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4 14:42

담백하게 풀어보는 고조선사 (4) 역사

6. 멸망

고조선은 진한 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다시금 상당한 세력을 회복한 뒤, 기원전 202년을 기점으로 한나라와 패수를 경계로 확정하게 된다. 《사기》에는 그 땅이 멀고 지키기 어려워서 포기했다는 표현이 나타나는데, 실상 고조선의 점령 혹은 점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국경을 물렸다고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로부터 수년 뒤, 한의 연왕 노관이 배반하여 흉노로 망명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때의 혼란 속에서 다시 연 지역의 유민이 고조선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때 이 유민들을 이끌고 왔던 것이 바로 위만(衛滿)이다.

위만은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연나라 사람이라고 한다. 망명해 올 때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병도는 위만이 원래는 고조선 출신이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연나라 출신이라는 기록에 더 비중을 두며, 상투나 복장 문제도 망명할 때의 편의(?)를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본다.

위만의 망명 사건도 《사기》와 《위략》의 기록이 미묘하게 다르다. 《사기》에 따르면, 위만은 진번·조선인과 중국계 유이민들을 복속시키고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을 그대로 보자면, 위만 이전의 고조선은 아예 국가 수준도 아닌, 그저 부락을 이루고 살던 야만족이라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 정도이다. 즉, 조선이라 통칭하는 어떤 부족 집단이 있었고, 위만이 그곳에 들어가 살면서 세력을 규합, 국가를 건국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복속"시켰다는 표현을 통해서 조선을 무너뜨리고 왕위를 차지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다음으로, 《위략》에 따르면, 위만이 고조선으로 망명해오자 고조선의 군주 준왕은 위만을 받아들여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은 변경에서 망명자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키웠고, 준왕의 뒤통수를 쳐서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한치윤은 《해동역사》에서 《한서》를 인용하면서 "擊破朝鮮王"이라 표현하였는데.... 정작 《한서》에는 저런 표현이 없고 《사기》와 거의 똑같다. 한치윤은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_-;;;


여하튼 《위략》과 그 후에 나타난 다른 기록들을 통해 보자면, 위만은 준왕에게 망명을 신청하면서 스스로 서쪽 변경을 지키겠다고 말했고, 준왕은 그를 믿고 총애하여 박사(博士)를 제수하고 서쪽의 1백 리를 봉해주었다. 위만이 거주한 지역은 "옛날 진의 빈 땅(秦故空地)", "상하장(上下障)"이라 한다. 대체로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 또는 패수의 위치에 따라 압록강 너머 지역까지 보기도 한다. 땅의 넓이가 1백 리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평안북도 서부 지역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위만은 이 지역에서 망명자를 받아들이고 규합하면서 세력을 키웠다. 그리고 준왕에게 한나라의 군사가 쳐들어온다는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그것을 핑계로 군대를 이끌고 수도로 진입하여 준왕을 몰아내는데 성공하였다.

고조선 제1왕조(?)의 허망한 멸망이다. ㅡㅡ;;



첨언. 기록에 따르면, 이때 쫒겨난 준왕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한(韓)의 땅에 이르러 한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세워진 한나라(?)의 후신이 삼한이며, 마한의 왕통은 준왕의 후손들로 이어졌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후대에 계속 이어졌고, 그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 청주 한씨를 비롯한 몇몇 기자의 후예 성씨들이다. 뭐... 숭조사업으로 인해 새로 탄생하는 장엄한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 더 이상의 위험한 발언은 이쯤에서 스톱.

덧글

  • Jes 2010/12/24 15:05 # 답글

    잘읽었습니다. 그럼 제 2왕조도 써 주실 건가요?
  • 야스페르츠 2010/12/24 15:38 #

    ㅋㅋ 일단 고조선사라고 했으니까 2왕조(?)도 해야죠.
  • 말코비치 2010/12/24 15:10 # 답글

    제1왕조라니까 이집트같다능..
  • 야스페르츠 2010/12/24 15:39 #

    사실 1왕조라고 봐도 무방하잖아요.
  • DreamersFleet 2010/12/24 15:26 # 답글

    제1왕조=기자조선, 제0왕조=단군조선 ㅋㅋ.
  • 야스페르츠 2010/12/24 15:39 #

    노노. 단군이나 기자는 어차피 다 신화적인 인물일 뿐이죠. 국가로서의 고조선은 그냥 1왕조 뿐입니다.
  • hyjoon 2010/12/24 15:56 # 답글

    1왕조라.......이거 괜찮은 표현인데요?
  • 야스페르츠 2010/12/24 16:51 #

    왕조라는 표현이 의외로 쓸모가 많아요. 신라사에서도 무열왕계, 내물왕계 같은 말을 쓰는데, 이게 그냥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왕조지요. 뭐... ㅋㅋ
  • 파랑나리 2010/12/29 15:08 #

    야스페르츠//신라는 여러 왕조가 들어선 나라니까요?
  • 마법의활 2010/12/24 16:05 # 답글

    그냥 (위만 -1)왕조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그전에 몇 왕조가 있었는 지, 또 존재는 했는지도 미지수니까요. 그리고 고조선사를 쓰신 어느 교수님 견해에 의하면 아예 이동설 자체도 부정하고 있더군요. 그저 단순히 영향력이 좀 슬그머니 요동 너머로도 있었는 데 연나라가 치고 올라오니 데꿀멍 했을 뿐이라고....
  • 야스페르츠 2010/12/24 16:52 #

