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7 19:15

담백하게 풀어보는 낙랑군의 역사 (5) 역사

6. 고구려와 낙랑국

기원전 75년, 현도군은 예맥의 발호로 인해 세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동북방의 혼하 방면으로 이치되었다. 현도군이 옮겨가고 난 뒤 남은 지역은 압록강 중하류 지역과 험준한 산악지대였는데, 이들 지역에 걸쳐 예맥 계통의 여러 소국들이 발호하였다. 이 소국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구려이다.

예맥의 일파였던 부여는 고조선 이전부터 송화강 일대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의 왕실도 부여 계통에서 시작되었으며, 공식적인 기록 상으로는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었다고 한다. 건국 초기의 고구려는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중국과 치고받지는 않았고 부여 및 주변 소국들을 흡수해 가면서 성장하였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초기 고구려가 한의 이민족 통제 체제 속에 편입되어 북과 피리 등을 하사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는 점차 성장하면서 한의 통제 정책에서 이반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고구려 측에서 현도군에 출두하여 조복(朝服)과 의책(衣幘)을 받아가는 강한 예속 관계였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출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점을 감히 추측해 보건대 유리왕 시기가 아닐까 한다. 유리왕 말년인 서기 12년에 왕망의 병력 징발 사건이 벌어졌는데, 결과적으로 이 징발 자체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왕망의 병력 징발의 대상이 현도군 고구려현이라 볼 수도 있겠으나, 전후 맥락이나 《삼국사기》의 독자기록으로 볼 때 이 징발의 대상은 고구려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왕망은 즉위 후 관직명을 개혁(?)하면서 주변 이민족의 수장에 대하여 봉작을 한등급씩 강등하여 인수를 보냈으니, 고구려왕의 봉작 역시 고구려후로 강등되었을 것이다. 고구려후라는 존재는 이 점으로 명쾌하게 설명된다.

왕망의 징발 자체가 과연 예속된 이민족에 대한 일상적인 동원이었는지, 아니면 왕망이 꼬장을 부린 것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당시 고구려의 예속 상태, 혹은 예속 상태에 대한 왕망의 인식은 병력 징발 대상이라 본 것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왕망은 고구려병을 강제로 징발하여 흉노 공격에 동원-최소한으로 추산해도 요서군 영내까지 고구려군이 이동함-하였고, 이에 반발한 고구려병은 탈영(?)하여 국경을 넘었다. 이를 추격하던 요서군 대윤 전담이 반격을 받아 사망하였고, 이에 분노한 왕망은 고구려를 공격하게 하였다. 원정군(?) 장수 엄우는 직접 공격하지는 않고 고구려후 추-《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장수 연비로 기록됨-를 유인하여 살해하였다.

이상의 사건 이후 고구려는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었으며, 현도군 고구려현을 직접 공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구려사에는 기묘한 존재가 등장한다.

※ 비극의 주인공 칼잡이낙랑공주


낙랑국. 이 나라의 등장은 그 시기부터가 미묘하다. 《삼국사기》에 낙랑국이 처음 언급되는 시기는 서기 32년, 바로 낙랑군이 재수복된 직후이다. 《삼국사기》 대무신왕 무렵 낙랑군 및 낙랑국 관계 기록은 연대가 엉망인데, 낙랑국은 둘째 치고라도 37년의 낙랑 점령 기사(王襲樂浪滅之)나 44년 광무제의 재정복 기사는 좀 무리가 있다. 고구려가 낙랑을 점령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만 등장하는데다 광무제의 재정복은 실제 30년의 일이다. 여기에 32년의 낙랑국 정복 기사는 카오스를 만들기에 충분... ㅡㅡ;;

최대한 에누리해서 기록을 살펴본다면, 44년의 재정복 기사는 해석이 얼추 가능하다. "재정복"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살수 이남의 한나라 소속"에 주목하게 되면, 재정복 자체는 이전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4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구려와 후한 양국의 국경 분쟁(?)이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해석은 좀 억지스러운 감이 있으니 판단은 독자제현들께서 내리시길...

