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8 02:28

擊破朝鮮王의 비밀 역사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평양이었다 by 소하

일전에 연재랍시고 고조선의 역사를 끌적여 본 적이 있다. 그 연재는 나에게 아주 난감한 문제를 하나 던져주었는데, 그것이 위의 소하 님의 글과 관련이 깊다.

기자조선.

전근대 역사학에서는 위대한 중화 문명이 이 땅에서 오래 전부터 꽃피워왔음을 증명(?)하는 찬란한 역사였고, 현대 역사학에서는 중국의 조작에서 비롯된 환상의 국가로 평가되는 나라이다. 기자조선이 가공의 국가로 여겨지는 이유는 참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분명한 증거가 바로 "선진문헌"에 기자조선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선진문헌이란 진시황에 의해 중국이 통일되기 이전에 기록된 문헌을 말한다. 이 선진문헌에는 기자가 "은둔한 현자"로만 기록되어 있고 조선으로 갔다는 기록은 물론이요 조선에 봉해졌다는 기록도 없다. 반면 그 이후의 문헌인 《상서대전》과 《사기》 〈송미자세가〉에는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다는 기자동래설이 나타난다.

그런데,

사실 《사기》에도 기자조선의 실체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기》에는 〈조선열전〉이 독립된 권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이곳 어디에도 기자조선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선이라는 국가 자체의 실체가 아주 모호하게 나타나고 있다.

《사기》에는 연나라가 진번과 조선을 공격하여 "복속"시키고 심지어 "관리"까지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연나라의 공격은 저 유명한 진개의 공격이며, 만약 우리에게 《위략》의 기록이 없다면 영락없는 "고조선의 멸망"에 대한 기록이 된다. 이후의 내용 역시 고조선이 국가로 기능했음을 암시할만한 부분은 전혀 없으며, 위만은 "무주공산의 조선 땅에서 세력을 길러 왕이 되는" 형태로 위만조선을 건국한다.


조선에 대한 당대의 자료로 《염철론》도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악의적으로 보면 국가로서의 고조선을 떠올리지 않고도 충분이 해석이 가능하다. 아니, 《염철론》에는 진시황이 통일 이후에 조선을 아예 "멸망"시켰다고까지 기록하고 있으니 오히려 국가로서의 고조선의 실체가 더욱 불투명해지고도 남을 기록이다.


즉, 적어도 고조선이 존재했을 당시의 기록에는 고조선 국가, 적어도 진개의 침입 이후에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해석하기에 충분한 기록들이 나타난다. 여기에 더해서 위의 소하 님의 포스팅과 같은 사실을 더한다면?? 기원전 300년 무렵에 고조선은 멸망했고, 위만이 건국하기 이전까지는 국가로서의 고조선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우리에게는 《위략》이라는 놀라운 기록이 있어 이 문제점을 그나마 해결해준다.

그러나 《위략》의 신빙성이라는 것도 참 문제가 많은 것인지라... 《위략》은 《사기》와 달리 기자동래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기록이다. 우리는 《위략》의 기록을 적당히 첨삭해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실제 기록과 전혀 다른 형태로 인용되곤 한다.

조선후가 주 왕실을 받들기 위해 연나라와 맞장을 뜨려 한 기록이 단지 "연나라와 외교적 마찰이 있었던 고조선"으로,

조선후가 칭왕한 기록이 단지 "고조선이 당시 국제사회에서도 의미있는 칭호인 왕을 자칭한 것"으로,

시간을 달리는 부왕과 준왕이 단지 "시황제 무렵에 부왕이 죽고 준왕이 즉위한 것"으로...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고개를 든다.

《동사강목》에는 위만의 집권 과정을 《위략》과 동일하게 기록하면서 아주 솔깃한 대목을 추가하고 있다.

위만이 조선을 격파하고...
滿擊破朝鮮...

저 구절 뒤로는 《사기》와 동일하다. 위만이 유민들을 모아서 왕이 되었다는 내용. 순암은 이 구절을 《한서》에서 인용하였다고 전거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서》에는 저 구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서》의 내용은 《사기》와 거의 같다. 해당 구절은 토씨 하나까지 똑같다. 즉, 《한서》에도 고조선 국가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냥 이것 뿐이었다면 순암이 뭔가 착각을 했겠거니 생각하겠는데, 이런 내용이 또 나타난다. 바로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해동역사》는 《한서》를 "직접 인용"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조선왕을 격파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擊破朝鮮王, 而自王之.

이 뜨악한 기록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이 기록 뒤로는 《사기》 혹은 《한서》의 기록을 세부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물론 滿擊破朝鮮 같은 괴악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사기》 〈조선열전〉의 내용이다.


뭐랄까...

내가 《한서》의 다양한 판본을 비교한다던가 하는 일은 할 능력이 없으니, 어딘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판본에 저런 구절이 나타날지는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는 고문에 능하신 소하 님을 물끄러미 쳐다보아야 할 듯... 그러나 어쨌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한서》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없다.

대체 안정복과 한치윤은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인가 내가 모르는 기록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안정복과 한치윤이 저런 착각을 하게 만든 어떤 선학의 실수일까? 일전에 舊악질식민빠 님이 밝히셨던 것이 생각난다. 안정복이 팽오에 대해 고찰하면서 반쯤은 고의적으로 전거 사료를 잘못(?) 적었던 것을 모르고 그것을 그대로 베껴 적은 《규원사화》가 말이다.


과연, 擊破朝鮮王의 비밀은 무엇일까?

