. ㅎㅎ
  • 크핫군 2011/10/26 09:10 # 답글

    음... 진짜 한국사 공부좀 해야하는데;;;o rz
  • 야스페르츠 2011/10/26 14:49 #

    음... 이건 중국사인데;;; o rz
  • 객관적진리추구 2011/10/26 09:11 # 답글

    환드모트는 답이 없죠ㅠ.ㅠ
  • 야스페르츠 2011/10/26 14:50 #

    그저 한숨만...
  • hyjoon 2011/10/26 11:46 # 답글

    안드로메다는 너무 멀어요 ㅠ.ㅠ(응?)
  • 야스페르츠 2011/10/26 14:50 #

    그나마 태양계에서 제일 가깝습니다. (응?)
  • 보헤미오 2011/10/26 12:38 # 답글

    뭔가 석연치 않다고 생각은 했는데 정말 그렇군요... 유사역사학자들이 거짓말만 일삼는다는 걸 다시한 번 보여주는 사례네요^^
  • 야스페르츠 2011/10/26 14:52 #

    연나라가 분명 7웅 중 약소국에 속하긴 했지만, 그렇게 망하기 직전에서 빌빌대던 나라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참 답답합니다.
  • 마봉길 2011/10/26 15:08 # 답글

    아래 지도는 사서에 나타난 지명의 빈도를 누적해서 표시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10/26 16:06 #

    빈도수를 따질 수 있을 정도로 기록이 충분한지 좀 애매한데요. ㅎㅎ
  • bergi10 2011/10/26 17:11 # 답글

    지도는, 실제 사람이 살면서 생산력(?)이 나오던 지역이 아닐까요?
    연녹색이 칠해지지 않은 지역은 사람이 많이 살지않아 크게 의미가 없는 지역이고...???

  • 야스페르츠 2011/10/26 19:37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구밀집도 및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에 가깝다고 생각되네요.
  • 마에스트로 2011/10/26 19:44 # 답글

    제가 갖고 있는 책 중에 <Atlas China>란 책이 있는데(좀 오래된 겁니다--;;) 거기서는 중국 삼국시대의 영토를 두번째 그림과 비슷하게 그리더군요. 아마도 인구가 밀집되는 지역을 기준으로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고대에는 점과 선을 위주로 통치했으니 저렇게 표기하는 것은 무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10/27 08:40 #

    네. 저는 오히려 이렇게 현실적(?)인 지도가 더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해 주긴 하겠지요.
  • 넞2006 2011/10/26 23:11 # 답글

    썩어도 준치. 연나라도 엄연한 철기 국가이죠.

    고조선이 철기를 제대로 받아들인 시점이 연나라 멸망 전후로 추정되는 데다가, 그 시기를 더 이르게 잡아는다 해도 당시 대륙 철기는 이미 농업에 사용될 정도로 발달된 상태. 연나라는 그런 당시 대륙 국가들의 으뜸이었던 전국7웅 중 하나였죠.

    아무리 전국7웅 중 약(弱)국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동아시아의 시점에서 보면 강(强)국이라는 점을 왜 모르는지.....
  • ㅇㅁㄹ 2011/10/27 01:14 # 삭제

    요즘은 철기가 오히려 북방에서 소위 중원으로 전해졌다는 말도 있는데 고조선이 연나라보다 늦게 철기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고고학적 발굴로도 만주지역에는 전국시대에 해당하는 시기에 이미 철기가 보편화되었던 것으로 나타남.
  • 야스페르츠 2011/10/27 08:42 #

    실상 요동 점령 이후에 요동을 위협할 세력이 동방에 존재하긴 했는지부터가 의문입니다. 고조선은 사실상 멸망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타격을 받은 것이 분명하고 그 외 누가 있긴 한가...ㅡㅡ;;

    환드모트 // 그래봤자 그 북방은 고조선이 아니라네. 그리고 고고학 들먹여봤자 헛소리지. 댁이 말한 그 철기가 다 연나라 거라는 건 모르나보네. 쯔쯧
  • ㅇㅁㄹ// 2012/03/13 21:15 # 삭제

    세죽리 연화보 문화가 뭔지나 찾아보고 나대시라능
  • moduru 2011/12/06 17:13 # 답글

    거연(巨燕)을 찾다 우연히 뒤늦게 이글을 봤는데...
    이렇게 고생하고 계실줄이야. ㅠㅠ
  • 야스페르츠 2011/12/06 23:57 #

    어허허허 고생이랄 것 까지야... 즐겁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
  • ㅎㅇㅎㅇ 2017/03/30 07:25 # 삭제 답글

    모 사실 요동이랑 청천강이북을 직접지배한다고 할 수있을 정도로 강한나라도 아니였고.. 그렇게 가치있는 땅도 아니였고.. 청천강이북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요동도 거점만 두고 그 주변만 영향력 있는 정도였겠죠.통일중국인 한나라도 고조선 멸망시키고 직접지배하려다 실패해서 한사군 중 두개가 사리졌는데 중국 변방의 소국이 직접지배..? 꿈이죠 뭐.특히 요동과 요서 사이길은 당시 도로도 안닦인 비포장 허허벌판이였는데 요동까지 커넥션유지만하는 것도 사실상 네..네.. 그러시겠죠ㅋ할 수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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