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27 00:34

북연(北燕)은 고구려의 속국인가? 역사

종종 광개토왕 및 장수왕 시기의 고구려가 강력한 제국이었다는 주장의 근거로 북연을 거론하는 경우가 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또한 종족(의 禮)을 베풀었다. 且敘宗族" 는 문구를 두고, 고구려가 북연을 속국화했다는 것이 그 기본적인 골자이다. 과연 북연은 고구려의 속국이 되었을까?

※ 담기양의 역사지도집 중 북연 지도 (부흥 카페의 thwmunba님의 글에서 퍼옴)


북연에서 풍발 일족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모용보의 양자이자 고구려 출신인 고운(高雲)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407년 7월의 일이다. 고운은 고화(高和)의 손자인데, 이 고화는 342년에 모용황이 고구려를 털어버렸을 때 잡혀온 고구려인이다. 이때부터 대대로 연의 신하가 되었다고 한다.

고운은 모용보가 태자였던 시절부터 뛰어난 무예실력을 인정받아 호위대장을 맡았으며 모용보가 황제에 즉위한 뒤에도 계속 그를 시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때는 397년, 모용보가 북위의 공격을 받아 수도 업을 버리고 요서로 피난을 가던 무렵이었다. 당시 후연 왕실은 완전 콩가루집안이어서 모용보는 피난을 가는 와중에도 아들 모용회와 내전을 치러야 했다.(전체적인 내용은 이 링크를 참조) 모반을 일으켰던 모용회는 기세좋게 용성을 공격했다가 패배했는데, 그래도 세력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운이 밤을 틈타 100인의 결사대를 이끌고 습격하여 이를 궤멸시켜버렸다. ㅡㅡ;; 모용보는 이런 고운의 공적을 높이 사서 그를 건위장군에 임명하고 석양공에 책봉하였으며, 심지어 양자로 삼기까지 했다. 어지간히도 고마웠나보다. 여하튼 이렇게 모용보의 양자가 되면서 그는 모용씨로 성을 고치게 된다.


쿠데타를 일으킨 실권자가 꼭두각시로 명망을 갖춘 사람을 왕위에 올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고운의 즉위 역시 같은 경우였지만, 여기에 대해서 추가적인 요인이 더 거론되기도 한다. 400년부터 시작된 고구려와의 적대 관계가 그것이다.

고구려와 후연의 전쟁은 크게 3시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후연 측에서 고구려를 공격하여 700여 리를 점령한 400년, 그리고 고구려 측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요동 일대를 정복한 402~404년, 마지막으로 후연 측에서 다시 반격에 나서 요동 일대를 공격하지만 삽질만 하다가 흐지부지된 405~406년이다. 406년을 끝으로 고구려와 후연의 전쟁은 기록 속에 나타나지 않지만, 분명 407년 당시에도 고구려와의 적대 관계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고구려 출신의 고운을 왕위에 옹립한데는 이러한 고구려와의 관계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고구려는 고운의 즉위에 대하여 "종족의 예"를 베풀며 오랜 적대 관계를 끝맺고 화친을 청하였다. 풍발의 계산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런데 바로 이 사건, 고운의 즉위와 광개토왕이 종족을 베푼 사건을 두고 고구려가 북연을 속국으로 삼았다는 해석이 나타난다. 대체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을까?

이웃한 소국에 대하여 친밀한 관계의 국왕을 옹립시켜 속국화하는 경우는 역사 속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유명한 사례로는 로마제국과 아르메니아의 사례가 있을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에 의하면 로마와 파르티아는 중간에 낀 아르메니아를 두고 티격태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친로마파 왕과 친파르티아파 왕이 교체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원간섭기의 고려 역시 역대 국왕이 모두 원에서 인질 생활을 하였고 종종 원의 입김에 국왕이 교체되기도 했다.


그런데.....
고운의 즉위에는 이런 "일반적인 속국"의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고운을 옹립한 것은 풍발이며, 기록 어디에도 풍발의 쿠데타 자체에 고구려가 손을 썼다는 내용은 없다. 고운의 즉위가 고구려의 눈치를 보기 위함이라는 추측은 "개연성"이 있지만, 고구려가 손을 써서, 혹은 고구려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쳐서 고운을 즉위시켰다는 추측은 "개연성"이 낮다.


이후 북연의 역사를 살펴 보아도 고구려를 종주로 한 속국으로 보기는 어렵다.

꼭두각시 국왕이었던 고운은 즉위한지 고작 2년 만인 409년에 죽었으며 뒤이어 실권자였던 풍발이 즉위한다. 광개토왕이 사신을 보낸 것이 408년의 일이었으니, 고운의 퇴장은 그야말로 효용가치가 사라진 직후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기록 상으로는 풍발을 견제하기 위해서 고운이 키운 친위세력이 모반을 일으켜 고운을 죽였고, 이 모반을 풍발이 진압하고 즉위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시기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볼 때 풍발이 고운을 죽였을, 혹은 모반을 사주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이런 음모론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고구려와의 직접적인 연결점이었던 고운이 일찌감치 퇴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후로도 북연은 끊임없이 북위와 적대관계를 유지했으며, 몇차례 북위의 공격으로 떡실신이 되도록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런데, 고구려는 어느 정도 선을 두기는 했어도 대체로 북위와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북연이 멸망하기 전까지 북위에 조공을 보낸 것이 3차례나 되며, 그 중 2번이 435년 한 해 동안 보낸 것으로 이때 장수왕은 북위의 책봉을 받고 국휘(國諱)까지 하였다. 그리고 장수왕이 책봉을 받았던 바로 이때 북연은 북위에게 털릴대로 털려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속국이 신나게 털리고 있는데 속국을 터는 바로 그 나라에게 조공을 바치고 책봉까지 받는 시츄에이션이라니?? 이건 이거대로 흠좀무다.


그리고 마침내 436년, 북위가 북연을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한 그 해, 북위는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북연을 공격할테니까 개입하지 말라고 통보해왔다. 고구려에 통보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만약 북연이 고구려의 속국이라면, 북위의 통보는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너희 속국을 우리가 접수할테니까 힘없는 너희는 그냥 얌전히 속국 망하는 꼴이나 보고 있어."

