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09 11:19

《삼국사기》 사론에 대한 고찰(부제 : 김부식은 신라에만 데레데레?) 역사




첨해이사금 원년 가을 7, 왕이 시조묘를 참배하였다. 그 아버지 골정을 세신갈문왕으로 봉했다.

사론: 한 나라 선제가 즉위했을 때, 유사가 다음과 같이 상주하였다. "대를 잇는 자는, 자기에게 대를 물려준 그 사람의 아들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친부모를 낮추어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이는 황제의 조상을 높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황제께서는 생부를 친()이라 부르시고, 시호는 도()라 하며, 생모는 도후(悼后)라고 불러서, 제후나 왕의 지위와 같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이것이 경전의 뜻과 합치된다. 따라서 이것이 만세의 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후한의 광무제와 송나라 영종은 이를 본받아 시행하였다. 신라에서는 왕의 친족 신분으로서 왕통을 이은 임금이 자신의 생부를 왕으로 추봉하지 않은 일이 없었으며, 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장인까지 왕으로 봉한 일도 있었다. 이는 예에 맞지 않으므로 절대로 법도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元年, 秋七月, 謁始祖廟. 封父骨正世神葛文王. 論曰: 宣帝卽位, 有司奏: "爲人後者爲之子也. 故降其父母不得祭, 尊祖之義也. 是以帝所生父稱親, 諡曰悼, 母曰悼后, 比諸侯王." 此合經義, 爲萬世法. 後漢光武帝英宗, 法而行之. 新羅自王親入繼大統之君, 無不封崇其父稱王, 非特如此而已, 封其外舅者亦有之. , 非禮, 固不可以爲法也.


 

내물[나밀이라고도 한다.] 이사금이 왕위에 올랐다. 그의 성은 김씨이고, 구도 갈문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말구 각간이며,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이다. 왕비는 김씨이니 미추왕의 딸이다. 흘해가 죽고 아들이 없었므로 내물이 그 뒤를 이었다.[말구는 미추 이사금의 동생이다.]

사론: 부인을 얻을 때, 같은 성의 여인을 얻지 않는 것은 동성과 타성의 구별을 철저히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이유로 진 사패와 정 자산은, 노공이 오나라 왕실에서 아내를 얻고, 진후가 성이 같은 네 명의 첩을 가진 것을 몹시 비방하였다. 신라의 경우에는 같은 성씨끼리 혼인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았고, 사촌이나, 고종, 이종 누이들까지도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과 우리 나라의 풍속이 각각 다르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예법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오랑캐들이 어미나 자식을 간음하는 것은 또한 이보다도 더욱 심한 경우이다.

奈勿[一云那密]尼師今立, , 仇道葛文王之孫也. , 末仇角于; , 休禮夫人. , 味鄒王女. 訖解, 無子, 奈勿繼之.[末仇, 末鄒尼師柰弟也.]
論曰
: 取妻不取同姓, 以厚別也. 是故, 魯公之取於, 晋侯之有四姬, 陳司敗鄭子産深譏之. 新羅, 則不止取同姓而已, 兄弟子姑姨從姉妹, 皆聘爲妻. 雖外國各異俗, 責之以中國之禮, 則大悖矣. 匈奴之烝母報子, 則又甚於此矣.


선덕여왕 16년 봄 정월, 비담과 염종 등이 여왕이 정치를 잘못한다는 구실로 군사를 동원하여 반역을 도모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8,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선덕이라 하고 낭산에 장사지냈다.[당서에는 '정관 21년에 죽었다'고 하였고, 통감에는 '25년에 죽었다'고 하였는데, 이 책에서 고증한다면 통감이 잘못이다.]

