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6 11:06

담백하게 풀어보는 고조선사 (2) 역사

3. 쇠퇴

고조선이 제대로 된 국가 체제를 정비했을 무렵, 고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나라에는 한바탕 사달이 일어났다. 왕을 자칭한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때, 나라가 내분으로 휘청거리는 사이에 전국시대의 강대국 제나라가 쳐들어온 것이다. 제의 침공으로 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제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이후 즉위한 소왕(昭王 기원전 312 ~ 기원전 279)은 그야말로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기세(?)로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데, 무려 28년 동안이나 국력을 기르며 복수를 다짐했다고 한다. 그 결과 연은 제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고조선은 강대국으로 급성장한 연나라와 승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런데, 당시의 기록에는 아주 미묘한 문제가 있다.

그 후 연나라에 진개라는 현명한 장수가 있었는데, 호(胡)에게 인질이 되었다. 호는 그를 깊이 믿었는데, (그는) 귀국하여 동호를 습격하여 격파하였고, 동호는 천여리나 물러났다.
其後燕有賢將秦開,為質於胡,胡甚信之。歸而襲破走東胡,東胡卻千餘裏。
《사기》 〈흉노열전〉

《사기》의 이 기록은 진개가 호(胡)를 물리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기록의 "호"는 동호(東胡)를 말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삼국지》에 인용된 《위략》에는 이 기록이 미묘하게 바뀌어서 기록되어 있다.

그 뒤에 자손들이 점점 교만해지자, 연나라에서 장수 진개(秦開)를 보내어 서쪽 지방을 공격하여 2천여 리의 지역을 차지한 다음 만반한(滿潘汗)으로 경계를 삼았다. 이에 조선이 비로소 약해졌다.
後子孫稍驕虐,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取地二千餘里,至滿番汗爲界,朝鮮遂弱。

이 두 개의 기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고조선 역사의 향방이 크게 갈릴 수밖에 없다. 크게는 동호를 치고 난 뒤 조선도 공격했다는 견해와, 동호는 즐쳐드삼. 번조선임조선이라 기록된 것이 착오이고 진개가 공격한 것은 동호 뿐이라는 견해로 나눌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의 견해가 우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기록은 시기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연소왕 대인 기원전 300년 경, 그보다 약간 뒤인 기원전 280년대 등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기원전 3세기 초의 일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여하튼 이 진개의 침략으로 인해 고조선은 막대한 영역을 상실하였다. 이 무렵 요동 일대에 전국연계 유물이 급증하고 있다는 고고학 발굴 결과로 볼 때, 고조선으로 상정되는 국가 혹은 문명은 이때 요동을 상실하였음이 분명하다. 요동을 상실한 고조선이 이후 평양 일대를 중심으로 존재했다는 것도 각종 고고학 발굴 성과가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사료와 발굴 결과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중심지 이동설"을 정설에 가깝게 채택하고 있다. 진개의 침략으로 기존 중심지인 요동 일대를 상실하고 평양, 즉 한반도 서북부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동한 이후 연과 고조선의 국경은 만반한이라고 전한다.

만반한의 위치는 물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한대 요동군의 속현인 문현(文縣)과 반한현(潘汗縣)이 만반한과 같은 곳이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불명이다. 이에 따라 만반한의 위치는 추정하는 사람에 따라 난하천산산맥 인근의 혼하(渾河)에서 청천강까지 들쭉날쭉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대체로 청천강 일대의 박천 지역으로 본다고 한다. 이는 청천강을 경계로 전국연계 유물의 분포에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4. 영역

전성기부터 이 무렵까지 고조선의 영토는 과연 어떠했을까? 고조선의 영토를 알려주는 기록은 극히 드문데, 그마저도 대부분 연나라에게 밀려난 이후, 위만조선 시기까지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고고학 발굴 성과도 "영향권"은 보여줄 수 있어도 "영토"를 증명해주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조선 지도는 평양은 물론이고 거의 고구려의 영토와 맞먹을 정도로 광대한 영역을 자랑하지만, 교과서 수준에서도 그것을 "영토"라고 쓰고 있지는 않다. 단지 세력범위라고만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유물의 유사성을 토대로 추측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영토"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고조선의 실질적인 영토는 어느 정도일까?

