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1 15:57

담백하게 풀어보는 고조선사 (3) 역사

5. 부흥?

기원전 3세기 초에 평양 일대로 세력이 축소된 고조선은 연의 영향권 안에 편제되었다. 《사기》의 기록대로라면, 고조선은 연나라에 복속되어 "관리를 두었다(置吏)"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복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고조선은 세력 자체가 급격하게 축소되어서 연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원전 222년, 연은 진나라에 의해서 멸망하였다. 바로 이듬해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바로 국경을 마주대고 있는 곳에 이렇게 강력한 제국이 탄생하였으니, 고조선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 고조선은 "요동의 외요(外徼)에 속했다"고 한다. 《위략》의 기록에도 고조선이 진에 복속되었다고 나타나며, 《염철론》에는 진이 통일한 이후 패수(沛水)를 넘어 조선을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만 《위략》에는 복속하였으되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어 "표면적인 복속"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여러 정황상, 멸망시켰다는 《염철론》의 기록은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 《사기》와 《위략》에 모두 직접적인 점령, 즉 군현지배가 아닌 屬遼東外徼", "不貢朝會"라 기록하고 있는 점에서도, 고조선은 통일제국 진에게 속국화되긴 하였으되 직접적으로 지배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무렵, 고조선을 지배하던 군주의 이름이 최초로 기록 속에 등장한다. 바로 부왕(否王 또는 비왕)이다.《위략》의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 고조선의 군주였던 부왕은 진나라가 장성을 쌓자 이를 두려워하여 복속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연대 오류가 있다.

《위략》에는 부왕이 복속한 때를 장성을 쌓은 때, 즉 기원전 214년 무렵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이후 부왕이 죽고 준왕(準王)이 즉위하였고, 그로부터 20여 년 뒤에 진승의 난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진승의 난이 일어난 것은 기원전 209년으로, 진의 중국 통일로부터 세어도 20년에 못미친다. 즉, 왕실의 계보가 모호해지는 셈이다. 이러한 오류 때문에 대체로 20여 년이라는 연도는 무시한 채, 부왕이 즉위한 시기를 진시황 시기, 준왕이 뒤를 이은 시기를 기원전 214년에서 209년 사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하튼, 기원전 210년대에 부왕은 죽고 준왕이 즉위하였다. 준왕이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일제국 진은 격심한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약 10년에 걸친 이 혼란기 동안 고조선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사기》에는 혼란이 끝나고 한나라가 들어선 뒤에 이 지역, 즉 고조선과의 접경 지역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국경을 물려 패수(浿水)를 경계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염철론》에도 고조선이 진말한초의 혼란기 동안 연나라의 동쪽을 점령했다는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은 이 시기를 이용하여 일부 영토를 회복하였던 것 같다. 또한 고조선은 중국에서 망명해오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상당한 세력 확장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패수"의 위치가 되겠다. 패수의 위치를 놓고 수많은 비정이 난무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청천강 또는 압록강으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패수를 청천강으로 보게 되면 만반한이나 진고공지 상하장(秦故空地上下鄣)이 어디인지가 모호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패수는 한나라가 국경을 물린 뒤의 경계로 당연히 연과 진 시기의 국경인 만반한보다 북쪽 혹은 서쪽에 위치해야 한다. 만약 패수가 압록강이라면, 청천강 일대인 만반한이나,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에 위만 세력이 위치할 수 있게 되므로 상당히 합리적이다.

즉, 패수를 압록강으로 비정한다면, 고조선은 진한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청천강과 압록강 사이의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서 추정했던 당시 영토를 놓고 보자면, 이 시기 고조선이 회복한 지역은 회복하기 이전 영토와 거의 비슷할 정도의 크기이다. 요동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세력 신장을 이루었던 것이다. 게다가 망명자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구가 상당히 증가했을 것이며, 이를 통해 국력이 한층 더 충실해졌을 것이다.

나름 화려한 부활인 셈이다.