저자의 견해 :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옛날에 여와씨가 있었으나, 그녀는 천자가 아니라 복희를 도와 9주를 다스렸을 뿐이며, 여치와 무조 같은 경우에는 어리고 약한 임금을 만났기에 조정에 나와 정사를 보았으므로, 역사서에서는 공공연히 임금이라 일컫지 못하고 다만 고황후 여씨, 측천황후 무씨로만 기록하고 있다. 하늘의 원리로 말한다면, ()은 강하고 음()은 부드러운 것이며, 사람의 원리로 말한다면,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한 것이다. 어찌 늙은 할미가 규방을 나와 국가의 정사를 처리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을 것인가? 신라는 여자를 추대하여 왕위에 앉게 하였다. 이는 실로 어지러운 세상에나 있을 일이었으니,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서경에는 "암탉이 새벽에 운다"고 하였고, 주역에는 "암퇘지가 껑충거린다"고 하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十六年, 春正月, 毗曇廉宗等, 謂女主不能善理, 因謀叛擧兵, 不克. 八日, 王薨. 諡曰善德, 葬于狼山.[唐書: "貞觀二十一年卒." 通鑑: "二十五年卒." 以本史考之, 通鑑, 誤也.]

論曰: 臣聞之, 古有女, 非正是天子, 佐伏犧理九州耳, 至若呂雉, 値幼弱之主, 臨朝稱制, 史書不得公然稱王, 但書高皇后呂氏則天皇后武氏者. 以天言之, 則陽剛而陰柔, 以人言之, 則男尊而女卑. 豈可許모구出閨房, 斷國家之政事乎? 新羅扶起女子, 處之王位, 誠亂世之事. 國之不亡, 幸也. : "牝鷄之晨." : "羸豕孚." 其可不爲之戒哉?




진덕여왕 4년조 사론: 하, , 주 삼대에 정삭을 고치고, 후대에 와서 연호를 사용한 것은, 모두가 대통일을 이룬 왕조가 백성들의 이목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이유로 동일한 시기에 함께 일어나서 천하를 두고 양립하고 있는 경우이거나, 또는 간웅들이 기회를 이용하여 천하를 노리는 경우가 아닌 이상, 주변의 소국으로서 천자의 나라에 신하의 처지로 속한 나라라면 절대로 사사로이 연호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줄곧 중국을 섬겨 사신들이 탄 배와 공물 꾸러미가 길에 연이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흥왕이 우리만의 연호를 사용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뒤에도 이러한 잘못을 답습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며, 태종의 견책을 듣고도 고치지 않다가 이 때에 이르러 당의 연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이 비록 마지 못하여 한 일이기는 하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잘못하기는 했으나 이를 고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論曰: 三代更正朔, 後代稱年號, 皆所以大一統, 新百姓之視聽者也. 是故苟非乘時竝起, 兩立而爭天下, 與夫姦雄, 乘間而作, 覬覦神器, 則偏方小國, 臣屬天子之邦者, 固不可以私名年. 新羅以一意事中國, 使航貢相望於道, 法興自稱年號, 惑矣. 厥後承愆襲繆, 多歷年, 所聞太宗之, 猶且因循至是, 然後奉行. 雖出於不得已, 而柳可謂過而能改者矣.



