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04 14:33

담백하게 풀어보는 고조선사 (5) 역사

7. 제2왕조

대략 기원전 195년에서 190년 무렵, 위만의 쿠데타가 일어나 고조선의 제1왕조라고 할 수 있는 왕조는 멸망하였다. 그리고 위만에 의해 고조선 제2왕조, 흔히 위만조선이라 부르는 왕조가 성립되었다.

위만이 집권할 무렵, 중국은 창업주 고조가 죽고 혜제가 즉위한 상태였다. 혜제 시기의 한나라는 고조의 황후 여후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여후 시기부터 시작해서 대체로 문제, 경제, 무제 초반에 이르기까지 약 50여 년 동안 외부로의 확장을 자제하고 내실을 다지는 형태의 정치가 이루어졌다고 평가된다. 북방의 강대한 흉노의 압박도 있었을 것이고, 황로학파를 위시한 도가의 무위지치 같은 사상의 영향도 원인었으며, 수백 년 동안 계속되었던 전쟁에 염증이 난 탓도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중국이 외부로 확장하는 것을 자제했던 덕분에 위만의 고조선은 한나라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힘과 권위를 획득하고 외부로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사기》의 기록을 살펴보자.


이 때는 마침 효혜(孝惠)·고후(高后)의 시대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되니, 요동태수는 곧 위만을 외신(外臣)으로 삼을 것을 약속하여 국경 밖의 오랑캐를 지켜 변경을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모든 만이의 군장이 들어와 천자를 뵙고자 하면 막지 않도록 하였다. 황제도 이를 듣고 허락하였다. 이로써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그 영역이]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會孝惠、高后時天下初定,遼東太守即約滿為外臣,保塞外蠻夷,無使盜邊;諸蠻夷君長欲入見天子,勿得禁止。以聞,上許之,以故滿得兵威財物侵降其旁小邑,真番、臨屯皆來服屬,方數千里。



기록에 따르면, 위만은 요동태수를 통해 한나라에 접촉하였고, 외신으로 자처하며 군사와 재물을 얻었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이 세력 확장의 희생양(?)이 된 것이 바로 진번과 임둔의 두 국가(혹은 부족)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진번은 황해도 및 경기도 북부 일대에 위치해 있었고, 임둔은 함경도 남부 및 강원도 북부에 위치했다. 이들 두 국가가 위만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복속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기존의 고조선, 적어도 연나라에게 밀려 쇠퇴한 이후의 고조선은 진번과 임둔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위만이 찬탈할 당시 고조선은 평안도 일대만 장악한 국가였다는 의미이다.

진번과 임둔, 기타 여러 소읍들을 복속시킴으로써, 고조선은 사방 수천리의 영토를 가진 강국이 되었다. 그 영역은 적어도 학계에서 추산하는 한군현의 영역과 같거나 더 컸을 것이다. 다만 현도군 지역, 보통 예맥이라 불리는 부족들이 거주하던 지역이 과연 영토화되었는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은 분명하다. 즉, 함경북도 지역을 제외한 현재 북한 영역 대부분을 지배하거나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이다. 과연 사방 수천리의 영토라 할만 하다.


8. 분열

위만이 이룩한 고조선 제2왕조는 그 아들(이름, 재위기간 미상)을 거쳐 손자인 우거(右渠)에 이르렀다. 그 기간은 약 80여 년에 이르는데, 그 동안 세력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국력을 길러 한나라에 위협적인 세력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사기》의 흉노열전에 따르면 한나라는 흉노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동서로 원정하여 흉노의 영향권 아래 있거나 흉노에 우호적이었던 세력을 무너뜨렸는데, 그 가운데 고조선도 포함되어 있다. 일부 기록에는 고조선이 흉노의 왼팔이었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강대했던 고조선의 세력도 한나라의 힘이 점차 강대해지고, 외부로 뻗어나가기 시작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기원전 130년대부터 시작된 무제의 확장 정책으로 인해, 고조선을 비롯한 동방에도 많은 파란이 일어났고, 고조선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조선의 세력도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분열 사례로는 예맥의 군장 남려(南閭)가 한나라에 항복한 사건이 있다.

