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7 16:32

신라 왕실, 불국토를 꿈꾸다. 역사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영화 《8마일》한 장면...


527년,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한 이래 신라 왕실은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고대 국가에 있어서 불교와 같은 소위 선진종교는 왕권의 강화와 국가 체제 정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므로 왕실은 불교를 공인하고 나면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이며, 이를 바탕으로 이른바 본격적인 고대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신라의 경우, 이차돈의 순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에 대한 반발이 매우 심했다. (이차돈의 순교에 대해서는 초록불 님의 재미있는 고찰이 있으니 참고 ☞클릭)

그러나 이차돈의 순교 이후 왕실에 의해 적극적으로 불교를 도입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불교화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법흥왕은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국왕이 출가를 한 한국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진흥왕 대에 이르면 불교는 사실상 신라의 국교가 된다.

진흥왕은 흔히 "전륜성왕(轉輪聖王)"을 자칭했다고 일컬어진다. 전륜성왕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이자 전세계를 지배한 강력한 정복군주이기도 하다. 전륜성왕의 표상은 인도의 마우리아왕조 아소카왕이라고 하며, 불법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는 이상적인 군주이다.

진흥왕이 전륜성왕을 자칭했다는 가장 눈에 띄는 증거는 그의 아들들의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흥왕의 맏아들은 동륜(銅輪)이며, 둘째아들은 사륜(舍輪) 또는 금륜(金輪)이다. 이 이름들은 전륜성왕의 4가지 종류 혹은 단계를 말하는 것으로, 금륜, 은륜, 동륜, 철륜이 바로 그것이다. 아들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놓았으니, 진흥왕 본인이 어떤 의식을 가졌을지는 안봐도 뻔하다.


태자 동륜은 - 아마도 아버지 진흥왕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아서- 아들들의 이름을 참으로 놀랍게 지었다.

동륜의 맏아들인 진평왕의 이름은 백정(伯淨), 둘째 아들은 백반(伯飯), 셋째 아들은 국반(國飯)이다.

이들의 이름은... 무려 석가모니의 부친과 그 형제들, 즉 석가모니의 숙부 이름이다...즉, 신라 왕실은 전륜성왕을 자칭하는 것을 넘어서, 왕실과 부처-석가모니-를 동일시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석가모니와 동일시된 왕실 의식은 흔히 성골이라는 폐쇄적인 왕족 집단과도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덧붙여, 백정의 부인 이름은 마야부인(摩耶夫人). 무려 석가모니의 모친 이름이다. 진평왕의 혼인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언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부인이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 이름이 마야부인이라는 것은 출생했을 때 혹은 아주 어릴 때부터 백정의 부인으로 낙점되어 일찌감치 개명했을 것이라 추측할만한 근거가 된다.

여하튼 이렇게 거창하게 이름들을 지어 놓았으니... 저 계보를 그대로 따르자면 참으로 의미가 큰 왕실이 완성되었으리라. 흔히 이야기하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의 결정체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저 놀라운 계보의 개창자(?)인 동륜태자는 요절, 결국 동생인 사륜이 진지왕으로 등극한다....

그나마 다행히(?) 진지왕은 4년만에 폐출되고, 석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백정이 진평왕으로 등극하였다.



자, 이제 꿈과 이상으로 가득찬 신라 왕실....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역시 현실은 시궁창



백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는 끝끝내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기만 했다면 그 이름은 석가 아니면 석가모니였을 것이고, 그가 무난히 즉위했다면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불국토가 완벽하게 실현된 위대한 신라가 탄생했겠지만.... 결국 아들은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극히 폐쇄적인 성골 왕실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성골남진(聖骨男盡)이라는 가슴아픈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진평왕의 뒤를 이은 것은 딸이었던 선덕여왕이었고, 그 뒤를 이은 것도 국반의 딸 진덕여왕이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성골남진은 단순히 "성골 남자가 더 이상 없다"는 단순한 푸념을 넘어서 "석가모니가 결국 태어나지 않았다"는 엄청난 절망감이 담긴 말이었을 것이다. 야심만만하게 왕실을 석가모니의 계보에 맞춰 구성해 놓았는데, 끝내 석가모니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그 절망감은 오죽했으랴. 불국토를 꿈꾸었지만, 결국 부처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으리라 추측하는 것이 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절망감은 그대로 현실 정치에서도 표출되었다고 생각한다. 진평왕 말년에는 칠숙과 석품이 난을 일으켰고, 선덕여왕은 불안정한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소위 신귀족이라 일컬어지는 김춘추와 김유신을 가까이 둠으로써 구귀족 세력을 견제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선덕여왕 말년에는 상대등 비담이 난을 일으켰고, 난의 와중에 선덕여왕이 죽고 김춘추·김유신에 의해 진덕여왕이 옹립되면서, 사실상 모든 권력은 김춘추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면서 신라 중대가 시작된다.



