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1 21:09

고대 한자 문화권 이민족의 국호에 대하여 역사

1. 고대 한자 문화권에서 말하는 이민족은 당연히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를 말한다.

중국은 기록을 남긴 자의 입장에서 이들 이민족의 이름을 한자로 변환(?)해서 기록을 남겼다. 이는 이민족의 이름을 음차, 즉 발음을 본따서 쓴 것임이 분명하다. 불행하게도 이민족 자신은 문자가 없거나 망실되어 자신들의 이름을 남길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이민족의 이름, 민족명이던 국명이던 간에 그들의 이름은 중국에서 붙인 것이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은 이름을 붙이는 자의 특권을 남용(?)했다. 대부분의 이민족은 중국에게 멸시를 당했고, 그로 인해 대체로 이민족의 명칭은 멸칭으로 기록되는 일이 많았다. 멸칭으로 기록되지는 않더라도 좋은 의미로 기록되는 예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그저 발음만 따라가다보니 글자의 조합에 아무런 뜻도 없는 경우가 많다.

흉노(匈奴), 匈이라는 글자는 글자 자체가 특정 오랑캐를 가리키기도 하며, 어떤 의미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흉흉한 의미도 부여되어 있다. 奴라는 글자는 말이 필요 없다. 노예를 의미하는 글자다.


2.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음차에 의해 기록된 국명이 여럿 전해진다.

고구려는 대체로 발음 자체는 같지만, 려에 해당하는 글자가 麗, 驪 등으로 나타난다. 고구려가 멸칭으로 기록된 경우도 한 번 있는데, 왕망이 고구려를 下구려라 멸칭한 예가 있다. 백제는 백에 해당하는 글자가 佰, 百으로 나타나며, 신라가 가장 다양해서 서라벌, 사로, 사라, 신라 등이 나타난다.

이들 명칭은 중국 또는 고구려·백제·신라에 의해서 직접 불린 명칭이다. 그리고 중국 이외의 이민족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오랫동안 국체를 유지했고 나름의 문화를 꽃피운 삼국은 국체를 정비한 이후에 이러한 "음차"에 의한 국호를 "뜻이 좋은 글자"로 고친 흔적이 보인다.

신라는 아예 대놓고 고쳤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고구려의 경우 장수왕 대에 고구려라는 국호를 고려(高麗)라고 고쳤다는 정황이 확실하다. 백제도 성왕 시기에 국호를 남부여라 고쳤던 적이 있다.


3. 일본은 어떠한가.

지금은 유실되어 찾을 수 없고, 기억에 의지해서 쓰는 것이니 조금 부정확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전 고람거사 님의 글에 따르면 "왜(倭)"라는 글자 자체가 그 종족을 가리키는 명칭의 음차이며, 이러한 음차 자체도 여럿이 발견된다 한다.

특히 "임나일본부"에 대한 반론 가운데 "일본"이라는 국호가 후대에 나왔다는 반론이 성립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이 부분을 제시하기도 했다. 즉, 일본이라는 글자 자체가 그 종족을 가리키는 음차 또는 훈차라는 것이다.


4. 고구려, 백제, 신라.

우리에게 있어서 가슴떨리는 고대사의 영광이며,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빛나는 아름다운 이름이다. 하지만 저 국호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일궈낸 역사",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글자가 멋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역사를 아는 이라면 저 이름들이 가진 가슴 아픈 현실과 비화를 알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절대 할 수 없다.



5. 왜라는 글자는 단순한 음차 + 멸칭에 불과할 뿐이며, "왜"라는 명칭을 가지고 "저 놈들은 나라도 아니었어"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는 행위는 참으로 치졸하면서도 멍청한 행위이다.