32년 낙랑국 정복 기사도 에누리해서 살펴보면 37년의 기록과 연관해서 볼 수 있다. 32년에 전쟁을 시작해서 37년에 최종적인 잔당 처리까지 마치고 정복을 완료했다고 볼 여지는 있다. 이 역시 독자제현들의 판단에 맡긴다.

이렇게 대충 정리해보면 결국 핵심은 32년에 정복된 낙랑국이 무엇이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낙랑국에 대한 견해들도 가히 카오스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대체로 낙랑군과 낙랑국을 별개의 존재로 보고, 어느 시점에선가 낙랑군 소속의 소국 중 하나(혹은 소국 연합체)가 낙랑국을 자칭한 것으로 보는 것으로 중론이 모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위치 및 성립에는 영동 7현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왕망의 삽질 덕분에 중국의 이민족 정책 역시 파탄을 맞았다. 위에 언급된 고구려병의 징발만 보아도, 이건 왕망의 개꼬장이라 볼 여지가 충분하다. 흉노를 치기 위해 동방의 우호 세력과 관계를 파탄내다니.... 여하튼 그 결과로 동방 지역에서는 고구려로 대표되는 이민족의 침탈이 가속화되었다. 이미 수십년 전에 현도군을 퇴축시킨 전력이 있는 만큼, 대놓고 적대관계가 된 이상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직접적으로 낙랑군을 공격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청천강(패수) 상류 일대로 추측되는 탄열현이 후한 시기에는 소멸되었고 패수현이 왕망 시기에 낙선정(樂鮮亭)으로 개칭되었으며 운장(雲鄣)이 설치되는 등-정과 장은 방어진지를 가리킨다-의 상황으로 볼 때 고구려의 침탈이 격화된 점을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바로 영동 7현의 폐지이다.

서기 30년, 낙랑군 재정복 직후 낙랑군에서는 크게 2가지 일이 벌어졌다. 하나는 반란을 주도한 낙랑군 토착 세력에 대한 가혹한 숙청,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부도위 폐지 및 영동 7현 폐지이다. 낙랑군에 설치되었던 동부도위와 남부도위가 폐지된 것은 당시 전국적으로 부도위 폐지가 있었던 만큼 낙랑군만의 특별한 조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영동 7현의 폐지는 경우가 다르다.

현재의 함흥평야 일대로 비정되는 영동 7현은 이미 기원전 45년에도 이민족의 침탈 혹은 이탈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 본토가 혼란에 빠진 시기부터는 분명 동부도위의 유지 자체가 힘겨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혹은, 이미 영동 7현과 동부도위 자체가 무너졌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본토가 혼란에 빠지고 난 뒤에는 낙랑군의 상황이 정상적으로 중국 본토에 보고되지 않았을 것이며, 30년의 영동 7현 포기는 이미 무너져 버린 상황을 사후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낙랑이라는 이름을 국명으로 사용할 만한 세력이라면 적어도 낙랑군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편이 상식적이다. 그리고 마침 비슷한 시기에 낙랑군의 속현이었던 곳이 분리독립(?)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모아 보면 낙랑국이 영동 7현 지역에서 성립된 소국 중 하나라고 유추하는 것은 그다지 무리한 추측은 아닐 것 같다.

낙랑이 함흥평야 일대의 소국이라면 고구려가 이를 정복한 것은 동해안으로의 진출과 더불어 낙랑군을 동쪽에서 압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함흥평야, 즉 옥저 지역을 모두 평정한 것은 조금 더 뒤인 태조왕 4년(서기 56)의 일로 이 시기가 되면 고구려의 국력은 크게 일취월장하여 요동 및 현도군과 맞서 볼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낙랑군 역시 이러한 압박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영동 7현의 상실, 그리고 고구려의 성장으로 낙랑군은 기나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덧글

  • 들꽃향기 2011/06/27 19:25 # 답글

    고구려의 장군 연비를 살해하고는 "고구려왕 추를 죽였다."한 것을 보고서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출장보고서는 바로 저렇게 쓰는거구나."