그러나 북연이 속국이 아니라면 북위의 통보는 해석이 쉽고 자연스러워진다. 말 그대로 북연이 도와달라고 해도 도와주지 말라는 것, 그리고 더불어 이 전쟁이 고구려를 치려는 것이 아니니까 안심하라는 것.


물론, 고구려는 북연이 망하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그럴거면 털리고 있을 때부터 좀 도와주지 그렇다고 북연의 멸망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도 아니다. 이 전쟁에 고구려가 개입한 명분은 어디까지나 북연 측에서 보낸 SOS 신호였기 때문이다. 북위가 최후의 일격을 날리기 전인 435년, 북연왕 풍홍은 멸망할 상황에 대비해서 고구려에 비밀리에 사신을 보냈다. 자기네 일족들의 망명을 신청한 것이다. 고구려는 이 망명 요구를 받아들였고 군대를 보내 북연의 왕족들을 구출하여 돌아왔다. 이 과정 어디에도 "멸망하는 속국의 친고구려파 왕족을 구출한다"는 뉘앙스는 발견할 수 없다. 아니 그보다 속국이 망하고 앉았는데 종주국은 대체 지금까지 뭘 한거야?


그리고 가장 멋진 부분은 바로 이 다음이다. 고구려에서 망명생활을 막 시작하게 된 북연왕 풍홍에게 장수왕의 사신이 찾아왔다. 사신은 풍홍을 "용성왕 풍군(龍城王馮君)"이라 칭하였다. 그런데 풍홍의 공식적인 칭호는 황제와 동급인 천왕(天王)이다. 즉, 천자라는 말씀. 당연히 풍홍은 머리 끝까지 열을 받았고(慚努), 칭제(稱制)를 통해 그를 꾸짖었다. [弘慚怒,稱制讓之。] 칭제란 천자를 대신해서(稱) 제(制)를 내리는 것으로, 섭정 혹은 천자의 부재시 실권자가 다스리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저것 복잡한 이야기를 다 제하고 보면, 결국 풍홍은 비참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제가 상전이라고 생각했다는 의미가 된다.

장수왕도 이런 풍홍의 헛짓거리에 질렸는지 풍홍을 지방에 머물게 했으며, 그나마도 다시 옮기게 했다. 명백히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셈인데, 그 상황에서도 풍홍은 고구려인들을 업신여기고 마치 자기 나라에 있는 양 설쳐대면서 정형상벌(政刑賞罰)을 제멋대로 했다. 풍홍이 이렇게 깽판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수왕은 풍홍을 죽이지 못했다. 비록 시중드는 인원을 몰수하고 태자 풍왕인을 인질로 잡아가긴 했지만 그것도 깽판을 치고 난 다음의 일이다.

한편, 풍홍은 이렇게 디스견제를 받고 난 뒤에도 여전히 어느 정도의 힘 또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독자적으로 남조의 유송에 사신을 보내 망명을 신청할 수 있을 만큼. 이 망명 신청으로 인해 풍홍의 몸값이 떨어지고 결국 살해당하기는 했지만... 장수왕은 풍홍을 살해한 뒤에도 그에게 시호를 올려 예우해주었다. 그 시호라는 것이 무려 소성황제(昭成皇帝)... 황제다.

과연 이런 풍홍의 행적들이 속국, 그것도 멸망한 뒤 망명한 속국의 왕이 할 수 있는 것들일까? 누가 보아도 풍홍은 고구려의 상전으로 행세했고 고구려 역시 은근히 조롱하기는 했을 지언정 그것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했다. 얼마나 상대하기가 껄끄러웠으면 수도에 두지도 못하고 한적한 시골로 뺑뺑이를 돌렸을까?(응?)



북연은 소국이었다. 소국의 운명이라는 것이 강대국의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가는 것이라지만, 북연은 그것을 거부(?)했다. 압도적인 거인을 상대로 북연은 항상 으르렁대고 있었고, 수시로 얻어맞아 떡실신당했다.

이런 벼랑끝 외교의 배경에는 북연, 아니 그 전신인 후연과 전연이 가지는 엄청난 권위가 있었을 것이다.

한때 관동의 패권을 장악하였던 연나라. 비록 연나라가 선비족라는 오랑캐에 의해 건설된 국가라 할지라도 그 뒤에는 중국식의 법제를 받아들였고 다른 이민족 국가, 고구려와 같은 국가에 대해서도 기존 중국의 정책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것은 그대로 의미를 가지게 되고 무시 못할 권위가 된다.

고구려에 대해 북연이 현실적으로 약소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자세를 유지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고구려 또한 명분이라는 측면에서 감히 그런 고자세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북연이 막 건국되었을 당시, 고구려는 북연에 사신을 보내 같은 종족이 왕이 된 것을 축하하며 화친을 맺었다. 그 전까지 으르렁대며 싸워댔지만 그래도 그 시대의 외교라는 것이 "중국"에 대해서 무조건 으르렁대기만 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삼국사기》에는 생략되었지만, 《자치통감》의 해당 기사에는 고구려가 북연에 사신을 보내는 것을 가리켜 "聘"이라 적고 있다. 내 얄팍한 상식으로 보건대, 저 글자는 조빙(朝聘)을 말하는 것이다. 영토의 절반 가까이를 꿀꺽 삼켰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는 후연-북연에 대해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 것이다.

어쨌거나 중국은 중국이고 고구려는 이민족이다. 완벽하게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동방의 모든 국가들은 중국과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도 중국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았다. 전쟁이 나면 모든 외교 관계가 단절된다던가, 한쪽이 완전히 나가 떨어질 때까지 서로 모든 걸 포기하면서 싸우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괴상하고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그 시대에는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었다. 중국이라는 거인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힘과 권위를 주는 존재였다.


고작 명분에 불과할지 몰라도 북연은 고구려보다 상국이었다. 고구려가 제아무리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다고 해도 북연이 가지는 권위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물론, 실질적인 의미에서 북연은 북위와 고구려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외교라는 것이 겉으로 보여지는 명분도 있지만, 실질적인 이해관계도 있게 마련. 이런 게 명분과 실리가 아니었을까.


ps. 뭔가 글의 앞뒤가 안맞는 느낌... 뭐 그냥 그러려니 한다...

ps2. 글을 쓰는 과정에서 집에 있는 마왕이병도 역주 《삼국사기》의 관련 기록을 읽다가 급 뿜어버렸다.