그렇게 따지면 중국 입장에서는 이런 반응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아니, 왜의 입장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저놈들 백제래 ㅋㅋㅋㅋ 무슨 나라 이름이 그따구냐 ㅋㅋㅋㅋ"

"저놈들은 고구려야. 겨우 고구려일 뿐이라고. ㅋㅋㅋㅋ 모름지기 나라라면 멋지게 한 글자로 되야 하는 거잖아. 한, 당 이렇게 말야 ㅋㅋㅋㅋㅋ"



6. 知彼知己, 그리고 易地思之



덧글

  • Allenait 2010/11/21 22:49 # 답글

    6번이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이로군요
  • 야스페르츠 2010/11/22 09:53 #

    역지사지하면 세상에 법 없이도 살 수 있겠지요.
  • 아인베르츠 2010/11/21 23:15 # 답글

    하구려…하구려… 입에 딱딱 맞는게 어째 멋있는 거 같아요!
  • 야스페르츠 2010/11/22 09:53 #

    ㅋㅋㅋ 고구려에 억하심정이라도? ㅋ
  • 에레메스 2010/11/22 01:03 # 답글

    2번에서는 저도 최근에 안 것인데, 장수왕 이전에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변경했을 가능성도 있는 듯합니다. 양고승전이라는 책에서 지둔도림(314~366)이 高麗道人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이 있는데, 고려도인은 고구려인으로 보는 것에 이견이 없다고 합니다. 양고승전이 양나라 때 만들어졌긴 하지만, 설마 편지내용까지 각색했으리라고는...^^; 이거 말고도 위서에 398년에 고려라고 불린 기록도 있기도 하고요. 장수왕 대에 국호를 변경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3번 문제는 개인적으로도 좀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ㅋㅋ

    "왜라는 이름을 싫어하여 일본으로 국호를 바꿨다고 사신을 보내니, 스스로 말하길 나라가 해뜨는 곳에 가까우므로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하기도 하고 혹은 일본은 소국인데, 왜에게 병탄됐으므로 그 이름을 씌운 것이라고 한다. 사자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아 의심스럽다. -신당서"

    후자에 따르면 일본이라는 국호 자체는 단순한 음차로 7세기 이전에도 있던 것이 맞기는 한데, 자기들이 병탄한 소국의 이름을 새로운 국명으로 썼다는 게 좀... 아무튼 이 부분은 고림거사님의 글이 궁금하네요.ㅋㅋ 제가 많이 얕은지라^^;;

    아무튼 잘 보고 갑니다.^^
  • 야스페르츠 2010/11/22 09:53 #

    저도 본지가 하도 오래전인지라 기억이 희미합니다. ㅡㅡ;;
  • 에레메스 2010/11/23 01:06 #

    굔군님/ 수고해주셔서 너무감사한데, 제가 궁금한 것은 일본이라는 국호에 대한 것인지라...^^:;
  • 굔군 2010/11/23 01:11 #

    '왜/대화/야마토' 국호에 대한 고람거사 님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한위노국왕인(漢委奴國王印)

    일본의 구칭은 왜 "倭(왜)"일까요? 흔히 "키가 작으니까 矮(왜)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라는 속설이 퍼져 있습니다만, 정말 그것은 사실일까요? 오늘은 그 왜(倭)라는 이름의 근본이 되는 "한위노국왕인(漢委奴國王印)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倭란 이름의 초출은 晉 陳壽에 의해 지어진 《삼국지》위지 동이전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依山島爲國邑"이란 문장이며, 《후한서》에 의하면

    建武中元二年, 倭奴國奉貢朝賀. 使人自稱大夫, 倭國之極南界也. 光武賜以印綬.

    광무제 중원 2년(기원후 57년), 왜(倭)의 노(奴)국이 조공을 가지고 조하하러 왔는데, 사신은 스스로 대부라 칭하였으며, (그 나라는) 왜국의 가장 남쪽 경계이다. 광무제는 인수를 하사하였다.

    이라 한 것이 倭에 대한 가장 앞선 시기의 기록으로 보여집니다. 이 기록은 소위 "열도(列島)"란 지역이 사실상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서 대단히 중요한데, 이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유물이 1784년,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진의 "한위노국왕인(漢委奴國王印)입니다.