고조선의 요동 일대 영토는 연나라의 요동군과 비슷했을 것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진개의 정복이 지배 영역을 모조리 흡수했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우며, 진개의 공격으로 요동, 즉 중심지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변방의 여러 지역들이 떨어져 나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가장 확실하게 담보될 수 있는 영토는 연나라가 요동을 정복하고 요동군을 설치한 그 지역일 것이다. 이는 연이 세운 장성을 통해 나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전국시대 연의 장성과 영토는 대체로 아래와 같이 파악되고 있다.


연의 국경을 따라 장성이 표기되어 있는데, 장성 너머 동쪽- 지도에 高夷라고 표기된 지역-, 즉 지금의 길림성 집안 일대 및 평안북도 동단은 대체로 예() 또는 예맥(濊貊)의 영역이라 한다. 예맥은 특별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제부족이 제각기 거주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한무제 초기에 예의 군장 남려()가 귀부한 일이 있는데, 이들이 귀부한 지역을 바로 저 지역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맥 지역은 고조선의 영향권 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연의 침입으로 요동을 상실한 이래 고조선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독립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한편, 한반도 내부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고조선이 연에게 밀려 평양 일대로 중심지를 옮긴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평양 일대가 원래부터 고조선의 영향권 하에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평양 일대가 영토였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연에게 밀려난 뒤, 고조선의 세력은 정말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위만조선 시기의 기록을 토대로 보자면, 이 시기 고조선은 평양 근처, 청천강 이남에서 황해도 중부 정도의 영역 밖에 유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황해도 지역에는 진번(眞番)이라는 독립국가 혹은 부족이 있었고, 함흥평야 및 강원도 북부 지역에는 임둔(臨屯)이 존재했다. 즉, 이 당시 고조선은 황해도나 함경도에도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조선의 전성기 때에는 진번과 임둔도 어느 정도 통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심지를 이동한 이후 고조선은 "적어도 기록 상으로는" 진번과 임둔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고조선의 전성기 "영토"는 요동군 일대 정도였다고 본다. 물론 그보다 더 넓은 영향권이 있었을 것이며, 그 영향권은 최소한 집안-평북(예맥)과 평양까지 미쳤을 것이다. 흔히 알려진 지도에서 보이는 고구려에 버금가는 광대한 영역은 많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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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yjoon 2010/12/16 11:11 # 답글

    그런데 인용하신 지도 출처는 어디인가요?
  • 야스페르츠 2010/12/16 11:36 #

    구글링입니다. 복잡한 출처는 싫어효.
  • 리리안 2010/12/16 11:14 # 답글

    교과서에서 보는 고조선은 정말 착각하기 좋게 되어있죠;;
  • 야스페르츠 2010/12/16 11:37 #

    고구려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뭔가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 jianke 2010/12/16 11:50 # 삭제 답글

    역사적 내용은 아니구요 제가 중국에 오래 살았고 여행을 좋아해서 지금의 연 지역 중에 서주라고 되어있는 곳이 천진 정도로 보이는데 천진-산해관-심양-환인-통화-집안을 차로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예외 즉 고대 3000천년 전에는 이 지역 기후가 훨씬 따뜻했거나 기후 변화가 있어서 지금의 지역이 변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산해관을 벗어난 지역부터 요수까지는 거의 사람이 살기가 어려운 지역입니다.

    대부분이 늪지이고 불모지이며 산도 거의 없고 그렇다고 방목하기도 좋은 지형들은 아니더군요. 대부분의 초지에 수분 특히 염분이 많은 지역들이 많아서 해안 지역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농경민족이 정착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지역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국에서는 기상학이나 기후학과 연동하여 체계를 잡고 연구를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것 같던데 이후에 기회가 되면 고대의 이 지역 연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조선이 빼앗긴 요동 지역 즉 요수를 건너면 산도 많아지고 그나마 농사도 지을 수 있는 지역들이 많이 나오고 환인 집안으로 갈수록 한반도 지형과 비슷해 집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은 연나라 역시 요동을 차지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을 것 같고 일종의 전진 기지 혹은 군사 도시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의 지도로 보면 고대의 요서는 거의 불모지이고 그래서 동호 등의 유목 민족이 살 수 밖에 없었던 지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현재의 산해관 지역을 근거로 서쪽은 연, 중간의 요서는 버려진 불모지겸 완충지역, 요수 이동 지역은 고조선 영향권이었다가 연이 확장되면서 요동 지역이 연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보되 연 역시 중간의 엄청나게 큰 황무지를 양쪽으로 국가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유목민족들의 방해도 있었을 것이구요.