홍(弘)은 본래 우리를 업신여기었으나 (우리의) 정형상벌(政刑賞罰)이 오히려 그 나라(北燕)에 못하지 아니하였다.
弘素侮我,政刑賞罰,猶如其國。

ㄷㄷㄷ 대체 어떻게 해석하면 저런 결과가 도출되는거야... ㄷㄷㄷ 두계마왕님의 "우리민족 카와이~"하는 부분이 만만치 않다고들 하는데, 여기서 그것을 확인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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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닉버그 2011/05/27 00:49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저같이 딱딱한 문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잘 읽히게 글을 잘쓰시네요
  • 야스페르츠 2011/05/27 08:21 #

    ^^ 감사합니다. ㅎㅎ
  • 대공 2011/05/27 00:53 # 답글

    두계마왕?? 누구죠?

    수고하셨습니다 ㅇㅇ
  • 야스페르츠 2011/05/27 08:21 #

    두계마왕 모르십니까? 식민사학(ㅡㅡ;;)의 수괴 두계 이병도... ㅎㅎ
  • 대공 2011/05/27 09:20 #

    아아....;;;;
  • 에드워디안 2011/05/27 01:04 # 답글

    풍홍의 신변 문제를 놓고 송 문제가 고구려에 압력을 가하기도 했지요?
  • 야스페르츠 2011/05/27 08:22 #

    압력이라고 할 건 아니고... 풍홍이 먼저 유송에 러브콜을 보냈으니까요. ㅎㅎ
  • 명림어수 2011/05/27 01:22 # 삭제 답글

    장수왕이 풍홍을 "용성국 풍왕" 이라고 부르며 하시했다는 얘기도 어디서 들은것 같고요..

    저때 고구려에서 흡수한 후연세력이 상당했는지,
    개로왕이 북위에 고구려를 공격해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국서에서도
    "풍씨의 무리들이 옛날을 잊지 않고 있다"
    라고 하며 꼬셨지요.
  • 야스페르츠 2011/05/27 08:32 #

    기록은 좀 다르빈다... "풍씨의 남은 무리가 건너와서 고구려가 초큼 쎄졌다능"이라고 북위한테 징징댄거죠. 북위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아픈 옛 기억을 건드린 셈...
  • 한단인 2011/05/27 08:40 # 답글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고운 사례는 좀 미묘하긴 하죠. 풍발은 본문처럼 망명 뒤에도 상전행세를 하려 들었으니까...ㄷㄷㄷ
  • 야스페르츠 2011/05/27 11:05 #

    뭐랄까... 풍발이 명분상으로 상전이었던 건 그렇다고 쳐도 나라가 망하고 망명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그런 자세를 유지했다는게 좀 충공깽이죠. ㄷㄷㄷ
  • 모용씨 2011/05/27 09:52 # 삭제 답글

    이 글을 올리시게 된 계기는 역사문 카페에서의 북연 관련 토론에도 있는것 같은데, 역사문 카페에도 올려보심이 어떨런지요?
    반응이 기대되지 않으세요?^^
  • 야스페르츠 2011/05/27 11:07 #

    뭐, 그다지... 역사문에 신경을 끈지 오래라서요... 그 토론은 그냥 심심풀이로다가.. ^^
  • hyjoon 2011/05/27 10:33 # 답글

    그놈의 제국이 뭐길래........
  • 야스페르츠 2011/05/27 11:07 #

    크고 아름다워요. ㅎ
  • Real 2011/05/27 11:42 # 답글

    북연에 사신을 보낸것을 단순하게 명분적 권위의 상국이라는 인식보다는 지금 말씀하신 풍홍이 친고구려세력이라 할수 있는 고운을 몰아냈기 때문에 고구려가 풍홍세력이 갖고있는 반고구려성향의 인식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한게 아닐까요? 저는 중국의 사서 기준으로 사신문제를 보는건 비판적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고구려의 그 외교노력이 성공해서 풍홍세력을 반고구려성향을 보이게 하지 않음으로서 북연세력이 나중에 과거 후연처럼 고구려의 주요 요충지이자 발전지역인 요동지역에 불란을 만들거나 안보적 위협을 가하지 않는 형태를 만드는 안보적 형세를 구축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충분히 고구려 힘이었다면 저는 북연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어려운 것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그런 외교노선을 펼친건.. 장수태왕의 남방정책의 영향탓을 크게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Real 2011/05/27 11:45 #

    문제는 고구려의 이런 입장과 다르게 풍홍의 북연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야스페르츠님이 주장하신 대로 받아들임으로서 저런 사건이 나타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풍홍의 보호 문제의 경우에도 이용가치를 두었다고 본다면 저는 언제든지 만일 북위와의 전면전이나 고구려의 북방영토 확보에서 북연지역인 요서지역의 고구려의 정통성 확보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군요. 고조선의 영토문제(이 문제는 야스페르츠님과 제 의견이 완전 다르지만 말입니다.)와 더불어서요.(이는 실제로 괴뢰정부 형태에서 필요사항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단순하게 지방에 뺑뺑이 돌렸다는 의미는 사실상 저는 귀향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 높여준 시호역시 이러한 괴뢰정부의 정통성 명분 문제라고 봐도 되고요. 실제로 신라가 고구려 멸망이후 한성에서 고구려부흥을 지원하면서 했던 방식과 동일선상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5/27 12:13 #

    아...한가지 잘못 아신게 있는데요. 광개토왕이 북연에 사신을 보낸건 "고운"이 즉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풍발은 반고구려세력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굳이 고운을 옹립한 것도 고구려하고 어떻게 줄을 이어서 당면한 적대관계라도 해소해 보자는 의도가 짐작되고요..그리고 그 의도가 맞아떨어지자마자정말 거짓말처럼 고운이 제거되고 풍발이 즉위하죠. 적어도 반고구려세력이라 보긴 어렵습니다.
  • 김갑환 2011/05/27 15:49 # 답글