    "한위노국왕인(漢委奴國王印)"이란, "한나라 왜노(倭奴)국왕의 도장"이란 의미로서, 위의 역사적 기록과 너무 일치할 뿐더러, 발견과정이 석연치 않고, 뱀 모양의 도장꼭지가 없으며, 더불어 너무 보존상태가 좋아서 위조설이 오랫동안 퍼져 있었습니다. 혹은 위조설 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단순한 사인(私印)이 아니겠느냐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20세기의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모두 깨지게 됩니다.


    1956년, 윈난(雲南)성에서 발견된 "전왕지인(滇王之印)"

    "전왕지인"은 지금의 윈난성에 해당하는 전(滇)나라의 왕에게 기원전 108년 서한 무제가 준 것으로, 도장 꼭지가 뱀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뱀 모양의 도장꼭지를 가진 도장이 실제로 하사되었음을 확인시켰습니다.(이러한 도장은 주로 외신(外臣)에게 내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81년에 장쑤(江蘇)성에서 발견된 "광릉왕새(廣陵王璽)"

    광릉왕새는 바로 "한위노국왕인"과 같은 시기의 동한 광무제 때 광릉왕에게 내려진 옥새로, 도장의 제작방식 등이 "한위노국왕인"과 극히 일치하여, "한위노국왕인"이 진품이며, 이것이 동한 광무제에 의하여 내려진 것임을 다시한번 입증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한위노국왕인"은 당시의 한 조공 체계의 방식과 고대 열도의 상황을 보여주는 극히 희귀하며 귀중한 유물로서의 위치를 온전히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의문스러워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왜 "倭奴"라 할 것을, 도장에서는 "委奴"라 하였을까요? 이는 倭奴든, 委奴든 모두 당시 열도에 존재하였던 고유명사의 가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한대에는 倭와 委의 음이 거의 같았다고 추정됩니다. 다만, 구체적으로 그들 한자로 적으려 했던 것이 어떤 단어인지는 미상입니다) 훗날 倭는 일본의 한자음에서 동음자인 和로 바뀌어져 오늘날에 이르는데, 바로 "大和(야먀토)"와 "和風(일본풍)"의 和는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혹자는 倭 뒤에 奴가 붙었으므로, 열도에 대한 비칭이라고 보기도 합니다만, 奴 또한 고유명사인 듯 하며(아마도 奴는 당시 *na:로 읽혔다고 추정됩니다), 앞서 나왔던《후한서》의 "倭奴國奉貢朝賀. 使人自稱大夫, 倭國之極南界也"라는 구절을 볼 때, 奴는 倭라는 집단에 속한 한 국가명으로, 당시의 중국인들은 그것을 "倭國之極南界(왜국의 가장 남쪽 경계)"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키가 작으니까 왜"라는 속설은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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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조이 저팬에서 倭가 무슨 비칭이니, 폄하의 뜻이 있느니 하는 논의가 있어서 적어 봅니다.

    이미 전에도 말했다시피, 열도에서 처음으로 중국에 입조하여 받은 칭호가 바로 "한왜노국왕(漢倭奴國王)"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출토자료에서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이란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倭와 委는 同音假借임이 너무도 당연합니다만, 이 倭와 委를 두고 폄칭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하였을까요.

    광무제로부터 100여년 뒤인 기원후 140년에 나온 허신 저의 《설문해자》란 사서가 있습니다. 이 책은 당시에 사용되었던 9천여자에서 1만여자의 한자들을 모아 정리하여 그 뜻을 풀이하고 형체를 분석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문자학에 있어서는 경전이기에, 모르는 분들은 없을 거라 봅니다. 그럼 여기에서는 委와 倭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人部》倭, 順皃. 从人委聲.
    《女部》委, 隨也. 从女禾聲.

