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0 19:41

담백하게 풀어보는 낙랑군의 역사 (1) 역사

※ 지난 고조선사 연재에 이어 계속되는(?) 낙랑군의 역사 연재가 되겠다. 고고학이라든가 다른 복잡한 문제를 다룰 능력은 되지 않고, 그냥 내가 찾아 볼 수 있는 한도 안에서 낙랑군을 필두로 하는 한군현의 역사를 간략하게 연재해 보려 한다. 어디까지나 낙랑군의 부침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가 중심이 될 것이고, 각종 발굴을 기초로 한 낙랑군 사회의 모습 등 최근의 다양한 연구 성과는 능력이 닿는다면 건드려 보고 싶지만 아마 어려울 것 같다. 여러 제현들의 가차없는 지적을 바란다.


1. 설치

기원전 108년(전한 무제 원봉 3년), 위만조선이 1년여에 걸친 항전 끝에 멸망하면서 한나라는 새로이 점령한 조선 땅에 3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낙랑, 진번, 임둔이 바로 그것이다.

낙랑군이 설치된 곳은 고조선의 중심지역으로, 지금의 평안남도 일대이다. 진번군과 임둔군은 각기 위만조선이 80여 년 전에 정복했던 지역으로 원래는 진번과 임둔이라는 국가 혹은 부족집단이 거주하던 곳이다. 위만조선 당시에도 이들 지역은 별도의 행정구역처럼 편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난 뒤 고조선의 기존 지방행정구역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중국식 군현을 구성하였던 것이다.

이듬해인 기원전 107년에는 현도군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이로써 흔히 이야기하는 한사군이 성립되게 된다. 이 연재에서는 이들을 통칭할 때는 동방변군으로 표현하기로 한다.


한의 동방변군은 설치 초기부터 상당한 난항을 겪었던 것 같다.

설치된지 겨우 3년이 지난 원봉 6년(기원전 105년)에 기후(幾侯)에 봉해졌던 옛 위만조선의 왕자 장항(張降)이 조선, 즉 낙랑군 내부에서 모반을 획책하다가 처형당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회청후(澅淸侯)에 봉해졌던 옛 위만조선의 니계상(尼谿相) 삼(參) 역시 천한 2년(기원전 99년)에 조선인 도망자를 은닉해 주었다가 체포되어 옥사하기도 했다. 그 외에 열후에 봉해진 5명의 조선 출신자는 모두 봉작을 후대로 잇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그나마 삼이나 한도(韓陶)가 오래 버틴 축에 속하지만 그래봤자 20년도 버티지 못했다. 이러한 조선 출신 열후들이 광탈 당한 것에 낙랑군을 비롯한 동방변군의 사태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것도 그렇게 무리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한편 새로 설치된 동방변군의 군리(郡吏)는 주로 바로 인접한 요동군에서 충당되었다. 동방변군에는 한의 행정체계를 수립할 인재풀이 빈약하였으니 이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도 동방변군 전체에 한의 내군(內郡)과 같은 행정체계가 그대로 이식되었으리라 보기는 어렵다. 토착적인 행정체계도 어느 정도 용인되면서 그것을 포용하는 군정(郡政)이 실시되었을 것이다.



한무제 시기에는 외정을 활발하게 펼쳐 다양한 지역에 변군이 설치되었다. 이때 설치된 변군에는 다양한 통치가 시도되었고, 최근에는 그것을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다양한 목간 자료가 발견되어 변군 통치의 실상을 많이 밝혀주고 있다. 이들 변군의 설치에서 주목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 사민의 실시이다. 돈황 지역이나 남월 지역에는 대규모의 사민에 대한 기록이 직접 남아 있다. 그러나 동방변군에는 직접적으로 사민이 이루어졌음을 전하는 기록이 전무하다.