    아 떡밥들이 다 쉬어버렸으니 재미가 없네요
  • 야스페르츠 2011/05/27 20:20 #

    재미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ㅡㅡ;; 역사문에 광역 도발 시전을... ㄷㄷㄷ
  • 을파소 2011/05/27 18:42 # 답글

    이렇게 잘 설명하셨는데도 고구려를 속국이 털려도 멸망 직전까지 아무 것도 못한 나라로 비하하는 포스팅이 올라와 안타깝습니다.(응?)
  • 야스페르츠 2011/05/27 20:21 #

    오오 고구려는 대인배. 속국이 털리는데도 신경도 안쓰던 대인배. 오오
  • 명림어수 2011/05/27 23:50 # 삭제 답글

    아 제가 "낙랑 유민들의 수구초심" 운운 ... 과 착각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5/28 00:20 #

    ^^
  • Grelot 2011/05/28 00:03 # 답글

    으아......역시 역사는 어렵군요..덜덜덜..

    그런데, 고구려 사람이 지금 우리를 보고 "오~ 나의 자손들~"이라곤 안 할거 같단 말임다. 그냥 남쪽 오랑캐라 생각하고 토벌하러 오지 않을까 생각해봄다..
  • 야스페르츠 2011/05/28 00:21 #

    내래 남조선 오랑캐들을 발라주갔서!!
  • 마법의활 2011/05/28 10:35 #

    그렇지는 않지요. 엄연히 조선 시대에서도 우리는 신라, 고구려, 백제를 다 이었다고 보았고 명나라 장군들도 조선은 고구려 후신으로 보았는데요...... 그리고 신라-고려 교체는 네부 왕조 교체가 아니라 엄연히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넘어뜨린 겁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1/05/28 10:32 # 답글

    그러고보니 국내 게임개발 업체중 H.Q.Team이 개발한 게임인 천년의 신화에서 고구려 미션내에 구출하는 미션으로 나왔었지요.

    PS: 한때를 풍미했던 국내 패키지 게임 개발 업체들의 현재 모습을 보면 깡소주를 마시고 싶은 심정입니다. 아흑흑...(제가 S모 게임사 광팬인 이유때문에...ㄱ-)
  • 야스페르츠 2011/05/29 11:20 #

    비바 소주!
  • 으메 2011/05/28 15:46 # 삭제 답글

    과연 고구려가 한국인의 직접적인 조상인지 의문이며 북연이 고구려 속국이란 주장은 터무늬없는 구라.

    당시 고구려에 속한 국민들은 대부분 당나라로 끌려가거나 거란족 같은 부족에 흡수됬을것임

    국수주의에 찌든 바보들 때문에 진실을 진실로 바로보는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 마법의활 2011/05/28 18:55 #

    근거도 없는 소리를 이렇게 자신있게 하다니....자기가 그저 믿고 싶은 소리를 줄줄 질러대면서 자신만은 국수주의에 찌든 바보에서 탈피한 양 생각하는 얼치기들이 많아 큰일입니다. 후삼국 시대에 신라 영토 2/3를 갈라먹은 사람들은 한마디로 다 투명인간들이었나 봅니다.... 고굴까만 되면 뭔가 있어보이는 트렌드는 도데체 누가 만들었나 모르겠음.
  • 야스페르츠 2011/05/29 11:21 #

    으메// 도찐개찐이구만요. 스스로도 괴물이라는 걸 모르시는 걸 보면.
  • 마법의활 2011/05/28 18:57 # 답글

    그냥 제 생각인데 북위는 왜 고구려를 시원하고 산케하게 안 때려줬는 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는 북주나 북제도 집적거렸던 고구려고, 전연 때야 고구려가 약해서 그랬다치더라도 후연은 그래도 광개토 대왕의 고구려한테 당당히 도전해서 그럭저럭 잘 싸웠는 데 한가닥 했던 북위는 왜 그렇게 고구려한테 잘 해줄려고 노력했는 지 모르겠네요.
  • 베리타스 2011/05/29 01:55 #

    그 왜 있잖습니까, 동아시아 4강 체제... 고구려, 북위, 남조, 유연.
  • 야스페르츠 2011/05/29 11:21 #

    고조 그런게 국제 관계 아니겠슴메? -_-;;
  • ㄱㅁ 2011/05/29 16:59 # 삭제 답글

    신라에 편입된 금관가야출신들이 진골로 편입되었죠. 고구려 개소문의 아들들도 당에서 실질적인 힘은 없지만 어느정도 명예직은 받았습니다. 비록 약소국이라 해도 왕인 자신을 우습게 본다는것에 자존심이 상했을지 모르죠. 그리고 아마 북연의 왕은 혼자오지 않았을수도 있습니다. 상당한 부하를 데리고 왔겠죠. 인구는 국력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들을 포섭하려했을수도 있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이 두려웠을수도 있죠. 더구나 경우야 어찌되었던 자기나라로 망명온 왕을 죽인다면 신뢰가 떨어지죠
  • 야스페르츠 2011/05/29 21:57 #

    풍홍이 자존심 때문에 그냥 큰소리 한 번 친거라고 해도 그 다음의 행동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큰소리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명분상의 상국이라는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북연이 건국 단계에서부터 속국이었다면 저런 식의 자존심 내세우기는 절대 나타날 수 없으니까요.
  • 들꽃향기 2011/05/29 23:43 # 답글

    그동안 일이 바쁘다고 굴러가는 형국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일이 있었군요....더군다나 종족의 예를 베풀었다는 것이 속국으로 '추정'되기도 힘든데, 이를 '단정'하여 결론을 짓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그나저나 논쟁 자체와는 별개로, 고운(모용운)의 옹립이 단순한 차명계좌(...)가 아닌 고구려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한 일종의 재스츄어라는 관점은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저 자신은 풍씨가문이 북연을 장악하기 직전에 내세운 허수아비 정도로나 가볍게 생각했는데, 확실히 고구려-연 간의 관계가 대립적 정국에서 어느 정도의 정상적 관계로 돌아가는 '획기'가 이문제와 연관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덕분에 저 역시 시각의 범주를 넓히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
  • 야스페르츠 2011/05/29 23:59 #

