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31 01:06

원성왕 김경신의 신분은 무엇인가? 역사

Dreamersfleet씨에 대한 2차 질문서 및 질문하는 이유



원성왕 김경신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내물왕의 12세손으로, 선덕왕의 사망 이후 국인들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 신라 하대 진골 왕통, 흔히 원성왕계 왕실이라 부르는 계보의 시조이다.

DF 씨는 이 원성왕의 계보에 대해서 의문을 날려주신 바, 감히 원성왕의 계보를 추적해 보려 한다.


첫째, 내물왕은 과연 신화 속에나 등장할 불명확한 왕인가?

불행히도, 내물왕은 신화와는 무관한 왕통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라의 왕통은 내물왕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화의 영역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실의 영역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된다. 내물이나 실성, 눌지 등의 군주는 고구려 광개토왕-장수왕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 있었으며, 고구려에서 인질 생활을 하기도 했다. 내물왕을 신화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그다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원성왕은 내물왕 12세손이라는 까마득한 혈통만을 가지고 있는가?

일단, <삼국사기>의 기록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더 자세한 계보가 등장한다. 유사의 계보를 따르면, 원성왕의 계보는 지증왕에까지 이어져 있다. 즉, 12세손이라는 까마득한 혈통 외에도 지증왕 8세손이라는 더 가까운 계보도 있다. DF 씨는 낭혜화상의 예를 통해 7대 정도에서 6두품으로 강등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12대라는 까마득한 계보라면, 그 동안에 6두품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 하겠다. 하지만 겨우 8세손에 불과하다면 또 해석하기 나름이다. 물론, <유사>의 계보를 믿지 못하겠다면 따로 할 말은 없다.


셋째, 원성왕의 선대는 어떤 관등을 가지고 있었는가?

원성왕의 부친 효양은 일길찬의 관등까지 올랐다. 일길찬은 진골과 6두품만이 될 수 있는 관등이다.
원성왕의 조부 위문은 이찬의 관등까지 올랐다. 이찬은 이벌찬 바로 아래에 있는 상당한 고위 관등으로 진골만이 가능하다.
원성왕의 증조부 의관도 이찬이었으며, 고조부 법선도 대아찬이었다. 물론 모두 진골만이 가능한 고위 관등이다.

DF 씨의 추론에 따르면 원성왕은 12대(또는 8대)가 흐르는 동안 6두품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하였으나, 최소한 그의 조부, 즉 10대(또는 6대)가 흐르는 동안에는 분명한 진골이었음을 알 수 있다.

효양의 경우를 놓고 보자면 6두품인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 부친의 관등은 이찬이다. 무려 관등 랭킹 2위다.

전체 진골귀족 중에서도 최소 상위 2위에 랭크되어야 가능한 관등인 이찬의 아들이 단 1대 만에 6두품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넷째, 낭혜화상의 경우와 비교해 본다면 어떨까?

낭혜화상의 경우, 조부가 대아찬(한찬)을 지냈고 부친이 6두품으로 강등되었다. 대아찬은 진골만 가능한 고위 관등이며, 분명 단 1대 만에(?) 6두품으로 강등된 사례라고 보이기 쉽다. 그러나 대아찬은 진골에게만 허용된 관등 가운데 가장 낮은 관등에 속하며, 증조부 및 고조부의 경우도 단지 "재상과 장수"를 지냈다라고만 나타나고 있어 상당히 한미한 가문이었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게다가 낭혜의 부친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강등이라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에 충분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바로 김헌창의 난. 낭혜의 부친 범청이 강등된 사유로 김헌창의 난에 연루된 것을 상정하는 것은 그다지 무리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원성왕의 경우는 어떨까?

