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3 19:16

담백하게 풀어보는 낙랑군의 역사 (3) 역사

※ 앞선 포스팅의 오류부터 정정하고 시작한다.

2번 축소 항목의 말미에 낙랑군이 통폐합을 거쳐 확장되고 난 뒤 새로 편입된 지역에 도위(都尉)를 설치했다고 서술했는데, 자료를 확인해 본 결과 도위가 아니라 부도위(部都尉)였다. 부도위는 주로 이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설치된 군의 부속기구로 일반적으로 군의 직속으로 편제되는 것에 비해 약화된 형태의 통치기구로 평가된다고 한다.


4. 번성

기원전 75년, 현도군이 이치되면서 낙랑군은 25개 현을 관할하는 거대한 규모로 확대되었다. 학계에서는 이 시기의 낙랑군을 가리켜 편의상 "대낙랑군"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렇게 성장한 낙랑군은 변경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번영을 누렸던 것 같다. 최근 발견된 초원4년(기원전 45)의 호구부에는 총 43,845호 285,261명의 인구가 기록되어 있으며, 《한서》 〈지리지〉에 기록된 인구도 62,812호 406,748명에 달한다. 《한서》의 인구 기록은 원시 2년(서기 2)의 호구조사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라 알려져 있으니, 약 50년 동안 40% 이상 성장한 셈이다. 이는 한대 인구 성장 추이와 크게 차이가 없는 결과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성장의 이면에는 변경의 불안한 정세가 숨어 있었다. 진번과 임둔군의 통폐합은 일종의 구조조정 측면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변 이민족의 이반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현도군의 이치는 구조조정과 전혀 관계가 없는, 순수한 퇴축(退縮)이었다.

이러한 사태를 일으킨 이민족은 바로 예, 또는 예맥이었다.

예맥은 이미 고조선 시기부터 동방의 주요 세력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곤 하던 강력한 집단이었다. 일각에서는 위만조선이 전방위적으로 대립-회유했던 가장 강력한 적으로 서술하기도 하며, 심지어 위만이 정벌하여 편입시킨 진번과 임둔도 예맥의 일파 혹은 예맥을 견제하기 위한 군진의 성격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특히 임둔의 경우, 고조선이 본토의 안전보장을 위해 진출한 곳으로 보는 시각이 강한 것 같다.

무제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변군을 설치하면서 고조선 당시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확립하였다. 예맥이라는 위험요소를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예 멸망시키고 통합시키는 것. 무제는 현도군을 설치함으로써 예맥을 모조리 통제하려 했던 것이다.

한이 예맥 대부분을 통제하에 두는데는 성공했지만, 무제 사후 소극적인 정책이 계속되면서 예맥은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결과 진번과 임둔이 통폐합되고 현도가 북방으로 퇴축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예맥의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낙랑군은 예맥에 대한 안전보장을 위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새로 편입된 지역의 변경에는 정(亭), 부(部), 장(障) 등의 방어시설이 구축되었다.

예맥의 침탈과 내부적인 반발 등으로 인해 낙랑군의 변경 지역인 동부도위, 남부도위 지역의 인구는 크게 감소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45년의 인구조사를 보면 해당 지역은 인구가 매우 적은 편이며, 임둔군치였던 동이현의 인구가 겨우 2천에 불과할 만큼 쇠락해 있다. 진번군치인 삽현은 아예 폐지되고 방어진지인 삽양장으로 개편되어 최종방어선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나마 남부도위는 대방현의 인구가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대방현을 제외한 나머지 현은 처참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낙랑군의 중심지는 크게 번영하였던 것 같다. 기원전 45년 당시에도 처참할 만큼 인구가 적었던 변방이었으니 50년이 지난 뒤에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기 2년 낙랑군의 인구는 40%나 증가한 40여 만 명에 달한다. 이는 변경의 위협에도 상관 없이 낙랑군 자체는 크게 번영하였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당시 낙랑군의 번영은 수천기 이상 발굴된 고분을 통해서도 실증된다 할 수 있다. 이 시기 고분의 유물들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또한 《위략》의 염사치(廉斯鑡) 관련 기록에서도 이러한 낙랑군의 번영 모습이 잘 나타난다. "낙랑의 토지가 기름지고 백성들이 잘 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내항하여 살고자 했다.(聞樂浪土地美, 人民饒樂, 亡欲來降.)"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니까...