덧글

  • 2011/03/08 02: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8 09:08 #

    으악... 한서의 주석은 봤는데 사기는 안봤군요. ㄷㄷㄷ

    근데 색은도 한서를 인용하고 있으니...사마정은 또 뭘 본거죠...
  • 2011/03/08 03: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8 09:09 #

    헐. 실수했네요. 수정했습니다.
  • 2011/03/08 09: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8 10:48 #

    사마정은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요.. ㄷㄷ
  • DreamersFleet 2011/03/08 11:03 # 답글

    꼭 조선이란 이름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전에는 아마 다른 이름으로 불리웠을 것이라고 보오. 예컨대 <죽서기년>의 고이라던가 뭐 달리 숙신이라든가 그런 것들 말이오. 고죽이나 선우 중산도 조선과 관계가 깊소. 이런 것들이 엉키고 설켜서 후대에 조선이라 불리운 나라가 생긴 것이라고 보오. 별로 고민할 거리는 아니라 보오.
  • 야스페르츠 2011/03/08 14:24 #

    그건 귀하의 생각일 뿐이고. 증명하지도 못할 억측을 마음껏 내뱉는 버릇은 여전하군요.
  • DreamersFleet 2011/03/08 14:26 #

    님하는 증명된 내용만을 포스팅하십니까? 이중잣대 쩌네요.
  • 야스페르츠 2011/03/08 14:28 #

    난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근거라도 내놓는데 말이외다. 댁처럼 아무 말이나 던져 놓고서 "난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생각엔 이래"라고 입을 닦지는 않수다. 귀하야말로 이중잣대 쩌는군.
  • FF 2011/03/08 14:40 # 삭제

    명언 터지네요 별로 고민할 거리는 아니라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훈족은 어디서 왔을까 흉노족이겠지 뭐 고민거린 아님
    송은 왜 망했을까 요금원에게 차례로 쳐발림ㅋ 고민거린 아님
    이런식이면 역사부분에서만 해도 고민하고 공부하고 생각해볼게 ...10%는 남을까?
  • ㅋㅋ 2011/03/08 19:59 # 삭제

    어차피 로마도 망할 때가 되니 망한거죠. 별로 고민할 거리는 아니네요.
  • 2011/03/08 14:2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8 14:29 #

    그건 뭐... 적어도 역사를 바로 공부한 이들은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상징적으로 BC2333년을 말하는 것은 사실 상관 없죠.
  • DreamersFleet 2011/03/08 14:48 # 답글

    오!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무척 흥미로운 문제제기이기도 한 겉 같습니다.

    결국, 燕이 眞番과 朝鮮을 복속하였으니 滿의 朝鮮은 아무튼 새로운 나라다?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燕이 眞番과 朝鮮을 복속하였다"는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흔히 그런 유물로 명도전을 드는데 이것이 꼭 燕貨가 아닐 수있다고 합니다. 대체로 복속이라는 것을 완전히 멸망시킨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해석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이 점이 야스페르츠의 무리한 점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사기:조선전>에는 稍役屬眞番朝鮮蠻夷及故燕斉亡命者王之 요런 구절이 있군요.

    ps 복속에 관해서는 <위략>에서

    朝鮮遂弱 及秦并天下 使蒙恬築長城到遼東 時朝鮮王否立
    畏秦龍之略 服屬秦不肯朝會

    이런 뜻으로 사용하였음을 알립니다.



  • DreamersFleet 2011/03/08 14:54 #

    써 놓고 보니 <위략>이 써지던 시대에도 秦長城이 遼東에 닿았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군요.
  • DreamersFleet 2011/03/08 15:40 #

    같은 근거에 의해 태강지리지가 쓰이던 그 시기 불과 100년도 안되는 시기에 낙랑군 遂成현도 遼東에 있었다고 볼 근거도 충분히 생기는 군요.
  • DreamersFleet 2011/03/08 15:42 #

    이런 말을 하면 "樂浪도 옛날에는 먼 동쪽이라는 의미로 遼東이라고 했다"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더 할 말은 없겠지요.
  • DreamersFleet 2011/03/08 16:10 #

    어 바로 잡습니다. 진 태강지리지와 위략은 같은 시기에 쓰여졌군요.

    낙랑이 요동에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처럼 보이는군요? 헐.
  • 야스페르츠 2011/03/08 20:57 #

    불행히도, "秦并天下 使蒙恬築長城到遼東"은 <사기>의 장성 축조 기사를 정리한 것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이 기록을 낙랑하고 연결짓는 것부터가 이미 에러. 하다못해 내가 트랙백한 소하 님의 글만 읽었어도 이런 뻘 댓글은 달지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tut, tut.

    ps. <위략>과 <삼국지>를 헷갈린 모양입니다요.
  • DreamersFleet 2011/03/08 22:03 #


    oh no no no no! 그건 아니죠. <위략> 이 맞소.

    魏畧曰昔箕子之後朝鮮侯見周衰燕自尊為王欲
     東畧地朝鮮侯亦自稱為王欲興兵遂擊燕以尊周
     室其大夫禮諫之乃止使禮西說燕燕止之不攻後
     子孫稍驕虐燕乃遣将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
     里至滿潘汙為界朝鮮遂弱及秦并天下使蒙恬築****
     長城到遼東時朝鮮王否立畏秦襲之畧服屬秦不****
     肯朝㑹否死箕子凖立二十餘年而陳項起天下亂
     燕齊趙民愁苦稍稍亡徃凖凖乃置之於西方及漢
     以盧綰為燕王朝鮮與燕界於浿水及綰反入匈奴
     燕人衛滿亡命為胡服東渡浿水詣凖降說凖求居
     西界故中國亡命為朝鮮藩屏凖信寵之拜為博士
     賜以圭封之百里令守西邊滿誘亡黨衆稍多乃詐
     遣人告凖言漢兵十道至求入宿衞遂還攻凖與滿
     戰不敵也

    여기서는 문장이 <사기>와는 다르고 "기사를 정리한 것에 불과할 뿐"은 한 개인의 판단일 뿐이죠. 더구나 소하의 당빈운운은 진시황대의 일이 아니오 태강년간과도 시기적으로 후의 일인데 또 지금 갈석을 수성으로 보는 것은 지금 순환논리밖에는 안되지요. 혹시 그럼 갈석=수성=진시황장성동단 이 맞다고 생각하시오?
  • 야스페르츠 2011/03/09 12:01 #

    1. 장성이 요동에 이르렀다는 개념은 당시는 물론 지금으로도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사기>의 기록과 전혀 차이가 없는 관용적 사실의 서술이죠. 예를 들자면 "로마와 파르티아의 국경은 유프라테스강이다" 라는 말처럼.