이러한 특이성을 대체로 2가지로 해석한다. 동방변군 지역 자체가 농경민을 중심으로 하며, 상당한 수준의 국가 체계를 이미 경험했던 만큼 굳이 한족을 사민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정체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 지적되며 이와 더불어 당시 위만조선에도 상당한 수의 중국 유이민이 있었던 만큼 더더욱 수월하였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사료에 기록될 만큼 대규모의 사민이 없었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꾸준한 사민은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낙랑을 비롯한 변군 지역은 죄인을 보내는 유배지와 비슷한 기능을 하였으며, 실제 사민의 상당수는 면형을 대가로 한 죄수들의 이주였다. 그런 만큼 꾸준히 발생하는 크고 작은 죄수들이 지속적으로 사민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편 목간 자료를 통해 한의 변군 통치는 의외로 강력한 군현 조직을 강요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예조에는 동방변군의 통치와 별개로 토착 군장 세력이 상당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데, 뜻밖에도 토착 군장들의 조직이라 생각되었던 후(侯), 읍군(邑君), 삼로(三老)가 당시 한의 내지에서도 통용되던 일종의 지방 유력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운영되었던 조직이었던 것이다.

즉, 토착 세력에 대해 일정부분 그들의 기득권을 용인하기는 했지만, 반대로 그러한 기득권 자체를 군현 통치 체계 안에서 허용되는 특권으로 제한하면서 강력하게 통제했던 것이다. 흔히 낙랑군을 이야기하면서 군현 통치 조직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고 내부적으로는 토착 세력이 계속 유지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한데, 반드시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는 증거가 확인되었다고 하겠다.


여하튼, 이렇게 설치된 동방변군은 강철의 군주 효무제의 강력한 통치 하에서 힘겨운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To be Continued....


※ 참고문헌

권오중, 〈'낙랑사' 시대구분 시론〉, 《한국고대사연구》53권, 2009
김병준, 〈중국고대 簡牘자료를 통해 본 낙랑군의 군현지배〉, 《역사학보》 189집, 2006


덧글

  • 대공 2011/06/20 20:41 # 답글

    그래도 꽤나 한나라와의 연결관계가 약했었군요.
  • 야스페르츠 2011/06/20 20:48 #

    흠... 제 글의 어느 부분이 연결관계가 약했다고 판단하시게 하는지 말씀 좀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정 반대의 의미로 글을 썼는데요.. ㅡㅡ;;
  • 대공 2011/06/20 20:53 #

    아... 초기에 위만조선의 위력자들이 다 광탈한거 때문에 초기에는 좀 불안했겠구나...해서 말이죠;
    물론 강하다는 의미는 이해했습니다만, 데오니 달비같은 소리를 해버렸네요;
  • 한단인 2011/06/20 20:48 # 답글

    읍군, 삼로에 관한 사실은 저도 미처 모르던 사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0 20:49 #

    김병준 선생님의 논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 논문을 읽으면서 등에 식은땀이 다 흘렀다능. ㅡㅡ;;
  • 한단인 2011/06/20 20:52 #

    김병준 선생님 논문은 몇달 전에 쇼님이 언급을 해주셔서 받아는 놓고 잊어먹고 있었는데 야스페르츠님 글을 보고서야 받아둔 걸 기억하게 되더군요. OTL

    아마 그때 김병준 선생님 논문은 파촉 지배 관련 논문만 읽고서 뒤에는 시간없다는 핑계로 안본 거 같습니다.(응?)

    암튼 뭔 얘기가 있는 지는 대강 알았으니 굳이 안 읽어도 될 듯...(뭐야 임마?)
  • 海凡申九™ 2011/06/20 21:14 # 답글

    조선 4군의 읍국들에 대한 지배는 남월 9군들과 비교하면 꽤 재밌을 듯 합니다
  • DreamersFleet 2011/06/20 23:04 #

    쥔님! 그건 쥔님이 몸소 하셔야 할듯 하옴니다. ㅇㅋㅋㅋㅋㅋㅋㅋㅋ.
    부톽해요~~~~~~~~~~~~~~~~~~~~~~
  • 海凡申九™ 2011/06/20 23:27 #

    나의 종, DF//

    이놈아, 넌 낙장, 낙후와 고대월남문화에 대한
    기초지식도 없는 주제에 하라, 마라냐?