염사치의 기록은 낙랑군의 번영과 함께 낙랑군이 토착 삼한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낙랑군으로 망명하기 위해 길을 떠난 염사치는 도중에 진한에 끌려와 노예로 생활하던 한인을 구출(?)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낙랑군 측에서는 염사치를 한인 송환 책임자로 임명하였고, 염사치는 진한과 교섭을 통해 1,000명의 한인을 송환받고 죽은 500명에 대한 배상으로 진한인 1만5천 명과 포 1만5천 필을 받아냈다. 한인 500명에 대한 대가가 진한인 1만5천이라는 인신매매성 계산값은 좀 거시기하지만, 낙랑군이 진한에 대해서 정치적 교섭을 벌였다는 점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군사적으로 삼한 사회에 간섭한 기록도 다수 발견되며, 경제적·문화적으로도 많은 영향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정확한 좌표는 생각나지 않지만, 한강 이남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강력한 군사적 영향에 의해 대형 취락들이 비슷한 시기에 무너진 흔적이 발견된다는 포스팅도 본 적이 있다. 즉, 낙랑군이 직접적으로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한반도에 강력한 세력이 생기지 못하도록 군사적/비군사적 견제 행위로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미이다.


여하튼, 초기 30여 년의 혼란을 수습한 뒤 낙랑군은 약 100년 동안 찬란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이 번영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동이령(東暆令)이었던 연년(延年)은 부(賦)를 잘 지어 《한서》 〈예문지〉에 그 이름을 올리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논어》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선진 문화가 점차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세기의 초, 이러한 번영의 정점을 찍게 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동시에, 번영의 종지부를 찍을 사건이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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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리리안 2011/06/23 19:24 # 답글

    원삼국이 끝나가고 있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3 21:53 #

    뭐... 원삼국이라는 게 그다지 보편적인 용어는 아닌지라 언제 끝난다고 말하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ㅎㅎ
  • 솔까역사 2011/06/23 19:32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3 21:53 #

    ^^
  • DreamersFleet 2011/06/23 19:35 # 답글

    좀 시비조로 나가서 죄송하긴 한데, 임둔군치가 동이현이니 진번군치가 삽현이니 하는 것은 여기저기 뒤죽박죽된 산견된 좀 일관성이 떨어지는 기록들을 다 긁어 모아서 그런것들이 사실이라고 가정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최근 모 카페에서 논전상대를 향해 "소설"이란 말씀을 하신 바 있으신 줄로 아는데 이 글은 성격상 역사에 가까운지 소설에 가까운지 여쭙습니다. 약간 의심이 드네요.
  • DreamersFleet 2011/06/23 19:54 #

    참고로 링크 하나 걸겠습니다. http://tinis74.egloos.com/2561044
  • 굔군 2011/06/23 20:02 #

    그 포스팅의 논점은 그 <무릉서>라는 사료에 기재된 거리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인뎁쇼.
  • 굔군 2011/06/23 20:08 #

    어떻게 같은 글을 봐도 이런 식으로 곡해해서 받아들이는 건지 원...ㅡㅡ;;
  • DreamersFleet 2011/06/23 20:09 #

    굔군/ 그럼 이것도 참고 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http://cafe.naver.com/manchuria/310
  • 굔군 2011/06/23 20:22 #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긴데요, 뭘. 내가 왜 그 글을 안 봤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
  • 굔군 2011/06/23 20:25 #

    요약하자면, <무릉서>에 기재된 거리 정보가 오류라는 것과 그 내용 자체를 전부 소설 취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 DreamersFleet 2011/06/23 20:31 #

    지금 저 카페 주인의 말은 못믿겠다 이겁니까?^^
    그럼 이것도 참조하셈.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C%82%AC%EA%B5%B0#.E3.80.8A.EB.AC.B4.EB.A6.89.EC.84.9C.E3.80.8B
  • 굔군 2011/06/23 20:34 #

    이미 알고 있는 얘기라니까 그러네. 참...;;
    내가 고작 위키백과 따위도 안 찾아봤을 것 같습니까?