    (.....) 헛소리해서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탄열현과 사례와 패수현의 정으로의 개칭은 언급하신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겠군요. 잘 읽고 갑니다. ^^
  • hyjoon 2011/06/27 19:36 #

    출장보고서 쓰고 난 뒤의 뒤끝은 저도 모릅니다. (뻔뻔)
  • 야스페르츠 2011/06/27 19:47 #

    아주 모범적인 출장보고서지요... 덕분에 후손들은 헷갈리겠지만. ㄷㄷㄷ
  • 대공 2011/06/27 21:04 #

    오호...
  • 라디오 2011/06/28 09:51 #

    고구려후 추 문제는 중국측 의견이 옳다고 봅니다.

    '원풍유고의 고려세차'에는 추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동북공정 고구려사' 책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죠.

    고구려후 추가 집권한 시기는 대략 AD6년쯤으로 추측합니다.
  • dddd 2011/06/27 19:33 # 삭제 답글

    낙랑국이 낙랑군에서 독립한 나라라고?
    나라가 군으로 이뤄졌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군이 나라로 이뤄줬다는 소리는 정말 기상천외한 발상이군.
    으하하하하하
    이거 역사를 가지고 창작을 해도 정말 그끝이 없구만.
    어느분들 말씀대로 직장도 없는데 이참에 소설가로 전업해보시게나?
    특히 공상과학소설쪽으로 말야. 자네 아주 재질이 있어보이네만
  • 야스페르츠 2011/06/27 19:48 #

    뭔소리래? 당시 소국들이 얼마만큼인지 알고 그런 헛소리 하는 거냐?
  • ㅋㅋㅋ 2011/06/27 20:02 # 삭제

    야스페르츠/ 야, dddd님 말씀처럼 네말을 인정할 수도 없지만 설사 네말대로라도 그래 대무신왕때의 고구려가 고작 낙랑군에서 독립한 소국따위인 낙랑국을 정복을 못해서 북을 찢게하고 그런 이간책을 쓰냐?
    도대체 그게 말이 되냐.
    그건 말이지 당시 고구려도 함부로 무력으로 낙랑국을 정복 못할 만큼 낙랑국이 강성했다는 얘기야.
  • 대공 2011/06/27 21:05 #

    놀라운 과거의 오파츠 자명고의 작동원리는 어떻게 될까요?
  • ㅋㅋㅋ 2011/06/27 21:13 # 삭제

    대공/ 물론 나도 자명고 설화 자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지만 하여간 그런 설화가 있다는 것은 고구려가 교활한 이간계를 써서야 비로소 낙랑국을 정복하는 것이 가능했을만큼 낙랑국의 세력이 강했다는 얘기입니다.
    야스페르츠 말대로 낙랑군에서 독립한 일개 소국따위에 불과했다면 그냥 정복하면 그만이지 무슨 이간계를 쓴다는 말입니까?
  • 야스페르츠 2011/06/27 23:03 #

    왜 인구 수천만의 한나라는 인구 수십만에 불과한 고조선을 정벌하려고 섭하를 요동에 임명하는 외교 사기를 쳐야 했을까? 그까이꺼 그냥 점령해 버리면 끝나는데 말야. 어째서 전성기의 신라는 코딱지만한 섬나라 우산국을 정벌하는데 목사자 조각으로 페이크를 써야 했을까? 그까이꺼 그냥 배 몇 척 보내서 밟아버리면 끝나는데 말야.

