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2 11:50

담백하게 풀어보는 낙랑군의 역사 (2) 역사

2. 축소

기원전 87년, 강철의 군주 무제가 세상을 떠났다. 강력한 힘과 의지로 한의 천하를 광활하게 확장하였던 절대군주의 사망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소제(昭帝)는 무제가 확장시켜 놓은 천하를 안정시킬 책임을 떠 안았다. 이미 무제 말년인 정화(征和) 년간(기원전 92~89)부터 확장은 중지되고 내치를 다지기 시작했던 바 있다. 여담이지만 연호 자체가 이렇게 직설적일 수가 없다... 征和라니... ㄷㄷㄷ

무제 말년에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소제의 즉위와 함께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 시기 소제는 무제가 시전한 무한 멀티(ㅡㅡ;;)를 정리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는데, 그 결과 기원전 82년 경에 동방변군 중 진번군과 임둔군, 남월지역의 담이군이 폐지되었다.

진번과 임둔군이 정리되는 기록에는 직접적으로 그 원인이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담이군의 폐지에는 분명 원주민의 잦은 반란이 원인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볼 때, 진번과 임둔군의 폐지에도 원주민의 반발이 일정 부분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반발로 인한 폐지라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도 있다. 실제 폐지된 3개 군 모두 정작 군만 폐지했을 뿐 대부분의 소속 영역이 고스란히 인접 군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앞서는 폐지라는 말을 썼지만, 엄밀히 말해서 행정정리나 통폐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조치를 통해 실제로 통치 자체를 포기한 영역도 상당 부분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진번군의 경우 원래 15개 현을 관할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나 통폐합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7개 현이 낙랑군에 편입되었다. 나머지 현들은 폐지되거나 편입된 7개 현에 통폐합되었을 것이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현이 사라진 셈이니 통폐합된 현들이 있다고 해도 상당한 영역이 폐지되고 방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동방변군은 큰 변동을 맞게 된다. 기원전 75년, 토착민의 반발로 인해 현도군이 북방으로 이치되었던 것이다. 이미 기원전 82년에 임둔군이 폐지되면서 임둔군 소속의 현들은 대부분 현도군으로 통합된 상태였는데,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현도군이 이치되면서 현도군 및 舊임둔군 소속의 현들이 다시 낙랑으로 이관되었다. 이때 낙랑으로 이관된 현은 모두 7개로, 흔히 영동7현이라 부른다. 역시 나머지 현들은 일부가 통합되었을 것이고 일부는 폐지되어 방기되었을 것이다.

한편 현도군은 북방으로 이치되면서 겨우 3개 현만 관할할 정도로 축소되었는데, 이로써 사실상 현도군은 요동군의 부속군과 비슷한 상태가 되었으며, 더 이상 동방변군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소제는 무제가 만든 멀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군현을 폐지하거나 통폐합하였고, 그 과정에서이건 아니면 무제 당시부터 지속되어온 것이건 간에 토착민의 반발도 함께 어우러져 동방변군은 일부 영역을 포기하고 나머지를 모조리 낙랑군에 통합시키는 행정간소화(?)를 이루어 낸 것이다.

이러한 통폐합을 통해 낙랑군은 25개 현을 관할하고 인구만 해도 40만이 넘는 초거대 행정구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불어난 덩치를 제어하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고, 동시에 이민족과 직접 접하게 되는 변군의 특성도 있고 해서 낙랑군에는 추가로 부속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부도위(部都尉)의 개설이 그것이다.

낙랑군에는 동부도위와 남부도위가 설치되었는데, 이들이 관할한 지역은 대체로 새로 편입된 진번과 임둔+현도 지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 임둔 및 현도 지역인 영동7현에는 동부도위가, 구 진번 지역인 7개 현에는 남부도위가 설치되었던 것이다.