경명왕 5년조 사론 : 옛날 명당에 앉아서 나라를 이어받는 옥새를 쥐고, 아홉개의 솥을 진열하여 놓는 것, 그것이 마치 제왕들의 대단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한퇴지가 평론하기를 "하늘과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고, 태평 성세의 기초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세 가지 기물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세 가지 기물을 소중하다고 한 것은, 과장된 자의 말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신라의 소위 세 가지 보물은 또한 사람이 만든 사치한 물건일 뿐이니, 나라를 통치함에 있어서 이들이 어찌 꼭 필요한 것이겠는가? 맹자에는 "제후의 보배가 세 가지이니, 곧 토지백성정치"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초서에는 "초 나라에는 보물이라고 여길만한 것이 없고, 오직 선을 보배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선은, 국내에서 실천하면 족히 한 나라를 선하게 할 것이며, 국외로 실천하면, 족히 천하에 은혜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니, 이밖에 또 무엇을 보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태조는 신라 사람들의 전설을 듣고 물었을 뿐이며, 그것을 숭상할만한 것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論曰: "古者坐明堂, 執傳國璽, 列九鼎, 其若帝王之盛事者也. 而韓公論之曰: '歸天人之心, 興太平之基, 決非三器之所能也.' 竪三器而爲重者, 其誇者之詞耶? 此新羅所謂三寶, 亦出於人爲之侈而已, 爲國家, 何須此耶? 孟子: '諸侯之寶三, 土地人民政事.' 楚書: '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 若此者, 行之於內. 足以善一國, 推之於外, 足以澤四海, 又何外物之足云哉! 太祖聞羅人之說而問之耳, 非以爲可尙者也. 二月, 靺鞨別部達姑衆, 來寇北邊. , 太祖將堅權鎭朔州, 率騎擊大破之, 匹馬不還. 王喜, 遣使移書, 謝於太祖. 夏四月, 京都大風拔樹. 秋八月, , .




〈신라본기〉의 총 10개 사론 중에 데레데레한 사론은 거의 없다. 당연한 일이다. 사론이라는 것 자체가 포폄(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골수 유학자인 김부식이 주도하고 대간(臺諫) 출신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만들어진 《삼국사기》는 동양 역사학의 전형적인 구성과 역할을 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의 출신이 바로 대간이다. 경연과 상소를 통해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일인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키배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삼국사기》의 사론 31편 가운데 포폄을 목적으로 하는 사론이 거의 20편에 이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포폄형 사론은 칭찬이 거의 없고 비판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신라본기〉만 해도 사론 10편 중 칭찬이라 할만한 사론은 솔직히 하나도 없다.


남해차차웅 원년 : 신라의 즉위년칭원법 사용에 대한 변호

첨해이사금 원년 : 신라가 갈문왕을 봉한 것에 대한 비판

내물이사금 원년 : 신라 왕실의 동성결혼에 대한 비판

지증왕 원년 : 신라의 전통 왕호를 기록한 이유와 가치를 평함

선덕여왕 16년 : 신라에 여왕이 있었음을 비판

진덕여왕 4년 : 신라가 독자적인 연호를 쓴 것을 비판하고 이제서야 중국 연호를 받아들인 사실을 칭찬

원성왕 5년 : 학문이 떨어지는 자를 등용하지 말라고 간언한 집사사 모초를 칭찬 (사실상 돌려서 원성왕을 비판한 것임)

신무왕 원년 : 신라 하대의 혼란상을 가감없이 기록하였음을 밝힘

경명왕 5년 : 신라의 3보를 비판

경순왕 9년 : 신라의 역사와 멸망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


붉게 표시한 내용은 모두 신라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 사론들이다. 표시하지 않은 사론 가운데 3편은 사실상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보충설명 및 기록 이유를 밝히는 것으로 포폄의 의도가 거의 없으며, 마지막의 평가 역시 칭찬하는 내용 같지만 실제로는 나라가 혼란하여 어차피 멸망할 거였는데 태조한테 항복했으니 조낸 잘한 것임 이라는 내용이다.




순수하게 칭찬만 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고구려와 백제의 사론은 어떨까?


<고구려>
유리왕 28년 : 해명의 자살 사건을 비판

대무신왕 15년 : 호동의 자살 사건을 비판

차대왕 3년 : 태조왕이 동생에게 왕위를 넘긴 것을 비판

고국천왕 13년 : 을파소를 등용한 일을 칭찬

보장왕 4년 : 당태종을 물리친 안시성주를 칭찬

보장왕 8년 : 당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했다가 패퇴한 사실에 대해서 비판(당태종을 비판한 내용임)

보장왕 27년 : 고구려의 역사와 멸망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


<백제>
개루왕 28년 : 개루왕이 신라의 도망자 길선을 받아들여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을 비판