    동방변군에 관한 지식은 내가 댁보다 십만팔천리쯤은 앞서 있으니까, 이것저것 링크 걸어서 보여줄 필요 없어요.^^
  • DreamersFleet 2011/06/23 20:42 #

    십만팔천리든 백만리 여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믿음의 문제이지 사실의 영역은 아닌 듯. 저 기록은 한쪽면에서는 신뢰성이 꽝임이 증명되었고 다른 쪽도 이렇다 증명될게 전혀 없음. 누가 어떤 동기로 지었는지 그 전체 내용도 없듬. 고고학적 증거가 있음? 없음. 그렇다고 그 어떤 실제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듬? 아님. 내가 볼 땐 소설이라고 봐도 할말 없음.
  • DreamersFleet 2011/06/23 20:44 #

    본인은 굔군님의 지식의 량이나 거리에 대해 묻는 것이 아닌 것 같음. 믿음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있는 것임. 그것이 학적인 영역으로 침투하면 안되지 않음.
  • 굔군 2011/06/23 21:07 #

    증거? 증거라고 하셨습니까? 피식.
    증거를 알려드릴깝쇼?

    1. 임둔군의 치소 동이현
    초원 4년(BC 45) 낙랑군 호구부에 동이현은 낙랑군 동부 지역의 현들 중 가장 첫번째로 기재되어 있음. 이것은 동부도위 설치 이전, 그러니까 중심 치소가 불이현으로 옮겨가기 이전에 동이현이 영동 지방의 수현(首縣)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의미.
    즉, <무릉서>의 기록대로 동이현이 통폐합 이전 임둔군의 군치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해도 별 무리가 없음. 이후 인구 위계 등의 이유로 중심지가 불이현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

    2. 진번군의 치소 삽현
    삽현은 낙랑군 호구부나 <한서> 지리지의 속현 목록에는 빠져있음. 군치마저 폐지되어 사라진 것으로 진번 지역에서는 군의 행정 조직 자체가 붕괴되었음을 의미함. <무릉서>의 기록을 따르더라도 총 15현 중 7현밖에 안 남았으니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결론.
    그런데 <광운>과 <집운> 등에는 이 진번군의 치소 삽현이 낙랑군 변방의 방어 시설인 삽양부, 삽양장으로 개편된 것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음.
    이는 진번군의 치소 기능을 담당하던 삽현이 군의 축소-통폐합 이후 더 이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변방의 방어 진지로 개축되었음을 의미함. 군치가 일개 현으로서도 존속하지 못하고 변방의 요새 정도로 지위가 격하된 것은 15현 중 절반에 달하는 현들이 폐지된 당시 정황과 맞추어 해석하더라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삽현에 관한 기록이 이미 <무릉서>가 아닌 다른 사료에도 등장한다는 게 포인트.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 굔군 2011/06/23 21:09 #

    제발 아는 것도 ㅈ도 없으면서 함부로 나대지 마시라고요. 그러니 댁이 ㅄ 취급 받는 거임.

    모르면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계세요.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니깐. ^^
  • DreamersFleet 2011/06/23 21:19 #

    굔군/
    1. <한서지리지>에서도 그 순서는 바뀌지 않았음. 순서는 동부도위 설치이전에 변동이 없는 것임. 다시 말하자면 <무릉서>는 출처불명의 괴서임.

    2. 본인은 모르는 기록임. 다시 말하지만 지식의 양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의 성격을 평가하는 자리잖음. 그것까지 내가 찾아봐야 함.
  • DreamersFleet 2011/06/23 21:20 #

    그럼 증명을 해보렴.
  • 굔군 2011/06/23 21:36 #

    1. 호구부와 지리지의 기재 순서는 다른뎁쇼. 장난함? 물론 동이현이 영동7현 중 가장 첫머리에 나오는 건 같지만, 애초에 호구부와 지리지는 속현 기재의 기준 자체가 다름. 이 정도는 아셔야지. 논문이라도 읽고 와서 덤비든가. ㅉㅉ