    두 글자 모두 기본적으로는 "따르다"라는 뜻이 있는 모양입니다. 《설문해자》의 주석자인 단옥재도 "倭與委, 略同"라 한 것을 봐선, 두 글자는 기원적으로도 상관관계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한무제 때의 중국인들은, "倭"라는 국가명에 "따르다, 순종하다"란 뜻을 넣어서 지었던 것이 될까요.

    그런데, 《설문해자》를 자료로 사용하는 데에는 한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설문해자》는 말 그대로 "文을 說하고,字를 解하는" 책으로서, 그 글자의 본의를 중심으로 정리되었지, 그 글자의 후대의 확대된 의미나 용례를 다루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하여 확인하려면, 다른 사서를 더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옥편》과 《절운》이지요.

    《옥편》은 남조 양나라의 고야왕이 지은 사서로서, 본의만을 다루고 있는 《설문해자》와는 달리, 글자들의 다양한 용례를 방대하게 논증함으로 인하여, 당대에 있어서 최고의 사서 중 하나로 꼽히는 물건입니다. 다만, 그 상세한 주해는 송대에 이르러 진팽년에 의해 상당수 소거되고, 간략한 자의와 음만을 남겨, 훈고학에 있어서 최고의 개악으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남북조와 그 이전 시기의 용례를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로 삼을만 합니다. 또 하나의 참고자료인 《절운》은 수 인수 원년(601년)에 육법언이 편찬한 사서로, 남조와 북조의 학자들이 모여 결정한 규범음의 사전이랄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음에 따른 의미의 변화를 볼 수 있으므로, 역시 참고가 됩니다. 이것도 송대의 진팽년이 중수했으나, 앞선 시기의 《절운》사본은 돈황문서 등으로도 발견되었으므로, 원래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사서에서는 倭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봅시다.1)

    《옥편 · 人部》倭, 於爲切. 說文云, 順皃也. <중략> ... 又烏禾切, 國名.
    《절운(王二本) · 支韻》(於爲反)倭, 愼皃. 又烏禾反.
    《절운(王二本) · 歌韻》倭, 烏禾反. 東海中女王國.

    이들 자료에 따르면, 倭는 의미와 발음이 둘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따르다"라는 것이며, 그 음은 於爲切, 즉 한국 한자음으로는 위(일본 한자음으로는 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고유명사로서 일본을 가리키고, 烏禾切, 즉 오늘날 한국 한자음의 왜(《훈몽자회》시대에는 와. 일본 한자음으로는 ワ)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고유명사로 사용할 때에는 상용되는 의미나 음과 구별지었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경우는, 다른 외래 고유명사 표기자들에 있어서도 종종 나타나는 것입니다.

    《절운(箋注本) · 寒韻》單, 都寒反.
    《절운(箋注本) · 仙韻》(市連反)單, 單于.

    《절운(王三本) · 霽韻》麗, 魯帝反. 旅行也. 好也.
    《절운(王三本) · 支韻》(呂移反)麗, 勾麗, 東夷.

    《절운(王二本) · 号韻》(莫報反)冒, 涉. 又莫北反.
    《절운(王二本) · 德韻》(音同墨)冒, 單于名.

    흉노의 單于는 홀로 있었기 때문에 單을 쓰고, 高句麗의 麗는 아름답기 때문에 麗를 쓰며, 선우의 이름인 冒頓은 모험심이라도 강해서 冒를 썼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가차는 가차일 뿐입니다.

    그냥 놀리기라면 할 말 없지만, 이런 것들을 사실이랍시고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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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委는 광무제 때에 한 번만 사용된 가차자이고, 적어도 《삼국지》이후에는 倭로 통일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이므로, 구태여 찾아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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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倭라는 고유명사가 의미와는 무관한 가차였음을 논한 바 있습니다. 오늘은 그렇다면 倭라는 글자가 과연 어떠한 발음을 적으려 한 것인지에 대하여 고찰하고, 그 변화를 추적해 보기로 하지요.