    그리고 무엇보다... 어째서 인구 수천만의 한나라는 고작 3만호에 불과한 고구려를 왜 밟아 버리지 않았을까? 쯧쯧
  • 크핫군 2011/06/27 19:56 # 답글

    헐, 쌍수 도적 돋네

    하지만 공대에선 껴주지 않겠지 ㅠㅠ
  • 야스페르츠 2011/06/27 23:04 #

    컼ㅋㅋ 우리 낙랑공주 무시하나연?
  • DreamersFleet 2011/06/27 20:36 # 답글

    헐. 낙랑군이 초거대군이 된 것과 현도군의 속현이 겨우 3개로 남게 된 것이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체로 이 시점 부터 현도군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으로 보는데, 너무나 고구려의 국력에 대해 얕잡아보는 것 같군요. (여기 이런 글을 달면 굔군이가 뭐라고 할지?) 더구나, 현도군의 퇴축자체도 고구려의 성장과 관계가 있지 않나요. 고구려와 한의 저런 관계를 인정할 수도 없지만 인정한다더라도 불리한 시기가 너무 오래 지속됩니다. 그려.
  • 야스페르츠 2011/06/27 23:10 #

    현도군 퇴축은 고구려 건국 이전이랑께. 아직 세워지지도 않은 고구려가 여기서 왜 나온당께? 참고로 고구려는 3세기에도 겨우 3만호. 서기 2년 현도군은 4만5천호. 게임 끝난 거 아님?

    참... 그리고 댁은 댓글 금지잖아. 유리왕 중기 이전에 고구려가 한나라하고 맞장 뜬 기록을 찾아오면 봐주지.
  • 굔군 2011/06/28 00:26 #

    이건 뭐, 대 놓고 도발하는 거냐? ㅡㅡ^

    그렇게 남한테 까이고 싶나 ㅉㅉㅉㅉ
  • ㅋㅋㅋ 2011/06/27 20:49 # 삭제 답글

    그리고 이 글에서 네가 "서기 32년에 낙랑군이 재수복된 직후"라고 하는 걸로 봐서 서기 30년 낙랑군 왕조 반란 진압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래 불과 2년사이에 같은 평양 지역에서 동시에 낙랑군과 낙랑국이 있어서 낙랑군에서는 반란이 일어나서 한나라가 군대를 보내서 진압되고 한 곳에서는 낙랑국이라는 나라가 고구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
    이건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낙랑군과 낙랑국이 서로 다른 지역에 있어야만 가능한 소리야.
    물론 낙랑국은 평양유역이고 낙랑군은 만주지역이지.
    이렇게 자세히 가르쳐줬으니까 앞으로는 이런 말도 안되는 ddd남 말씀처럼 허황된 소설은 쓰지마라.
    스스로 창피하지않니?
  • 야스페르츠 2011/06/27 23:11 #

    평양하고 함흥평야가 같은 곳이었나봅니다. 환드모트씨?
  • ㅋㅋㅋ 2011/06/27 23:30 # 삭제

    어이고 이제는 낙랑국을 함흥평야에 있다고 창작하셨쎄여?
    기왕이면 연해주나 홋카이도로 하시지.
    별로 얻을 것도 없는 그런 곳을 왜 그렇게 이간계를 써서까지 애써 차지하려고 고구려는 그렇게나 힘을 썼을까나?
    그런 지역의 소국을 상대로 말이지.
    비옥한 평안도, 황해도 지역을 차지한 강력한 국가인 낙랑국이면 말이 되는데.
    이런 창작 소설에 같이 역사 토론이랍시고 상대를 해줘야하나? ㅉㅉㅉ....
  • 굔군 2011/06/28 00:29 #

    ㅋㅋㅋ//미안하지만 <삼국사기>에도 호동이 "옥저"에 놀러갔다가 낙랑왕 최리를 만났다고 나온단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그 낙랑국이란 게 (만약 실제로 존재했다면) 옥저 지방, 즉 함흥 평야 방면에 위치했다는 추론은 충분히 성립 가능하지.
  • 대공 2011/06/27 21:04 # 답글