원성왕의 부친은 6두품일 가능성을 눈꼽만큼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원성왕의 부친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부친이 6두품으로 강등될만한 뚜렷한 사유가 없다. 오히려, 원성왕이 한창 활동하던 무렵에 강등의 사유가 될 대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이 바로 김지점의 난. 그러나 원성왕 김경신은 김자점의 난 당시 6두품이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김지점의 난 당시 원성왕은 이찬의 관등에 있었으며, 조부나 증조부와 같은 "2위"에 랭크된 관등이다. 게다가 원성왕은 김지점의 난 이전에는 기록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즉, 6두품이었다가 진골로 승급해서 무려 랭크 2위까지 오를 만큼 놀라운 공을 세웠을 만한 어떠한 사건이나 기록도 없는 것이다.

효양의 관등이 눈에 띄게 낮은 점은 있지만, 그 선대와 후대가 모두 충분히 높은 관등에 있는 것으로 볼 때, 효양 때 6두품으로 떨어졌다 다시 진골을 회복했다는 추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지 효양이 관직 생활을 잘 하지 못해서, 혹은 줄을 잘 못서서 관등이 높이 오르지 못했을 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이상으로 원성왕의 계보와 그 신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고찰해 보았다.

이 고찰에 따르면 DF 씨의 새로운 사례 "원성왕 김경신"의 경우는 강등 또는 승급의 증거로 보기 어렵다. DF 씨가 이에 대해서 합리적인 반론을 하신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생각은 있으니 삼가 고견을 기다리겠다.




덧글

  • 루치까 2011/01/31 01:14 # 답글

    김경신과 낭혜화상의 가계를 비교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벌써 얘기가 있었군요. 낭혜화상비 포스팅을 준비하고 있는데, 낭혜화상에 관한 얘기는 초록불님도 그렇고 다들 많이 하셔서 더 언급할 것이 있을라나 모르겠습니다. ^^:
  • 야스페르츠 2011/01/31 01:23 #

    그냥 한 번 해 봤습니다. ^^;;
  • 2011/01/31 01: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31 01:20 #

    사전적 수준의 설명에서는 김헌창의 난에 연루되었을 것이라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만 추론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 분명한 증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 ㅋㅋㅋ 2011/01/31 01:26 # 삭제 답글

    그리고 직장인이라면서 새벽까지 이런 포스트나 쓴다는 게 말이 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자야지.
  • 광팔ㅗ 2011/01/31 01:32 # 삭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년재벌이신 광팔신병님께서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분신술사 하시고요?
  • 야스페르츠 2011/01/31 09:01 #

    난 야행성이라서. 그렇게 걱정해 주지 않아도 잠은 적잖이 자고 있어. tut tut.
  • DreamersFleet 2011/01/31 01:45 # 답글

    有崔致遠撰碑. 又刱報恩寺又望德樓. 追封祖訓入匝干爲興平大王, 曾祖義官匝干爲神英大王, 高祖法宣大阿干爲玄聖大王, 玄聖大王(衍文), 玄聖之考卽摩叱次匝干.

    ==> 대충 저 집안이 언제 진골이 되었는지 실마리가 보이는 구절이군요. 야선생!

    그리고 아버지 벼슬이 유사랑 사기랑 따로 노네요. ㅋㅋㅋ. 이걸 믿느니 차라리 견훤이 聖骨이라는 걸 믿지.ㅋㅋㅋ

    잘 알았수다.
  • 조인스머트 2011/01/31 01:53 # 삭제

    야스페르츠는 한문모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광팔ㅗ 2011/01/31 02:29 # 삭제

    잔다던 광팔이는 그저 관심이 고파서 리플을 싸고 있을 뿐이고..
  • 야스페르츠 2011/01/31 09:14 #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댁이 인용한 유사 구절에는 원성왕 아버지 벼슬이 안나오는데 말입니다? 본문 중에는 대각간으로 나오니 무려 1등위로군요. 현조 마질차도 관등은 잡간, 즉 잡찬인데 말입니다? 무려 3등위의 관등인데 말입니다? 마질차 윗대로는 없으니까 마질차 때 진골이 되었다라????

