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14 11:27

낙랑군, 삼국, 그리고 금석문 역사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

낙랑군 관련 유물이 천문학적인 수라는 사실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단순한(?) 한식(漢式) 유물뿐 아니라, 낙랑군 유물임을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명문"이 새겨진 유물, 즉 금석문까지 있는 마당에야, 낙랑군 유물의 판별, 혹은 진위 논란은 솔직히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환드모트를 비롯한 몇몇 분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낙랑군 관련 금석문이라고는 딱 한 가지 밖에 모르며,(혹은 다른 유물은 애써 무시하며) 그 한 가지 유물만 부정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유물은 바로 봉니(封泥), 그리고 그분들의 전매특허 조작설 작렬. tut-tut.


위에 링크한 사이트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국가문화유산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는 금석문 데이터베이스이다. 한국과 관련된 금석문들을 방대하게 싣고 있으며, 일부 유물들은 실제 탁본도 제공한다.

저 사이트에서는 디렉토리별 검색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다양한 검색 조건을 자동으로 제공한다. 그 중에는 시대별 금석문 검색도 있다. 물론, 낙랑군도 검색 조건에 포함되어 있다.

자, 낙랑 관련 금석문을 한 번 찾아보자.


낙랑 관련 금석문의 총 개수는 394개. 이 안에는 100여 개의 봉니를 비롯하여 명문이 새겨진 칠기, 벽돌, 기와 등 수많은 종류의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저 유물 모두에 "낙랑군"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명문-연호라든가 낙랑군 소속현명이라든가-이 새겨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함께 출토된 유물들에 새겨진 명문들을 통해서 충분히 개연성있게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다.

어쨌거나, 낙랑 관련 금석문의 수가 약 400개라는 건, 의외로 적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다른 시대의 금석문은 몇 개나 될까?

고구려 60
백제 56
신라 64
가야 11
통일신라 110
발해 27
고려 706
조선 1752

...............................

삼국과 가야, 통일신라, 발해까지 모든 금석문을 합쳐도 낙랑 금석문 한 카테고리보다 적다. (물론 시대적으로도 훨씬 가깝고 유물도 많은 고려나 조선은 논외)

낙랑군 유물의 위대함(?)이라고나 할까....




사실 낙랑 금석문과 다른 삼국의 금석문을 단순 수량으로 비교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낙랑은 다른 삼국과 달리 한식 문화권이었고, 그래서 삼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벽돌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벽돌은 틀로 찍어내기만 하면 간단하게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명문을 남기기에도 훨씬 유리하다. 삼국의 와명(瓦銘)·전명(塼銘) 유물은 모두 합쳐도 50개에도 못미치는 데 반해 낙랑의 와명·전명 유물은 139개에 이른다. 봉니 100여 개와 합치면 60~70%가 사라진다.

물론 그렇게 제외해 놓고 봐도 압도적인 수량이긴 하지만.




덧글

  • hyjoon 2010/10/14 11:32 # 답글

    그럼 또 '왜 이렇게 많냐, 조작이다'소리가 나옵니다. 예. (...)
  • 야스페르츠 2010/10/14 14:02 #

    조작입니다. 그분의 머리 속이 조작입니다.
  • 한단인 2010/10/14 16:38 #

    hyjoon/ 앗.. 제가 하려던 소리를...
  • DreamersFleet 2010/10/14 11:35 # 답글

    http://db.history.go.kr/front/dirservice/dirFrameSetAge.jsp?pREC_ID=9725&pUrl=%2Ffront%2Fdirservice%2Fcommon%2FlistAgeMain.jsp&pCODE=&pType=

    참고로 여기서 보는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시대별로 정리가 된 것 같아서.
  • 야스페르츠 2010/10/14 14:02 #

    오. 이것도 좋군요. 감사합니다.
  • 누군가의친구 2010/10/14 11:43 # 답글

    그리고 이제 몇시간 후면 누구라고 말할수 없는자의 포스트가 밸리에 올라오곘죠.ㅋ
  • 누군가의친구 2010/10/14 11:52 # 답글

    그러고보니 벽돌 사용사례만 봐도 문화권이 확연히 차이가 나니까 말입니다.
    탑만 봐도 한국은 석탑, 일본은 목탑, 중국은 전탑이라 할정도였고, 박제가의 북학의를 읽어도 벽돌사용이 자주 언급되고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벽돌을 사용한 건 거의 드믈어서 말입니다. 벽돌을 사용하여 건축했던 화성의 경우 상층부만 벽돌이었지요.
  • 야스페르츠 2010/10/14 14:04 #

