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8 18:50

방송 내용을 왜곡하지 마시오. 병림픽

역사추적 제5회: 1300년 만에 밝혀진 의자왕 항복의 비밀편에 대한 왜곡을 담은 글




역사추적은 KBS 홈페이지에서 지금도 쉽게 다시 시청할 수 있다. 직접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위 글에 인용(?)된 내용은 실제 방송 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1. 방송 어디에도

황산벌에서 싸운 신라군의 목표가

당군의 식량 보급임을 밝히는 부분은 없다.



방송을 그냥 보기만 해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더 이상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2. 방송에서는 나당연합군의 보급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정작 그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직접적인 코멘트가 없다. 전문가의 코멘트가 등장하는 부분은 백제부흥운동 당시에 당군이 보급로가 끊겨 굶주렸다는 내용 뿐이다.

"실제로 백제가 부흥운동을 일으킬 때, 백제 군사가 진현성을 장악하고 있음으로써 신라에서 부여에 보급품이 전달되지 않아서 부여에 주둔하고 있었던 당나라 군사가 굶주림에 지친 적이 있습니다. 당나라 군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천여 명이 웅진도(熊津道)를 개통하기 위해서 웅진 동쪽, 그러니까 지금의 대전으로 출동했다가 모두 몰사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보급품 전달에 중요한 위치가 이 진현성과 대전 동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서정석 교수(공주대 문화재 보존학과)

인터뷰 내용은 진현성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과 함께, 부흥운동 당시의 상황만 전하고 있다.

백제부흥운동이 막 일어났을 당시 백제 땅에 남아 있는 당군은 기록에 따르면 1만 명 뿐이었으며, 백제부흥운동으로 서북부의 성들이 호응하여 들고 일어나 당군의 보급로가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있던 신라에 보급을 요청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볼 때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백제부흥운동 당시의 상황을 《삼국사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무왕의 조카 복신(福信)이 일찍이 군사를 거느렸는데 이때 승려 도침(道琛)과 함께 주류성(周留城)에 근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일찍이 왜국에 볼모로 가 있던 옛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맞아다가 왕으로 삼았다. 서북부(西北部)가 모두 응하자 군사를 이끌고 인원(仁願)을 도성(都城: 사비성)에서 포위하였다. (당은) 조서를 내려 유인궤를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史)로 기용하고, 왕문도(王文度)의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便道]로 신라 군사를 일으켜 인원(仁願)을 구하게 하였다. ....(중략).... 인궤가 군사를 엄하고 정연하게 통솔하고 싸우면서 전진하니 복신 등이 웅진강(熊津江) 어구에 두 목책을 세우고 막았다. 인궤가 신라 군사와 합쳐 이를 치니 우리 군사는 퇴각하여 목책 안으로 달려 들어왔는데 물이 막히고 다리가 좁아서 물에 빠져 죽거나 전사한 자가 1만여 명이나 되었다. 복신 등은 이에 도성의 포위를 풀고 물러나와 임존성(任存城)을 보전하였고, 신라 사람도 군량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이 때가 용삭(龍朔) 원년(661) 3월이었다.
武王從子福信嘗將兵、乃與浮屠道琛據、周留城叛、迎古王子扶餘豊、嘗質於倭國者、立之爲王、西北部皆應、引兵圍仁願於都城。詔起劉仁軌檢校帶方州刺史、將王文度之衆、便道發新羅兵、以救仁願、仁軌喜曰: “天將富貴此翁矣。” 請唐曆及廟諱而行、曰: “吾欲掃平東夷、頒大唐正朔於海表。” 仁軌御軍嚴整、轉鬪而前、福信等立兩柵於熊津江口以拒之、仁軌與新羅兵合擊之、我軍退走入柵、阻水橋狹、墮溺及戰死者萬餘人、福信等乃釋都城之圍、退保任存城、新羅人以粮盡引還、時龍朔元年三月也。
《삼국사기》〈백제본기〉 백제부흥운동 부분

보다시피, 당의 유인원이 지키는 사비성은 복신의 부흥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었으며, 이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유인궤는 또 다시 웅진강 입구에서 복신과 맞붙어야 했다. 포위된 사비성의 보급이 불가능한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도성뿐 아니라 당군의 보급로인 웅진강 입구까지 부흥군에게 장악된 것이다. 서북부가 모두 응했다고 말할 정도이니 이런 상황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당군이 661년 당시에 포위당하고 보급에 난항을 겪게 된 것은 부흥군의 활동이 왕성하여 보급로가 끊긴 덕분이지, 당군이 신라에게만 의지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당시 함께 싸웠던 신라군이 군량 부족으로 회군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이 무렵 신라 방면의 보급로가 어떤 상황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신라 방면의 보급로가 확보(?)된 것은 이로부터 1년도 더 지난 뒤의 일이다.

