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6 23:40

담백하게 풀어보는 낙랑군의 역사 (4) 역사

5. 독립

서기 8년, 중국 대륙을 뒤흔들 대 사건이 벌어졌다. 한실의 외척이었던 왕망이 선양이라는 희대의 정치쇼를 통해 한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다. 왕망이 새롭게 일으킨 나라의 이름은 기가 막히게도 신(新)....

왕망의 야심찬 새 나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대기 시작했다. 유교적 이상주의를 추구했던 그의 국정 운영은 현실을 무시한 정책의 남발로 엄청난 파탄을 몰고 왔으며, 더불어 황하가 범람하는 등 자연재해가 빈발했다. 결국 각지의 농민과 호족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중국 각지에는 여러 호족들이 이합집산하면서 군웅할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런 격변의 시기, 낙랑군도 혼란의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왕망의 비현실적인 정책은 낙랑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현재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사실은 쓸데없이 군현명을 개칭하고 관직명을 개칭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행정 낭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려주는 유물이 나름 낙랑군 재평양설(?)의 주요 근거로 이글루스에서 잘 알려져 있는 "樂浪大尹章"이다.

왕망은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자기 나름대로 행정개혁(?)을 실시했는데, 그 첫번째가 관직 명칭을 모조리 고쳐버린 것이었다.(서기 9년) 엄청나게 무의미한 행정 낭비였을 것이다. 당시 공무원들도 이게 무슨 뺑뺑이냐고 투덜대면서 인장을 고치고 각종 기물을 수정했겠지. 이때 군의 행정관인 태수(太守)가 대윤(大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얼마 뒤인 천봉 원년(서기 14)에 전국의 군현명을 제멋대로 고쳐버리면서 낙랑군은 낙선군(樂鮮郡)으로 바뀌었다. 또 공무원들은 뺑이를 쳤겠지만, 바로 이 5년 동안만 사용된 "낙랑군의 대윤"이라는 직함이 새겨진 유물이 바로 저 낙랑대윤장인 것이다.

브라보 왕망...



각설하고, 중국 본토에서 혼란이 일어나면서 많은 유민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 유민들 가운데 산동 일대의 유민들이 낙랑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견해가 있다. 낙랑군 일대는 고조선 시대에도 산동 일대와 교류가 있었고, 무덤의 양식이나 출토 유물에서도 산동 지역의 영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본토가 혼란에 빠지면서 산동 일대의 유민, 특히 농민반란군에 의해 목숨을 위협당하던 부유층들이 낙랑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유민들에 의해 중국 본토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낙랑군은 상당한 번영을 구가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서기 25년, 낙랑에서 정변이 발생하였다. 토인(土人) 왕조(王調)가 낙랑태수 유헌(劉憲)을 살해하고 스스로 대장군 낙랑태수를 자칭하였던 것이다. 낙랑군의 독립 사건이다.

왕조는 사료에 직접적으로 토인(土人), 즉 토착민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 때문에 왕조의 출신에 대한 논란이 많다고 한다.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토착민인가, 아니면 위만 시기에 이주하여 토착화한 한족인가, 그것도 아니면 낙랑군 시기에 이주하여 정착한 한족인가? 왕조의 출신에 따라 왕조의 반란이 가지는 성격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기 낙랑군의 민간 세력이 태수를 축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는 점이다. 낙랑군은 변군이었기 때문에 태수를 정점으로 한 관의 세력이 상당히 강력했을 것이다. 아무리 혼란기였다고는 해도 토인, 즉 민이 쉽게 관을 제압할 수는 없었을 것이며, 결국 왕조의 정변은 낙랑 민간 세력의 힘, 동시에 낙랑군의 번영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반란이 벌어진 시기도 미묘한데 바로 광무제가 후한을 성립시킨 때이기 때문이다.


※ 후한 광무제 유수

왕망이 몰락하고 난 뒤 한 왕조의 부활을 추구하면서 경시제 유현이 첫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호족 출신 군벌이었던 유수가 이에 반발하였고, 결국 서기 25년에 자립하여 후한을 건국(?)하게 된다. 이 유수의 정변(?)으로 경시제는 곧 제거되고 후한이 성립하였지만, 아직까지 정국 각지에는 자립적인 군벌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 때문에 왕조의 반란을 후한에 맞서고 있던 동방 세력인 양왕(梁王) 유영(劉永) 및 여러 군벌 세력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낙랑군은 산동 지역의 영향이 강한 지역이었고, 산동을 포함한 동해안 일대에서 후한 광무제의 라이벌 격이었던 유영이 세력을 잡고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왕조의 반란 역시 이 동방 세력과의 연계 속에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왕조의 독립 낙랑군은 동방 세력의 흥망을 그대로 좇았다. 건무 6년(서기 30년), 광무제는 동방을 정벌한 뒤 그 마무리 단계로 왕준(王遵)을 낙랑태수로 임명하고 군대를 파견하여 낙랑을 재정복하게 하였다. 왕준이 이끄는 정벌군이 요동에 이르렀을 때, 왕조의 정권은 내분으로 자멸하고 말았다. 토착 한인 출신이었던 군삼로 왕굉(王閎)이 결조사 양읍 등과 함께 왕조를 살해하고 왕준을 맞이하였던 것이다.