    그러므로 저 전체를 둘러 연장성을 쌓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실제로 이어진 장성이 아직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 야스페르츠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야스페르츠 2010/12/16 15:19 #

    흠... 제가 알기로는 연장성 유적은 최소 양평 인근까지는 거의 다 확인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ccc 2010/12/16 12:05 # 삭제 답글

    전혀 담백하지않고 굉장히 느끼합니다만?
  • 야스페르츠 2010/12/16 15:19 #

    그럼 김치를 드세요.
  • ㅋㅋㅋ 2010/12/16 12:08 # 삭제 답글

    그 진개 떡밥 되게 우려먹네?
    그건 아주 일시적이고 고조선이 곧 반격해서 오히려 연나라 영토를 더빼앗았다는 것이 각종 사료 등에서 입증되는데?
    식민사학이 쳐놓은 덫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를 못하네? 쯔쯔쯔...
  • ArchDuke 2010/12/16 12:11 #

    사료를 들고오세요 ㅇㅇ
  • shift 2010/12/16 12:46 #

    일단 출처가 좋지 않은곳에서 왔으니 패스
  • 야스페르츠 2010/12/16 15:20 #

    사료에서 입증된다는 말부터 입증하시구려. 사료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해서 내린 결론은 사료에서 입증되는 게 아니라우. 아니 그보다, 발굴 유물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나? 쯧쯧.
  • ArchDuke 2010/12/16 12:10 # 답글

    요동군의 양평을 보니까 왠지 삼국지가 또 땡기는군요. 하지만 난 WOW를 하고 있잖아..(이하생략)
    고조선 기록이 적어서 힘들군요.
  • 야스페르츠 2010/12/16 15:21 #

    공손씨는 고구려의 원수라능.
  • 파랑나리 2010/12/18 09:18 #

    야스페르츠//요동 공손씨요? 위나라 때 할거를 시도하다가 위나라 귀족(맞나?)인 관구 검에게 썰린 겨레요? 그 겨레는 왜요?
  • ArchDuke 2010/12/18 10:22 #

    삼국지 드립;
  • 2010/12/16 13: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2/16 15:23 #

    사실 만반한의 위치는 저도 잘 몰라요. 아니, 그거 확실하게 증명되었으면 이런 논란 자체가 필요가 없겠죠. 다만 고고학 발굴 성과에서는 청천강을 경계로 유물 차이가 심하게 난다는 점은 알려져 있습니다.
  • moduru 2010/12/16 13:11 # 답글

    "고조선이 반격해서 연의 영토를 빼았았다"라는 ㅋㅋㅋ의 출처는 대체 어디?
  • 야스페르츠 2010/12/16 15:24 #

    출처는... My brain.이라고 하십니다.
  • moduru 2010/12/16 15:24 #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럽니다. ㅎㅎㅎㅎㅎ
  • 1. 2010/12/16 14:27 # 삭제 답글

    문맥상 사단이 일어날리는 없고 사달이 적절할 듯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0/12/16 15:25 #

    헉. 사단나다는 표현이 틀린 것이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12/16 15: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2/16 16:01 #

    ^^ 감사합니다. 이건 다음편으로 ㅋㅋ
  • Allenait 2010/12/16 16:26 # 답글

    또 그들이 왔군요
  • 야스페르츠 2010/12/17 13:13 #

    열폭이죠. 뭐...
  • 누군가의친구 2010/12/16 19:37 # 답글

    그가 몰려왔군요. 복수형으로 써야 할것 같지만 현실은...(...)
  • 야스페르츠 2010/12/17 13:13 #

    나는 단수가 아닙니다. ㅎㅎ
  • jianke 2010/12/17 19:14 # 답글

    중국 자료들을 좀 찾아보았더니 연 장성이 모두 3가지 노선으로 만들어졌더군요.