    2. 평양 일대에서 통일 진 시기의 명문까지 새겨진 유물이 발견되는데야, 진나라의 영토 혹은 영향력이 한반도에까지 미쳤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 최소한 청천강 이북은 빼도박도 못해요. 거기다 낙랑군 위치의 고고학적 증명은 너무 분명해서 아예 논할 가치도 없고.

    3. 귀하가 쓴 것처럼 요동의 개념은 폭이 상당히 넓고, 게다가 소하 님께서 썼다시피 장성의 개념 역시 그 스펙트럼은 아주 넓지요. 이런 사실과 고고학 발굴 결과를 조합하면, 장성이 요동에 이르렀다는 서술도 전혀 문제될 게 없음.

    4. 상황이 이럴진대 귀하나 환드모트 같은 사이비들이 아무리 1%의 기록을 가지고 헛소리를 해봤자 무의미하거든요.
  • 야스페르츠 2011/03/09 12:06 #

    ps. 행정구역으로만 따져도, 당시 진나라의 동북면 행정구역은 요동군 하나 뿐이었음. 그 요동군은 아무리 최소한으로 잡아도 청천강 이북까지는 관할하고 있었음. 즉, 진나라의 기준으로는 이미 청천강 일대까지도 요동이라 부르고 있으며, 그보다 더 동·남쪽 행정구역은 없는 상태. 그러니 장성이 어디까지 뻗어 있든 논리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수다. 최소한 이 정도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수?
  • DreamersFleet 2011/03/09 14:01 #

    뭐 누구나 개인의 견해는 피력할 수 있으니, 님하의 글을 총평하자면 역시 <위략>과 비교는 무리고 <염철론>인데 거기에 조선 기록이 그것뿐이 아닐 터이니 종합적으로 생각해 봐야 겠지만 滅을 곧대로 믿는 것은 역시 무리라 보오.

    한가지 요동이 청천강 이북까지이었다니? 헐. 님하가 자주 인용하는 송호정슨상님의 <... 고조선사> 도 그렇게 까지 말하지 않는 것 같은데 송슨상도 그렇게까지 영향력을 깊게 보지 않아요. 아마 실질경계를 의무려산까지라 던가 아마 그 근처 어디쯤이라던데 그대의 생각은 왜그렇게 과격하오?
  • 코브라 2011/03/09 14:23 # 삭제

    "관할구역" 과 "실질 영향력 행사 범위" 를 동일시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만.
  • 2011/03/08 19: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8 20:57 #

    흠... 그럴 수도 있겠군요. ㅎㅎ
  • 2011/03/08 19: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8 20:57 #

    오호.. <후한서>에 그런 기록이 있군요. ㅎㅎ
  • DreamersFleet 2011/03/09 22:17 # 답글

    잠깐 송슨상의 책을 좀 읽다보니 역시 본인의 한계를 느껴지기 시작하는 군요. 내가 바로 인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얘긴 그만 두고, 만일 위만 전에 조선이란 나라가 없었다면 야스선생측의 논리에 의하면 세형동검을 퍼뜨린 쪽은 위만선생이 되는 건가 궁금합니다. 위만조선의 영역은 평양일대인데 왜 세형동검은 한반도에서 출토가 되며 청천강 이북에 있었다는 현도군지역은 또 멉니까. 굉장히 난잡해 지는 것 같군요. 지쳤다.
  • 야스페르츠 2011/03/09 22:42 #

    "이상의 고찰을 통해 당시 연의 세력이 요동 지역 동쪽에까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이 아닐 것이다 ...(중략)... 연나라가 기원전 4세기 후반(소왕대)에 동방으로 진출하면서, 고조선은 서쪽 지역을 상실하고 중국과 청천강을 경계로 마주대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송호정, <한국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310p
    "그러므로 한대 고조선과 연의 경계가 되었던 패수는 청천강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고고학 유물 역시 청천강을 경계로 중국 연나라 계통의 것과 고조선 독자의 것으로 구분된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하다." 같은 책 350p

    1. 책을 띄엄띄엄 보시나보군요. 자기가 잘못 본 부분이 나오니 그 얘긴 그만두자고? tut,tut.

    2. 난 고조선이 없다고 말한 적 없는데? 그렇게 해석해도 할 말이 없을 당대 기록이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을 뿐. <위략>의 신빙성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록을 부정할만한 수준은 아니고. 하다못해 내가 했던 고조선사 연재라도 좀 정독하고 오시구려. 현도군에 대한 이야기도 그 연재에 다 언급해 놨으니.

    3. 참 세상 띄엄띄엄 사시는군요.
  • DreamersFleet 2011/03/10 10:53 #

    글쎄 난 처음 님하가 服屬의 뜻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줄 알았소이다. 내 이제 송슨상의 글을 읽다가 곰곰생각해 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구료. 보통의 권위있는 책들은 다 服屬이라 하고 <위략>에도 약간 보충한 바가 있거늘 단지 <염철론>에 거기도 조선에 대한 다른 언급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그 한 곳의 滅만을 절대시 한다는 것은 여튼 문제가 있을 것 같소. 더불어 평양지역은 소위 그대가 말하는 낙랑군이후에도 특유의 세형동검무화가 지속되었는데 고고학적으로도 滅했다라고 보는 주장은 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드문드문--->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는 법이오. 님이 잘 인용하는 송슨상님도 마찬가지고.