    대한민국 독립 유공자 시리즈가 생각나는 왕망이네요.
  • 야스페르츠 2011/06/27 23:11 #

    고구려 독립 유공자 왕망 슨상님입죠.
  • 솔까역사 2011/06/27 21:22 # 답글

    과연 카오스라 할만하군요.
    낙랑공주 사진보니까 예전에 자전거 여행기에 나오는 야페님 생각이 나는군요.
    옆에 호동왕자라고 하며 붙여놓으면 어울리겠군요 ^^
  • 야스페르츠 2011/06/27 23:11 #

    오크와 나이트엘프.... ㅋㅋㅋ
  • Mr 스노우 2011/06/27 21:28 # 답글

    잘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예상했던 이들은 바로 달려오는군요 -_-
  • 야스페르츠 2011/06/27 23:12 #

    이번 건 좀 걸렸나봅니다.
  • 2011/06/27 21: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7 23:12 #

    ㄷㄷㄷ 그런 걸 알면 저런 짓 안하죠.
  • Grelot 2011/06/27 23:16 # 답글

    야스님은 오늘도 ㅋㅋㅋ,dddd 등을 비롯한 응응응한 분들과 친목 도모에 여념이 없으심다! 으허허!
  • 야스페르츠 2011/06/27 23:27 #

    육두구빛 가득한 친목도모입죠.
  • 2011/06/27 23: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7 23:33 #

    일단 《삼국지》의 기록 대로라면, 책구루를 매개로 한 관계는 위에서 말한 더 이상 출두하지 않은 시점 이후 이어진 "약한 예속 관계"입니다. 책구루 이전에는 더 강한 예속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백야 2011/06/27 23:42 #

    그렇군요'ㅅ'
    답변 감사합니다~
  • 리리안 2011/06/27 23:36 # 답글

    재미있는 가설이네요. 견유들은 신경쓰지 맙시다.
  • 야스페르츠 2011/06/27 23:39 #

    뭐, 워낙에 카오스 상태의 사료들인지라... 그래도 옥저 지역(영동 7현)을 낙랑국의 영역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로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ㅎㅎ
  • 리얼스나이퍼 2011/06/27 23:47 #

    견유니 뭐니 이런 식으로 비방해서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그리고 쭉 지켜보니 ㅋㅋㅋ님 덧글을 삭제하고 ㅋㅋㅋ님이 더이상 덧글이 없는 것을 보니 십중팔구 또 아이피 차단한 것 같은데(아니라면 매우 미안하지만) 방명록에 무슨 키보드 배틀을 권장한다고 써놓고 논리에서 밀리면 막 아이피 차단을 하는데 솔직히 이건 너무 한 것 아님?
    자기 스스로도 뭔가 좀 면목없다 그런 생각은 안드시나?
  • 야스페르츠 2011/06/27 23:49 #

    아이피 차단한지 딱 5분 만에 2번 분신으로 찾아오시는 환드모트 쨩~ 반가워요. 내래 이미 말하지 않았드래? 비매너 비로그인은 차단이랑께.
  • 리얼스나이퍼 2011/06/27 23:54 #

    역시나 차단하셨구만.ㅎ
    나도 가야지. 쯔쯔
  • 명림어수 2011/06/28 00:08 # 삭제 답글

    "낙랑"의 뜻은 뭘까요?
    낙랑에서 "나라"가 나온걸까요?
    아니면 "나라"에서 "낙랑"이 나온 걸까요?
    어느 책에서는 일본어 "쿠니" 도 "군"에서 나온 말이라 하던데...
  • 굔군 2011/06/28 00:33 #

    樂浪의 원래 발음은 "락랑"이라서 말이죠...