    어? 이런 의견을 처음 접하셨나요? 한국사의 해당 파트에서는 거의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던데.. ㅎㅎ
  • 들꽃향기 2011/05/30 00:12 #

    그런가요? ㄷㄷ 요즘 고대사 개설서를 잘 안본 저의 무식이 여기서 드러나는군요. OYL
  • 2011/05/30 21:1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rt 2011/06/19 10:53 # 삭제 답글

    역사를 볼때에 객관적 시각이 제일 중요한 법입니다 북연이 고구려의 지원으로 성립되었다는건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고구려의 지원이 없었다면 풍발은 고운을 옹립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이 직접 왕위에 올랐을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아무 배경도 없는 사람을 옹립시킨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쿠데타를 주도한 자가 직접 왕위에 오르는 것이지
  • 2011/06/19 11:24 # 삭제 답글

    북연은 고운의 즉위때부터 고구려의 속국이 된게 확실하지요 고운대부터 성립된 북연은 풍홍대까지
    고구려의 영향력하에 있었고 고구려가 풍홍을 용성왕 풍군이라 부른 사실과 북위의 공격때 북연지도층이 고구려에 망명만 생각하려고 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속국인게 확실하지요 북연이 고구려의 속국이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졌겠습니까?

    고구려가 풍홍을 용성왕 풍군이라고 호칭한건 당시 고구려의 북연에 대한 우월한 외교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지요 용성왕은 고운대부터 그렇게 불려왔으니 천왕이란 호칭은 남북조에
    망명했던 풍씨일족들의 일방적인 말에 의거한 것이고 북연내부의 호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왕내제의 형식처럼

    고구려가 북연에 절대적인 직접적인 내정간섭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외교의례에서 우월한 위치로 간접적인 내정간섭을 취했을 것이지요
    천왕이란 호칭은 이런 배경하에서 보면 나타날수 있겠지요

    그리고 풍홍이 상전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간에 그것이 북연이
    상국이라는 증거가 될수 없지요 풍홍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간에 그게 북연이 상국이고 자주국이라는 증거가 될수 있습니까
    국왕개인의 생각과 별개로
    국가시스템과 지도층 대다수가 친고구려 성향으로 굳어져 있다면
    아무리 풍홍개인이 상전이라 생각해도 현실에서는 별 소용이 없지요

    조선시대 효종은 반청성향이 강하여도 현실적 여건으로 대청 사대외교를
    공개적으로 단교하지 못하였듯

    이처럼 국왕 개인의 망상적 생각이 국가의 외교적 위치현실장벽을 뛰어넘지 못하지요

    풍홍의 케이스도 이런 이치로 보면 자연스럽지요
    풍홍은 미친짓을 한것이고 비현실적으로 자살행위나 다를바가 없는 행동을
    한것이지요 자신의 주제파악도 모른채 친고구려파가 대다수인 자국의 신하들을
    등돌리게 하는 것이고


    고구려가 풍홍을 용성왕이라고
    부르는건 그 이전 북연군주의 일반적 호칭으로 불려왔고

    자신들 아래로 취급했지요 북연지도층 대다수가 그러했고
    고구려 북연 외교의 구조적인 면이었지만

    풍홍은 이런 고구려에 종속된 국가적인 한계와
    자신의 현실적 위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장수왕에게
    대든 것이지요

    유송으로 망명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고려하면 풍홍은
    친고구려 의지가 확고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북연내 친고구려파의 거센 입김으로 타의적으로
    고구려로 망명될수밖에 없지요

    반강제 납치라는 씩으로
  • 32 2011/06/19 11:39 # 삭제 답글

    고구려가 풍발의 쿠데타에 도움을 줬다는 정황은 풍발의 동생 풍비가 고구려에 갔던 사실만 봐도 명확합니다 자치통감에 풍발의 동생 풍비가 난리를 피해 고구려에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모용희의 학정때문에 망명한 것으로 보이지요 진서 모용희 제기에서는 쿠데타 직전 모용희는 풍발과 장흥에게 체포령을 내려 풍발이 도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풍발의 동생 풍비도 이런 시기에 고구려에 망명했을 것으로 생각되지요 모용희의 체포령으로 도망다니는 풍발은 군대를 거느리지 못한 상태라 자체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성사시킬 능력이 희박하여 고구려와 같은 타국의 원조를 받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고운과 풍비가 그 증거이지요
  • fe 2011/06/19 12:18 # 삭제 답글

    풍홍은 말하자면 북연판 선조이지요 선조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상국인 명에
    망명하려고 했듯이 풍홍도 선조와 마찬가자리로 북연의 상국 고구려로 망명할수밖에 없었지요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리고 풍홍의 망명 의혹에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북위의 침략을 당했을때 이상하게 고구려에 원병요청을 하지 않고 망명요청만 했다는점 그리고 망명지로 유송으로 선택하지 않고 유독 고구려로 선택했다는점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의 지도부가 외적의 침략으로 자신들의 신변위기가 초래되었을때 그 위기를 구원할 타국의 원병같은 군사지원적 요소가 희박하다면 망명을 선택하는게 다반사입니다 풍홍은 북위의 침략에서 국가를 보존할 생각이었다면 망명요청전에 고구려에 원병요청을 하는게 일차적인데 풍홍은 원병요청을 하지 않고 망명요청만 하였지요 북연이 고구려와 대등한 관계라면 수많은 원병요청을 했을 것이고 안좋다고 해도 여러번의 설득작업이 있었을 것인데 북연은 그런 노력 한번도 안하고 고구려로의 망명만 생각했습니다

    이는 비공식적으로 묵시적으로 고구려의 일방적 눈치를 보는데에서 기인했기 때문이지요
    고구려는 남하정책으로 북위와 후연전쟁에 개입할 뜻이 없다고 북연 지도부에
    묵시적으로 흘렸고 북연 지도부는 이런 고구려의 눈치에 따라 원병요청을 생략하고
    망명요청만 한것이지요 국토를 버리고 인구만 데려오라는 고구려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 것이지요