3. 영역

통폐합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살아 남은 낙랑군의 영역은 꽤 정확하게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발굴된 초원 4년(기원전 45년) 호구부에 의해 해당 지역들은 일정한 권역을 이루며 관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낙랑군의 영역은 Shaw 님의 포스팅에서 잘 살펴볼 수 있다. 지도를 클릭하면 Shaw 님의 포스팅으로 연결된다.




아래 지도는 위키백과에 공개된 지도로서 명목상의 영역이 아닌 실질적인 통치 영역을 위주로 표시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남부 지역에 구멍 뻥뻥 뚫린 것이 보이는가... ㅡㅡ;; 이 지도에서도 낙랑군의 영역은 매우 현실적으로 표시되어 있다.




한편, 동방변군 설치 당시의 영역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편이다. 중국에서는 대단히 광대한 영역을 동방변군의 강역으로 주장하고 있는데, 그 남쪽 경계선이 대략 지금의 한강... ㅡㅡ;; 심지어 북한강도 넘어선다. ㄷㄷㄷ 아래 지도는 http://read.cucdc.com/cw/63819/135929.html 이곳에서 찾은 것인데, 심지어 저 지도는 통폐합 이후의 모습으로 엄청나게 과장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대략 예성강이나 임진강을 경계로 보고 있다.

※ 《아틀라스 한국사》에서 직접 촬영

진번군은 지금의 황해도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통폐합 당시 포기된 영역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는 편이다. 실제 국내에서 그려지는 많은 낙랑군 및 동방변군 지도에서 진번군은 당시 영역 거의 대부분이 낙랑군으로 통합된 것처럼 나타난다. 이부분은 개인적으로 조금 의문스러운 부분이긴 하다.

임둔군은 지금의 함흥평야 및 강원도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강원도 북부에 해당하는 지역은 통폐합 당시 포기된 영역으로 충실히 표현되는 편이다.

현도군의 경우 지금의 북한 자강도 및 함경남도 일부, 집안 일대까지 관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도군 자체의 중심지는 함경남도 함흥평야 근방인 옥저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영역이 초기 고구려와 일치하고 있다.

현도군에 대해서는 나도 상당히 아리송한 부분이 많은데, 초기 고구려와 영역이 일치하고 중심지 역시 고구려현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 때문에 현도군의 중심지가 집안 일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많은 동방변군 지도에서 초기 현도군의 중심지를 집안으로 잡고 있다.(아틀라스 한국사의 지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료 상으로 볼 때 현도군은 옥저 지역이 중심지로 나타나고 있어 최근의 인식은 달리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해당 지역의 지형으로 볼 때 과연 저런 형태로 군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집안이 중심지이든 옥저(함흥일대)가 중심지이든 그 사이는 함경-낭림산맥이 가로막고 있으니...... ㅡㅡ;;

아.. 뭔가 다시 머리 속이 까마득해지는 것 같으니 이 정도에서 그만두련다...



마지막으로 올리는 지도는 내가 위키백과 테러용으로 만들었던 자작 동방변군 지도... 현도군 남쪽 부분이나 중심지 부분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걸러서 보길 바란다... ㅡㅡ;;



덧글

  • hyjoon 2011/06/22 11:56 # 답글

    이제 어그로를 기다려 봅니다. (야!)
  • 대공 2011/06/22 15:12 #

    ㅋㅋㅋㅋ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6/22 16:59 #

    아니... 그런 의도가 아니라능! (버럭!)
  • 맹꽁이서당 2011/06/22 12:06 # 답글

    임둔군이 폐지된 지역에 동예가 성장하는 거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2 16:59 #

    아마도 그럴 겁니다. 임둔군이나 예와 관련해서는 다시 글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책과 논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엉망진창으로 꼬여가네요. ㄷㄷㄷ
  • 진성당거사 2011/06/22 12:27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2 16:59 #

    감사합니다. ^^
  • 사과향기 2011/06/22 12:37 # 답글

    잘봤습니다. 가운데 있는 지도는 제 기억으로는 동북민족원류라는 책에 있던 것과 같으네요.
    어떤 이유에서 그 책에 들어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책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고구려, 말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 야스페르츠 2011/06/22 16:59 #