  • 야스페르츠 2011/03/10 11:03 #

    완벽하지 않기에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하게 살아야죠. 귀하처럼 본인의 오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분께서 하실 말씀이 아닌 것 같수다.
  • 굔군 2011/03/15 01:16 #

    DreamersFleet, 이 분은 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ㅡㅡ;;

    진한대 당시의 지리 관념으로도 오늘날처럼 요동과 한반도가 압록강을 경계로 정확히 구분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쇼?
    "요동"이라는 단어 가지고 말 장난 치는 건 이미 그쪽 동네에서도 한참 전에 유행 지나간 얘기 아닌가? ㅉㅉㅉㅉ

    김한규 선생님의 <요동사> 서문만 읽어 봤어도 이딴 헛소리는 못할 텐데...ㅋㅋㅋ

    그리고 장성이 요동에까지 이르렀다는 건 <사기>에도 이미 나오는 이야기고,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인 패수 너머에 "진고공지"가 있었다는 기록도 엄연히 나오는데?

    진의 영토가 청천강 이북까지였든 장성이 요동까지 왔든, 기록과는 모순이 없고 전혀 문제될 게 없소만? ㅉㅉㅉ

    그리고 위에 달린 비로그인들은 여전히 답이 없군요. 에휴~
    정말 이런 말 안 통하는 무리들 상대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야스페르츠 님. 저 같으면 아마 댓글 삭제하고 진작에 차단 먹였을 텐데...
  • DreamersFleet 2011/03/15 22:26 #

    굔군/
    저 "요동" 가지고 장난 친 적 이 포스팅 댓글에선 없는데요.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누군가의 말을 "헛소리"로 간주하는 발언을 하시려면 그에 걸맞는 근거를 가르쳐 주시고 해야 설득력있고 올바른 비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굔군 2011/03/16 01:40 #

    DreamersFleet//댁이 바로 위에서 썼던 댓글들이외다.

    ---------------------------------------------------------------------
    써 놓고 보니 <위략>이 써지던 시대에도 秦長城이 遼東에 닿았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군요.

    같은 근거에 의해 태강지리지가 쓰이던 그 시기 불과 100년도 안되는 시기에 낙랑군 遂成현도 遼東에 있었다고 볼 근거도 충분히 생기는 군요.

    어 바로 잡습니다. 진 태강지리지와 위략은 같은 시기에 쓰여졌군요.

    낙랑이 요동에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처럼 보이는군요? 헐.
    ---------------------------------------------------------------------------

    분명히 "요동"이라는 말 가지고 장난 치고 계시는뎁쇼? 더 이상 무슨 다른 것을 근거로 제시해 드릴깝쇼?
  • DreamersFleet 2011/03/16 14:25 #

    굔군/ 사실 그것은 이 글의 본 논지와 관련없이 새로 의문스럽게 생각되는 점을 적은 것입니다. 만일 같은 시기에 쓰여졌다고 알려진 두 기록 즉 <태강>의 秦장성기점 낙랑 수성과 <위략>의 요동종단이 다 맞다면 제가 볼 때 이 두 기록을 만족시키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 중의 하나는 "요수난하설"이라고 보여집니다. 야스페르츠의 반론은 결국 "秦요동한계=秦장성동단=낙랑수성=평안도 어디(수안?)"이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각자의 생각이라고 생각이고 어느 쪽이 옳을 지는 알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질적인 문제는 과연 遼東이 어디인지 확정하기가 문헌상으로 어려운 점에 기인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지 장난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그렇다고 생각되면 잘못된 점을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16 15:12 #

    요동이 어디인지 확정하기 어렵다는 그 생각부터가 잘못인데 말입니다? "문헌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것부터가 이미 스스로 문헌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방증인데 말입니다? 난하요수설이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밟힌 것이 이미 70년대의 일인데 말입니다? 고고학적인 수준으로 넘어가면 아예 논할 가치조차 없는데 말입니다?

    바로 이런 망상을 가리켜 "요동을 가지고 장난친다"고 하는 건데 말입니다 고갱님.
  • DreamersFleet 2011/03/16 18:27 #

    야스페르츠/ 요즘 그렇게 생각하시는 학자님도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동 개념이 불확실한 것은 야스페르츠 역시 요동의 한계가 漢 낙랑이 생기기 전후로 바뀌었다는데 동의하는 데서도 보이고, 역시 굔군의 경우도 " 요동과 한반도가 압록강을 경계로 정확히 구분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쇼?"라고 한데서도 보이듯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성질인지 여전히 의심스럽군요. 어참피 滿都의 경우도 비낙랑적 요동에 있다는 설과 평양에 있다는 설이 공존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문제의 문헌적 확답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소만,,, 뭐 어차피 서로 새로운 문헌적 증거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말돌리기로 상대의 이 부분에서의 능력치를 평하거나 행동꼬투리를 잡는 것이라면 더 이상의 논쟁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16 21:55 #

    ... 요동군의 동남계는 낙랑군이 성립된 다음에도 청천강이었는데 말입니다? 서안평현이 어디에 있는지 아실랑가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낙랑군 성립 이전하고 차이가 거의 없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낙랑군 성립 이후로 바뀐 건 "요동군"이라는 행정구역이지 "요동"이라는 지리적 개념이 아닌데 말입니다? 진나라는 동북면에 요동군 하나만 설치했지만, 한무제는 한군현을 추가로 설치했으니 행정구역이 바뀐 거지 요동이라는 개념이 바뀐게 아닌데 말입니다? 지리적 개념으로의 요동은 심심치않게 낙랑군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말돌리기를 하는 건 저나 굔군님이 아니라 고갱님인데 말입니다?
  • 굔군 2011/03/16 23:23 #

    더 이상 말이 통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그려 ㅉㅉ

    안 되겠소, 그냥 차단합시다!!!
  • 굔군 2011/03/16 23:30 #

    DreamersFleet//
    설마 "장난 친다"라는 말을 진짜로 장난 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줄이야....ㅡㅡ;;

    털썩. 내가 졌소이다....
  • DreamersFleet 2011/03/16 23:34 #

    흥미롭군요. 서안평 비정에 대한 문제는 송모교수의 책에도 해석상의 난점이 존재한다고 하는군요. 그것은 그렇다 치고, 요동군이 변하지 않았다면, 요동외요라든지 공지가 발생될 일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굔군 2011/03/16 23:45 #

    DreamersFleet//한나라 때의 국경인 패수 너머에 "진고공지(秦故空地)"가 있었다고 분명히 <사기>에 언급되어 있는뎁쇼?