용삭 2년(662) 7월에 인원과인궤 등은 웅진 동쪽에서 복신의 남은 군사들을 크게 깨뜨리고 지라성(支羅城) 및 윤성(尹城)과 대산책(大山柵)·사정책(沙井柵) 등의 목책을 함락시켜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으며, 곧 군사를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복신 등은 진현성(眞峴城)이 강에 임하여 높고 험하고 요충지에 해당되므로 군사를 더하여 지키게 하였다. 인궤가 밤에 신라 군사를 독려하여 성가퀴에 육박하였는데 날이 밝을 무렵에 성으로 들어가 800명을 베어 죽이고 마침내 신라의 군량 수송로를 뚫었다.
二年七月、仁願·仁軌等大破福信餘衆於熊津之東、拔支羅城及尹城·大山·沙井等柵、殺獲甚衆、仍令分兵以鎭守之。福信等以眞峴城臨江高嶮當衝要、加兵守之 仁軌夜督新羅兵、薄城板堞、比明而入城、斬殺八百人、遂通新羅饟道。
《삼국사기》〈백제본기〉 백제부흥운동 부분

어쨌든 나도 이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사료를 모두 살펴본 것이 아니니 백제부흥운동 당시 신라와 관련된 보급 문제에 대해서 따로 언급할 것은 없다. 하지만 백제부흥운동 당시와 별개로 백제 멸망 때의 상황은 방송과 조금 다름이 분명하다.


3. 마지막으로 방송 내용 자체에 대한 의문점 하나.

나당연합군의 공격 때 사비성의 백제군 군량은 모두 불타버렸다.
나당연합군은 불타버린 군량창고 앞에서 당황했다.
이들이 사비성에 입성한 것은 7월 초, 벼 수확을 위해서는 두 달을 더 기다려야 했다.
군량을 조달하는 유일한 길은 신라에서 공급하는 것뿐이었다,

인용문에는 대단히 과장된 어조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방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평온한 어조의 나레이션이 등장한다.


나당 연합군에게 또 하나의 큰 위협은 18만 군대의 식량이다. 격렬한 전투 중에 사비 도성의 백제군 군량은 불타버렸다. 벼 수확은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신라에서 조달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아무리 찾아봐도 사비 함락 당시에 군량이 불타버렸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정방이 (사비)성을 포위하니 왕의 둘째 아들 태(泰)가 스스로 왕이 되어 무리를 거느리고 굳게 지켰다. 태자의 아들 문사(文思)가 왕자 융(隆)에게 말하였다. “왕과 태자가 [성을] 나갔는데 숙부가 멋대로 왕이 되었습니다. 만일 당나라 군사가 포위를 풀고 가면 우리들은 어찌 안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드디어 측근들을 거느리고 밧줄에 매달려 [성밖으로] 나갔다. 백성들이 모두 그들을 따라 가니 태(泰)가 말릴 수 없었다. 정방이 군사로 하여금 성첩(城堞)에 뛰어 올라가 당나라 깃발을 세우게 하였다. 태는 형세가 어렵고 급박하여 문을 열고 명령대로 따를 것을 요청하였다.
定方圍其城、王次子泰自立爲王、率衆固守、太子子文思謂王子隆曰: “王與太子出、而叔擅爲王、若唐兵解去、我等安得全。” 遂率左右縋而出、民皆從之、泰不能止、定方令士超堞、立唐旗幟、泰窘迫、開門請命。
《삼국사기》〈백제본기〉 의자왕 20년

양당서를 모두 살펴보아도 백제의 도성 함락 당시에 군량 창고가 불타버렸다는 식의 기록은 전혀 없다. 부여태가 성문을 열고 항복한 상황만 전할 뿐이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것은 분명 알 수 있으나 군량 창고가 불탔다는 기록은 없다.


대체 역사추적은 저 내용을 어떤 것을 근거로 제기한 것일까?



뭐, 역사추적 같은 방송이 근거가 희박한 내용을 방송하거나 한 것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실수는 가볍게 넘어가 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방송의 어설픈 실수(?)로 인해 역사 지식이 부족한 어엿븐 분신이 본의 아니게(?) 낚이게 되었으니 이것도 우스운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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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yjoon 2011/08/18 18:58 # 답글

    오늘도 향연은 계속됩니다. (응?)
  • 야스페르츠 2011/08/18 19:54 #

    ㄷㄷㄷ
  • Real 2011/08/18 19:05 # 답글

    지들이 지어낸 망상과 미디어 매체의 영화속 내용이 역사 상식이라고 드립질하는게 상식이라고 말하는게 당연하겠지요.
  • 야스페르츠 2011/08/18 19:54 #

    아무리 생각해도 황산벌쌀배달설(?)은 영화 황산벌이 진원지인 듯....
  • 누군가의친구 2011/08/18 19:11 # 답글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왜곡은 왜곡을 낳는 법이죠.ㅋ
  • 궁상각치우 2011/08/18 19:15 #