    오.. 그런 책도 있군요.
  • Mr 스노우 2011/06/22 13:17 # 답글

    잘 보았습니다 ^^
  • 야스페르츠 2011/06/22 17:00 #

    ^^ 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11/06/22 14:39 # 답글

    무제 스스로가 죽으면서 반성문이라 할 수 있는 윤대의 조를 남겼으니 "征和"라는 연호의 책정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듯 하네요. ㄷㄷ

    소제폐하의 구조조정은 후세 사가들을 햇갈리게 만들고...어흑 ㅡㅜ 여튼 잘 읽고 갑니다. ^^
  • 야스페르츠 2011/06/22 17:00 #

    소제가 무슨 죄겠습니까... 무제가 벌여 놓은 걸 뒷수습하느라 고생만 했을텐데. ㅎㅎ
  • 리리안 2011/06/22 14:55 # 답글

    제국의 다이어트 과정이 복잡하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2 17:00 #

    다이어트라 할 것까지야... ㅎㅎ
  • 대공 2011/06/22 15:14 # 답글

    1.문명이 땡깁니다. 정복하고나면 문화영역이 쪼그라들었죠
    2. 예전부터 궁금했던게 멀티와 본진 사이에 고구려가 막고 있었다는 점이었는데 이유를 조금은 알거 같기도.... 애초에 스타팅 포인트가 대동강~청천강 유역이었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2 17:01 #

    1. 문명하시겠군요.

    2. 원래 고구려 지역까지 컨트롤하고 있었는데, 현도군이 이치되면서 어긋나게 된 셈이죠.
  • 솔까역사 2011/06/22 15:24 # 답글

    캄캄했던 낙랑역사가 점점 밝아 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2 17:02 #

    ㄷㄷㄷ 그 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책을 읽을수록 캄캄해져 갑니다. 이건 카오스야...
  • bergi10 2011/06/22 16:07 # 답글

    공무원들 벌벌 떨던 시기였네요.
  • 야스페르츠 2011/06/22 17:03 #

    저 당시 공무원은 힘들었을 겁니다.... 인구조사 하면서 한집 틀릴 때마다 벌금을 물어야 했다능... ㄷㄷㄷ
  • 쩌비 2011/06/22 17:12 # 삭제 답글

    이글루스 매식자들은 역사가지고 소설도 쓰는구나.
    재미없는 소설 잘읽었수다레
  • 야스페르츠 2011/06/22 17:31 #

    뭘. 댁들이 쓰는 욕설보다는 수준이 높을 텐데말야
  • 티무르 2011/06/22 17:35 # 답글

    중국측의 동방 변군 지도는 그야말로 호러블하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2 20:31 #

    충격과 공포입니다. ㄷㄷㄷ
  • 누군가의친구 2011/06/22 21:19 # 답글

    전쟁으로 영토를 왕창 늘려놓으면요? 벌인 범위에 비래해서 비용이 들지 말입니다. 무제가 그때문에 철과 소금에 세금먹인건 그놈의 비용탓이고 말입니다. 아무튼 소제가 저런 조치를 취한건 무제가 벌여놓은걸 유지할만한 비용이 없던 탓이다고 봅니다.ㄱ-

    뭐 서양쪽 가면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옛 서로마의 영토를 차지했지만 그 치세동안 쓴 막대한 비용때문에 그렇게 오래 유지는 못했었으니...

    동서양사를 막론하고 전쟁은 돈이 듭니다. ㄲ
  • 야스페르츠 2011/06/23 00:35 #

    언제나 일을 벌리는 놈 따로 수습하는 놈 따로인 법이죠... ㄷㄷㄷ
  • 명림어수 2011/06/22 23:43 # 삭제 답글

    지도 잘 봤습니다.
    압록강-청천강 사이의 장성이 아직 남아 있을까요?
    흔적으로라도 말이죠.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에 저런 장성이 필요했을지는 의문입니다.
    현장답사를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죠.
  • 야스페르츠 2011/06/23 00:36 #