    패수 너머 고조선 땅 안까지도 한때 진나라의 영토였다는 증거이오만?
    한나라 때는 그 지역이 멀고 지키기 어려워 (그 지역을 버리고) 패수를 경계로 하였다는 내용도 엄연히 나오는뎁쇼?

    제발 기록을 읽으려면 자기 눈에 들어오는 구절만 띄엄띄엄 읽지 말고, 전체 내용을 제대로 읽기를 바라오.
  • 굔군 2011/03/16 23:50 #

    아니, 그나저나 야스페르츠 님께서는 "낙랑군 성립 이후로 바뀐 건 "요동군"이라는 행정구역이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요동군이 변하지 않았다면"이라니....ㅡㅡ;;

    이 작자는 대체 글을 신체의 어느 부위로 독해하고 있는 것인가............
  • DreamersFleet 2011/03/17 00:28 #

    굔군/ 패수 청천강을 건너서까지 지배했다면 곧 秦의 요동군은 그 너머까지고 요동군이 변했다는 본행의 말은 정확한 것이고 그 동남계는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여전히 문제가 되지 말입니다. 도대체 남이 세심히 적은 글을 어디로 읽는 것인지 궁금하구료? 생각좀 하고 답글을 다시구 욕을 하시구랴!
  • 굔군 2011/03/17 00:57 #

    DreamersFleet//

    1. 난 댁한테 욕한 적 없는뎁쇼? 있으면 어디 한번 찾아서 긁어와 보든가 ㅉㅉㅉ
    2. 청천강을 건너서까지 지배했다고는 안 했는뎁쇼?
    3. 요동군의 동남계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무도 한 적 없는뎁쇼?
    4. 남의 말을 곡해하고 있는 건 그쪽이지, 내가 아니오만?
    5. 그다지 세심하게 적은 글 같지도 않을 뿐더러, 표현마저 남의 글에서 그대로 가져다 쓰는 그대의 문장력에 심히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이다. 설마 내가 바로 앞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할 줄이야...ㅋㅋㅋ
  • DreamersFleet 2011/03/17 01:21 #

    굔군/ 뭔 횡설수설을 그리하나? 욕부터 하고 나중에 그걸 정당화하려고 말을 꾸미나 그게 나같은 고수(이것은 상대적 의미에서만)에게 통하나?

    어쨌든 결론은 이러하외다.
    그대가 청천강을 언급했건 안했건 패수를 넘어서까지 지배했다가 패수로 돌아와 경계를 삼았다면 분명 요동군은 변한 것은 맞소이다.
    본행이 틀린 점 그릇 판단한 점이 있으면 정확히 지적하쇼. 가정법을 단장취의해서 "~면"을 "~했다"라고 판단하는 그대의 난독증을 어찌 대해야 할지 수준차이가 나서 더 할말을 잃는구려.
  • DreamersFleet 2011/03/17 01:24 #

    그리고 요동군이 변했다면 표현상 지리적 개념인 요동역시 자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특정 표현 구절에서 의 "요동"이 지리 개념의 요동인지 요동군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제간은 제왕적 독법을 구사하는 인물이 아니라면 할 수 없소. 결국 문헌상으로 우리는 한이적 진이건 연이건 요동의 위치를 정할 수 없다는 당초의 나의 판단은 결국 옳은 것이오.
  • 야스페르츠 2011/03/17 09:37 #

    "제가 볼 때 이 두 기록을 만족시키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 중의 하나는 "요수난하설"이라고 보여집니다."

    이거랑,

    "패수 청천강을 건너서까지 지배했다면 곧 秦의 요동군은 그 너머까지고 요동군이 변했다는 본행의 말은 정확한 것"

    이게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맞나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요동군의 변화라는 건 결국 그 동남계의 범위가 왔다갔다 하는 정도이지, 그 위치가 변하는게 아닌데 말입니다? 난하요수설 따위는 끼어들 건덕지조차 없는데 말입니다? 결국, 난하요수설을 주장하던 고갱님께서 아무튼 "요동군의 범위가 변화한 건 맞잖아!"라고 정신승리 해봤자 가련하기만 한데 말입니다?

    말돌리기 정말 쩝니다.
  • DreamersFleet 2011/03/17 10:57 #

    야스페르츠/ 뭐 본인은 두가지 모두 가설로 받아드리고 이를 나름 검토하는 단계에 있다고나 할까? 귀하의 경우 후자에 가까운 것을 정설 혹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같구요. 귀하의 정설이 나에게는 한 가설인 셈이지요? 껄껄. 그런면에서 대충 그쪽이 말하는 정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셈이죠. 아무렴 어떻소? 대충 더 이상 의견 차가 좁혀질 것 같지는 않소마는,,, 결국 어떠 설을 가설로 받아들이느냐 정설이라고 치느냐의 문제인데??? 암튼 귀하의 의견은 잘 들었소이다~
  • 굔군 2011/03/17 12:27 #

    아니, 그러니까 요동군의 동남계가 청천강에서 압록강 사이를 왔다 갔다 한 거랑,
    "요동"의 위치 자체를 아예 난하 쪽에다 떠다 옮기는 게 같은 거냐고.

    이런 게 무려 자칭 "고수(?!!)"라는 DreamersFleet의 생각인 것인가...ㅉㅉㅉ

    하아...이젠 정말 답이 없다. 에효~~=33
  • 야스페르츠 2011/03/17 13:30 #

    고갱님. 고갱님께서 소위 학계의 정설을 믿건 안믿건 그건 나도 상관 안하겠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고갱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 대해서는 정신승리라고 밖에 볼 수없겠는데 말입니다.