개로왕 21년 : 백제를 배반한 걸루와 만년을 비판

삼근왕 2년 : 선왕을 살해한 해구를 그대로 중용하다가 반란을 일으킨 뒤에야 처단한 것을 비판

동성왕 22년 : 동성왕이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비판

의자왕 20년 : 백제의 역사와 멸망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



고구려의 사론에는 순수하게 칭찬하는 내용이 무려 2개나 있다!!! ㄷㄷㄷ 게다가 당태종의 죽음을 기록하며 그가 고구려를 공격했다가 패퇴한 일에 대해 상세하게 논한 보장왕 8년의 기록은 간접적으로 고구려를 칭찬하고 있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제의 사론은 뭐 전부 비난하는 내용이니 뭐.....


이들 사론은 〈본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삼국사기》에는 이것 말고도 <열전>에 8편의 사론이 더 있다.


을지문덕 열전 :을지문덕의 전공을 칭찬

장보고 열전 : 장보고에 대한 중국인 두목(杜牧)과 송기(宋祈)의 평가를 옮김(장보고를 칭찬하는 내용)

석우로 열전 : 말실수로 왜와 전쟁을 일으킨 석우로를 비판(그러나 뒤에서 말실수만 빼면 뛰어난 사람이라 평함)

김흠운 열전 : 화랑도와 김흠운에 대한 칭찬

성각 열전 : 넓적다리살을 베어 부모에게 먹인 성각의 효성을 칭찬

견훤 열전 : 견훤과 궁예의 활동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평가 (대체로 비판적인 내용)


〈열전〉의 사론은 그 특성상 대체로 칭찬하는 내용이 다수일 수밖에 없다. 열전에 실린 인물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뛰어났기 때문에 선정된 것이 대부분이고, 그러니 당연히 그 인물의 중요성을 칭찬하는 사론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유일한 예외는 견훤과 궁예에 대한 비판인데, 김부식은〈열전〉을 구성하면서 마지막 10권을 반역열전에 준하게 구성하고 있다.궁예와 견훤의 열전이미 말 다했지 뭐.. 반역열전에서 칭찬하는 사론이 나오면 오히려 놀라울 것이다.



이상으로 《삼국사기》의 사론에 대해서 가볍게 살펴보았다.


김부식은 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다. 게다가 김부식 역시 대간 출신의, 비판 의식이 충만한 인재였다. 《삼국사기》는 이런 김부식의 비판 의식이 충만한 역사서이다. 김부식은 사론을 통해 삼국의 역사에 대해 준엄한 비판의 칼을 휘둘렀으며, 이를 통해 후세의 사람들이 역사적 평가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고 올바른 삶을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현전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일뿐 아니라 유학자 김부식의 비판 의식이 담긴 역사 평설이기도 할 것이다.


핑백

  • 누군가의친구의 블로그 : 무책임하군. 2011-08-09 14:24:37 #

    ... 서 사료가 많을 수밖에요.나머지 문단에 대한 비난조는 야스페르츠님 포스트 참고 하시면 되겠습니다.(《삼국사기》 사론에 대한 고찰(부제 : 김부식은 신라에만 데레데레?)) 그걸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신라 위주로 썼다고 왜곡을 하고 있지요.PS: ... more

덧글

  • 소하 2011/08/09 11:27 # 답글

    궁예와 견훤의 사론은 비판의 강도가 너무 높아서 놀랐습니다. "흉악한 도적" 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8/09 21:09 #

    김부식 입장에서는 당연한 비판이었겠지요. ㅎㅎ
  • hyjoon 2011/08/09 11:53 # 답글

    경순왕의 후손이 고려 왕이 된 것에 대해 '그거 다 우리 태조에게 곱게 나라를 들어 바친 것 때문임 ㄳ'란 사론을 보고 피식했던 기억이.....ㅋㅋ
  • 야스페르츠 2011/08/09 21:10 #

    ㅋㅋ게다가 그 사론 자체도 틀린 거라는 게 골때리죠.
  • 누군가의친구 2011/08/09 11:56 # 답글

    아마 당태종이 패퇴한것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지 말입니다.
    "동방을 폐허로 만들어 즐기려다 죽어서야 그만두었다"

    그외에도 이야기 하자면 신채호는 사대주의라고 깠지만 조선왕조때는 덜 사대적이라고 까였지 말입니다.(...)...