    그리고 망명지로 유송을 생략하고 고구려만 우선적으로 선택했다는 정황만
    고려하면 말이지요
  • 야스페르츠 2011/06/19 19:14 #

    아주 소설을 쓰세요.
  • 32 2011/06/20 20:35 # 삭제 답글

    소설이 아니라 사료에 나타난 정황사실들을 근거로 분석한 것이지요 북연이 고구려의 상국이라는 주장이야말로 더욱 소설 아닙니까? 그렇게 북연이 고구려의 상국이었다면 자국 군주가 자신들의 제후국 고구려에게 용성왕이라는 낮은 칭호로 대우받을수가 있을런지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말이 안되잖아요 그리고 북위의 침략으로 무너질때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후국인 고구려의 병력이라도 빌려서 위기를 타개하려는 그런 기본적 생각을 못하고 제후국의 입김만 강화시켜줄 망명만 우선적으로 고집하다니

    이런 북연지도층의 행태는 상국으로서의 모습과 거리가 먼 것으로
    속국지도층의 일반적 모습과 가까울 뿐이지요

    백제부흥운동을 이끈 백제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 부여풍은 그래도 나당연합군과 싸우다가 힘에 부쳐서 근거지인 주류성을 빼앗기자 부득이한 사정으로 우방국 고구려에 망명했지만
    풍홍등 북연지도부는 북위의 침략을 당하자 외교적인 원병수단을
    이용치 않고 고구려로의 망명만 생각했을 정도로

    외세의존이 심각했던 나라이지요
  • 야스페르츠 2011/06/20 20:46 #

    분석이 아니라 망상이지요.

    A : 풍홍은 고구려에 망명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마치 자기 나라에 있는 것처럼 설쳤다.

    결론1 : 풍홍은 자신이 고구려보다 상위에 있는 군주라고 생각했다.

    결론2 : 풍홍이 제 주제를 모르고 미친짓을 한 거다.

    어느 쪽 결론이 소설입니까?? 외세의존 운운하는 것만 보아도 귀하의 망상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겠습니다.
  • 32 2011/06/21 21:00 # 삭제 답글

    망상은 야스페르츠님이 더욱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망상가의 시각에 기초하여 당시 사실에 대해 그렇게 주장하고 계시지만


    풍홍 개인의 시각에선 자신이 상전이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당시 객관적 현실에선 풍홍의 생각을 망상이라 치부했지요

    야스 페르츠님은 당시의 현실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현실감이 동떨어진 풍홍 개인의 입장으로 당시 사실을
    보려한게 문제이지요

    풍홍에 대한 님의 명제 결론내용을 보면

    A : 풍홍은 고구려에 망명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마치 자기 나라에 있는 것처럼 설쳤다.

    결론1 : 풍홍은 자신이 고구려보다 상위에 있는 군주라고 생각했다.

    결론2 : 풍홍이 제 주제를 모르고 미친짓을 한 거다.

    이런 문제결론을 한가지 비유적인 예로 들어보면

    풍홍과 조선 효종의 경우를 생각하면

    A 효종은 약한 조선의 국력현실을 고려치 않고
    강대한 청을 정벌하여 이길수 있다라고 생각하여 청을 정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결론1 : 풍홍은 자신이 고구려보다 상위에 있는 군주라고 생각했다

    비유결론 : 조선 효종은 오랑캐인 청나라군주보다 자신을 상위에 있는 군주라고 생각한다

    결론2 : 풍홍이 제 주제를 모르고 미친짓을 한 거다.

    비유결론: 효종은 국제적 현실감과 동떨어진 어리석은 짓을 한 거다

    비유적인 예를 들어선 결론중 어느쪽이 사실이고 소설입니까?

    외세의존은 망상이 아니라 당시 북연지배층의 대외정책의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북연지배층은 북위의 침략을 당하자 북위군을 몰아낼
    군사적 대책보다는 대외로 도망칠 궁리만 했을 정도로
    자체적인 안보위기 대응태세가 부실했던 국가이지요

    이런 부실한 자세의 국가는 외세에게 방위를 의존하려고 하는게
    일반적이지요

    예를 들어

    임진왜란때 선조등 조선지도부가
    명으로 망명할 시도까지 하려고 했던게 무엇입니까?

    바로 망명대상국 명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와 의존이라는
    조선의 사대외교 구조가 그런 행태를 만들어낸 것이지 않습니까?

    풍홍등 북연지도부는 그보다 더한 행동을 하였지요

    선조와 풍홍은 공통점이 있지요
    외적의 침략을 당하자 맞아서 싸울 궁리 보다는
    대외로 도망칠 궁리만 했던게 선조와 풍홍의 공통점이지요










  • 야스페르츠 2011/06/21 23:45 #

    1. 효종은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효종은 북벌 계획을 세웠을 망정 현실을 무시하고 북벌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효종의 북벌 계획은 청나라는 전혀 몰랐거나 알았어도 무시했습니다. 무엇보다 효종은 실제로 오랑캐 청나라 황제보다 자신이 "문화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중화의 후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청나라가 모르는 한도 안에서 말이죠.

    2. 풍홍은 망명생활을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풍홍은 그런 상황에서도 대놓고 자기가 상전인양 행동했습니다. 고구려는 그걸 알고 풍홍을 친절히 갈궈주었지만 그래도 풍홍은 더 설쳤습니다. 한마디로 대놓고 자기가 상전이라고 떠들었습니다.

    풍홍이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미친짓을 한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풍홍이 미친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개 속국의 국왕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풍홍의 행동이 이뤄질 수 있는 배경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풍홍이 미친놈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가리켜 망상이라 합니다.

    택이나 있는 비유를 하시지요.
  • 32 2011/06/22 20:25 # 삭제 답글

    효종의 북벌계획은 당시 조선의 대내외 사정으로 본다면 비현실적이었고 청이 중국대륙을 장악해가고
    조선이 잦은 흉년으로 경제난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북벌계획을 추진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지요 이경석등 신하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북벌계획에 반대하였고 효종은 그 계획을 미루었죠

    그러나 시간이 지체되면 청의 중국대륙지배체제는 확고해지기 때문에 시간은 결코 조선의 편이 아니었지요
    현실적으로 효종의 북벌계획은 무모한 것이지요

    그리고 풍홍이 그런 비현실적 무모한 태도를 보인 배경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 달리
    풍홍이 실제로는 고구려 망명에
    소극적이기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닐까요?