    종놈이면 종놈답게 굴거라
  • 야스페르츠 2011/06/20 23:43 #

    그런 건 저기 서울대나 고려대 가서 해달라고 하셈.
  • 海凡申九™ 2011/06/21 00:27 #

    아따 엄니!!
  • hyjoon 2011/06/20 22:12 # 답글

    아무래도 한의 동방변군 문제가 비교사적 고찰을 제일 요구하는 부분 아닐까 싶습니다. 남월 9군이나 서역에 설치한 군현들과 비교해서 말이죠.
  • 야스페르츠 2011/06/20 23:44 #

    마침 그쪽으로 비교를 잘 해 놓은 논문을 찾은지라 아주 충격과 공포를 제대로 느끼고 있슴돠.
  • asdf 2011/06/20 22:43 # 삭제 답글

    이 시리즈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 근데 그녀석이 안오니 뭔가 허전한데요? ㅋㅋㅋ
    좀있다가 오려나...
  • 야스페르츠 2011/06/20 23:44 #

    시리즈라니요... 이제 막 시작인데. ㅋㅋ
  • 리리안 2011/06/20 22:56 # 답글

    다음편 기대하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0 23:44 #

    감사합니다. ^^
  • 명림어수 2011/06/20 22:58 # 삭제 답글

    하회가 기대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0 23:44 #

    ^^
  • 소하 2011/06/20 23:24 # 답글

    자꾸만 북한에서 발견된 죽간과 목간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말 보고 싶습니다. ㅋㅋ
  • 야스페르츠 2011/06/20 23:44 #

    통일만 되면 아오.... 끝짱일텐데 말입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6/20 23:3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그 화력은 딴쪽으로 몰린터라 말입니다.ㅎㅎ;;
  • 야스페르츠 2011/06/20 23:45 #

    ㅋㅋ 저야 뭐 그분이 안오시면 더 고마울 뿐...
  • DreamersFleet 2011/06/21 00:20 # 답글

    야스페르츠님이 말씀하신 논문을 찾아보았습니다. "里耶秦简"은 里耶古城遗址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최근 낙랑문서들은 무덤에서 출토되는군요. 공문서를 사적으로 가져가는 경우(이것이 어느 나라의 풍속인지), 그것을 무덤에다 묻는 것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 DreamersFleet 2011/06/21 00:35 #

    그리고 소하님과 야스페르츠님은 이런 것들에 비해 최근 북한의 발표한 죽간에는 읍단위가 아니라 현별호구수만 나와서 이상하다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인가 보군요.
  • DreamersFleet 2011/06/21 00:39 #

    여담입니다만, 제 생각에는 무덤에서 출토된 낙랑문서는 일종의 전리품이 아닐까요. 당시 한반도 인들은 대규모 연맹을 이루어 군현에 자주 처들어가는 무력 항쟁을 벌였고, 당시 관청에 들어가서 약탈 노획한 문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대체로 위신재나 자랑스런 물건을 묻는데 민정문서를 묻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어색하지 않습니까? 아마두 고구려와 동맹을 한 낙랑국의 장수가 낙랑군에 쳐들어갔다 가져온 것을 묻은 듯.
  • 굔군 2011/06/21 02:54 #

    1. 한대의 호구 조사 목간들도 대부분 무덤에서 출토됩니다. 서향 호구부나 동양현 호구부처럼 묘주의 이름까지 밝혀진 것들도 있습니다.

    2. 한대의 호구 조사는 행정 단위에 따라 개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향에는 향급 단위의 호구부가, 현에는 현급 단위의 호구부가, 군에는 군급 호구부가 각각 존재했습니다. 낙랑군 호구부에 현별 호구만 기재된 것은 그다지 의혹을 제기할 거리도 못 됩니다.

    3. 미안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호구부와 같은 민정 문서가 무덤에서 출토되는 것은 전혀 어색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군현 관리의 부장품으로 함께 묻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 DreamersFleet 2011/06/21 03:49 #

    굔군/ 감사합니다.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 아니라, 그런 사례는 뭔가 중앙권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구글링을 해보니 이상하게도 몇 안되는 사례중에 낙랑군이 제일 큰 급이군요.
  • DreamersFleet 2011/06/21 03:50 #

    그러고 보니 말씀하신 군-현-향이 각기 낙랑군-동양현-서향 요렇게 3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암튼 감사합니다.
  • 굔군 2011/06/21 08:34 #

    1. 호구 조사가 군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럼 그런 것들을 조사하도록 명령을 내린 주체가 누구였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그런 자료들이 상급 기관인 자사부나 중앙 정부에는 보고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해서 단순히 그렇게 생각해 버릴 게 아니라, 애초에 호구 조사가 이루어진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2. <윤만한간> 중에 '동해군 집부'라고 아실랑가 모르겠는데, 이건 낙랑군 호구부보다도 훨씬 규모가 크고 방대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최근 발견돼 아직 공개되지 않은 '남군 원년 호구부'라는 것도 있습니다. 보다시피 모두 군급 단위의 행정 문서들이죠.