    벽돌을 사용했다는 점만 보아도 "포로수용소" 운운은 그냥 미친 소리죠. 어느 나라 포로수용소가 성도 쌓고 관인도 만들고 군현까지 설치하게 하는 건지 원...ㅡㅡ;;;
  • 2010/10/14 12:2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0/14 14:06 #

    고대 사회에다 식민지 운운하는 것부터가 에러죠..
  • 시와랑 2010/10/14 12:29 # 답글

    200년 남짓(아마 그쯤 되지 않나요? ;; ) 한반도 일대를 지배했던 낙랑군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을건데요. 어쩌면 일제 강점의 36년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냥 덮어놓고 살기에는 지배기간이 너무 길어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낙랑군이 한국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이제는 똑바로 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 에드워디안 2010/10/14 12:38 #

    족히 400년은 되죠. 전한 무제 이래, 서진시대까지 존속했으니... 개인적으로 낙랑군의 존재가 한반도의 문화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 시와랑 2010/10/14 12:40 #

    에드어디안 // 아 400년이군요. 이거 답글이 수정이 안되니 영 불편하네요 ;; ㅇㅅㅇ 제 생각도 상동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0/10/14 14:06 #

    이미 역사학자들은 낙랑군이 우리나라 고대 국가의 발전에 끼친 막대한 영향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쌓고 있습니다.
  • 無碍子 2010/10/14 13:14 # 답글

    그분은 이런 말을 할겁니다.


    금서룡이 조작질을 많이도 했군요. 통일된 후 자세히 조사하면 중원에서 한나라 시대의 무덤을 파서 대동강변에 묻은 경우도 있을 겁니다.

  • 야스페르츠 2010/10/14 14:07 #

    웃기죠 참...
  • 역사 2013/02/23 22:39 # 삭제

    그대는 입 좀 다물어라.
  • 불온 2010/10/14 14:31 # 답글

    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금석문 탁본이 아니라 유물을 보여줘도 조작이라고 드립칠걸요.
  • 야스페르츠 2010/10/14 14:47 #

    그저 한숨만...
  • dfdfvd 2010/10/14 14:39 # 삭제 답글

    봉니조작론 보니까 복파장군 마원이 인장에 새긴 글씨가 서로 달라 이것을 하나로 획정하기를 청한 기록이 있는데 이곳 봉니에 찍힌 인장의 글씨는 한사람의 솜씨처럼 같다는 것과 http://enjoyjap.egloos.com/1783403 에 있는글을 어떻게 봐야할지;;; 물론 저는 환빠가 아닙니다만 봉니조작론을 비판하기위해 뒤지던 중에 이런내용 이있어 질문을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0/10/14 15:19 #

    전형적인 음모론일 뿐입니다.
    1. 봉니 대부분이 "현지인들의 매입품"인 것처럼 속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출토품이 대다수고 매입품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조작설 즐~
    2. 모양새나 서체가 다르다는 것 또한, 본인만 알 수 있는, 즉 본인의 주장에 부합하는 자료만 슬그머니 취합하고 있죠. 진한대 봉니의 발견 수량만 해도 천문학적인데, 그 중에서 일부만 골라다가 "이것봐라 다르게 생겼지 않느냐"고 하는 건 전형적인 음모론의 술수 중 하나입니다.
    3. 봉니의 출토 경향만 해도 이미 "목간은 썩어서 없어지고 봉니만 남은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봉니가 "죽간 봉인용"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중앙아시아의 건조지대에서 봉니가 붙은 죽간이 출토되어서 겨우 증명(?)된 거에요. 그런데 죽간이 없다는 말은 그저... 물론 죽간 출토지로 들어 놓은 표가 하나 같이 무덤이라는 건 기냥 병크.... 무덤에서 공문서를 봉인할 때나 쓰는 봉니가 출토되지 않았다고 하는 건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4. 뭐, 한사람의 솜씨 같다는 건 누가 그 서체가 같다고 고증했는지부터 알려달라고 해야 할 듯...
  • Allenait 2010/10/14 16:57 # 답글

    낙랑 금석문이 저렇게 많을 줄은 전혀 몰랐네요.
  • 야스페르츠 2010/10/15 00:40 #

    사실 낙랑 금석문의 수가 아니라, 삼국 및 고대 금석문의 수가 저렇게 적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습니다. ㅡㅡ;;
  • 2010/10/14 17: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0/15 00:40 #