    委(=倭)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사서에 나타난 시대는 동한 광무제 때입니다. 그 전에도 열도 지역이 委란 이름으로 불린 예가 있어서 그것에 따라 委라 불러주었는지, 혹은 그 때 처음으로 지어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대략 기원후 1세기를 전후한 시기의 언어가 반영된 표기라고 본다면, 그다지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원후 1세기경의 중국어는 어떠하였을까요. 중국어의 역사는 크게 상고음시기(기원전 11세기~후한), 중고음시기(육조~수당대), 근대 중국어 시기(송~청대)로 구분됩니다. 그 중 기원후 1세기 무렵은 상고음에 있어서도 끄트머리 무렵에 해당하지요. 당시의 음을 추정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비교언어학적인 자료나 당시의 압운(rhyme), 그리고 형성자에 의거하면, 그 시대의 음에 대하여 조금씩은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委와 倭는 본래 상고음에서 동음자로, 1세기를 전후한 시대의 상태는 *?oj(<**?ol)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당시에 동음자였다고 추정되는 글자는 委를 성부로 하는 몇몇 글자들(萎, 逶, 痿, 覣 등)을 제외하고는 극히 드물어(濄, 婐), 가차 표기자로서 委가 채택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委에 해당하는 단어는 핵모음을 o로 하는 특정 단어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구체적으로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까진 알기 어렵습니다.

    한대 중국어의 이중모음이었던 *-oj는, 육조시대에 들어가면서 장음은 -ua, 단음은 -jwe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한 발음의 추이에 맞추어 倭에도 ?jwe와 ?ua라는 두 가지 발음이 남게 되는데, 후자인 ?ua가 바로 일본의 옛 이름입니다.

    그러던 것이 쇼토쿠 태자를 전후한 시기부터는 倭를 和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이름이 국가명으로 적절치 못하였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적절한 발음에 맞는 글자가 많지 않아 불가피하게 사용되었던 委와 倭였겠습니다만, 여기에는 順이나 隨라는 뜻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그 국가가 다른 국가에 종속받는다는 뉘앙스를 주므로, 점점 국가의 체제를 갖추어 나가던 야마토 정권에서는 바꾸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의 隋만 해도, 본래는 지명인 隨에서 유래된 것입니다만, 그 뜻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辵을 제거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음도 참고가 되겠지요.

    2)倭와 和는 고대 일본 한자음에서 동음입니다.
    고대 일본에서는 倭의 음인 ?ua를 ワ로 받아들였는데, 마침 和 또한 고대 일본 한자음에서 ワ로 수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和의 중고음인 γua의 자음인 γ에 해당할만한 자음이 고대 일본어에 존재하지 않았으며(한국 한자음에서는 h로 반영되었으나, 상대 일어에는 h자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늘날의 ハ행은 고대에 pa pi pu pe po였을 것이라고 추정되지요), 더더구나 γ이 유성 마찰음으로서, 탈락되기 쉬운 자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과를 거쳐 열도의 옛 이름은 委 -> 倭 -> 和로 변화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고음 참고서적 : 鄭張尙芳(2003) 《上古音系》上海: 上海敎育出版社
  • 굔군 2010/11/23 01:13 #

    앗, 수정하는 사이에 답글을 다셨군요. ^^;;

    아무튼 이글루스는 댓글 수정 기능이 없어서 너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 ㅋㅋㅋ 2010/11/22 01:40 # 삭제 답글

    이봐 그리고 곧 책사풍후님께서 네가 목숨처럼 여기는 위키백과 낙랑군 문서 수정 들어가신댄다.
    이번에는 확실한 출처와 자료로 네가 절대로 반달 못할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1234 2010/11/22 09:06 # 삭제

    ?? 반달 못하면 초승달 ? 아님 보름달 ?
  • 퀸엘리자베스성경 2010/11/22 09:48 # 삭제

    ㅋㅋㅋ/마광팔씨,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0/11/22 09:59 #

    쯧쯧. 넌 차단.
  • 들꽃향기 2010/11/22 05:25 # 답글

    나중에 환덕들이 우리민족 못지않게(?) 하앍거리기 좋아하는 거란, 여진 등의 북방유목민족들도 대충 그까이거 음차로 때워버려~하다가 나중에 완전한 중국식 혹은 나름의 좋은 뜻을 담아 국호를 정하는 것을 보면 뭐 (...)