    오리지널리티의 부재가 유령을 만든다.. 이건 뭐 공각기동대네요 ㅠㅠ
  • 야스페르츠 2011/08/18 19:54 #

    역사추적이야 뻔한 방송이니...
  • 진성당거사 2011/08/18 19:11 # 답글

    이제는 난독증에 이어 난청과 난시까지 겸비하셨군요.
  • 야스페르츠 2011/08/18 19:55 #

    아래의 변명을 보니 일단 난청난시는 아니로군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래봤자 역사추적 같은 걸 소스로 가져오는 것에서 이미 에러지만...
  • miracleman 2011/08/18 20:15 #

    그러면 그 프로그램에 자문을 한 아래 전문가분들도 죄다 에러?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자문 역사전문가

    조우쩐화 고고문물연구가
    시린후이 낙양 2이공대학 문물연구원
    이도학 교수
    섬서사범대학 역사학과 배근홍 교수
    김영관 청계천문화관 관장/백제사 전공
    나종남 교수 육사군사사학과
    이문기 교수 경북대 역사교육학과
    노중국 교수 계명대 사학과
    서정석 교수 공주대 문화재 보존학과
    바이근싱 교수 섬서사범대 사학과
  • nighthammer 2011/08/18 20:45 #

    miracleman//저 방송이 그 자문 교수진들의 직접적인 견해가 들어갔는지 각각의 교수님들 주장 논문으로 다 따와서 검증은 해 봤음?

    지식채널 e만 하더라도 대동법 관련해서 방송할때 이정철 교수님을 자문위원으로 삼았다면서 멋대로 아젠다세팅하고 입맛에 맞는 코멘트만 따와서 정반대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 리얼스나이퍼 2011/08/18 19:14 # 답글

    왜곡이라니 미치겠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33439

    나는 이책의 p143~145의 "의자왕의 탁월한 전략" 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 야스페르츠 2011/08/18 19:56 #

    책이 그러하다면, 1번 항목에 대해서는 귀하의 왜곡은 아니라 할 수 있겠군요. 그래봤자 1번 항목은 방송과 책이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알아두시길. 나머지 두 항목은 방송 자체가 왜곡하고 있는 것이니 말할 것도 없고.
  • miracleman 2011/08/18 19:57 #

    이젠 하다하다 안한 왜곡까지 했다고 뒤집어씌우는군요.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 리얼스나이퍼 2011/08/18 20:02 #

    방송이고 책이고 간에 해당 책의 저자가 KBS 역사추적팀에 윤영수라는 해당 프로그램 방송작가 분인데 무슨 차이?
    다 그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한 내용에서 책이 나온 것인데.
    그래서 나도 포스팅에 굳이 책이라하지않고 역사추적 프로그램이라고 한 것이고.
  • ㅁㄱㅍ 2011/08/18 21:06 # 삭제

    이야 오랫만에 로그인 분신술 보네.
  • 객관적진리추구 2011/08/19 00:16 #

    스나이퍼야~제발 여기서 글 쓰지말고 네 아지트에 가서나 글 좀 쓰렴...
    맨날 손가락 빨고있을 네 모습이 상상간다.ㅋㅋㅋㅋㅋㅋ
    너 이희진 강사 백제사 미로찾기 책은 읽어보긴 봤니?ㅋㅋㅋ
  • 리얼스나이퍼 2011/08/18 19:15 # 답글

    그리고 물론 해당 프로그램을 비하할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ㅋ
  • 푸푸푸 2011/08/18 19:31 # 삭제 답글

    너 그런데 구, 신당서 기록뿐만 아니고 예식진 묘비명이 중국 낙양에 발견돼서 판독한 결과 예식진이가 의자왕을 사로잡아 바친 것이 명백히 밝혀졌는데 이것도 왜곡이고 근거가 희박하다고 할테냐?
  • 야스페르츠 2011/08/18 19:57 #

    내가 언제 그런 말 했음? 왜 하지도 않은 말 가지고 지레짐작하고 난리여?
  • 2011/08/18 20:19 # 삭제 답글

    사비성의 군량미가 불탔다는 것은 아마 부여 부소산성에서 발굴된 탄화미에 근거한 추측이 아닐까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8/20 13:41 #

    허허... 불탄 건물지도 아니고 탄화미로 그런 추측을 했다면 좀 애매하군요.
  • 크핫군 2011/08/18 22:40 # 답글

    오오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자들이 몰려온다!!!
  • 야스페르츠 2011/08/20 13:42 #

    갈퀴로 쓸어 담았습니다. 근데 하나 밖에 없네?
  • 객관적진리추구 2011/08/19 00:13 # 답글

    그러게요 또 리얼스나가 좀비들을 뿌렸다 봅니다.ㅋㅋㅋ
    마광팔은 뭐하느라 안나타느냐~(에헴...먼산)ㅋㅋ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8/20 13:42 #

    허허
  • 파랑나리 2011/08/21 01:37 # 답글

    환드모트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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