    어느 군주가 자국국토를 버리고
    망명을 하게 되면 일개 국가의 군주보다는 망명대상국의 일개 신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존심이 드센
    군주들은 대외망명을 원치 않지요

    사료의 기록대로 풍홍이 자신의 생살 여탈을 거머쥔 고구려에게
    자존심을 내세울 정도로 드센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굴욕적인 위치를 초래할 고구려 망명을 하지않고 북위와 끝까지 싸웠을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자존심이 강한 군주가 자국을 침략한 적을 끝까지 싸우려고 하지 않고
    국토를 버리고 외국으로 도망간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자존심이 드센 인간은 자기가 처한 현실을 쉽게 인정못하는 법이지요
    그럼으로 풍홍이 자존심이 센 인물이었다면 북위에게 국토를 내주는 것이나
    다를바 없는 고구려 망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지요

    그러나 사료에서는 풍홍이 고구려 망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러나 풍홍이 망명후에 벌인 이런 상전행세같은 행적을
    고려하면 그의 망명이 그의 본의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스럽지요

    실제로 풍홍의 망명은 풍홍개인의 의지보단 북연을 장악한
    친고구려파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풍홍이 저런 고자세를 취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지 않고서는
    설명될수가 없지요

    풍홍 망명은 풍홍개인의 의지보다 주변의 친고구려파 신료들의
    주도로 이루어 졌으니까요

    앞뒤가 전혀 안맞는 풍홍의 망명전후 사실의 의혹들을 보면
    풍홍 그가 속으로 고구려 망명을 원했는지 의심스럽지요
    만약 풍홍이 망명을 원하지 않고서도 본의가 다르게
    망명되었다면 북연조정의 대다수를 이미 친고구려파가 장악했다는걸 반증하지요

  • 야스페르츠 2011/06/22 20:32 #

    if + if + if + if + ∞

    도대체 본인의 모순 자체를 인지를 못하는군. 오캄의 면도날은 어디다 갔다 팔아먹은 거요? 네네. 그렇게 계속 소설을 쓰세요.
  • 32 2011/06/22 20:48 # 삭제 답글

    모순 자체라고 하는건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논리가 궁색해지니까 님은 그저 이런 어린애같은
    투정으로 논쟁의 본질을 회피하려는 모양인데

    야스 페르츠님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서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상대방 주장들을 전부 소설로 보이시는군요 상대방의 주장을 겸허히 듣지 않고 전부 소설이라고 배격하다니 그럼 님의 주장에 모순된게 없다라고 자부하실수 있나요

    자신의 주장이 반대되는 상대편의 주장보다 다 옳다라고 생각하는게 본인만의 과대망상적
    시각으로 상대편 주장을 그렇게 보는 것이지요

    주장내용에 논리적으로 반박하기 보다는 상대편을 인신공격하는 투로 흙탕물
    언쟁이나 벌이고 있으니
  • 야스페르츠 2011/06/22 21:09 #

    귀찮게시리. 귀하의 주장을 정리해 볼까요?

    1. 풍홍은 고구려에 망명하기 싫었음 => 물론 100% 귀하의 추측
    2. 근데 풍홍네 신하들은 다 고구려 편이었음 => 물론 100% 귀하의 추측
    3. 결국 풍홍은 신하들에 등떠밀려서 망명했음 => 물론 100% 귀하의 추측
    4. 조낸 자존심이 쎈 풍홍은 이 상황에 빈정이 상했음 => 물론 100% 귀하의 추측
    5. 자존심이 상한 풍홍은 미친짓을 하기 시작했음 >=> 물론 100% 귀하의 추측

    뭐야 이거... 사실이라고는 단 1%도 없잖아요. 추측에 추측을 얹고 거기에 망상을 섞으면 대체 무슨 결론이 나옵니까? 혹시 순환논증의 오류라고 아십니까?
  • moverlove 2011/07/16 23:09 # 삭제 답글

    야스페르츠님 소설 그만쓰시죠?!

    너저분한 분석 필요없이요 상식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하세요~

    인간세상사 힘의 논리라는게 존재 하는데 어찌....그런 가당치 않은 멍멍이 소리를 하시는지...

    이건 바로 위글 처럼 님의 100% 추측임 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1/07/17 17:45 #

    어디서 개가 짖나?
  • 장 훈 2011/07/22 10:31 # 삭제 답글

    중국의 역사를 보면 정말 사람 정신없게 만드는 시대가 있죠.
    바로 오호십육국시대 입니다.
    저도 역사를 전공했지만,
    단기정권이 워낙 많이 일어나서 정말 헷갈리더군요.
    사실,사회과부도나 역사교과서의 지도를 보면 기가 찹니다.
    옛날 일제가 왜곡한 사실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7/22 10:56 #

    .... 제가 잘못 본 것은 아니겠지요? 어느 역사지도가 일제가 왜곡한 것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인지요? 전공자 맞습니까?
  • 마에스트로 2011/10/28 01:39 # 답글

    일반적인 개념의 속국은 님이 전제하고 있는대로 "조약이나 법률 등에 의한 법적 관계 여하에 불구하고, 외교 ·내정의 기본적 방향에 관하여 타국의 지시에 구속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당연히 이렇게 보면 북연은 고구려의 속국은 될 수 없겠습니다. 북연이 고구려의 지시에 따라 운영된 국가는 아니니까요. 이 개념대로면 슬프게도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이군요. ㅠㅠ

    그렇다면 북연은 고구려의 번국, 제후국이었는가? 고구려가 북연을 책봉한 사례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족의 예는 '동족으로써 잘 대하겠다. 앞으로 북연은 적대하지 않고 잘 대해 주겠다.' 이런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하지만 불초소생이 지적하려는 부분이 있습니다. 풍홍의 시호와 고구려와 북연의 명분적 관계입니다. 풍홍의 시호는 장수왕이 내린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추론할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이 시호는 망명한 북연인들이 내린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혹여 장수왕이 내렸다고 해도 고구려가 북연을 상위국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고구려가 중화 문화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황제의 개념을 제대로 알고서 내린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왕보다 높은 왕=대왕, 혹은 태왕. 이런 정도로만 인식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풍홍이 장수왕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다고 하지만 그 장면은 오히려 풍홍이 꼬장부리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아무리 북연이 약해서 망했어도 (물론 풍홍이 못난 탓도 있지만) 한 나라의 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이 낮은 대우는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즉, 그 기록은 '그래도 내가 왕이니 통치자 대접은 해달라' 이런 의미로 보입니다.