《한서》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28년, 한무제가 재위하던 시기 예의 군장 남려가 28만 명의 부족민을 거느리고 한나라에 투항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무제는 이들을 받아들여 그 지역에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였다. 창해군으로 이르는 교통로는 팽오를 시켜 뚫도록 하였는데, 워낙에 길이 멀고 험했기 때문에 도저히 군현을 유지할 수 없어 고작 3년 뒤인 기원전 126년에 창해군을 폐지하였다.

이 창해군을 대체로 현도군이 위치한 지역으로 보고 있다. 창해군에서 나타나는 예맥의 정체에 대해서는 워낙에 이론이 많으니 일단 스킵. 어쨌거나 대략 압록강 중하류 일대에서 평안북도 동단(대략 지금 북한의 자강도) 일대가 위만조선의 지배에서 이탈한 셈이다.

이외에도 고조선을 통해서 한나라와 접촉하던 주변 소국들이 독자적으로 한나라와 외교를 시도하였던 정황도 포착된다. 고조선 전쟁 당시를 다룬 기록에서는 "소국들의 조공을 막은 것"을 고조선의 잘못으로 꼽고 있는데, 이는 곧 독자적인 외교 시도가 있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고조선 측에서도 이러한 주변 소국들의 이반과 균열을 의식하였을 것이다. "조공을 하지 않은 것"도 잘못으로 지적되는데, 이 또한 한나라의 확장에 대한 반감의 표시이자 주변 소국들을 단속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걷기 위한 제스쳐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고조선이 국력 및 흉노와의 관계를 믿고 반한나라 노선을 걷자, 주변 소국들이 선진 문물의 창구인 한나라와의 외교가 단절되게 되고, 이로 인해 이반이 일어났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조선은 한나라의 침략을 맞이하게 된다. 기원전 109년의 일이다.


덧글

  • 크핫군 2011/01/04 14:36 # 답글

    부...부...부와아아아앜!!!!!!!!!!!!!!!!!!!! 드디어 올리시다니!!!!!
  • 야스페르츠 2011/01/04 17:47 #

    부아악!!
  • 행인1 2011/01/04 14:44 # 답글

    왠지 후대처럼(?) 한과의 관계를 왕조의 권위 강화에 써먹었던 모양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04 17:47 #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실제적인 군사력과 부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권위의 강화는 확실했겠지요.
  • 진성당거사 2011/01/04 14:4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04 17:48 #

    감사합니다. ^^
  • 리리안 2011/01/04 15:11 # 답글

    이제 한나라는 패해서 장수들이 참수되는 일만 남았습니...어?(도주)
  • 야스페르츠 2011/01/04 17:48 #

    읭? 한나라가 패한 거였음메? (틀려!)
  • 파랑나리 2011/01/16 21:28 #

    장수들인 순체와 양복은 귀족이었나요? 평민이었나요? 중앙집권적 귀족제가 후한 때부터 생겼으니 이 질문을 틀렸을까요? 그리고 순체는 예전에 벼슬이 侍中이었다니, 그럼 처음부터 무신이 아니라 문관이면서 장수 노릇을 한 걸까요?(근데 이게 게시물의 내용과 무슨 상관일까요?)
  • 미연시의REAL 2011/01/04 16:55 # 답글

    이글에서 제가 의문인점은 고조선의 강역이 결국 위만조선때에도 압록강을 넘지 못했다고 보는건가요?

    더욱이 예맥족의 투항 관련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지역에 대한 투항의 문제와 고조선의 일원으로서의 투항의 문제가 애매하게 보여집니다만..
  • 야스페르츠 2011/01/04 17:50 #

    1. 압록강을 넘어 영토를 확보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교두보나, 영향력을 미치기는 했겠지요.