    "결국 문헌상으로 우리는 한이적 진이건 연이건 요동의 위치를 정할 수 없다는 당초의 나의 판단은 결국 옳은 것이오."

    중2병에 정신승리법까지 가지고 계시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한데 말입니다.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고갱님만 손해인데 말입니다. 뭐, 나야 보면서 재미라도 있지만. ㄲㄲ
  • 굔군 2011/03/17 13:51 #

    그리고 사료상의 구절에 기재된 "요동"이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구분하는 것은, 그 같잖은 "제왕학적 독법"이고 나발이고를 구사해야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당 문장이 전체 내용에서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만 파악하면 되는 매우 간단한 일이외다.

    그러니까 일단 김한규 선생님의 <요동사> 서문이라도 읽고 와서 덤비라고.
  • DreamersFleet 2011/03/17 15:05 #

    마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웃기네영^^

    굔군이 말하는 " 해당 문장이 전체 내용에서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만 파악"이란 뭔가효? 이를 테면 이 포스팅 본 주제와 같이 다른 문헌과 고문헌에는 모두 服屬이라고 된 것을 임의적 판단에 따라서 한 문헌의 한 구석에 있는 문장 하나가 滅로 되어 있으니 滅로 보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는 것이 이를 테면 그런 것이가영? 쿠쿠쿠. 이거야 말로 정신승리와 제왕적 독법의 절정이라고 보는데영?

    자기 주장을 미리 설정해 놓고 기록과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그 기록은 잘못되었고 이런 요동개념을 사용해야 한데도 할말이 없겠구려! 그리고 그런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자기 해석은 맥락을 잘 짚은 것이라고 하면 되겠구영! 이게 정신승리와 제왕적 독법의 전형아닌감유?

    내 이 이야기는 안하려고 했지만 남을 비판하고자 하면 먼저 증명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쨌든 그대들이 말하는 정설은 이제 알아들었으니 이지린의 요수난하설의 잘못된 점이나 지적해 보구려. 그대들 식으로 상충되는 기록은 요리조리 피해간다면 해석하면 딱히 요수난하설에도 잘못된 점이 있을까? 내가 보기엔 완벽한 설인데.
  • DreamersFleet 2011/03/17 15:22 #

    야스페르츠/
    귀하의 말==> 요동군의 변화라는 건 결국 그 동남계의 범위가 왔다갔다 하는 정도이지, 그 위치가 변하는게 아닌데 말입니다? 난하요수설 따위는 끼어들 건덕지조차 없는데 말입니다? 결국, 난하요수설을 주장하던 고갱님께서 아무튼 "요동군의 범위가 변화한 건 맞잖아!"라고 정신승리 해봤자 가련하기만 한데 말입니다?

    ==> 만일 이것을 동남계의 변화가 극히 작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면 이것 역시 하나의 그 "정설"의 딜레마지요. 모선생의 책에서도 이 딜레마 때문에 고심한 흔적이 역시 보이지요. 국경과 군의 변화에 대해서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라고 했다는 것은 상당히 넓은 영역이 포기되었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지.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면서 겨우 손톱만한 땅덩어리를 포기했을까요?

    또한, 왕험성에 대해서도 고대로 부터 漢 요동군에 있다 낙랑군 패수의 東쪽에 있다고 하는 2개의 대표적인 설이 전하지. 후자의 설을 취하더라도 소위 낙랑토성은 패수(대동강) 의 남쪽에 있다네. 청천강 혹은 압록강이 패수라도 마찬가지야! 그 東쪽에는 아무것도 없다네. 東쪽에 대개 무엇이 있다는 것은 대개 요서의 江이거나 최소한 요하 정도는 되어야 그러한 성이 있을 것을 감히 추측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경우라도 그대의 설은 응소의 주장을 설명할 수 없다네. 응소는 당대인인데 설마 완전 뻘소리를 했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겠지만.
  • DreamersFleet 2011/03/17 15:25 #

    압록강이나 청천강의 동쪽엔 山밖엔 없어요. 지리 시간에 배우지 않았나. 우리나라는 대체로 신의주에서 부산까지 나눠서 동쪽에는 산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만일 압록강이나 청천강 동쪽에 왕험성같은 성이 있었다면 일제시대때 발견되지 않았겠나?
  • 굔군 2011/03/17 15:52 #

    DreamersFleet//

    1. 댁이 언급한 "服屬"과 "滅"은 같은 사료 안에 있는 구절이 아니므로, "服屬 = 滅"로 해석하는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두 사료의 내용상의 차이일 뿐이지, 해석상의 차이가 아니지 말입니다?

    하지만 "요동"의 개념은 시대와 사료에 따라 최대 4가지 용법으로 쓰였음이 확인되므로, 댁이 말하는 것과 전혀 같은 경우로 볼 수 없는데 말입니다?
    정신승리나 제왕학적 독법 따위와는 전혀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증명을 하라굽쇼?
    이미 <요동사>라고 근거 다 알려 드렸는뎁쇼? 남이 제시한 근거는 읽어보지도 않고 지금 딴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게 대체 누구일깝쇼?
  • 야스페르츠 2011/03/17 15:56 #

    피식. 응소라고 했지 말입니다? 응소의 주석 바로 뒤에 붙은 신찬의 주석이라고 있는데 말입니다? 안사고의 주석은 아실랑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이미 비슷한 시기의 사료에서도 비판이 존재하는 주석이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것이 낙랑군인데 그 수도는 요동군에 있다?"는 골때리는 주석을 믿을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전근대 사료에서도 "그거 틀렸다"는 주석이 무려 "같은 줄"에 존재하고, 역사적 상관관계로 보아도 골때리는 것을 신봉하는 꼴이란 참으로 사이비학문에 잘 어울리는 모습인데 말입니다?