    "나라"가 "낙랑"에서 나왔다는 추측은, "나라"의 옛날 발음이 "라라"였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은 성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8 10:30 #

    그런 어설픈 유사발음 놀이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 굔군 2011/06/28 00:30 # 답글

    사실 그놈의 "낙랑국"이라는 거, 그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떡밥일 뿐인데 말이죠...ㅎㅎ
  • 야스페르츠 2011/06/28 10:31 #

    어허! 한국사 최초의 모에요소 낙랑공주를 무시하나연?
  • 부조 2011/06/28 00:33 # 삭제 답글

    ㅋㅋㅋ 이 사람은 왜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자폭 댓글을 달까? 보는 사람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능...;
  • 야스페르츠 2011/06/28 10:31 #

    그걸 알면 저런 짓 안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6/28 00:47 # 답글

    역시나 그들이 등장하는군요. 역시...(이중적으로 해석해도 맞습니다.ㄲ)
  • 야스페르츠 2011/06/28 10:31 #

    ㄷㄷㄷ
  • 라디오 2011/06/28 10:14 # 답글

    "함흥평야, 즉 옥저 지역을 모두 평정한 것은 조금 더 뒤인 태조왕 4년(서기 56)의 일로.."

    AD56년이라면.. 낙랑국의 잔당들이 동옥저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사건을 말하는거죠.
  • 야스페르츠 2011/06/28 10:32 #

    댁은 차단이오.
  • 라디오 2011/06/28 10:29 # 답글

    기년에 관해서는 다들 약하구만요...

    얼마나 더 설명해 줘야 할까...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군요.
  • 돌아온 열혈팬 2011/06/28 15:33 # 삭제 답글

    5호 16국을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입니다.
    최근 kbs에서 방영 중인 <광개토태왕>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한 회밖에 안 봤는데 홈피들어가니 등장인물에 모용수가 나오더라구요.
    모용수는 부견을 배신한 사람인 걸로 아는데 그의 활동 시대가
    고구려의 고국양왕이나 광개토대왕 시절과 비슷한가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그리고 다시 연재중이신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댓글에 당당하게 맞서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8 17:29 #

    사실 별로 관련이 없는 인물이죠. 모용수가 직접 고구려와 맞선 적도 없고, 고작해야 그의 아들인 모용농이 고국양왕하고 한 번 싸웠을 뿐인데... 그나마 후연의 건립자이기도 하니까 드라마에서 띄워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좀 그렇죠.
  • 돌아온 열혈팬 2011/06/28 20:08 # 삭제 답글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가지 질문 있는데요.
    <광개토태왕>을 보니 후연, 북위 이런 식으로 말하던데
    당시에는 그냥 연, 위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 야스페르츠 2011/06/29 10:57 #

    제가 드라마를 안봐서 모르겠습니다만, 고구려나 기타 타국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만, 모용수가 자기 입에서 후연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개뻘짓이죠. 오히려 그런 건 연이라고 말하고 자막으로 후연이라 밝혀줘야 하거늘...

    아... 그리고 북위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개삽질입니다. 북위를 북위라 부른 것은 상당히 후대의 일이니...
  • 명림어수 2011/06/29 02:08 # 삭제 답글

    아직 우리 사극에서 자기나라를
    "전진" 이나 "전연" 으로 부르는 배우들이
    안 나타난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9 10:58 #

    ?? 무슨 의미신지?? 위에 보면 모용수가 자기 나라를 후연이라 부른 예가 있다고 하는데요... ㅡㅡ;;
  • 소설 2011/06/30 16:31 # 삭제 답글

    ㅋㅋㅋㅋㅋ

    그리고 여기서 내내 평양에 낙랑군 어쩌고 하던 양반이

    왕준이 이끈 군대가 도착한 곳이 분명 <요동>이라고 말하는데

    무슨 현 한반도 평양 어쩌고 개구라 까남 ㅋㅋㅋㅋㅋㅋㅋ

    이사람은 그냥 자위소설 책이나 하나 내지 뭔 역사 타령? ㅋㅋ
  • 야스페르츠 2011/06/30 18:57 #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하니까 명나라가 군대를 움직였으니 명나라는 한반도에 있었나보지? 쯧쯧
  • 2011/07/02 02:42 # 삭제 답글