    그리고 언급하신 '리야진간'만 해도 향급 단위의 호적 문서입니다만? 이것만 알고 계셨어도 호구 자료가 출토된 군현향이 달랑 3개뿐이라는 말씀은 못하셨을 텐데...참 안타깝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1 11:14 #

    낙랑국... 피식...
  • DreamersFleet 2011/06/21 12:18 #

    굔군/ 암튼 그렇군요. 그냥 묘에 묻었다길래 순간적으로 뭔가 비오피셜한 조사였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꽂혔습니다. 역시 묘주가 군현관리라는 데는 어느 정도 의심이 있는 것 같군요. 그 문제도 차차 해명이 되겠지요. 더 많은 자료가 발견된다면. 잘 알았습니다.
  • 굔군 2011/06/21 18:32 #

    DreamersFleet//의심이 있기는요.

    서향 호구부 출토 묘주 '주언(周偃)' - 작위 공승(4급), 건원 1년(BC 140) 남군 강릉현 서향의 유질색부 역임, 원광 2년(BC 133) 8월 남평위로 승진, 남군에서 통계장부 관련 직무 담당.
    동양현 호구부 출토 묘주 '사맹(謝孟)' - 임회군 동양현의 공무원 추정.
    동해군 집부 출토 묘주 '사요(師饒)' - 동해군 공조사 역임.

    이런 사실을 알았어도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랑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피식.
  • DreamersFleet 2011/06/22 00:53 #

    그래서 "어느 정도"라고 했던 것이죠. 뭐 그런가 보군요. 북한 측에서도 일단 관리가 도망왔다고 했으니 묘주를 관리로 추정할 뭔가가 나오긴 했나보군요.ㅋ
  • 야스페르츠 2011/06/22 01:10 #

    DF// 여기 북한의 발표를 곧이 곧대로 믿는 반동분자 추천이요..... 는 농짓거리고, 아무튼 북한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어쩌자는 겁니까. 오히려 그 반대인데.

    요새 북한 학계의 고고학 관련 발표들을 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고 합디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 듣는다고. 북한 학계 내부에서도 체제 유지를 위해 대놓고 사실대로 발표는 못하지만, 듣는 세계 학계에서는 사실을 아주 확실하게 찝어 낼 수 있도록 묘하게 발표를 한다지요.
  • 굔군 2011/06/22 22:06 #

    DF//뭐, 북한 학계의 주장을 그대로 믿자는 건 그냥 병신일 뿐이고...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대체 타국으로 망명한 공무원이 자기 나라의 행정 문서는 뭣하러 들고 올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인데...
  • DreamersFleet 2011/06/22 22:36 #

    굔군/ 이렇게 ㅄ 인증이 되는 겁니까? 뭐 역사나 그쪽을 전공하신 분이라면 이런데 동조하면 ㅄ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일반적으로 심한 말인 듯합니다.

    딱히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능성은 있을 수 있습니다. 망명자의 경우 자신이 가져온 정보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중에 상대적으로 중요한 문건은 낙랑국 관리측에 넘겨주고 결국 달랑 민호수만 적은 것만 자신이 가지게 놓아두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굔군 2011/06/22 23:21 #

    DF//미안하지만 그런 식의 가설은 호구부가 출토된 현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동에 그 낙랑국인지 나발인지가 존재했다는 것이 먼저 증명되어야 성립 가능한 겁니다.