    이상하게 야들은 일본이 '왜'라고 불렸다고 경멸하면서 북방민족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는다는 괴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ㄷㄷ
  • 야스페르츠 2010/11/22 10:00 #

    역지사지가 필요한데 말입니다. ^^;;
  • hyjoon 2010/11/22 10:23 # 답글

    6번이 핵심인 듯.....
  • 야스페르츠 2010/11/22 16:03 #

    지피지기에 역지사지하면 법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
  • 2010/11/22 10:53 # 답글

    뭐 동이드립이 떠오르네요...... 뭐 큰 활을 든 사람? ㅋㅋ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0/11/22 16:03 #

    동이 드립은 진짜 ㅋㅋㅋ
  • moduru 2010/11/22 14:12 # 답글

    조선 어원에 대한 논쟁(?)이 제일 재밌지요.
    솔직히 선수(仙水), 열수(洌水), 습수(濕水)의 지명에 비롯되었자는 사기 이래의 관점이 제일 그럴듯하기는 한데... 그럼 조에 해당하는 의미가 뭔지 불명확하고... (고대 한어의 발어사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의 훈차 혹 음차인지.. 애매..)

    어차피 특정 인종, 종족명칭 혹 지명의 음차가 조선이 되었을 거라는게..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텐데..
    뭐 여러 설을 봤지만, 이거다 라고 납득할만한거는 없습니다.


    다만, 조선을 가지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운운은.. 정말...ㅋㅋ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0/11/22 16:04 #

    모닝글로리는 개뿔이죠. (틀려!) ㅋㅋ
  • 2010/11/22 14:1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1/22 16:05 #

    .... 이 글의 논지는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ㅡㅡ;;
  • 앨런비 2010/11/22 14:37 # 답글

    일본(日本) 왜(倭) 대왜(大倭) 대화(大和) 사마대(邪馬臺) 모두 야마토, 야마타이 씨리즈죠 뭐.
  • 야스페르츠 2010/11/22 16:06 #

    후후 그런데 왜를 가지고 나라 이름이 어떻다고 자폭하는 그분을 생각하며 그저 눈물을...
  • 앨런비 2010/11/22 14:40 # 답글

    일본의 경우 대화로 고친것도 발음은 원칙상 야마토가 아닌데 한자 좋으라고 같다붙인거고, 이후 일본도 원칙상으로 야마토로 발음할 수 없지만 같다 붙인거죠 뭐.
  • 굔군 2010/11/22 22:35 # 답글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광개토왕비에 기록된 '신라'라는 국호는 대체 어떻게 된 거냐는 겁니다.

    백제를 '백잔'으로 쓴 거야, 광개토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전사케 한 철천지 원수지간이었고, 또 '백제'라는 국호 자체는 이미 삼국지 동이전에서부터 등장하니 납득은 하겠는데,

    광개토왕대면 신라는 내물왕 시기인데, 이때는 중국 사서에 신라가 기록되기도 전인데, 당연히 '사라'나 '사로'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新羅'라는 국호가 떡하니 등장해서 의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 에레메스 2010/11/23 01:09 #

    신라본기 지증왕조에 의하면 신라라는 국호는 지증왕 때부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사라,사로 등과 함께 사용되고 있었는데, 지증왕 때부터 신라라는 국호로 고정된 것 뿐입니다.^^;
  • 굔군 2010/11/23 13:17 #

    그 신라본기의 기록이 별로 신빙성이 없다고 보는지라...^^;;

    저는 신라본기에 나오는 이사금이니 마립간이니 하는 칭호들도 실제로는 쓰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토되는 금석문 자료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거든요.
  • 파랑나리 2010/11/24 14:19 #

    굔군//신라본기를 믿지 못하시는군요. 제가 알기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학계의 통설이라는 데 사실입니까?
  • 굔군 2010/11/24 18:12 #

    파랑나리//통설이고 아니고가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믿는 사람은 믿는 거고,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거지.