상상력을 더 발휘해 보련다.

김춘추는 몰락한 왕실의 후예로 진골이긴 하지만 진골 내부적으로 보자면 외부에서 새로 유입된 존재에 가깝다. 게다가 진지왕이 폐출되게 된 이유는 화백회의, 즉 귀족 세력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김춘추가 진골 귀족 세력과 척을 지게 된 이유는 충분하다. 김유신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신참자. 이들이 왕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왕실은 왕실대로 진골 귀족 세력과 사이가 껄끄럽다. 불교의 공인 이후 왕실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왕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진골 귀족 세력이 이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왕실과 귀족 세력의 파워게임 와중에 진지왕이 폐출되고 진평왕이 옹립되는 사건까지 있었으니, 진평왕대 왕실은 귀족 세력의 강한 입김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왕실에 석가모니가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왕권에 엄청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끝내 태어나지 않았고, 진평왕 말년의 왕권은 분명 강력한 도전에 직면했다.

귀족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두가지 견해가 나올 수 있다. 귀족 세력은 이차돈의 순교 당시부터 불교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점에서 이어보자면, 부처를 자칭한 왕실이 실패한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에 친한 귀족 세력을 상정해 보아도, 왕실이 부처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바라보아도 귀족 세력이 왕실에 이반하려는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세력 구도는 그 이후 선덕여왕-진덕여왕 대에 신귀족과 연합한 왕실 VS 구귀족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대립의 결과, 최초의 진골출신 왕이자 신귀족의 필두 김춘추가 왕위에 즉위하게 되었다. 구귀족으로서는 또 다시 물을 먹은 셈이고, 왕실의 입장에서는 일명 왕즉불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불교와 별반 관련이 없었던 신귀족 세력만 땡잡은 것이다.

성골 왕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즉위는 신라의 한반도 패권 확립과 중대 전제왕권을 확립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중대 왕실도 불교와 관련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긴 했지만, 불교보다 왕권의 강화에 유리한 중국화·유교화 정책도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유교라는 유용한 통치 도구를 찾은 이상, 왕실이 부처와 동일시되는 왕즉불 사상은 큰 의미가 없게 된 것이다. 실제 사상사적인 측면에서도 불교는 더욱 심화·발전하면서 단순한 왕실 중심의 불교에서 벗어나 진정한 종교로 거듭난다.


마무리. 제목의 "불국토"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불국토 사상과는 다른 의미이다. 신앙적 측면에서 강조된 불국토 사상과 별도로, 왕실이 주도했던 불교화를 생각하며 내 마음대로 붙여본 신라 왕실의 꿈을 말한다. 뭐,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사상이지만.

핑백

  • 야스페르츠의 墨硯樓 : 왕조(王朝), 그리고 신라 2012-01-04 21:30:54 #

    ... (방계?)왕조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 성골왕조 계보도 (학부 때 공부한 흔적이라고나할까... ㅡㅡ;;) 3. 소위 성골왕조가 단절되게 되었던 경위는 일전에 포스팅(신라 왕실, 불국토를 꿈꾸다.)을 통해 다뤄본바 있다. 실질적으로 성골왕조와 무열왕계 왕조는 혈통적으로 그다지 벌어지지 않은 매우 가까운 왕조다. 그러나 워낙에 사회적 성격이 크게 변화하는데다 ... more

덧글

  • 만슈타인 2011/02/07 16:35 # 답글

    아 짤방이 모든걸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7 16:48 #

    내용을 한방에 요약하는 훌륭한 짤방입니다. ㅎㅎ
  • 2011/02/07 16: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7 16:48 #

    컼 가카까지 연결시킬 수 있군요. ㄷㄷㄷ
  • Warfare Archaeology 2011/02/07 16:40 # 답글

    아~재밌네요.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깐 정말 말이 되는 것 같은데요...실패한 신라 왕실이라...
  • 야스페르츠 2011/02/07 16:48 #

    뭐... 거의 절반은 제 혼자만의 망상입니다. ㅎㅎ
  • hyjoon 2011/02/07 16:43 # 답글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늘상 다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 야스페르츠 2011/02/07 16:48 #