    2. 그래서 뭐 어쩌라고? 댁한테 사료 찾아보라고 한 적 없소만?ㅉㅉ
  • 굔군 2011/06/23 21:42 #

    <무릉서>가 아닌 다른 사료를 제시한 것만으로 이미 증명은 끝난 것 같은데? 낄낄낄
  • DreamersFleet 2011/06/23 21:42 #

    굔군/ 지금 이 자리는 그대의 지식의 양(즉 여기엔 무슨 얘기가 있고 저기엔 무슨 얘기가 있는데 잰 저것도 몰라. 그러니까 내 의견이 옳아?_#!&*%&!%&)&)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잖음? 그대는 지금 그대 지식이나 생각의 신빙성을 입증해야 하오. 섣불리 "이겼느네"할 자리가 아니오.

    이건 뭔 소리. 수현의 자리가 변하지 않았으면 그만이지 다른 것은 왜 따짐? 나DF가 사료를 보지 않았다는 것으로 그대의옳음을 증명하지 말고 사료에 의거해서 자신의 논지를 펼쳐보시게나? 두번째 주장에 대해서도 그대가 출전을 제시해 주면 내 얼마든지 답변은 해 드리지만 그대 주장의 "모순점"은 그대 자신이 잘 알기에 그런 헷수고를 할일은 없으리라 보오만???
  • DreamersFleet 2011/06/23 21:46 #

    <무릉서>가 아닌 다른 사료를 제시한 것만으로 이미 증명은 끝난 것 같은데? 낄낄낄

    ==> 아 이거 진짜 손모가지 아프게 자꾸 하네. 같은 말 몇번 다시 하는 거니? 문제는 니가 내가 모르는 사료를 안다는 걸 제시하면 되는게 아니라 니가 제시한 사료가 신빙성이 있느냐 증명하는 거라구. 이거 수준차이가 나서 더 말 못하겠다. 아무래도 님하는 증명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오시길 바랍니다.
  • 굔군 2011/06/23 21:50 #

    뭔 소리하는 거니, 지금? ㅋㅋㅋㅋㅋ

    말을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적어주렴. 최소한 나는 낙랑군 호구부에 대한 학자들의 논문이라도 읽고 끄적이는 거거덩? 그것도 내 돈 주고 직접 사서.
    근데 너는 지금 그것조차도 전혀 모르잖아? 내 말이 틀려?

    과연 객관적으로 봤을 때 누구 말에 더 신빙성이 있을까? 한번 다른 분들께 물어볼까?
  • 야스페르츠 2011/06/23 22:00 #

    1. 동이현을 임둔군치로 추정하는 견해는 여러 동방변군 연구자들이 논증한 바 있는데 말입니다? 동이현은 영동 지역에서 유일하게 현령이 파견된 지역이고, 동부도위의 수현이 불이현임에도 불구하고 호구목간에는 동이현을 첫머리로 꼽고 있는 것 등, 고작 <무릉서>의 기록 따위로 그런 추정을 하는 건 아닌데 말입니다?

    2. 삽현 역시 마찬가진데 말입니다? 이미 굔군님이 다 썼으니 난 쓸 말도 없는데 말입니다?

    여전히 저렴하신 난독증 감사합니다. 그러니 이제 꺼져주시지요.
  • DreamersFleet 2011/06/23 22:00 #

    아 진짜 손모가지 아프게하네^^
    그러니까 무슨 말인고 하니,,,
    너는 "우리집에 지금 이러이러한 논문을 가득 사뒀다. 메롱^^. 근데 넌 그거 없지롭?" 이렇게 말한 거야.
    나는 "그래 그러니. 그런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다. 자 이제 그걸로 네 주장을 증명해 보렴~" 이렇게 이야기 한거란다. 그리고, 그말을 듣고,
    "엥.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했는데잉~"
    라고 한 것이고,,, 잘 생각해고 내일까지 증명해봐~ ^^. 그럼 이만.
  • DreamersFleet 2011/06/23 22:12 #

    굔군아! 논리로 안되니 비겁하게 욕을 하고 그러는구나? 오늘은 내 철수하마. 그 동안 충분히 생각해서 "증명 결과"를 알려주기 바란다~~~~ 안녕~~~~
  • 굔군 2011/06/23 22:12 #

    과연 누구 논리가 더 병신 같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 보렴 ^^
  • 야스페르츠 2011/06/23 22:13 #

    DF// 의문을 제기한 건 댁이고, 나나 굔군님이 뭔가 새롭고 충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중이라 아쉬운 입장이라면 댁의 의문을 풀어주려고 온갖 자료를 가져다 바치겠지요.