    몇왕조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국가로서의 정체성은 기원전 7~4세기 이래로 쭉 유지해 왔으니 단일 왕조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사이에 얼마나 왕조가 교체되었는지는 모르지만 ㅡㅡ;;
  • 솔까역사 2010/12/24 16:13 # 답글

    사기와 위략을 비교해 봤을 때 사기에 신뢰가 더 갑니다.
    사기는 위만조선 당대에 씌어졌고 위략은 수 백 년 후에 씌어졌습니다.
    또 사기는 정사이고 위략은 정사가 아니죠.
  • 야스페르츠 2010/12/24 16:53 #

    바로 그 사기에도 기자동래설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열전에 직접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만... 저 역시 위략의 신뢰성이 사기보다 높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위략을 그냥 무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 솔까역사 2010/12/24 17:18 #

    사기의 기자동래설은 상서대전같은 그 이전의 기록때문입니다.
    사기를 쓸 당시에도 1000여년 전의 일이죠.

    해동역사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기록은 왜곡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에 관한한 사기의 기록이 당대에 가장 근접해 있죠.
  • 행인1 2010/12/24 17:02 # 답글

    사실 위만의 쿠데타(?) 같은 수법은 이후 역사에서도 종종 보이죠.
  • 야스페르츠 2010/12/25 18:43 #

    전통적인 수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ㅋㅋ
  • 2010/12/24 19: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2/25 18:43 #

    ㅎㅎ 진고공지 같은 것을 가지고도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런 글에서 그런 걸 이야기하는 건 사치겠죠. ㅋㅋ
  • ArchDuke 2010/12/24 23:32 # 답글

    사실 우리집이야말로 원조국밥....이 생각나는 성씨;
  • 야스페르츠 2010/12/25 18:44 #

    우리 가문은 황제 헌원의 후예라능.ㅋㅋ
  • 파랑나리 2010/12/27 23:13 #

    야스페르츠//혹시 성이 공손씨나 변씨입니까?
  • 야스페르츠 2010/12/28 09:14 #

    아닙니다. 그 성씨 말고도 또 있습죠. ㅋㅋ
  • 소시민 2010/12/25 00:02 # 답글

    기록에 따르면, 이때 쫒겨난 준왕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한(韓)의 땅에 이르러 한왕이

    되었다고 한다.

    - 사실이라면 권력을 잃고 쫓겨난 지배자 가운데에선 가장 잘풀린 케이스 중 하나로 꼽을수

    있겠군요.
  • 야스페르츠 2010/12/25 18:44 #

    어허. 로마의 아버지 아이아네스 무시하셈? ㅋㅋ
  • moduru 2010/12/25 21:25 # 답글

    청주 한씨에게 그런 "숭조"니 하는 건 위험. ㅋ
  • 야스페르츠 2010/12/26 08:21 #

    조심해야죠. ㅋㅋ
  • 에드워디안 2010/12/29 03:40 # 답글

    서한 초기의 소극적 대외정책이 고조선의 수명을 더 연장시켰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12/30 15:27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어쨌거나 약소국의 비애... ㅡㅡ;;
  • 눈팅 2011/01/13 19:43 # 삭제 답글

    그렇다면 고조선의 '준왕'은 과연 누구의 후손일지가 궁금해집니다.
    준왕은 어쩌면 그냥 주인장분이 말씀하신 '고조선 제 1왕조'를 이루었던 토착세력(?)의 후예일수도있겠군요. 이후 연나라에서 망명해온 '위만'에 의해 1왕조의 지배층 세력이 '한'으로 쫓기고 위만이 성립한 '제 2왕조'가 시작되는건가요... 제 2왕조는 뛰어난 철기문명을 수용해서 발전했지만 한나라에 의해 우거왕대에 무너지고 말지요. 근데 고조선도 1왕조나 2왕조나 참 대단하다는... 1왕조때부터 '왕'을 칭했고 2왕조때는 뛰어난 철기문명을 발전시키고 중국과 동쪽의 다른 세력의 규모를 직접막기까지 했으니...
  • 마법의활 2011/05/28 10:45 # 답글

    근데 그래도 제가 알기로는 경주 근처에 출토되는 유물이 대강 위만 시기의 고조선 유물들과 연속성이 있다고 압니다. 여하튼 위만-1 왕조의 유민들과 한나라에게 두들겨 맞고 망한 위만 왕조의 유민들이 한반도 남쪽으로 많이 내려온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물론 남은 이들도 많아겠지만....)
  • 2011/11/15 03:23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본문에서는 사료를 인용해서 "준왕은 그를 믿고 총애하여 박사(博士)를 제수하고 서쪽의 1백 리를 봉해주었다" 라고 설명하고 계시는데, 평양에서 보면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의 지역은 명백히 '북쪽'이지 '서쪽'으로 보기는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신의주 일대로 한정해서 생각하더라도 말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1/11/15 08:40 #

    전근대인의 방위 개념이 지금처럼 엄밀하리라 생각하는 것도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에도 평양, 의주로의 몽진을 서천(西遷)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죠. 물론 그 위치 자체가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것의 근거로 방위를 드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 2011/11/15 18:55 # 삭제

    그러고보면 고려시대에 평양도 '북경'이 아니라 '서경'이었지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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