    PS: 연호 사용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 연호를 기록한 편찬자들은 다 츤데레임.

  • 야스페르츠 2011/08/09 21:10 #

    그게 삼국사기의 대단한 점이지요.
  • 아르니엘 2011/08/09 13:03 # 답글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리고 이건 덤이지만, '무려'라는건 많은 숫자의 앞에 붙이는 말이라서 그 외의 용법에는 문법상 맞지 않는게 됩니다.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우리말인데, 알아두시면 좋겠네요. >.<
  • 야스페르츠 2011/08/09 21:13 #

    오 그렇군요. 이거 새로 하나 배웠습니다. ㅎㅎ
  • 차듀리 2011/08/09 13:15 # 삭제 답글

    간때문이야~간때문이야가 아니고
    그건 네생각이야~네생각이야

    덧: 삭제하지마~삭제하지마
  • 객관적진리추구 2011/08/09 16:32 #

    광의 극치이군...
  • 야스페르츠 2011/08/09 21:14 #

    그럼 내 생각이지 댁 생각이겠수? 댁은 이런 생각도 못할 거 같은데 말이요. 쯔쯧
  • 보헤미오 2011/08/12 18:36 #

    '삼국사기'가 사대주의 사서라고 생각해오다가 아니라는 증거가 나오자 초조해진 유사역사학자 1人의 모습을 여기서 보다.
  • 진성당거사 2011/08/09 13:17 # 답글

    저 선덕여왕 16년 조 사론은 희대의 여성혐오주의 명문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뭐, 스스로를 유교 합리주의자로 세련된 지식인이라 자처한 김부식에게 고대국가의 다소 '난삽한'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 충분히 알만 하지요.
  • 진성당거사 2011/08/09 13:19 # 답글

    아 그런데, 저 내물마립간 사론은 직접 번역하신 건가요? '오랑캐' 보다는 원문대로 '흉노'가 낫지 않을까 합니다만.
  • 야스페르츠 2011/08/09 21:17 #

    뭐...전근대에 여성에 대한 시각이란게 그렇죠.
    그리고 번역은 그냥 가지고 있는 책에서 옮긴거라서요. 말씀하신 걸 보고 깜놀했습니다.ㅋㅋ
  • 초록불 2011/08/09 13:32 # 답글

    김부식은 조선 시대에도 까였는데, 일제강점기에 또 까이고, 오늘날에도 수없이 까이니... 이건 참...
  • 야스페르츠 2011/08/09 21:17 #

    김부식빠로써 용서할 수 없습니다!!ㅎㅎ
  • 행인1 2011/08/09 13:32 # 답글

    안 그래도 독해력이 떨어지는 '그분'께 이런 세세한 것까지 살피라 하시니 너무 잔인하십니다.(응?)
  • 야스페르츠 2011/08/09 21:18 #

    에잉 이번에는 가능한 그분과 별개로 독립적인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는데 ㅡㅡ;;역시 티가 나죠? ㅠㅠ
  • 굔군 2011/08/09 16:16 # 답글

    솔직히 근친혼에 대한 김부식의 비판은 읽으면서도 잘 이해가 안 가더군요.

    아니? 김부식 당대에도 아직 근친혼은 하고 있었을 텐데?!
    그럼 김부식은 고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건가????
  • 궁상각치우 2011/08/09 16:20 #

    유학자니 안좋게보는건 어찌보면 당연하죠. 그리고 사가는 꼭 당대를 긍정적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과거를 탐구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임을 생각해보면 말이죠.
  • 굔군 2011/08/09 16:34 #

    예, 그건 맞습니다만...