    패수 동쪽이니 남쪽이니 하는 이야기도 별반 고려할 가치를 못느끼겠는데 말입니다? 전근대의 방위개념을 그렇게 앗쌀하게 보시면 곤란하지 말입니다? 한서 지리지 울림군에서는 울수가 동쪽으로 입해한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울림군이 어디에 있는지 아실랑가 모르겠는데 말입니다? 후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촉군 성도는 낙양의 "서쪽"이었는데 말입니다? 오군 소주는 낙양의 "동쪽"이었는데 말입니다? 성도와 소주가 어디에 있는지 보면 그런 얘기는 못하지 말입니다?
  • DreamersFleet 2011/03/17 16:24 #

    굔군/
    먼저 그대의 해석이나 그대가 내세우는 설이 옳다고 증명 좀 해주시겠나? 가만 읽어보면 그대가 말하는 내 말이 틀리다는 근거가 뭔가 곰곰히 생각하면 결국 그대의 설이 옳다는 것이 내 설이 틀린 근거가 되더구만. 결국 그대가 말하는 정설이니 사실이니 하는 것도 몇몇 기록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이것은 틀렸다고 하는 가정 위에 성립하는 것이라면 남을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의 설의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것이 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증명 부터 해보시지.
  • DreamersFleet 2011/03/17 16:32 #

    주류 사학계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특히 연5군과 낙랑-현도의 군현치를 비정하는 것을 보았나? 겨우 "비정"이란 것을 하고 있지. 요동에 관해서 소위 연5군에 관해서 한4군도 마찬가지고 애당초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반증이네. 기록에 단층이 있었단 이야기고. 하하하. 이런 판국에 도대체 내 주장이 어디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증명 좀 해주게. 꼭 짚어서 말이야.

    굔군! 여기다 답글 달지 말고 아예 처음 부터 다시 일대일로 정정당당히 승부를 가리세! 자 나의 오류를 지적해 보게. 맨 밑에다가 내가 댓글을 적고 그대의 도전을 기다림세!
  • 굔군 2011/03/17 16:50 #

    거 참 사람 말 더럽게 못 알아듣네.
    그러니까 일단 <요동사>를 읽어보라니까?
    거기에 다 설명되어 있다니깐?

    내가 책 한 권 내용 전부를 여기서 댁한테 일일이 증명할 수는 없는 노릇 아뇨?
    거 참 웃기는 양반일세. ㅉㅉ
  • 야스페르츠 2011/03/17 16:52 #

    그런 건 고갱님 집에서 하시지 말입니다? 이거야 원. 이건 검사가 변호사한데 피고가 무죄라는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는 유죄다라고 말하는 꼴인데 말입니다? 고갱님이 증명해야 할 걸 왜 학계한테 하라고 하시는데 말입니다? 거증책임은 고갱님한테 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런 건 고갱님 집에서 하시지요. 난 그런 판 벌어지는 거 봐줄 생각 없으니까. 그런 전챠로 밑에 댓글을 지웠으니 그리 아시지 말입니다.
  • 굔군 2011/03/15 01:50 # 답글

    흠...그럼 역시 <위략>의 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봐야 하는 걸까요? 하긴, 위나라 역사서에 고조선에 대한 내용이 그렇게 자세하게 나오는 게 꽤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좀 수상하다 싶기는 했는데...

    그렇게 본다면 <위략>의 고조선 기사는 상당 부분이 어환의 허구라는 얘기인데, 또 그렇게 볼 수만도 없는 게 배송지가 <삼국지주>에서 인용한 삼국지 비사의 주요 출처 가운데 하나가 <위략>이니...(유명한 '삼고초려 허구설'의 원출전도 <위략>이죠.)
    <토원책부>에서 인용된 구절에는, 고조선에 동예의 무천과 부여의 우제점과 같은 풍습이 있었다는 내용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위략>은 참 놀랍고 흥미로운 기록인 것 같긴 합니다. ^^;
  • 굔군 2011/03/15 02:14 # 답글

    그건 그렇고, 야스페르츠 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비밀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동사강목>이나 <해동역사>에서 인용하고 있는 기록은 <한서>의 주석서인 《한서보주(漢書補註)》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청나라 때 왕선겸(王先謙)이 주(註)를 단 것으로, 안사고 주석의 부족한 점과 잘못된 점을 보완하고, 그뿐만 아니라 원문 그대로는 뜻이 통하기 어려운 부분은 본래 이랬을 것이라고 대담하게 글자를 고쳤다고 합니다.

    안정복이나 한치윤은 바로 이 왕선겸의 <한서보주>를 본 것 같습니다.
    <보주>의 주석에 <해동역사>에서 인용한 "擊破朝鮮王"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補注】齊召南曰, 䅁, 滿姓衛氏. 朝鮮, 自周封箕子後, 傳四十餘世, 至朝鮮侯準, 始稱王. 漢初, 其國大亂, 燕人衛滿, 擊破準而自王也. 後書傳, 正補此傳之缺. 先謙曰, 索隱, 案漢書, 滿, 燕人, 姓衛, 擊破朝鮮王, 而自王之. 今漢書, 無姓衛兩字. 是, 小司馬所見本異.

    그리고 <사기색은>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索隱】案漢書, 滿, 燕人, 姓衛, 擊破朝鮮而自王之.

    아마 이 기사의 원출전은 <색은>인 것 같고, 청나라 왕선겸이 <보주>에서 중간에 "王"을 첨가하여 문장을 조금 손을 본 뒤, 한치윤은 그 구절을 보고 <해동역사>에 집어넣은 듯합니다. 뭐, 안정복은 그냥 <색은>에서 곧바로 인용했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제 짧은 소견입니다만, <사기>의 기록은 <위략>과 그다지 모순되거나 배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15 10:49 #

    문제는... 색은의 그 구절이 <한서>를 인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체 사마정은 뭘 본거야... ㄷㄷㄷ
  • 굔군 2011/03/15 16:43 #

    음...문제가 또 그렇게 되는군요.
    그러고 보니 왕선겸은 1842년생인데, 안정복과 한치윤은 모두 그 전에 죽었으니, <한서보주>는 볼래야 볼 수가 없군요....OTL ;;

    어쨌든 왕선겸도 <색은>을 보고 베낀 게 분명하니,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색은>에 있는 건 분명한데...