    다 그런 법이죠.
  • 에드워디안 2011/02/07 16:50 # 답글

    적절한 비유네요.ㅋㅋㅋ

    ps. '佛心'으로 따지자면 양무제야말로 본좌급이죠.
  • 야스페르츠 2011/02/07 17:47 #

    양무제라면... 황제 재임 도중에 출가를 했던 그분 말씀이시군요. ㄷㄷㄷ
  • Jes 2011/02/07 21:17 #

    덕분에 도첩제-금승제 논란에서 항상 까였다죠.
  • 첫걸음 2011/02/08 07:43 #

    ㅋㅋㅋ 양무제는 그렇게 자부하다가 달마한테 개무시당하죠 ㅋㅋㅋㅋㅋㅋ
  • DreamersFleet 2011/02/07 17:14 # 답글

    석가모니란 석가族의 賢人이란 뜻이지요. 싯다르타가 이름이라고 하는 군요. 껄껄껄.
  • 야스페르츠 2011/02/07 17:48 #

    껄껄. 그럼 실달다(悉達多)라고 이름을 지었겠지요.
  • 솔까역사 2011/02/07 17:25 # 답글

    종교는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불교는 이씨조선에 와서야 정치와 분리됩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대통령이 새로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한다고 하는데 이 점에서는 한국이 우위라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7 17:50 #

    흠... 제 생각에는, 신라 중대 쯤이면 적어도 "정교분리" 자체는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왕실이 불교를 국교화하고 우대하는 것과, 정교분리는 좀 개념이 다르죠. 물론,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고려 시대까지 불교가 막대한 힘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분리되지 않았다고 보기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지...
  • 솔까역사 2011/02/07 18:04 #

    아 그런 기준이라면 애초부터 정교일체가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 궁상각치우 2011/02/07 17:30 # 답글

    컥, 안그래도 이거에 관련된 내용을 포스팅할까 고민했는데 말이죠 ㅋ

    국편위<한국사>의 견해에 따르면 진흥왕이 전륜성왕을 자처했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합니다. 관련된 내용 짤막하게 트랙백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7 17:52 #

    흠... 저도 진평왕의 아들 대에 출생하게 될 석가가 바로 전륜성왕이라는 내용은 들어보았습니다만... 잘 모르겠네요. 트랙백 기대하겠습니다.
  • 궁상각치우 2011/02/07 18:26 #

    윽, 벌써 이 댓글을 보셨군요 ㅎㅎ

    "화랑과 미륵신앙의 진흥왕대의 왕권과 사회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진흥왕대의 전륜성왕 사상을 들기도 한다. 즉 진흥왕의 태자 이름이 ‘동륜銅輪’이고, 차자(진지왕)의 이름은 ‘사륜舍輪’혹은 ‘금륜金輪’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륜’은 일명 ‘동륜東輪’으로도 쓴다. 진지왕의 이름 중 ‘금륜’만을 취하여 태자와 차자의 이름에 있어서 그 순서가 뒤바뀐 듯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연유 때문인지 ‘금륜’은 곧 ‘철륜鐵輪’이었을 것이라는 궁여지책이 나오기도 하였다. 진흥왕의 행적을 보면 전륜성왕의 그것을 방불케 하는 점이 있지만, 왕족의 이름에서 전륜성왕사상을 볼 수 있다는 주장에는 수긍하기 어렵다. 그리고 전륜성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시기가 미륵하생의 시기이므로 신라 불국토란 곧 미륵정토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후대 진평왕이 석가모니의 아버지를 자청했고 신라 불국토설은 진평왕대 후반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 것을 고려하면 전륜성왕사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1. 이름의 일관성이 부족하다.
    2. 전륜성왕은 미륵불을 보좌하는 역할로 교리상 석가보니불 이후에 등장한다. 따라서 뭔가 핀트가 안맞다.

    정도가 주장의 근거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지금 수중에 국편위<한국사>가 없어서 좀 더 참고할만한 내용을 적기가 어렵군요; 제가 따로 정리한 것을 올려놓습니다. 보론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해서 댓글로 답니다ㅎㅎ
  • 야스페르츠 2011/02/07 19:29 #

    오오... 그렇군요. 사실 저도 동륜의 동생으로 금륜이 나오는게 좀 생뚱맞기는 했습니다. ㅎㅎ
  • 소드피시 2011/02/07 18:34 # 답글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군요. 왕권을 신권과 합치려다 망했으니. 재미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7 19:29 #

    감사합니다. ^^
  • 한단인 2011/02/07 18:36 # 답글

    불심으로 대동단결을 외쳤으나 현실은 시궁창...ㅋ
  • 야스페르츠 2011/02/07 19:29 #

    불심으로 대동단결!
  • 들꽃향기 2011/02/07 19:29 # 답글

    이 문제는 일전에 '역사신문' 삼국시대편에서도 신라왕실의 꿈(?)으로 짤막하게 다뤄준 기억이 있었는데, 야스페르츠님의 글을 통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ㅎㅎ