    삼국사기뿐만이 아니라, 자기네 초기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습니다. 비단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제 탓은 더더욱 아니고요.

    저는 학계의 통설과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제 자신의 견해를 말한 것뿐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걸 가지고 뭔가 식민사관과 엮으려는 의도였다면 단념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최근 여러 블로그에 댓글 다시는 행보로 보건대, 얼마 전에 미국 주적 드립 치다 버로우 탄 matercide 님과 동일인물이신 듯한데 맞습니까?
  • 파랑나리 2010/11/26 22:54 #

    matercide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남한의 주적은 북한이 맞지만 북한의 주적은 남한이 아니라 미국입니다. 북한이 남한을 나쁘게 말할 떄 자주 쓰는 낱말이 있죠. '괴뢰' 북한은 남한은 미국의 괴뢰요, 미국이 최종보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을 주적으로 삼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이 한국전쟁때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한 것도 있겠죠.
  • 파랑나리 2010/11/26 22:56 #

    굔군//북한의 주적 하나를 빼먹었습니다. 일본. "천백배 복쑤를 할 의무가 있"는 나라죠.
  • 굔군 2010/11/28 04:10 #

    파랑나리//matercide가 누군지 모르신다는 분께서 하시는 말씀은 matercide와의 대화 내용과 그대로 이어지고 있군요. 인식이나 하는 주장도 서로 비슷하고....

    저는 여기에서 '북한의 주적' 얘기는 꺼낸 적도 없는데도 말이죠. 허허허 ^^;;
  • 파랑나리 2010/11/28 14:45 #

    굔군//미국 주적 드립이라길래 미국을 주적으로 삼은 나라 얘기하는 건 줄 알았죠.
  • 굔군 2010/11/22 22:42 # 답글

    '흉노'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예전에 고람거사 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가차(rebus)의 원리란, 서사하려고 하는 단어를, 의미와는 상관 없이 발음의 유사성만을 따라 표기하는 것을 말하오. 가령, Huna라는 종족명을 匈奴로 적은 것과 같소. Huna라는 종족명과 匈자, 奴자가 가진 의미에는 전혀 필연성이 없소이다. 따라서 발음만 비슷하면 얼마든지 다른 식으로 쓰는 것도 가능하였소. 같은 종족명이 시대에 따라 훈육(葷鬻), 험윤(獫狁)으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오."

    --------------------------------------------------------------------------

    1. 훈육(獯鬻/葷鬻)=험윤(獫狁)=흉노(匈奴)

    위의 세 단어는 전부 같은 종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것이오. 한대의 복건(服虔)이 '요 시절에 훈육이라 불렀으며, 주대에는 험윤이라 불렀고, 진대에는 흉노라 불렀다' 하였으니, 시대적으로 이름이 변경된 것이라 할 수 있소. 세 단어들은 상고 중국어에서 발음에 유사성이 있었는데, 獯, 獫, 匈 세 글자는 앞의 자음이 모두 h로 같았고, 끝자음은 발음 위치가 다르지만 전부 비음 계통(n-m-ng)이오. 또한 鬻, 狁, 奴의 세 글자도 상고음의 앞 자음이 각각 r-r-n으로 조음점이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소. 아마도 시대가 변하면서 같은 종족의 이름이 약간씩 변화된 듯 하나, 그 글자들이 표현하려고 했던 원어는 자세히 알 수 없소이다.(흉노가 직접 남긴 기록은 비석 하나가 유일하다시피 하오) 다만 匈奴는 산스크리트어에서의 Huna에 해당되는 단어를 음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소. 匈奴의 상고음은 *huŋ na로 추정되는데, 산스크리트어 단어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소.(왕궈웨이(王國維)는 몇 술을 더 떠서 음운적 유사성에 의거하여 鬼方과 畎夷까지 같은 종족으로 보나, 이는 실증하기 어렵다 할 수 있소)
  • 야스페르츠 2010/11/23 13:22 #