왕조의 짧은 자립 정권(?)은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고, 낙랑군은 5년 만에 다시 중국의 변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번영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낙랑군의 기나긴 몰락이 시작된 것이다.


※ 참고문헌

권오중·윤재석·김경호·윤용구·이성제·윤선태, 《낙랑군 호구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10
김종태, 〈樂浪時代의 銘文考〉, 《考古美術》135, 한국미술사학회, 1977

핑백

  • 11th fear : 왕굉, 낙랑의 군삼로(郡三老) 2011-07-02 17:21:00 #

    ... http://xakyntos.egloos.com/27685911세기 초에 낙랑군에서 일어났던 왕조의 난이 진압되는 과정을 보면, 군삼로(郡三老) 왕굉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즉, 광무제가 보낸&nbs ... more

덧글

  • 2011/06/26 23: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7 10:32 #

    1. 나이스 왕망...

    2. 근데 사실 왕조는 토착 한족 출신일 가능성이 높죠.... 이건 마치 조타와 같은 케이스....
  • 리리안 2011/06/26 23:53 # 답글

    왕망의 유일한 업적...? 아무튼 삽질도 아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7 10:32 #

    브라보 왕망입죠..
  • 라디오 2011/06/27 00:07 # 답글

    AD25년이면.. 신라가 건국한 해.

    AD24년= 갑신년.

    중국의 변화가 한반도에도 영향을 준 것이죠.
  • 야스페르츠 2011/06/27 10:37 #

    노코멘트.
  • 솔까역사 2011/06/27 00:19 # 답글

    흥미진진하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7 10:37 #

    ^^;;
  • 백야 2011/06/27 00:35 # 답글

    지난 글부터 계속 보고있었는데, 정말로 흥미롭습니다.'ㅅ'
    최근에 들어서 고조선사에서 동방변군-고구려 쪽으로 관심사를 옮기게 되었는데...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알아가는 즐거움이 들도록 하는 포스팅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7 10:37 #

    재미있으시다니 감사합니다. ^^;;
  • 대공 2011/06/27 01:45 # 답글

    평온한 변방(...)
  • 야스페르츠 2011/06/27 10:37 #

    ㄷㄷㄷ 하지만 평온하지 않았다구효! 다음 편에는 고구려가 낙랑을 털어먹을 거라능.
  • 명림어수 2011/06/27 04:59 # 삭제 답글

    우리나라에서도 신라때 어느 대왕께서 관직명과 지명을 저렇게
    모조리 갈아치웠다가 원상회복시킨 예가 있었죠.
    덕분에 삼국사기에 기록이 풍부해지기는 했지만,
    담당직원들은 ....
  • 야스페르츠 2011/06/27 10:38 #

    그나마 그때의 갈아치우기는 왕권강화라는 떡밥도 있지요... 왕망은 그딴 거 없이 그냥 삽질...
  • Falmehawk 2011/06/27 14:56 # 답글

    왕망은 이름 참 잘 지은 것 같습니다. 왕창 망해서 왕망.
  • Warfare Archaeology 2011/06/27 15:32 #

    ㅋㅋ 동의 ㅋㅋ
  • 야스페르츠 2011/06/27 19:16 #

    대박망했죠? ㅋㅋ
  • 크핫군 2011/06/27 18:00 # 답글

    FREEDOM!!!!
  • 야스페르츠 2011/06/27 19:16 #

    창자로 줄넘기!
  • hyjoon 2011/06/27 19:39 # 답글

    낙선군 떡밥은 북한에서 뿌리더니 이제는 남한에서 주워먹고 앉아있죠. (...)
  • 굔군 2011/06/28 00:37 # 답글

    왕조는 한화된 고조선인이 아닐까요? 왕씨 성을 사용한 걸로 봐서는 중국계일 가능성도 큰 것 같지만, "토인"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 누군가의친구 2011/06/28 00:44 # 답글

    왕망이 그저 광무제를 위해 존재한게 아닙죠.ㄲㄲ
  • 소설 2011/06/30 16:26 # 삭제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사람은 역사내용 보다 아에

    소설 삼국지로 나가면 성공할 사람이네 ㅋㅋㅋㅋㅋㅋㅋ 전체 내용에서 사서 분석이나 정확한 연구내용은

    없고 그냥 추측에 지 소설 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6/30 18:56 #

    성공할거라니 감사하군요.
  • 2011/08/19 17:5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8/20 13:45 #

    지리적 관념으로서의 요동은 만주 전체와 한반도 북부, 심할 때는 한반도 전체를 포괄합니다. 그리고 낙랑군 설치 이전의 요동군 역시 최소 청천강 이북까지 관할하고 있으므로 역시 요동이라 부를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강남을 말한다고 그게 항상 강남구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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