    적봉을 기점으로 동호 방어를 위해서 진개가 세운 장성은 적북장성으로 위의 지도에 제일 상단부 국경지역인데 실제로 발견되는 부분은 적봉시 기점으로 얼마 되지 않더군요. 두번째는 적봉시 남쪽으로 적남장성인데 동쪽 끝 지역은 지금의 부신시(阜新市)까지로 기재되어 있고

    세번째는 노호산 장성으로 가장 남쪽인데 이 부분이 지금의 요양까지로 나옵니다. 즉 위의 장성들이 동시대에 건축된 것은 아니고 아마도 동호 혹은 고조선과의 세력 차이에서 국력이 강할때와 약할 때의 기준이 될 것 같은데 아무튼 제가 본 중국 포탈들이나 자료들의 소개는 요양에서 더 동쪽으로는 정확한 이야기가 없군요. 요양이 이전의 양평군 치소였으므로 실제로 산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동쪽으로 장성 건축이 제대로 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희안하게도 중국 자료에는 진개가 쌓은 장성은 처음의 적봉장성이고 이느 동호를 막기 위한 것으로서 고조선의 이야기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전국 7웅인 연을 이야기 할때에는 국경의 동쪽을 그리 의식하지 않다가 고조선이야기만 나오면 동쪽선을 팍 늘리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적남장성, 노호산 장성 모두 실제로 고고학적 발굴이 확정된 것은 불과 몇 십리 정도 수준이더군요. 요서 요동 지역에 말입니다. 그리고 돌로된 장성과 토성을 같이 구축했는데 상당히 긴 토성 지역은 거의 증거가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중국측 자신들의 자료가 이 정도라면 이에 대한 보다 정확한 연구가 없다면 이 지역이 지속적으로 연의 영토였다거나 특히 요양 이동 지역에 대한 장성부분은 상당히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야스페르츠 2010/12/21 16:02 #

    제가 고고학 쪽에는 아는 것이 없어 대부분의 것은 송호정 교수의 저작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
  • 파랑나리 2010/12/22 13:25 #

    jjanke//아니 그럼 한반도까지 연나라가 뻗지 않았을 수도 있네요.
    야스페르츠//송호정 교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위의 댓글은 연나라가 조선의 땅을 많이 뺏은 것에 회의를 제기하는데...
  • 파랑나리 2010/12/18 09:21 # 답글

    그러니까 고조선은 주나라가 견융에게 당하고 제후를 다스릴 힘을 잃었듯이 연나라에게 당하고(땅을 엄청 뺏긴거 보면 永嘉之亂에 가깝다.) 다른 국가(이게 제후국인지는 불확실하지만)를 다스릴 힘을 잃었군요.
  • 야스페르츠 2010/12/21 16:02 #

    영가지란보다 더할지도 모르죠... ㅎㅎ
  • 파랑나리 2010/12/22 13:22 #

    끝내 조선은 한족(六朝)처럼 옛 땅을 되찾지 못하고 이족異族에게 멸망크리였나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12/18 20:06 # 답글

    그러면 마니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야스페르츠 2010/12/21 16:03 #

    마니산은 후대에 만들어진 유적이 분명합니다. 역사적·문화적 의의는 있지만, 진짜 단군의 유적은 아니죠.
  • jianke 2010/12/23 19:39 # 답글

    역사학자가 아닌 입장에서 일반인으로 연나라의 강역이 어디였을까를 추측하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역사라는 것이 고고학적 발굴과 실증이 따라야 확실하게 확인 가능하니까요.

    다만 심양을 중심으로 한 산해관 이북 지역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조차 발굴 조사나 체계적인 복원이 최근에 와서야 동북공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므로 앞으로 주시해 볼 필요가 있지만 중국측만의 발굴 조사이므로 상당히 정치적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이 많지요.

    중국의 박굴관에 있는 강역표시나 교과서, 인터넷 포털 자료 등이 모두 다릅니다. 과거 자료와도 전혀 다르지요. 최근 한국과의 관계에서 유사역사신봉자들 때문에 굉장히 민감해 있는 부분이 있어서 동북 공정 중 많은 최근 자료가 바뀌고 있는데 과거의 것은 고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게 되어 버리는 것이죠. 유사역사 신봉자들의 허황된 이야기들이 중국 인터넷에 전부 떠 있고 이를 중국인들이 상당수 알고 있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고조선이 요동을 지키기 어려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연 역시 서쪽과 남쪽으로부터의 압박 때문에 중간에 몇백KM나 되는 광활한 불모지를 두고서 요동지역을 완전히 자기의 지역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을 듯 싶습니다. 제가 접해본 바로는 아직까지는 연 장성이 요양 이동으로 확장되는 것은 정확한 역사 자료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 jianke 2010/12/23 19:48 # 답글

    문제는 역사적 왜곡이 중국 정부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들여 이루어 지는 것이겠지요. 단동까지 현실적으로 성을 이어 버린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토가 아니므로 뭐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고 만리장성은 세계의 새로운 불가사의로 생각하므로 중국 정부에서 막대한 자금 들여서 지어버리고 이어버리면서 고고학적 발굴로 복원하였다고 하면 사실 대응하기 어려운 그런 결론 아닐까 싶습니다.