6. 상실

사실, 툭까놓고 말해서 부왕과 준왕을 비롯하여 고조선의 역사 대부분은 철저하게 《위략》으로부터 시작된다. 부왕과 준왕의 이름, 연나라와의 외교 분쟁, 고조선의 칭왕 등 대부분의 기록은 《위략》이 그 효시이다. 심지어,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위를 찬탈하였다는 기록조차도 《사기》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기》에는 그저 "위만이 진번, 조선의 오랑캐, 그리고 연과 제의 망명자들을 복속시켜 왕이 되었다"라고만 나타나 있을 뿐이다.

즉, 《위략》을 의심하려고 하면 고조선 역사의 태반이 사라진다.

게다가 《위략》 자체가 그렇게 신뢰할 수 있는 자료도 아니다. 책 자체도 현재는 남아 있지 않고 여러 사서에 단편적으로만 나타나고 있으며, 기자조선 문제, 진개의 동호-조선 정벌의 사실 여부, 위에서 말한 연도 문제 등등... 다만 진개의 동호-조선 정벌 문제는 《염철론》의 기록과 교차검증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기자조선 역시 당시 중국의 일반적인 화이론에 입각한 것으로 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족하기만 한 기록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략》의 기록을 이용할 수 밖에 없지만, 《위략》에 이러한 문제점이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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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리리안 2010/12/21 16:03 # 답글

    정말 고대사는 자료가 너무 없는 점이 아쉽네요.
  • 自重自愛 2010/12/21 16:32 # 삭제

    그래서 없는 걸 만든 것이..... -0-;;;;
  • 야스페르츠 2010/12/21 19:44 #

    ㅎㄷㄱㄱ가 있다능. (퍽!)
  • Allenait 2010/12/21 16:34 # 답글

    고대사 자료는 없는게 정말 아쉽네요...
  • 야스페르츠 2010/12/21 19:45 #

    ㄱㅇㅅㅎ도 있다능. (틀려!)
  • hyjoon 2010/12/21 17:21 # 답글

    시대가 위로 올라갈수록 자료가 희박하다는게 사료의 특성이라만 고조선은 심하다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송호정 교수님의 지적대로 A4용지 몇장에서 끝나니.......
  • 야스페르츠 2010/12/21 19:45 #

    다 모아도 A4 한 장이나 넘으려나요.
  • Niveus 2010/12/21 17:49 # 답글

    아무리 없어도 2천년도 더 지나서 소설을 쓰는건 좀 OTL
    고조선도 그렇지만 삼국 초반까지도 사실 기록이란면에선 좀 안습이죠. ㅠ.ㅠ
  • 야스페르츠 2010/12/21 19:47 #

    어디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나마 독자적인 기록을 남긴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솔까역사 2010/12/21 18:39 # 답글

    얼마나 사료가 없었으면 '신화는 그 시대의 역사를 반영한다'며 단군신화를 각색해서 국사책에 넣었겠습니까?
    단군조선을 역사로 인정하다보니 환국도 덩달아서 역사에 넣어달라고 우기는 상황이 되었지요.
    환국은 단군조선을 역사로 끌어들인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료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끝나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위략도 역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위략의 기록을 인정하면 기자조선도 그 존재가 더 확고해 지는데 사람들이 그건 또 쏙 빼더군요.
    아무튼 이 글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매우 솔직한 내용이군요.
  • 야스페르츠 2010/12/21 19:48 #

    기자조선 문제가 참 모호하지요.
  • 명림어수 2010/12/22 01:58 # 삭제 답글

    연나라 멸망이후에 고조선이
    요동지역을 회복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을까요?
    남겨진 기록에서 명백히 요동지역이 진나라의 영토였다고 밝히고 있는지요?
  • 야스페르츠 2010/12/22 09:14 #

    명확하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황상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요동 지역을 고조선이 점유하고 있었다면, 요동군의 판도 가운데 상당부분이 무제 이후에 설치된다는 의미가 됩니다만, 그러했다는 증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패수 문제도 그렇고, 압록강 너머 일부 지역을 군사적으로 점유하기야 했겠지만, 요동지역을 회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죠.
  • DreamersFleet 2010/12/22 16:34 # 답글