    사서 안보시는군요 ㅋㅋ 왕준 군대가 도착한 곳이 요동이요 맞이하는 이들이 요동인데 무슨 소릴 하시는지.
  • 굔군 2011/07/02 10:41 #

    과연 사서를 안 보는 사람이 누굴까? ㅉㅉㅉ

    初,樂浪人王調據郡不服。秋,遣樂浪太守王遵擊之,郡吏殺調降。
    秋九月庚子,赦樂浪謀反大逆殊死已下。-『後漢書』卷一下「光武帝紀」第一下
    更始敗,土人王調殺郡守劉憲,自稱大將軍、樂浪太守。建武六年,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至遼東,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遵,皆封為列侯,閎獨讓爵。帝奇而征之,道病卒。-『後漢書』卷七十六「循吏列傳」第六十六

    여기에서 "왕준의 군대를 맞이한 곳이 요동"이라는 말이 대체 어디 있남요? 해석은 할 줄 아세요? ㅋㅋ
  • 굔군 2011/07/02 11:01 #

    그리고 인용한 <후한서> 왕경열전의 해당 문장 앞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답니다.

    王景字仲通,樂浪□邯人也。八世祖仲,本琅邪不其人。好道術,明天文。諸呂作亂,齊哀王襄謀發兵,而數問於仲。及濟北王興居反,欲委兵師仲,仲懼禍及,乃浮海東奔樂浪山中,因而家焉。

    물론 해석이야 못하겠지만, 위 기록에서 낙랑은 산동 반도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가야 닿을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어요. 즉, 낙랑의 서쪽에는 바다가 있었다는 얘기죠.
    동쪽에 옥저와 동예가 있고 그보다 동쪽에는 바다가 있으며, 서쪽에도 역시 바다가 있고, 남쪽에는 한(韓)이 있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접하는 지리인데, 이곳이 대체 어디일 것 같습니까? 요동 반도? 푸훕.
  • 2011/07/07 14:02 # 삭제 답글

    王景字仲通, 樂浪䛁邯人也[一]. 八世祖仲, 本琅邪不其人. 好道術, 明天文. 諸呂作亂, 齊哀王襄謀發兵, 而數問於仲. 及濟北王興居反, 欲委兵師仲[二], 仲懼禍及, 乃浮海東奔樂浪山中, 因而家焉. 父閎, 為郡三老. 更始敗, 土人王調殺郡守劉憲, 自稱大將軍、樂浪太守. 建武六年, 光武遣太守王遵將兵擊之. 至遼東, 閎與郡決曹史楊邑等共殺調迎遵, 皆封為列侯, 閎獨讓爵. 帝奇而徵之, 道病卒. (후한서 순리열전 왕경전)

  • 2011/07/07 14:03 # 삭제 답글

    이건 뭔 내용임??? 누가 해석을 못하고 웃긴 소리 하나요? 요동에 이르렀다는 문구는 어디 빼버리 셨나요?

    그리고 동쪽으로 가면 다 평양인가요??? 웃긴.
  • 야스페르츠 2011/07/07 15:28 #

    1. 요동에 이른 건 왕준의 군대. 그러나 사료 어디에도 "왕준을 요동에서 맞이했다"는 기록 따윈 없음. 왕준의 군대가 요동, 그러니까 낙랑군의 바로 지척에 이르니 쫄아서 왕굉이 왕조를 죽이고 왕준을 맞아들인 것임. 여기에 논리적 문제는 전혀 없음. 오히려 "왕준이 간 곳은 요동까지"라는 귀하의 주장을 따르자면 낙랑군에서 내분이 일어나는 일이 시간적-공간적으로 어려움.