    일단 그 병신 같은 낙랑국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부터 증명해 보시죠?
  • 야스페르츠 2011/06/23 00:39 #

    가능성이야 있겠지요. 한 10의 -50승 정도의 확률이려나? 보통 그렇게 택도 없는 수준의 가능성은 그냥 없다고 하는 겁니다. 차라리 로또를 사는 게 더 확률이 높겠네요.
  • 굔군 2011/06/21 02:02 # 답글

    일단 "낙랑군 호구부"의 발견으로 인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낙랑군의 군현 지배는 형식적인 것이었고 사실상 토착 세력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졌다는 시각은 크게 후퇴한 것 같습니다.
    주민들에 대한 호구 조사가 실시되었다는 것 자체가 중국 내지와 다를 것 없을 정도의 강력한 문서 행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 야스페르츠 2011/06/21 11:15 #

    그렇죠. 행정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강력한 통치가 행해졌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토록 오랫동안 낙랑군이 존재할 수 있었겠지요.
  • bergi10 2011/06/21 14:42 # 답글

    다른 연재가 시작됐네요 ㅎㅎㅎ

  • 야스페르츠 2011/06/22 00:05 #

    ㄷㄷㄷ 이 연재 때문에 논문을 몇 편을 읽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책도 질렀다능... 미쳤나봐요... ㅠㅠ
  • 들꽃향기 2011/06/21 14:53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다른 선학들의 연구에서도 동방변군에 대한 대규모 사민정책이 없었음을 지적하지만, 저 역시 대규모는 아직 사료에서 찾기 힘들어도 언급하신대로 소규모 사민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2 00:06 #

    낙랑으로 죄인을 유배시킨 기록은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소규모 사민은 분명 존재했을 겁니다.
  • 빈바위 2011/06/21 15:44 # 삭제 답글

    안심입니다. 몇년전 모 이상한 대학의 교수가 인터넷 신문에서 쥬신 족 어쩌구 하는 장광설을 오래
    연재하고 인기가 있어, 파시스트적 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 쪽 글을 보니 정말 안심입니다. 이런 합리적 사고방식을 전개하는 글도 많이 있어서.
    우리는 노년층이라 정말 환빠들이 주위에 많아 짜증이 가끔 나는데. 신세대가
    많이 발전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2 00:06 #

    저도 파시즘이 세간에 확산되고 있는 것에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걱정스러운 일이죠.
  • 솔까역사 2011/06/21 16:02 # 답글

    이걸 오래 기다려왔습니다.
    낙랑을 모르니 조선과 고려가 연결이 되지 않아 빈 공간이 있었는데 이 연재가 그 빈 공간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낙랑도 분명 한국사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2 00:07 #

    그, 그럼 직접 책을 찾아 보시지...ㅎㅎ ㅡㅡ;;
  • 2011/06/27 18: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6/27 19:17 #

    괜찮은 책입니다. 물론 제가 쓴 것처럼 쉽지는 않아요... 개별 지리 비정이나 사회-문화적인 내용, 주민구성 등등 완전 전문적인지라. ㄷㄷㄷ
  • 파랑나리 2011/07/01 21:55 # 답글

    낙랑군을 비롯한 동방변군은 중국판 임나일본부라고 할 만합니다. 임나일본부는 허구로 판명되었지만 중국의 동방변군은 레알입니다. 중국이 동방변군을 갖고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근거로 지껄였던 주장을 지껄일 것은 뻔한 일입니다. 지배에 난항을 겪든 말든 분명 통치기관을 두고 지배했습니다. 박노자는 "우리 안에 외부인이 살았던 게 뭐가 문제냐?"고 했지만 일본이 남선경영론을 주장하듯이 중국도 동방변군을 갖고 북선경영론을 주장할 텐데 이때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래 니 말이 맞다"하면서 묵묵히 참아야 합니까?
  • 야스페르츠 2011/07/01 22:27 #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지금 유럽 전체에 어그로를 끌고 있어야죠.

    그런 헛소리에 일일히 반응하고 있는 게 더 한심한 겁니다.
  • 파랑나리 2011/07/01 22:36 #

    그렇다면 임나일본부 떡밥을 공들여 반박하고 부정한 것은 뭡니까? 그냥 뻘짓한 겁니까?
  • 야스페르츠 2011/07/01 23:03 #

    임나일본부는 사실이 아니니까요. 또한 저는, 그리고 모든 학자들도 임나일본부가 사실이라면 그건 그거 대로 인정하고 넘어갈 겁니다. 사실인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사실인데도, 일본이 지배한 것은 용납할 수 없으니 부정하실 겁니까?
  • 파랑나리 2011/07/02 15:30 #