    이까짓 고조선사 다 외운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모르던 것이 솔솔 보이는 군요.
    최근 자치통감을 들춰보다 연영왕(燕靈王)이란 사람이 노관(盧綰]) 다음으로 연왕(燕王)이 되었다고 하는데 난생 처음 듣네요. 위만이 노관 부하아니었던가요? 힘드시겠지만 이것도 좀 다뤄주시면 안될까요?
  • 야스페르츠 2010/12/22 23:01 #

    음... 저도 그쪽은 잘 모르겠네요. 다만 위만의 경우, 노관의 직접적인 부하는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저 유주 방면에서 살던 유력가 정도겠지요.
  • 파랑나리 2010/12/27 23:11 # 답글

    그렇다면 한나라가 패수 뒤로 물러간 뒤로 조선은 한반도를 넘지 못했군요. 이거 원 안습이네요.
  • 야스페르츠 2010/12/28 09:13 #

    영토를 가지고 안습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역사이고 영토는 그저 땅덩어리일 뿐이죠.
  • 파랑나리 2010/12/29 15:07 #

    영토는 그저 땅덩어리라...... 뭐 어찌보면 그럴 수도 있겠죠. 다만 지금 남북한이(우리 민족이라는 말을 쓰려다가 좀 그래서) 땅이 좀 더 넓고 그게 더 쓸모 있었다면 좀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 단천 2011/01/22 16:14 # 삭제 답글

    그럼 야스페르츠 님께서는 단재선생의 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것도 환빠들과 맥을 같이하시는 거라고 보시나요?
  • 야스페르츠 2011/01/24 21:24 #

    근본적으로 잘못된 근거와 추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환빠들이 단재 선생을 팔아 욕을 보이고 있는 것이지, 단재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재의 연구는 당시의 현실적 한계, 그리고 민족을 위한다는 당시의 대의명분으로 충분히 가치를 가지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연구가 사실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단천 2011/01/25 13:01 # 삭제 답글

    그렇다면 단재선생의 연구 중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야스페르츠 2011/01/25 22:53 #

    글쎄요. 제가 단재의 모든 연구를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수많은 오류들을 모두 서술하기도 참 곤란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석학들이 밝히고 바로잡은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혼자서 단재의 연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석학들, 또는 블로거들의 오류에 대한 지적을 보고 그것이 옳다고 보는 것이죠.
  • 2011/12/24 00:2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칸피셸헤 2019/04/04 10:16 # 답글

    염철론 주진편에 패수(沛水)를 건너 조선을 멸하였다는 말이 있는데 대요수(대요하)~패수(어니하) 이 사이가 요동이 아니겠는지요? 거기서 부터 위략의 만번한(한서지리지의 문현, 번한현-개주시, 해성시)까지가 사기 조선열전의 요동외요고 한나라가 들어선 후에 패수를 넘어선 문현과 번한현이 있는 곳 까지는 지키기가 어려워서 사기 조선열전의 설명 대로 대요수 부터 패수 까지의 요수의 이동이자 패수 이서인 요동 내의 요동고새만 수리를 한 것 같네요.

    그런데 만번한 이서부터 연장(燕將) 진개에게 상실을 한 위략의 이천리 까지는 도저히 고조선이 가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북경이나 천진까지 다다르고 있어서 이를 조금 수정을 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 사기 흉노열전에서 진개가 동호로 부터 얻은 천리를 빼면 나머지가 천리 정도가 되죠. 공교롭게도 십이대영자 문화의 서계(西界)인 릉원시와 중심지인 조양시를 거쳐 개주시와 해성시의 배후인 천산산맥의 분수령 까지가 대략 그 정도가 되는데 이것이 진개에게 상실을 한 고조선의 영토라고 한다면 그 이전에는 대릉하 유역까지 강역을 뻗치고 있었고 요서에도 영토가 있었다는 것이 되지를 않겠는지요?

    참고로 십이대영자 문화를 고조선의 것으로 파악을 하는 견해가 학계에서도 힘을 얻고 있는 듯 합니다만.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dn.d_0057_0040

    동북아역사지도도 이와 대동소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 한데 다만 패수를 어니 (淤泥) 가 아니라 대요(大遼)~혼하(渾河) 그 자체라고 본 것 같네요.

    http://nsimg.kbs.co.kr/data/news/2016/06/29/3303696_2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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