    그리고 빙(聘)의 개념은 글자 그대로 방문이 맞다고 봅니다. 조빙 외에도 보빙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북연의 명분적 위치는 고구려와 대등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 다채로운 에스키모 2012/11/27 00:48 # 답글

    북연은 소국이라면서요?
    북연은 고구려인 고운이 세운것이고 그럼 고구려의 속국이 맞습니다.
    436년 북위가 북연을 공격했을때 고구려가 군사를 보내 풍홍을 데려왔던 나라가 바로고구려입니다.
    속국이니까 궁궐도 불태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북연의왕 풍홍 구출은 고구려장수태왕이 북위의 공격에 관한 사전대비입니다.
    고구려의 장수태왕은 풍홍이 오만무례하게 굴자 요동성에서 변방의 작은 성으로 옮기고 풍홍의 아들을 뺴앗습니다.
    화가난 풍홍은 송나라로 갈려고 했는데 장수태왕은 가만히 있지 않죠 손수와 고구를 보내 풍홍의 가족들을 모두죽여 버립니다.
    송나라에서 풍홍을 데리고 온 왕백구는 풍홍이 남긴 7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손수를 체포하고 고구를 죽이는 사태가 벌어지자 장수태왕은 왕백구를 잡아다 사신을 보내
    송나라왕에게 감옥을 가두라고 했습니다.송나라는 고구려사신의 말대로
    왕백구를 감옥에 가두지요 (비록 고구려사신이 떠난후에 몰래풀어주긴 하지만)
    송나라도 고구려에게 어찌 못하였는데 북연,북위가 어찌 할수 있겟습니까?
  • fd 2013/08/08 10:55 # 삭제 답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장수왕에게 오만무례할 정도로 자존심이 드세던 풍홍이 어찌하여 용성에서 노략질하는 갈로 맹광의 고구려군에게 항의 제지하지 않았는지 의문이지요
    한 나라의 군주로서 자신의 재산이나 다를바 없는 자국의 재산들을 노략질하는 고구려군의
    행태를 가만히 보고있었다는게 종속성이 심한 국가의 군주가 아니고서는 있을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석연치가 않은게 북연은 북위의 공격을 받아 위태로우면서 원병요청을 하지 않고 자국 국토 수호를 포기하는 망명요청만 하였다는 점이지요

    임진왜란때 요청한 원병이 오지 않자 명에 망명을 시도하려고 했던 조선의 선조보다 더한 행태로
    원병요청을 하지 않고 망명요청만 했다는건 이는 고구려의 눈치에 따라 행동했다는 얘기가 됨으로 고구려에 대한 종속성이 강화된 국가의
    결정이라고 설명될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풍홍이 오만무례하게 행동할때 그 편을 드는 북연의 신하들이 한명도 없었으며
    풍홍이 고구려에게 살해당할때 그를 지켜주는 신하 한명이 없었을 정도로

    북연 신하들 대다수는 친고구려 세력으로 고구려의 눈치만 바쁜 족속들이라는걸 알수가 있지요


  • fd 2013/08/08 10:56 # 삭제 답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장수왕에게 오만무례할 정도로 자존심이 드세던 풍홍이 어찌하여 용성에서 노략질하는 갈로 맹광의 고구려군에게 항의 제지하지 않았는지 의문이지요
    한 나라의 군주로서 자신의 재산이나 다를바 없는 자국의 재산들을 노략질하는 고구려군의
    행태를 가만히 보고있었다는게 종속성이 심한 국가의 군주가 아니고서는 있을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석연치가 않은게 북연은 북위의 공격을 받아 위태로우면서 원병요청을 하지 않고 자국 국토 수호를 포기하는 망명요청만 하였다는 점이지요

    임진왜란때 요청한 원병이 오지 않자 명에 망명을 시도하려고 했던 조선의 선조보다 더한 행태로
    원병요청을 하지 않고 망명요청만 했다는건 이는 고구려의 눈치에 따라 행동했다는 얘기가 됨으로 고구려에 대한 종속성이 강화된 국가의
    결정이라고 설명될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풍홍이 오만무례하게 행동할때 그 편을 드는 북연의 신하들이 한명도 없었으며
    풍홍이 고구려에게 살해당할때 그를 지켜주는 신하 한명이 없었을 정도로

    북연 신하들 대다수는 친고구려 세력으로 고구려의 눈치만 바쁜 족속들이라는걸 알수가 있지요


  • 야스페르츠 2013/08/08 17:13 #

    시공을 초월하는 독심술이라니.... 참으로 감탄스럽군요.
  • 310 2016/05/21 21:17 # 삭제 답글

    독심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시각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나오는 것을 님은 중국 사료를 개나 소나 아무렇게나 믿어서 합리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광신도처럼 황당한 중국 사료의 모순된 내용을 여과없이 믿는 것이지 최소한의 기초적인 상식이나 합리적 논리에 기반해서 주장하셔야지 야스페르츠님
  • 310 2016/05/21 21:17 # 삭제 답글

    독심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시각으로 보면 자연스럽게 답이 나오는 것을 님은 중국 사료를 개나 소나 아무렇게나 믿어서 합리적인 시각이 결여되어 광신도처럼 황당한 중국 사료의 모순된 내용을 여과없이 믿는 것이지 최소한의 기초적인 상식이나 합리적 논리에 기반해서 주장하셔야지 야스페르츠님
  • 310 2016/05/21 21:17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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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0 2016/05/21 21:17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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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0 2016/05/21 21:17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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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0 2016/05/21 21:17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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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0 2016/05/21 21:18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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