    차마 '석가모니'가 될 아들이 태어나지 못했으니, 그나마 절이나 그런 시설들을 통해서 불국토를 구현하려 해야 했다는 슬픈 결말이..ㅡㅜ
  • 야스페르츠 2011/02/07 19:30 #

    ㅎㅎ 역사신문이라... 추억의 책이로군요.
  • Niveus 2011/02/07 20:22 # 답글

    불심으로 대동단결!!!
    ...하지만 천오백년전에도 지금도 꿈도 희망도 없죠. OTL
  • 야스페르츠 2011/02/07 22:13 #

    그나마 천오백년 전에는 실현 가능성이라도 있었죠... ㄷㄷㄷ
  • Jes 2011/02/07 21:19 # 답글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딱 맞군요, OTL
  • 야스페르츠 2011/02/07 22:13 #

    그렇죠. 하늘만 아니었어도 나름 멋진 결과가 나왔을텐데 말입니다.
  • Allenait 2011/02/07 23:26 # 답글

    정말로 현실은 시궁창이로군요...
  • 야스페르츠 2011/02/08 11:17 #

    꿈과 현실의 불균형은 역사의 법칙인 것 같습니다.
  • 솔까역사 2011/02/08 01:32 # 답글

    본문에서는 '시궁창'이란 표현을 썼지만 꿈과 현실을 재미있게 대조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쓴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실 신라는 삼국시대만을 놓고 볼 때는 진흥왕대가 전성기였죠.

    또 지금의 관념으로 고대인이 종교미신에 심취한 것을 비웃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왜 고대인은 백성들의 뜻을 물어 차기 왕을 뽑지않고 세습했느냐고 비웃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종교미신의 허구가 입증된 현대에 와서도 아직 그것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면 황당한 일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예전에는 예수를 목격했다는 대통령도 있었죠. -_-
  • 야스페르츠 2011/02/08 11:18 #

    물론 당연하지요. 신라 왕실이 부처를 자칭했다고 해서 그것을 어리석게 보는 사람은 적어도 여긴 없을 겁니다. ㅎㅎ
  • 누군가의친구 2011/02/08 03:18 # 답글

    신도 부처도 없단 말인가!
    ...

    PS: 그리고 아, 망했어요!...(...)
  • 야스페르츠 2011/02/08 11:20 #

    부처님의 가호로 망하지 않으시길... ㅎㅎ
  • 雲手 2011/02/08 05:07 # 답글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해보면..

    불국토를 현실화하려는 신라왕실의 꿈은 무열왕에게도 이어져서 왕실 자체로 감당이 안된다면 고승대덕의 힘을 빌자라는 모토하에 그당시 가장 이름높던 원효와 결탁, 원효는 자신의 정토종을 널리 알리고자하는 야심에 왕실의 은근한 제의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 태어난 설총은 종교와 권력의 지원이라는 쌍칼을 들고 급거 출세하여 많은 업적을 남기는데..
  • 야스페르츠 2011/02/08 11:21 #

    헐... 설총의 출생에 그런 비밀이... (틀려!)
  • 2011/02/08 09:1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2/08 11:21 #

    글쎄요. 그들은 불교에도 별 관심은 없습니다. 그저 크고 알흠다우면 다 장땡이죠. ㅎㅎ
  • 석유한잔 2011/02/08 19:13 # 답글

    성골남진...!

    세팅까지 했는데 왜... 남캐가 안 나오냐능...??
  • 야스페르츠 2011/02/09 09:05 #

    ㅋㅋ 장비 세팅까지 다 해놨는데 원하는 스탯이 안나오는 안습한 상황이로군요. ㅋㅋ
  • ㄲㄲㄲ 2011/02/09 23:16 # 삭제 답글

    진평왕과 왕실 선조들(법흥왕, 진흥왕, 동륜태자)의 심정 :

    "이름이랑 계보까지 다 만들어 놓았는데, (아들을) 왜 낳지를 못하니...낳지를 못하니..."
  • 야스페르츠 2011/02/10 10:56 #