    2. 예맥의 투항은 저도 확실치 않은 내용인지라... 현도군 지역은 아예 고조선의 지배를 벗어난 외부로 보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좀 복잡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 크레이들 2011/01/04 18:12 # 삭제 답글

    ...포스팅 본문에 대한 감상은 둘째치고...
    이오공감에 올라간 이상 마광팔 씨나 그의 분신들이 나타나 깽판을 부리겠네요.
    특히나 추천평.
  • 야스페르츠 2011/01/04 20:14 #

    아마 저한테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마광팔도 고소미는 무서워합디다.
  • 돈키호테 2011/01/04 18:20 # 답글

    사실 고조선 하면 곰이 마늘을 먹고 인간으로 변신(나엘 드루?)하는거랑 상투 튼 위만, 그리고 그 손자대에 망했다 정도로 좀 대충 아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세세하게 나온걸 보니 정말 괜찮은 것 같아요.
    (워낙 사료가 빈한해서인지 국사책도 비파형 동검이나 세형 동검만 계속 보여주죠. ㅠㅠ)
  • 야스페르츠 2011/01/04 20:14 #

    감사합니다. 단군신화는 일부러 제외했습니다. 신화는 배제하려구요.
  • 2011/01/04 19: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04 20:17 #

    창해역사라니 컼ㅋ

    그런데, 학계에서도 진번 임둔에 대해서는 좀 이중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위만대 진번 임둔 복속 기사를 분명 인식하고, 그 이전의 두 국가(?)를 독립적인 주체로 기술하고 있기는 한데, 그보다 전의 고조선에서는 진번이 조선과 뭉뚱그려서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임둔이야 이전 사료에서는 안나오니까 상관 없지만. 심지어 국편위의 <사기> 조선전에는 이전 사료의 진번과 위만 시기의 진번이 다른 나라라는 논의도 나옵니다. ㄷㄷㄷ
  • hyjoon 2011/01/04 20:06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 야스페르츠 2011/01/04 20:17 #

    감사합니다. ^^
  • 임민성 2011/01/04 22:27 # 답글

    잘 읽고 가요~ 복 많이 받으세요~^^
  • 야스페르츠 2011/01/05 01:06 #

    감사합니다.
  • Red-Wolf 2011/01/04 22:38 # 답글

    잘읽고갑니다 갠적으로 사학과 학생으로싸 느낀거지만 상고사는 고고학의 힘이 많이 필요한거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05 01:07 #

    하지만 저는 고고학을 모릅니다... ㅠㅠ
  • 을파소 2011/01/04 22:59 # 답글

    식민빠들이 이런 글을 추천하여 이오공감을 더럽히다니!

    ....대충 이런 추천평이 붙게 되겠죠?
  • 야스페르츠 2011/01/05 01:07 #

    저한테는 이상하게 안붙네요. ㅋㅋ
  • Quattro 2011/01/04 23:33 # 답글

    이 대목이 언제나 나올지 조마조마했습니다. 이제 그들이 추천평에 나타나기만 하면 완벽
  • 야스페르츠 2011/01/05 01:07 #

    음... 왜 조마조마하셨어요? 조마조마할 부분은 없는 거 같은데...
  • 멍청한행복 2011/01/05 00:38 # 답글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 저기 나오는 임둔, 진번, 예맥을 단순히 나라 이름으로 판단해 버리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중국을 "당나라(조선 시대까지도 중국을 당이라고 표시한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세력을 가르켜 부르는 것으로 부를 수 있으니까요.

    국가를 이룬 세력도 있겠지만, 국가로 보기에는 좀 저급한 세력도 있다고 봐야죠. 일단 사기에 등장한 위만조선의 경우에는 찬탈전의 왕조보다는 조금 더 중국의 통치방식에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리고 당대의 28만호 정도 되면 꽤 큰 세력이탈입니다. 한 호라고 하면 그게 단순히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세금을 부과하고 각종 노역을 부과하는" 하나의 조세단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지요.

    가까운 옛날만 봐도 한 가정에 아이가 많았고, 친척들도 많았으며, 어떤 호에는 분명 노예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기 표시된 호는 단순히 지금 생각처럼 한호면 4명이겠네? 가 아니라 10명 가까이 생각해도 됩니다.

    그렇지만 당시에 280만명이나 되는 인구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05 01:09 #

    1. 저도 나라보다는 부족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부체제론에서 말하는 部와는 다르겠지만, 일정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되 제각기 읍락을 이루고 사는 정도의 형태라고나 할까요.