    하지만 나는 이미 입론되어 있고 논증도 잘 되어 있는 자료를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는 중. 댁이 웃기지도 않는 걸로 의문을 제기한다고 그 장단에 맞춰주느라 열낼 필요가 없지 않나?

    그.리.고.

    자료는 니가 찾아서 확인해보세요. 여기에 이런 내용 있다고 해줬으면 끝난거지 어디서 자료까지 사다 내놓으라고 헛소리쇼? 니가 돈 줄래요? 수업료 두둑하게 입금해주면 친절하게 찾아다 드릴께. 아니면 꺼지셈. 이런데서 어린애처럼 징징대지 말고 니가 직접 찾으셈.
  • hyjoon 2011/06/23 19:59 # 답글

    조만간 고구려가 등장하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3 22:01 #

    아마 다음편이나 다다음편 쯤 고구려가 화려한 등장을 할 겁니다.
  • 굔군 2011/06/23 20:30 # 답글

    조선 독립운동의 선구자, 왕조의 등장!!!
  • 야스페르츠 2011/06/23 22:02 #

    헉. 스포일러는 강퇴임. ㄲㄲ
  • Warfare Archaeology 2011/06/23 21:09 # 답글

    야스페르츠님...

    한강 이남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강력한 군사적 영향에 의해 대형 취락들이 비슷한 시기에 무너진 흔적이 발견된다는 포스팅도 본 적이 있다.

    위의 포스팅...혹시 찾아주실 수 있으신가요? 수고스럽겠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라서 좀 보고 싶어서요. 그럼 부탁~^^
  • 야스페르츠 2011/06/23 22:03 #

    저도 그 포스팅을 찾으려고 한참을 뒤졌는데 없더라구요.... 일전에 청동기시대의 멸망이라는 주제로 화제가 된 포스팅이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삼한 지역에서도 비슷한 동시공멸 흔적이 보인다는 글을 보았던 것 같은데...

    근데 여휘님이 모르시는 걸 보니 제가 잘못 봤거나 착각한 것 같습니다. 착각이었나... ㅡㅡ;;
  • 야스페르츠 2011/06/23 22:07 #

    으허허.... 갑자기 생각이 나서 찾았습니다.

    http://shaw.egloos.com/1926061

    제가 약간 착각을 한 부분도 있긴 하네요... 직접적으로 군사적 파괴라고 명시된 부분은 없고, 그냥 초기철기(청동기?)에서 원삼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대형 취락이 급작스럽게 소멸되는 현상을 말하고 있네요.

    뭐, 여기서 낙랑군의 개입 가능성을 연상하는 건 제 망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ㄷㄷㄷ
  • DreamersFleet 2011/06/23 22:10 #

    야스페르츠/ 진주라면 "한수이남"은 "한수이남"이라고 봐야겠는지, 중화 천자의 무광은 정말 머나멀리까지 미치는 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3 22:17 #

    DF// "이러한 현상은 원삼국시대에도 동일하게 관찰된다....(중략)... 가령 영산강 유역의 마한 사회에서는.... (중략).... 또한 중서부 지방 역시 ....(중략).... 특히 풍납토성 내에서... (중략)....따라서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남한지방 원삼국시대에는 이른 단계에는 소형 취락 정도만이 존재하다가 차츰 취락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3세기 이후에는 삼국시대로 연결되는 대형 취락이 출현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참 글도 띄엄띄엄 잘도 읽으십니다.
  • 굔군 2011/06/23 22:20 #