    그거슨 운명. ㄲㄲ
  • 일반인 2011/03/01 20:33 # 삭제 답글

    저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아주 조금 관심을 갖고있습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사람이 아니기때문에 전문서적을 읽어본적은 없고, 학교에서 배운 국사나, 역사소설들, 여기저기 블로그들을 기웃거리기도하고, 인터넷검색으로 조금씩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다가 야스님의 글들을 읽게되어 첫글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중간에 연재하신 5호16국은 머릿속 정리가 잘 안되서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읽고 생각하다가 궁금한점이 있어서 글을 남겨봅니다.
    1. 현제 우리에게는 고조선에 대한 기록들(신화적인얘기들말구요...)이 별로 없는것입니까?
    2. 오로지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중국의 역사서에 의존할수밖에 없는건가요?
    3. 고조선이 언급된 중국의 역사서는 믿을만한겁니까? 아니 역사서는 믿을만하다쳐도 고조선이 언급된부분이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만큼 중요한건가요?
    4. 왜 중국의 역사서는 그만큼의 오래전일까지 전해지는데 우리나라는 그러한 역사서가 없을까요?
    5. 한사군이든 낙랑이든 전 잘은 모릅니다.SBS에서 TV로 보게되었는데, SBS에서는 몇가지 의문점을 추적하더라구요. 일본인 역사학자(세키노타다시)가 조작을 했을수도 있다라고 하는데,그 방송을 보면 일반인인 저로서는 아 그 역사학자가 조작했을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됩니다. 근데 야스님의 글을 보니 한사군이든 낙랑이든 사실로 얘기하시는것 같아서요. 방송이 잘못된것입니까?
    6. 방송이 잘못되었다면, 큰일아닌가요? 저처럼 생각하는 일반인이 저 하나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궁금한게 많은데 답변해주신다면 앞으로도 하나씩 궁금한걸 물어봐도 될런지요?
  • 야스페르츠 2011/03/01 23:58 #

    1. 네. 없습니다.
    2. 아니오. 고고학 발굴과 금석문을 비롯해서 많은 자료들이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3. 제 고조선사 연재를 참고하심이 좋을 것입니다. 역사서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도 간단하게나마 다루고 있습니다.
    4. 모릅니다. 그 시절에는 우리의 문자도 없고, 기록 문화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다 불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왜 없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5. 방송이 사기를 친 겁니다.
    6. 방송이 그런 짓을 하는건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그저 방송사의 무책임함을 규탄할 뿐.
    7. 제가 그런 것을 답변할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물어보신다면 아는 한도 안에서는 시간이 닿는대로 대답해드리지요.
  • 동훈짜응 2011/03/01 21:22 # 삭제 답글

    마야부인에 대해서, 존귀하게 된 뒤─즉 국혼 이후에 부인호를 받았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 야스페르츠 2011/03/02 00:01 #

    신라의 왕족이나 부인들이 부인호를 받았는지는 모르겠네요. 국혼 이후에 이름을 바꿨을수도 있겠지요.
  • 동훈짜응 2011/03/02 07:20 # 삭제

    답변 감사합니다. ^^ 뭐, 제가 아직 아마추어긴 하지만 마야부인이 하필이면 마야인 것도 그렇고, 나름대로 확인되는 케이스로는 아지>문희>문명왕후 같은 것도 있으니... 아 근데 고타소 지소부인은 오째 설명해야 하나...? 뭐 요즘이야 드라마에서 한성백제가 완월당 신월당 당호 드립까지 치는 세상이 되었지만요.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 루팅이 걸렸는데 오류가 뜨다니!
  • 야스페르츠 2011/03/02 09:28 #

    문명왕후 같은 것은 별개로 봐야 겠지요. 시호잖아요. ㅎㅎ
  • 동훈짜응 2011/03/02 20:02 # 삭제

    헙, 문명왕후의 경우에는 그렇겠군요! 이것은 천명부인의 영향... 헙...
  • 일반인 2011/03/02 00:35 # 삭제 답글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역사에 무지한 저로서는 모든게 다 궁금합니다. 가끔 글을 읽다보면 환빠라는 얘기가 나오던데, 저도 그사람들의 얘기에 중독되있었던것 같습니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던 저로서는 그사람들의 얘기가 더 솔깃한게 사실이거든요.
    우리의 선조들이 넓은영토를 경영했었고, 정신적으로도 우월한 민족이였다는 얘기가 가슴을 뛰게한건 사실이거든요.
    이제라도 제대로된 역사를 알고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게된게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그치만 우리나라 고대사의 기록이 이렇게 없다는 사실이 좀 원통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왜 저같은 일반인이 제대로된 역사를 접하는것보다 엉터리 역사를 접하는게 더 쉬울까요?
    엉터리 역사들로 만들어진 소설,TV 등을 먼저 접하게 된다는 사실도 참 한심하기도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02 09:30 #

    그게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오랜 역사를 통해 항상 싸워왔던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그런 엉터리 학문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유사역사학 방지

얼마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