    2. 28만 호가 아니라 口입니다. 즉, 28만 명이 이탈한 것이죠. 28만 명도 결코 적지 않은 숫자지만, 28만 호에 비한다면 엄청난 수는 아니죠.
  • Jes 2011/01/05 02:07 # 답글

    고조선이 담백하게 끝나가는 군요.
  • 야스페르츠 2011/01/05 10:37 #

    다음편은 짜게 만들겠습니다.
  • 멍청한행복 2011/01/05 14:40 # 답글

    결국은 한나라의 승리로 끝나긴 하지만 한나라로서도 큰 피해를 입은 전쟁의 양상이었죠....
  • ㄲㄲㄲ 2011/01/06 00:45 # 삭제

    죄송합니다만, 겨우 5만 7천의 병력을 1년간 투입해서 한 국가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영토로 편입하는 데까지 성공했는데, 한나라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5만 7천이면 무제 당시 한나라가 대흉노전쟁에 투입한 병력과 비교해 보면 소규모에 속합니다. 흉노의 경우는 수백 만의 병력을 투입해 45년에 걸친 장기전을 펼쳤는데도 결국 멸망시키는 데 실패했는데, 그에 비하면 조선전쟁은 아주 적은 비용을 들여서 전쟁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영토까지 얻은 셈입니다. 한나라 입장에서는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죠.

    사마천이 사기 조선열전에서 조선전쟁에 대해 내린 평가는 "지배층의 내분으로 고조선이 스스로 항복했기 때문에 치욕스러웠다"는 것이지, 한나라가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치욕스럽다는 것이 아닙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06 10:52 #

    큰 피해랄 정도까지야 아니겠지요. 만만하게 보다가 한방 얻어맞은 정도...
  • ㄲㄲㄲ 2011/01/06 22:10 # 삭제

    한방 얻어맞은 것도 고조선이 강력해서라기보다는, 한나라 장수들이 전략상 범한 실책 탓이 더 컸습니다.

    수륙 양면 합동 작전에서는 육군과 수군의 손발이 서로 안 맞았고, 왕험성 포위 공격 때에도 육군과 수군으로 지휘 계통이 양분되어, 제대로 된 공략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만 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전쟁을 질질 끌다가, 고조선은 결국 지도부의 내부 분열로 인해 스스로 붕괴되어 버렸죠.

    고조선이 스스로 무너질 동안, 적의 수도를 코 앞에 두고 자신의 장군들은 ㅄ짓만 해 대고 있었으니, 게다가 한나라 입장에서 한 주먹거리도 안 될 작은 나라 고조선을 상대로 무려 1년이나 시간을 허비했으니, 다혈질로 유명한 무제는 오죽 화가 났겠습니까?

    승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참여한 장군들은 모두 목이 달아나거나 서인으로 강등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죠. 사마천도 사기에서 "이 전쟁에서 장수든 병졸이든 공을 세워 봉작을 받은 이가 없었다"라고 평하기도 했고요.


    고조선 자체는 한군이 그렇게 전략적으로 삽질만 하지 않았더라면 꽤 손쉬운 상대였을 겁니다.
    1차 방어선인 패수(압록강)가 뚫리자마자 바로 수도 왕험(평양)이 포위당한 것만 봐도, 수도에서 국경에 이르는 지역의 방비가 꽤 허술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 2011/01/06 01: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1/06 10:52 #

    허허... 이렇게만 된다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ㅎㅎ
  • 파랑나리 2011/01/16 21:30 # 답글

    진번과 임둔의 역사가 궁금해지네요. 덧붙여 얘네들의 원래 이름도.
  • 2011/03/12 10: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03/12 10:34 #

    그 기록은 "혼란스러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무 먼 곳에 군현을 설치하고 무리하게 군역이나 노역을 일으켜서 그 근처의 백성들이 소모되었다는, 한마디로 뺑이쳤다는 뜻입니다. 그 구절 앞뒤의 다른 군현 설치 기록을 모두 합쳐서 읽어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바로 앞구절은 서남이를 정벌하느라 파촉의 백성들이, 뒷구절은 흉노 때문에 천하가 어지러워졌다는 의미죠. 마찬가지로 길이 험준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창해군을 유지하느라 육상 및 바다로 창해군과 인접하여 각종 노역에 동원되었던 연·제 지역의 백성들이 뺑이를 쳤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fdu123 2011/03/12 19:52 #

    감사합니다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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