    DF//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구나! 어찌 이런 짧은 문장도 그토록 이해할 수 없게 쓰는 재주를 타고 난 것인가! 오오, 위대한 난필가로다! 너님의 위광은 머나먼 후세까지 길이길이 떨치리라!
  • DreamersFleet 2011/06/23 22:43 #

    야스페르츠/ 어쨌든 한수이남 멀리까지 미친 것은 사실이네. 풍납토성은 년대상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알고(물론 그쪽은 한쪽 설을 지지한다는 것은 알고 있고)있으니 내 입장에서는 논란있는 주장인 것 같음. 이 주장은 뭐 할 수도 있음. 차후 나도 뭔가 알게 되면 알려드리리다.
  • DreamersFleet 2011/06/24 00:18 #

    야스페르츠/ 또 내가 그대에게 도움이 못된 것은 그대가 나보다 많이 알기 때문일거요. 이해하시구랴. 마음은 굴뚝같지만 능력이 안되니.

    그리고 본인이 상관할 바 아닌 건 인정하오(앞에서도 밝혔든). 단, 내 찾아본 바로 저 인용 논문에서 한강유역에 대형원삼국집자리가 발견안된다고 하고 다시 풍납토성 환호내를 거론하였으니 이는 상호모순이며, 이 반례를 확장해 본다면 역시 한강을 건너뛰고 있는 점은 분명하오. (물론 반례가 하나 밖에 없기에 강력한 주장을 하고자 함은 아니오) 어쨌든 전후모순된 말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오. 그렇다고 본 포스팅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아니고, 방금 인용한 논문이 다소한 것으로 보여지지만 이상한 구절이 있다는 것이오.
  • 2011/06/23 22:3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3 23:17 #

    예맥의 일파가 고구려 아니었습니까? 으잉? ㄷㄷㄷ
  • 들꽃향기 2011/06/23 23:21 #

    아아. 주변 친구들에게 예맥하면 뭐가 생각나느냐~라고 하면 흔히 동예 그리고 옥저 등등을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말씀하신대로 고구려 역시 예맥의 일파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OYL
  • 대공 2011/06/23 23:47 # 답글

    오오...전투민족 한민족. 물론 변경이라는 한계도 있었겠지만...
    그시기의 기후도 알 수 있다면 좀더 좋겠긴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4 01:17 #

    고구려는 전투민족이라능. ㅎㅎ
  • 누군가의친구 2011/06/24 00:26 # 답글

    본문보다 난독증이 흥하는 포스트군요.ㄲ
  • 야스페르츠 2011/06/24 01:17 #

    젠장 ㅠㅠ
  • Shaw 2011/06/24 01:15 # 답글

    한가지, 한강 이남 지역에 대한 낙랑의 개입 가능성은 제 포스팅 보다는 아마 악질식민빠님 블로그에서 보셨을 것 같습니다.

    『낙랑문화연구』(2006)를 보시면 p234-235 에 이남규 선생님 글에서 영남이나 경기도 북부 일부 지역은 낙랑과 친연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했으나, 남한 서부 지역의 대부분은 낙랑의 무력 앞에 존입이 붕괴되어 장기간 자체 성장이 곤란한 상황이었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계십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4 01:18 #

    아... 악질식민빠 님인가요... 그쪽도 찾아봤는데 폭파하셨나봅니다. 없네요.
  • 굔군 2011/12/27 00:15 #

    말씀하신 그 포스팅이 이거 아님?

    http://munbba.egloos.com/2561297
  • 2011/06/24 01: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4 10:50 #

    ㄷㄷㄷ 그런 것까지... ㄷㄷㄷ
  • DreamersFleet 2011/06/24 09:48 # 답글

    야스페르츠/ 지금 정확한 좌표는 생각나지 않지만, 한강 이남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강력한 군사적 영향에 의해 대형 취락들이 비슷한 시기에 "무너진 흔적이 발견"된다는 포스팅도 본 적이 있다.