    학자들이 임나일본부를 부정한 게 사실이 아니어서 부정한 걸까요? 김형석이 '분국설'을 내놓아 임나일본부를 증명하는 근거가 역이용 될 수 있는 걸 보여 주기 전까지 사실인 줄 알았습니다. 조선 후기에 역사서만 봐도 임나일본부를 사실이라고 "착각"했고, 그 민족주의자인 이병도조차 (임나일본부 부정에 실패해서) 그게 무슨 무역기관이 아닐까 둘러댈 정도로 당시 임나일본부는 거의 사실로 간주되었습니다.(출처 [거꾸로 보는 고대사] 박노자)

    임나일본부가 사실이 아닌 건 다행입니다. 야스페르츠 님이 위의 댓글에서 "헛소리"라고 하셨지만 그 헛소리는 엄청난 힘을 지닌 헛소리입니다. 지금도 임나일본부를 버렸어도 남선경영론이라고 말바꾸어서 계속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하는데 임나일본부가 사실이었으면... 어익후! 지금쯤 한국이 얼마나 당할지...

    그렇다고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동방변군은 레알 있었죠. 다만, 중국이 커지면서 우리가 중제강점기를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동방변군이 지닌 파괴력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입니다. 이탈리아를 얘기하셨지만 여기는 유럽이 아닙니다.

    추신 : 쓰고 보니 역사얘기라기보다는 정치얘기에 가깝네요.
  • 굔군 2011/07/02 15:44 #

    (이미 예전에 matercide로 글쓸 때부터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 얘기지만,) 중국이 동방변군을 근거로 북선경영론을 주장할 거라는 생각 자체가 님의 허튼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파랑나리 2011/07/02 16:05 #

    동북공정 깨지면 그때는 또 모르죠. 중화공정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 굔군 2011/07/02 17:01 #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걱정을 해야 하나요?

    그리고 설령 중국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 한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그딴 개소리에 일일이 반응을 보이는 게 더 웃기는 짓 아닌가요?

    중화공정이요?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중국에서도 똑같이 주장해 왔던 건데,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웃기지도 않는 중화공정이니 북선경영론이니 하는 것의 근거가 된다는 겁니까?

    대체 중국을 얼마나 비이성적인 야만인으로 보고 있으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중국이 진짜로 그런 짓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이미 진작에 낙랑군 따위는 이용해 먹고도 남았어요. ㅡㅡ;;

    지금도 중국 역사 교과서에는 한나라 영토가 평양까지 이어져 있고, 그게 중국 학계의 정설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인들은 전부 그런 지도로 배운다고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님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의 한국 영토도 중국으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중국인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다가 한번쯤 무시하는 발언(나라 크기가 조그맣다거나, 옛날엔 우리 속국 아니었냐는 얘기)은 나올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대 놓고 땅 내놓으라고는 말 안 해요. 당연하죠. 지들도 생각이 있는 사람인데,

    물론 영토 얘기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데서야 몇번 봤지만요. 가끔씩 한반도랑 일본, 연해주까지 편입시켜 놓은 지도 그려놓고 좋아하는 건 보긴 했는데, 우리나라 초딩들이 고구려 영토에 중국 땅 절반 가량 합병시켜 놓고 자위질하는 거랑 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입디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님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그런 극우적인 주장은 마치 우리나라의 환빠들처럼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망상들일 뿐이지, 현실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일단은 전혀 현실성도 없는 얘기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현대 세계에서 대체 중국이 무슨 힘이 있어서 한반도를 집어삼킵니까? 아직까진 미국 눈치 살펴야 하는 입장인데. 경제력이야 중국이 따라잡았을지 모르지만, 군사력으로 미국 이기려면 아직은 멀었죠. 그리고 중국이 집어삼킨다고 하면 다른 나라들은(러시아, 일본 등) 잘도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19세기 들어서야 부각되기 시작한 임나일본부설하고, 이미 천년 넘게 정설이었던 동방변군 하고 어찌 같습니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중국은 이미 그런 주장 몇백 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구요. 최근에 와서 밝혀진 게 아니예요. 파랑나리 님이야 최근에 알았을지 모르지만요.

    즉, 중국이 진짜로 동방변군을 내세워 중화공정을 주장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이미 진작에 하고도 남았을 거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일단 현실을 직시하시고, 또 중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부터 버리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동방변군이 지닌 파괴력이요? 그딴 거 없습니다.
  • 굔군 2011/07/03 02:44 #

    그리고 생각 나서 한마디 덧붙여 둡니다만, 영산강 유역에서의 일본식 전방후원분의 발견 덕분(?)에, 이제 남선경영론이 전혀 근거가 없는 헛소리라고는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임나일본부설'과는 별개로요.