    팔달령이나 산해과 그리고 내몽고쪽의 장성들도 대대적으로 복원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심양을 기점으로 단동라인, 집안라인, 나진 선봉 라인으로 이어지는 8차선 고속도로 완공 단계에 있으므로 (차는 전혀 없지요. 어떻게 보면 경제적인 효과를 당장 노린 고속도로 건설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향후 20-30여년 지나면 자연스럽게 한반도 북부까지 장성이 들어왔다고 인정되는 분위기가 되겠지요.

    다만 장성이란 것이 지키기 위한 것이 있는 지역을 기준으로 지형이 비교적 갈라지는 지역에 세우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리고 진나라의 존속 기간이 겨우 15년인 점을 감안하면 과연 연나라 장성을 수리하는 수준에서 그렇게 요동으로 대규모 확장이 가능할 시간이 되었을까 의심이 갑니다.

    그렇다고 고조선이 그럼 그 지역에서 확실한 권력을 가지고 통치하였는가는 발굴 유물들을 보면 사실 그럴 가능성이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이 지역들이 험하고 불모지도 많아서 제 생각은 사서의 말 그대로 요동 요새 혹은 립 요새로서 전진 혹은 전초 기지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위의 야스페르츠 님의 의견에서 만약 패수가 압록강 혹은 청천강, 대동강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그냥 개인 의견으로) 중국 사시 위략에 나올만한 이야기도 아닐지 모르르겠습니다. 통상적으로 한반도를 자신의 땅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 왕조에 있어서 200KM 정도의 변방 국경의 변화는 의미가 있읐을까요? 그냥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중국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좀 찾아보려고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0/12/24 13:34 #

    중국의 행보가 조금 의심스럽기는 합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불신할만한 마땅한 근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 경언o 2011/12/24 00:17 # 삭제 답글

    2번째 원문에 "서쪽 지방을 공격하여 2천여 리의 지역을 차지한 다음 만반한(滿潘汗)으로 경계를 삼았다."
    라는 기록에서 왜 연나라기준에서 서쪽지방을 공격햇다고 기록되어있는건가요 ????
  • 굔군 2011/12/24 03:10 #

    연나라 기준에서 서쪽이 아닙니다.
    攻"其西方", 즉 그 나라(조선)의 서방을 공격했다는 뜻입니다.

    P.S - qaz2355 님 맞으시죠?
  • 경언o 2011/12/24 16:32 # 삭제

    감사합니다
    ps. 어떻게 알으셧죠 ,,ㅜ
  • 굔군 2011/12/24 17:11 #

    어떻게 알았겠어요? ㅋㅋ
    맞혀 보세요. ^^
  • 연나라가 2020/05/16 03:07 # 삭제 답글

    연나라가 제나라를 멸망위기까지 몰아세웠다고는 하나, 그것은 소왕때 아주 일시적이고
    소왕때 악의가 제나라 70여개의 성을 빼앗은 후, 이후 소왕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올랐을떄
    태자가 보복할까 두려워 조나라로 도망갔죠.
    그리고 제나라의 전단에 의해서 순식간에 다시 땅을 빼앗기게 되죠.
    그리고 조나라로간 악의가 조나라 군사를 이끌고 연을 침략하지 않을까 두려워 했던것이 연왕이었습니다.
    이런 연나라가 어떻게 압록강까지 진출하는게 가능한지 궁금하네요.
    솔직히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70개의 성을 빼앗을 수 있었던 상황조차도, 연나라의 힘만으로 이룩한것이 아니라
    다른 제후국들의 힘을 합쳐서 한것입니다.
    연나라는 약소국이었습니다. 사마천 사기 악의 전단 열전에 나옵니다.
    아래로는 제나라, 위로는 흉노가 존재하는데 상식적으로 약소국인 연나라가
    압록강까지 가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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