    저도 뭐 잘 모르겠습니다... 재령강장성을 진장성이라 추측하기도 한다던데 ... 일단 통일이라도 되 봐야 뭐가 나오겠죠. ㅡㅡ;;
  • 굔군 2011/06/22 23:46 # 답글

    저는 설치 당초 진번군의 영역은 임진강까지는 왔었고, 이후 군현의 축소-통폐합을 거치면서 예성강으로 후퇴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번군 소속 15현 중 폐지된 8현의 관할 구역이 아마 예성강-임진강 사이의 지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저나 진번의 위치에 대해서는 북진번설과 남진번설이 대립하고 있는데, 이병도의 논증 이후로는 남진번설이 거의 통설로 자리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개설서 중에는 아직도 진번군의 위치를 청천강 이북으로 비정하는 북진번설에 입각한 지도가 실려있는 것들이 많으니, 참 희한한 일입니다.

    뭐, 물론 이것만 보더라도 학계가 이병도의 설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주장이 개소리라는 건 분명하지만요.
  • 야스페르츠 2011/06/23 00:36 #

    두계마왕의 위광은 학계에 가득합니다. (응?)
  • Warfare Archaeology 2011/06/23 10:38 # 답글

    아~저 위에 갈색으로 된 저 지도. 흥미롭습니다. 호오~

    저렇게 지도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 같네요~ㅋ
  • 야스페르츠 2011/06/23 11:18 #

    위키에는 주로 지도를 저런 식으로 올려 놓더라구요. ㅎㅎ
  • Warfare Archaeology 2011/06/23 11:19 #

    흐음. 저는 처음 보는 형태라...

    실질적인 지배범위를 어떻게 추산했는지는 모르지만...상당히 흥미롭습니다.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지도를 만들 때에도 고려해볼 부분인 것 같습니다.

    암튼 감사~위키는 잘 안 가봐서리...ㅋ
  • 야스페르츠 2011/06/23 15:01 #

    지배범위 추산이라는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행정구역의 치소 및 주변 지형, 그리고 실제 거주 한계 등을 연계해서 검토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사실 기존의 지도는 치소로 알려진 점을 기준으로 그냥 최외곽선만 이어놓은 형태인 것이 대부분인데, 그러다보니 사실상 무인지경이나 마찬가지인 곳도 영토인 것처럼 그려지기 십상이지요. 이 지도의 요나라를 보시면 아주 분명한 차이점이 보이실 겁니다. (참고로 .jpg까지 복사해서 주소창에 넣어 주세요 ^^;;)

    http://ja.wikipedia.org/wiki/%E3%83%95%E3%82%A1%E3%82%A4%E3%83%AB:China_Song_Dynasty.jpg
  • Warfare Archaeology 2011/06/23 15:07 #

    와우~~~깜짝야!!!!!!!

    암튼...저도 참고하고 앞으로 지도 만들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

    감사감사~지도 한장이지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셨네요~~ㅋㅋ
  • dd 2011/07/03 15:55 # 삭제 답글

    요즘에도 이런 식으로 지도로 장난치면서

    식민 사관 그대로 읊조리는 사람이 있구나 ㅋㅋ

    쭉 보면 본인 유리한 댓글 아니면 삭제해 버리고 ㅋ
  • 야스페르츠 2011/07/03 17:27 #

    안녕? 이 댓글 삭제 안하면 어떡하려구? 근데 이 댓글이 나한테 유리한 건 맞아. 그러니 삭제 안할께. ㄲㄲ
  • 123 2011/07/05 21:53 # 삭제 답글

    현도군은 고구려보단 그 시원세력(?)인 졸본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현도가 낙랑처럼 지배밀도가 오밀조밀하지 못했을거라고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7/06 09:39 #

    그렇겠지요. 여러 논문들에서 낭림-함경산맥을 관통하는 교통로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런 내륙 교통로가 있다면, 그 중요성은 아주 컸을 것이고 그것을 중심으로 군현이 설치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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