    2. 왕경의 선조 왕중이 출발한 곳은 낭야군, 낭야군은 산동반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배타고 동쪽으로 가면 한반도로 갈 수밖에 없음. 낭야에서 배타고 요동으로 가려면 산동반도를 통째로 돌아가야 하며, 심지어 방위 상으로도 정북에 가까움. 역시 논리적 문제는 전혀 없음.
  • 2011/07/07 14:11 # 삭제 답글

    그리고 기본 평양일대가 한나라 식민지라면 최소 간접 지배 운운해도 바로 군사적 압박을 가할수

    있는 군대는 요동일대에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至遼東이라고 요동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건 당시 요동일대에 그만한 군사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는 또다른 반증이 아님? 이런식으로

    해석하고도 400여년간을 평양일대가 한사군 지배지니 하는 소리가 나오나요? 무슨
  • 야스페르츠 2011/07/07 15:32 #

    3. 당시 중국은 일대 혼란기였음. 이미 산동-강소를 중심으로 유영을 비롯한 광무제의 견제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으니, 요동군의 군사력은 이 시점에서 무너졌거나 낙랑군으로 유용이 불가능한 것임. 이 무렵 요동 일대가 고구려의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은 <삼국사기>에서도 나오는 사실. 이런 상황에서 낙랑군을 직접 위협할 수 있는, 그리고 오로지 낙랑군만 공격하기 위한 군사력이 요동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반란을 일으킨 낙랑군은 좆망인 것임. 이 역시 논리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음.
  • 2011/07/07 15:15 # 삭제 답글

    삼국지 위략 염사착의 허구

    http://blog.naver.com/hankwu/90089846607
  • 야스페르츠 2011/07/07 15:37 #

    4. 이미 <삼국지> 동이전의 왜 條에 대방군(황해도)에서 서해-남해안을 거쳐 대마도-북규슈로 향하는 항로가 잘 설명되고 있음. 게다가 염사치 본인은 육로로 걸어서 낙랑군으로 잘만 갔고, 그 후로 배를 타고 진한으로 가는 경로는 아무런 논리적 하자가 없음. 저 포스팅에서 말한 육로가 그 만큼의 효율성(군대의 이동, 인구의 이동 등)이 있다면, 이 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까지 조운선을 대량으로 운용한 한반도의 다른 국가들은 대체 뭐임?

    ps. 함대라는 말이 뭔진 아는 거임?
  • costzero 2011/07/25 10:52 # 답글

    낙랑공주의 위엄이 쩌는군요.
    검하나도 제대로 못들 것 같은데 PD의 압박으로 쌍검을 운용하니 안습이군요.
    중요한 건 노출인데 퍼억~~~.
    비로그인 덧글은 차단,삭제하심이.
    공주캐릭은 역시 단궁계열이 더 적합한 듯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7/25 19:39 #

    노출이 아쉽습니다. ㅋㅋ
  • costzero 2011/07/25 22:52 #

    노출은 전투중에 상의일부 날아가고 허벅지에 찰과상 줌서 찢어놓으면 되기는 한데 고증 살린다고 겨털이 난무하면 시청률 대박할 것 같습니다.여성부에서 당장 혐오부위의 노출이라고 할듯하구요.한국의상의 여성미는 겨드랑이 노출이라고 최인호씨가 글던데 겨털도 매력일지는 몰겠어요.기모노는 목노출이라구 하고(뭐 등부위의 백팩의 특수성이 좀 더)
    고대인들은 현대인과는 달리 가슴노출에 신경쓰지않고 상당히 다르게 살았던 듯 합니다.
    이렇게 답글달면 울 여친도 가슴노출에 그닥 신경안써요라고 댓글다는 염장족이 있죠.둘이서 치킨이나 드3.(아직도 해석불능.고문기술만 연상됨.문목사의)
  • 부여 2012/07/23 14:17 # 답글

    삼국사기 대무신왕 15년(A.D.32)의 최씨 낙랑국과 20년(A.D.37)에 신라로 남하하는 낙랑은 역시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까? 15년은 고구려 자체 기록으로, 20년은 신라 측 기록에 의해 추산된 것으로...
  • 야스페르츠 2012/07/26 19:23 #

    으허허... 신라 쪽 낙랑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심미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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