    김부식의 저 사론을 보고 있자니 왠지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말이 생각나서 말이죠.
    그리고 달리 해석하면 당시 고려 왕실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야스페르츠 2011/08/09 21:20 #

    김부식 때인 고려 중기면 왕실의 근친혼도거의 사라졌던 덧으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부식 같은 꼬장꼬장한 유학자면 설사 왕실의 선조를 비난하는 뉘앙스가 있더라도 개의치 않았을 것 같아요. ㅎㅎ
  • 굔군 2011/08/12 21:52 #

    뭐, 당시 김부식이 모시던 인종은 근친혼을 하지 않았지만(외척인 이씨 세력이 강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 원 간섭기까지도 고려 왕실의 종실간 혼인 풍습은 유지되었으니까요.

    게다가 사실 조선시대에도 신라나 고려에 비해 동성간의 혼인이 없었다 뿐이지, 그런 식의 유사근친혼 관계는 많이 있었죠.

    예를 들면, 연산군과 폐비 신씨가 사실은 7촌간이라든가, 고종과 명성황후도 알고 보면 친척이라든가, 순종과 순명효황후도 6촌간이라든가...;;
  • historyjs 2011/08/09 18:52 # 답글

    김부식 등 편찬자들은 연개소문도 당태종을 물리친 비범한 놈이었으나 결국 지 성격 때문에 결국 역적이 되었다고 까고 있죠. 견훤과 궁예와 마찬가지로 역신 부분에 포함되어 있죠. 열전 제9,10이 역신 부분.

    보다 보면 연개소문과 묘청은 오버랩됩니다. 연개소문 도교사상 수입, 반란, 왕 시해, 흥성하던 대국 당에 계속 까불다가 고구려를 보내버리는... 묘청도 소위 선 계열에, 흥성하던 중의 금 정벌 주장, 결국 반란... 뭐 이런 스토리....

    김유신이나 7세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만 하지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도 맞닿아있을 수 있으니까요.
  • historyjs 2011/08/09 19:07 # 답글

    신라 중심의 서술로 볼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하지만 백제를 까기 위해, 고구려를 까기 위해. 중국을 빨기 위해...와 같은 단편적인 생각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을지문덕에 대한 논평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7세기 국제 정세와 편찬 당시의 국제 정세도 살펴 볼 필요가 있겠지요.
  • 야스페르츠 2011/08/09 21:56 #

    저도 김부식 특유의 신라중심적 시각에 대해서 졸업논문을 쓴 적이 있습죠.... 그 신라중심이라는 것의 시각을 달리 본 것입니다.
  • 진성당거사 2011/08/10 09:35 # 답글

    근데 문제는 조선시대에 가면 김부식을 무슨 얼치기라도 되는 양 씹는 경우가 영 많더군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성리학에 도가 튼 조선시대 유학자 자신들에 비할 때 그의 학문 수준이랄까 하는게 한없이 모자라보였기 때문일까요?
  • 야스페르츠 2011/08/11 14:17 #

    글쎄요... 조선시대에 왜 그랬는지는 저도 잘... ㅎㅎ
  • 크핫군 2011/08/11 00:43 # 답글

    김부식은 까야제맛(응?)
  • 야스페르츠 2011/08/11 14:17 #

    김부식 까면 사살임. ㄲㄲ
  • Jianke 2011/08/19 17:46 # 삭제 답글

    최고(最古)의 역사서가 아니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혹은 가장 원본에 가깝게 인쇄되어 보존되는 역사책 중 가자 오래된 이라고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김부식 자신이 책을 쓰게된 동기인 서문에서부터 전체 내용에 고기(古記), 신라고사(新羅古史), 구삼국사(舊三國史), 삼한고기(三韓古記) 등의 고서를 인용한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현존하는"을 넣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절대 딴지는 아닙니다. 청소년들이 보면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주제넘지만 써본 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8/20 13:42 #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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