    이젠 <해동역사>의 미스테리가 아니라, 사마정의 <사기색은>의 미스테리군요...ㄷㄷㄷ
  • 굔군 2011/03/15 16:49 # 답글

    답을 알 것 같습니다.
    사마정은 당대 이전의 <한서>에 쓰여진 주석을 본 것 같습니다.

    《한서》는 《사기》와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곳도 있으나, 이미 후한시대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응소(應邵)·복건(服虔)·여순(如淳)·맹강(孟康) 등 20여 명의 주석가(注釋家)가 나타났으며, 그들의 주석은 당(唐)나라의 안사고(顔師古)의 주석으로 집대성되어 현재의 간본은 모두 안사고의 주석을 부각(付刻)한 것이다. 안사고 이후의 제가(諸家)의 주석은 청나라 말기의 왕선겸(王先謙)이 엮은 《한서보주(漢書補注)》에 집대성되어 있다.

    《한서》의 주석(註釋)은 후한 시대부터 시도되어 왔다. 복건(服虔)·응소(應邵) 등이 있고, 그 뒤를 이어 위(魏)의 소림(蘇林)·여순(如淳)·맹강(孟康), 오(吳)의 위소(韋昭), 진(晋)의 진작(晋汲) 등이 있다.
    당의 정관 원년(627)에 안사고(顔師古)가 태자 승건을 위해 《한서》의 주석을 만들었다. 이것은 고래의 제가(諸家)의 논설을 모은 데다가, 반드시 안사고 자신의 견식으로 '누구의 설이 좋다'라든가 아니면 '구설(舊說)은 모두 틀렸으며 사실은 이렇다'고 단안을 내리고 있다. 그 설의 옳고 그름은 제쳐 놓고 매우 명쾌한 주석이다.
    세상 사람들은 안사고를 '반고의 충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 전해지는 <한서>의 주석들은 모두 안사고의 정리를 거친 것이라고 하니, 사마정은 그 이전에 쓰여진, 현재 전해지지 않는 주석을 인용한 게 아닐까요?
  • 야스페르츠 2011/03/15 17:02 #

    전근대 사가들이 인용을 하는데 있어서 그렇게 엄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주석"을 본문인 것처럼 인용하는 것은 좀 이상한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안정복이나 한치윤은 주석을 보았을지언정 <한서>에서 인용했다는 의미가 분명한 주석을 이용했지만, 사마정은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니... 하여튼 좀 애매하네요.

    제 생각에는, 해당 내용은 <한서>에 대한 직접 인용이 아니라, <한서> 조선전의 내용을 정리·해석한 것인 것 같습니다. 조선전의 내용을 직역할 경우에는 "격파조선"이라는 말이 없지만, "복속"이라던가 내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게 되면 그것을 "조선(왕)을 격파하고"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자연스럽겠죠. 현재 남아 있지 않은 미지의 주석을 참고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더 간단한 추론이 아닐런지요.

    그리고, <후한서> 동이전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쪽도 상당히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한서>와 <후한서>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한서>라고 썼다는 것이죠. 사실 이 경우에도 인용 문구가 약간 다르긴 합니다만, 이 정도의 수정 혹은 정리는 이해가 될 정도인 것 같습니다.
  • 굔군 2011/03/16 03:25 #

    흠...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하긴 사마정은 "案漢書"라고 했지, "漢書曰"이나 "漢書云"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案"이라는 것은 그냥 자기가 <한서>를 읽고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이고, 직접 인용한 게 아닐 수도 있죠.
    "<한서>를 상고하건대..." 정도로 해석해도 대과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색은>의 이 주석은 <사기>의 "朝鮮王滿者, 故燕人也."라는 문장 뒤에 달려있는데, 정작 <한서>에는 이 구절이 그냥 간단히 "朝鮮王滿, 燕人."이라고만 되어있을 뿐입니다. 사마정이 단 주석의 내용("위만의 성은 위씨"라든가 등...)은 이 구절만으로는 알 수가 없지요.

    즉, <한서> 조선전의 내용은 사실상 <사기>와 별 차이도 없고, <한서>의 기록만으로는 사마정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혹시 사마정이 본 <한서>가 현재 우리가 보는 것과 뭔가 달랐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죠.

    아마 이 때문에 왕선겸도 <한서보주>에서 "先謙曰, 索隱, 案漢書, 滿, 燕人, 姓衛, 擊破朝鮮王, 而自王之. 今漢書, 無姓衛兩字. 是, 小司馬所見本異."라고 하여, 사마정이 본 <한서>가 지금의 <한서>와 다른 본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물론 확인되지 않는 미지의 주석을 상정하는 것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오컴의 면도날>에 어긋난다는 점은 잘 알지만, 그래도 어쩐지 이쪽으로의 가능성 또한 완전 배제하고 싶지만은 않은 건 어쩔 수가 없네요...
  • 굔군 2011/03/16 03:35 #

    그리고 말씀하신 <후한서> 동이전의 기록은 이걸 의미하는 모양이군요.

    漢初大亂, 燕·齊·趙人往避地者數萬口, 而燕人衛滿擊破準而自王朝鮮.

    일단 이 문장은 주석이 아닌 본문에 해당하고, 사마정의 주석 "案漢書, 滿, 燕人, 姓衛, 擊破朝鮮而自王之."의 내용도 모두 들어 있군요.

    듣고 보니, 이쪽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것 같습니다.
  • 굔군 2011/03/17 16:59 # 답글

    이거야 원....
    괜히 제가 댓글 다는 바람에, 남의 블로그에서 분란만 일으킨 꼴이 됐군요.

    괜히 저 때문에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시다니...

    야스페르츠 님, 죄송합니다. ㅠㅠ
  • 2011/10/30 16: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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