    자세한 자료 감사합니다. ^^
  • 굔군 2010/11/22 22:44 # 답글

    야마타이/야마토에 대해서는 고람거사 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5. 야마대(邪馬臺)

    이것은 <삼국지 / 위지 동이전>에 등장하는 고유명사이오. 일본의 한 국가명으로서, 그 수장은 비미호(卑彌呼)라고 전해지오. 이 단어를 두고 여러 논쟁이 있었으나, 이것이 야마토를 나타낸 것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이오. 왜냐면, 일본의 고대 한자음에서 苔를 to 乙류로 읽는데, 臺는 苔와 완전히 발음이 같은 글자이기 때문이오. 현재는 야마대가 야마토(大和)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소.
  • 굔군 2010/11/23 13:29 # 답글

    백제(百濟/佰濟)가 음차에 의한 이름이었다면,

    중국 사서에 나오는 '백가제해(百家濟海) 설'이나, 백제본기 온조왕 조에 나오는 "원래 십제(十濟)였는데 미추홀(인천)의 비류 세력을 합병하고 백제(百濟)로 고쳤다"는 이야기는 모두 후대에 윤색된 기사로 볼 수 있겠군요.


    아무튼 삼국이 한자 문화가 발전하면서, 모두 단순한 음차였던 국호를 한문식이나 좋은 뜻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제에도 "백가제해(100가가 바다를 건넜다)"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고구려(고려)의 경우도 "山高水麗(산은 높고 물은 아름답다)"라는 설이 있고, 신라에도 "덕업이 나날이 새롭고 사방으로 뻗어나간다"라는 뜻이 있다지요?
  • 파랑나리 2010/11/30 22:45 # 답글

    일본에서는 백제를 쿠다라라 하고 고구려를 코마라 부르고 신라를 시라기라 부르고 가야를 미마나로 부르고 조선(혹은 韓)을 카라(어느 아이돌이 일본 진출할 때 이래서 기분이 묘했습니다.)라 부르는 데 이 말들은 백제,고구려,신라,가야,조선의 진짜 이름에서 유래된 말일까요?
  • 민소정 2012/10/04 22:42 # 삭제

    kudara의 경우 충청남도 부여군의 지명 '구드래'와 대응한다는 도수희 교수의 주장이 적잖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항간에 '큰-나라' 운운하는 데는 개인적으로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koma의 경우 m이 '고구려'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소리이므로, 차라리 비칭으로 짐승 이름[熊]을 붙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속 편할 듯합니다. 단군 설화와 연관지어도 재미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shiragi의 경우 현대 일본어뿐만 아니라 만엽집(Man'youshuu)의 소위 makurakotoba에서도 attest되는 어휘이긴 한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는 바가 없습니다. 다만, '신라'를 shira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면 -ag의 음상이 한국어의 diminuitive suffix (?) -ak와 유사한 점이 눈에 띄며, 일종의 비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민소정 2012/10/04 22:45 # 삭제

    kara의 경우 韓으로 옮겨 적은 것의 원음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안라국~아라가야의 사례도 있고, 적어도 한반도 남부에서는 저런 혼란(n~r)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일반적인 음운 변화 유형에 의해서는 쉽사리 설명되지 않는 것이라 -n이 문법적인 기능을 하는 토씨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얼핏 듭니다만 (cf. Mongolian singular suffix -n, plural suffix -d) 관련한 논문을 접해 본 적이 없어서 기존 학계의 통설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kudara의 경우를 다시 살펴보면 '십제'의 상고 중국어 독음이 *gj-dl-로 나올 수 있기는 한데, 이쪽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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