    뭐, 기분은 나쁘더라도 일단 증거가 나온 이상 어쩌겠습니까. 사실은 그냥 사실로서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 파랑나리 2011/07/03 18:36 #

    굔군//잠깐만요. 저도 그거 배웠습니다만 거기서 나온 유물이 일본열도에서 나온 게 아님으로 판명되어서 그게 남선경영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기분 나쁘지만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여야지요. 만약에 정말 한반도가 북쪽은 중국의 지배를(이건 레알) 남쪽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면? 적어도 한반도 전체가 남의 영토였다면? 박노자는 우리 안에 외부인이 살았다는게 뭐가 문제냐지만,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안에 외부인이 살은 게 얼마나 큰 데미지인지...

    그리고 중국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시라지만 저것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동방변군이 지닌 파괴력이 없다는데 너무 안이한 낙관이 아닐까요? 뭐 동방변군을 이용한다면 벌써 썼다고 했지만 민족주의가 발흥한 건 근대 이후이고 지금은 다른 방법을 쓰니 그 방법이 궁해지면 또 모르죠. 그리고 중국이 힘을 길러서 미국과 맞먹거나 아님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든가 하면... 아니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직접 영토를 점령하지 않아도 지배할 방법은 있습니다. 물론 중국은 아직 미국처럼 그럴 힘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추신 : 이건 아무리 봐도 역사얘기가 아니라 정치얘기 같아요.
  • 123 2011/07/05 21:37 # 삭제 답글

    /파랑나리

    님이 인정하듯 이건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 이야기입니다. 즉 정치의 영역으로 풀 문제를 역사의 문제로 들이대니 해법이 안나오는 것이지요.

    중국이 실제로 북한을 자기 영토로 할수 있는 가능성 있습니다. 이른바 북한붕괴 시나리오로 정치학자들이 가정하는 것중 제1이 중국대리정권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붕괴되지않게 외교전략을 어떻게 할것인가 이건 정치의 지혜로 풀 문제이지요.

    중국의 경제적 성장 가능성 속에서 동북아시아가 중화경제권으로 편입될 수 있는 위험성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 역시 정치의 영역으로 해결할 문제입니다.

    즉 낙랑군을 인정해서 그게 바로 북선경영론으로 이어이지는게 아니라 저런 정치경제적 문제가 쌓여서 그 선전도구로 낙랑군 지배가 이용되는거지요. 본말이 전도된 것이지요. 낙랑군을 부정한다고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까요.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이 감소될까요.

    다른 영역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를 역사의 문제로 가져오시면 안됩니다.
  • 파랑나리 2011/07/06 15:22 #

    일리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임나일본부 떡밥을 생각하면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먼저 굔군님은 임나일본부 떡밥이 19세기 들어서야 부각되었다고 했지만, 17세기 초에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당시 아직 일본이 남선경영론을 주장할 정치경제적 문제(식민지배)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이미 그 선전수단이 연마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이 더 이상 (공식적으로)식민지배를 하지 않아서 임나일본부 떡밥의 구실이 사라졌는데 왜 남북의 학자들은 논파를 해야 했을까요? 식민지배가 끝난 뒤에도 임나일본부 떡밥이 충분히 제 기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지금도 임나일본부만 부정했고, 남선경영설은 요서경략떡밥 마냥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중국이 당장 한반도를 넘보지 않아도 한반도를 도모하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동방변군을 활용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남북한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부추기는 데 동방변군만큼 좋은 근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임나일본부 떡밥으로 말미암은 해악을 풀기 위해 역사에서 풀어야 할 문제를 무시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정치의 영역이지만 뿌리는 역사이기 때문에 역사로 풀 수 밖에 없습니다. 동방변군도 마찬가지 입니다.(그렇다고 동방변군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국에 대해 경계심과 위기감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수많은 민족들에 대해 민족말살정책을 펼치고 거의 성공에 이른 나라입니다. 이것이 완성되면 인류역사에 아주 끔찍한 전례가 될 겁니다. 물론 중국이 지금 당장 위험한 건 아니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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