    ==> 인용된 논문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링크된 인용부만으로는 "무너진 흔적이 발견"이라는 것은 좀 무리고 단지 없어지고 새로 뚜렷이 등장하지 않는 정도인 것 같습니다. 확인후 수정 부탁해요. "무너진 흔적"이란 전쟁으로 파괴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데요 글쎄요 그것이 고고학적 상황으로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날 유적이 그리 많이 있을지 의문이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4 10:50 #

    헛소리 좀 그만하쇼. 바로 위에 댓글 안보임? 댁은 이제 댓글 달지 마쇼. 볼때마다 짜증나네 진짜.
  • 리얼스나이퍼 2011/06/24 12:51 # 답글

    야스페르츠는 굔군이라는 멀티 블로가 있었군.
    이러고도 다중 멀티 아이디 조사하라고 운영자에게 이메일을 보냈겠지 쯔쯔쯔
  • 야스페르츠 2011/06/24 14:08 #

    피식. 남들이 다 자기 같은 줄 아나?
  • 굔군 2011/06/24 15:08 #

    자기가 그러고 사니깐 남들도 다 그러는 줄 아는 모양이지? ㅋ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6/24 15:10 #

    오오미? 굔군님이랑 나랑 딱 1시간 차이로 글 달았으니 이것도 음모라고 우겨대겠구만. ㄲㄲ
  • 굔군 2011/06/24 15:11 #

    오오미? 그러고 보니...(!)
  • 굔군 2011/06/24 15:13 #

    이제 1분 차이로 댓글이 달렸으니 곧 이것도 음모라는 주장이 튀어나오겠군.
  • bergi10 2011/06/25 19:29 #

    ㅡ,.ㅡ 그냥 이런 댓글은 보기 싫어요.

    걍 니부터 댓글 달지 마세요.
  • 굔군 2011/06/28 00:39 # 답글

    그나저나 단 하루만의 활동으로 환드모트로부터 야스페르츠 님의 멀티 아이디라는 말을 듣다니, 저 아직 블로그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식민빠 인증인 건가효? ㅋㅋㅋ
  • 헛소리하네 2011/06/30 11:06 # 삭제 답글

    낙랑군의 번영은 수천기 이상 발굴된 고분을 통해서도 실증된다 할 수 있다. 이 시기 고분의 유물들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모습을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고분 수천기가 한나라 지배지 영역이라는 실증인가???

    무식한 캐소리 하시네.
  • 11 2011/06/30 11:14 # 삭제 답글

    일제에 의해 파견된 세키노는 관변학자가 유물이고 유적이고 우연에 우연을 거듭하면서 한반도를 쭉 몇 번 훑어보며 육지측량부지도에 근거하여 그곳을 답사하여 이곳이 무슨 한사군 토성이니 저기가 뭐니

    이런게 실증 고고학인가? 웃긴 소리 하시군.

    제대로 연구도 없이 토기도 왜국 지하창고에 수장되어 있고 우리나라 국립 박물관에도 쳐박혀 그나마 최근에 연구된 내용은 전혀 왜국 학자의 주장과 다른 내용인데.

    북한은 한사군 지배지 근거라는 목곽묘는 한사군 이전부터 이미 존재했다는 연구를 발표하고 있고

    토기 역시도 고분내의 부장품은 고조선 시대부터 있던 유력 그릇들이 계속해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상황에 잽식 식민사관만 아니면 전혀 낙랑군 헛소리 낼 이유가 없는
  • 11 2011/06/30 11:15 # 삭제 답글

    모먕새의 발굴이 진행되고 있구만.

    그리고 평양 바로 아래 황해도까지 고구려가 4세기 이전부터 이미 수중으로 들어온 흔적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뭔 웃긴 소리 작렬하시남
  • 야스페르츠 2011/06/30 14:27 #

    근거 좀 첨부하시면 참고하지요. 카더라 통신은 누가 말 못하남?
  • ㅋㅋ 2011/06/30 16:21 # 삭제 답글

    야수> 본인 글에 무슨 근거 있는가?

    그냥 뭔 횡설수설. 근거가 없다보니 이리저리 뭔 소리인지 이게 담백한 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6/30 18:55 #

    여기에는 중복되어서 안썼소만, 다른 글 중간중간에 보면 참고 논문 있수다. 읽어나 보시지요. 그리고 댁은 동북아역사재단 만큼의 공신력만 갖춰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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