    이거야 원.
  • DreamersFleet 2011/01/31 09:18 #

    내가 언제 마질차때 진골이 되었다고 했소. 난독증 쩌네요.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어쨌든 유사랑 사기랑 따로 놀잖습니까. 야스님.
  • DreamersFleet 2011/01/31 09:19 #

    왜 제 각각인지 설명좀 해주시죠. 야스님.
  • DreamersFleet 2011/01/31 09:41 #

    다시 한 번 말해드릴까요? 왜 내가 마질차때 진골이었다고 나를 모함하나요? 야스님.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대조해 보셨습니까? 그런데 왜 차이가 납니까? 이런 교차검증도 안되는 걸레같은 사서를 100%믿는 것도 유사역사학의 기법중 하나 아닌지 묻고 싶군요. 내가 신라는 흉노족이라고 하니 말도 안된다던 사람이 제가 혹시 그 높은 벼슬역시 그냥 가짜라고 하면 저만 등신되는 건가요? 야스씨.
  • 야스페르츠 2011/01/31 09:41 #

    1. 그럼 저 집안이 언제 진골이 되었는지 고견을 주시면 감사하겠는데 말입니다? 조부부터 현조까지 3등위인 잡찬만 내리 역임한 가문이 언제 진골이 된 건지 말씀을 해주시지요?

    2. 유사랑 사기랑 따로 노는 경우는 차고 넘치는데 말입니다? 춘추의 아버지 용춘만 해도 사기에서는 이찬인데 유사에서는 각간인데 말입니다? 그럼 용춘의 진골 여부도 의문의 대상이 되는 건가효?
  • DreamersFleet 2011/01/31 09:47 #

    우선 왜 그렇게 난독하셨는지나 설명하시지요. 야스님.
  • 야스페르츠 2011/01/31 09:50 #

    1. 설명했는데 말입니다? 부친은 대각간, 조부부터 현조까지 모조리 다 잡간 또는 대아간, 그럼 대체 언제 진골로 승급된 건가요? 현조 마질차 이전 말고는 승급될 건덕지가 전혀 없는데 말입니다? 언제 떨어진 적이 있어야 승급을 하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닙니까? 근데 6두품 관련 관등에는 아예 내려간 적도 없는 가문인데 언제 승급을 했단 말입니까?

    귀하의 인용문에는 마질차 선대 말고는 "대충 저 집안이 언제 진골이 되었는지 실마리가 보이는 구절"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 DreamersFleet 2011/01/31 09:53 #

    조상을 꽤 훌륭한 사람으로 과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 야스선생한테 김일제 이야기하면서 들은 것 같은데. 거기 써있다고 역사적 사실이 되나? 교차검증을 해봐야지. 그럼 신라김씨 조상은 김일제게?
  • 야스페르츠 2011/01/31 10:01 #

    1. 귀하의 인용문에서 그런 실마리가 어디에 보이는지 합리적인 추론 과정을 보여주시지요?

    2. 물리적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 시간적 거리도 6~700년, 게다가 중간에 어떻게 넘어왔는지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음. 그런데 아무튼 김일제는 우리 조상.

    물리적 거리는 0, 시간적 거리도 3~400년, 게다가 중간에 어떻게 전해졌는지 이름과 계보까지 낱낱이 알려져 있음. 그러므로 내물왕은 우리 조상.

    비 교할 걸 비교하시지요? 하다못해 혼란기라서 조작하기라도 쉬웠던 시대라면 모를까, 무려 신라 중대의 절대왕권기에 그런 조작을 했다라? 쯧쯧. 고려 왕실도 중국에서 태클 거니까 "그 황제 말고 조낸 난세라서 미친듯이 떠돌아다녔던 저 황제였음"이라고 변명하기 급급했음.
  • 2011/01/31 09: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31 09:48 #

    "본인이야 타고난 망상가에 병신이지만" 이라고까지 말씀하신 분입니다. 해석하자면 "난 원래 모르니까 괜찮음"
  • 누군가의친구 2011/01/31 18:14 # 답글

    이거 뭐, 결말은 뻔하군요.(...)
  • 야스페르츠 2011/02/01 09:28 #

    결국 정신승리입니다.
  • 파란바람 2011/02/02 17:40 # 답글

    결국은 정신승맄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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