    헐.. 그렇군요. 나중에 한 번 알아봐야 할 듯...
  • ArchDuke 2010/10/14 17:38 # 답글

    김정희 선생이 계셔서 다행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10/15 00:40 #

    ?? 추사 선생은 왜요?
  • ArchDuke 2010/10/15 01:29 #

    초기 금석학 연구자 중 한사람
  • 땡그랑 2010/10/14 20:53 # 답글

    이번학기에 금석학 배우고 있는데, 낙랑 금석문이 저렇게 많은 줄은 처음 알았네요;;; 삼국과 통일신라 금석문만 교수님이 대상으로 삼아서
  • 야스페르츠 2010/10/15 00:41 #

    낙랑 금석문이라고 해봤자 거의 다 "永化四年" 정도의 단편적인 글이 답니다. 그러니 금석문을 배우는데도 별로 참고가 되지는 않을 듯^^;;
  • 을파소 2010/10/14 21:31 # 답글

    고구려 백제의 비문이 적은 건 중국이 은폐하기 때문입니다. 고구려 영토는 만주에 걸쳤고 백제는 대륙에도 조재했으니까요.

    ....라고 하고도 남지 않겠습니까? 물론 낙랑 금석문은 조작이고.
  • 야스페르츠 2010/10/15 00:42 #

    하지만 중국에서 발견된 임둔봉니는 진품이라능?!?! ㅋㅋ
  • LVP 2010/10/14 23:28 # 답글

    어...이상하게 광팔이가 조용합니다. (벨리 제외)

    혹시 대문 걸어잠궜나요 'ㅅ'?
  • 야스페르츠 2010/10/15 00:42 #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 초록불 2010/10/15 00:26 # 답글

    문명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죠...
  • 야스페르츠 2010/10/15 00:42 #

    그래서 문명하려구요. (응?)
  • 지나가려고 2010/10/15 06:01 # 삭제 답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개창성이라곤 쥐뿔도 없는 이런 글을 쓰면서 나는 환빠와 싸우는 투사입네 하고 있는 꼴이... 검색하면 누가 이런 글을 못 써.
  • ㄲㄲㄲ 2010/10/15 07:47 # 삭제

    푸하하하...아놔 웃겨
    이거 참 골 때리는 댓글이네 ㅋㅋㅋㅋ

    그러는 댁들은 이런 거 검색이라도 한번 해 보셨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 보기나 하셨나? ㅉㅉㅉ
  • 야스페르츠 2010/10/15 10:19 #

    콜롬부스의 달걀이라고 아실랑가 모르겠습니다.
  • 2010/10/15 10:05 # 삭제 답글

    우리나라 금석문의 수가 적은 것은, 대개 글을 편평한 돌에다 새겼을 건데 그 돌이 빨래판이나 성곽의 재료 등으로 아주 적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 야스페르츠 2010/10/15 10:21 #

    그런 것도 이유가 되겠지요. 솔직히 고려나 조선 쯤 되면 한두 글자 새겨진 금석문은 발에 치이는 지경이니 누가 수습이라도 하겠습니까...
  • ㄲㄲㄲ 2010/10/15 22:40 # 삭제

    실제로 중원고구려비의 경우, 1979년 판독되어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동네 빨래터에서 아낙네들의 빨래판으로 쓰였다고 하지요. ㅠㅠ

    금석문의 판독이 '금석학'이라는 학문의 경지로 발전하기 이전에는, 옛날 사람들은 옛 비문들에 대해 그다지 관심도 가지지 않았고 내용를 해석해 보려는 생각도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아, 저기 옛날옛적에 세워진 비석이 하나 있네?" 이 정도 인식 수준이었던 듯...?

    고구려 장수왕 때 세워진 광개토왕비는 조선 후기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주 벌판에 멀쩡히 서 있었지만, 아무도 그 내용을 판독해 보지 않아 금나라 시조의 비로 잘못 알려지기까지 했다가 결국 땅 속에 파묻힌 뒤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졌습니다.

    북한산 진흥왕순수비도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직접 탁본을 뜨기 전까지는 그냥 무학대사 공덕비 쯤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하니, 어찌 보면 정말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아니, 비석은 천년이 넘도록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 동안에 내용을 해석해 보려고 시도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을까요?

    이렇게 조상들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망각되거나 훼손되어 사라진 문화재가 얼마나 많을지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ㅠㅠ


    *P.S - 고구려의 금석문 중에서 고구려시대 왕명이 적힌 것들은 어떻게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광개토왕대의 물건들만 남아있는지 그것도 참 의문입니다.

    광개토왕비 & 모두루묘지명 & 호우명 그릇 - 광개토대왕 3종 세트죠 ^^
    광개토왕대의 고구려가 문화적으로도 최전성기였다는 증거인 건가...

    다른 왕들의 이름이 적힌 유물들도 발견된다면 고구려 왕명에 대해 더욱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텐데, 어쩐지 이래저래 안타깝네요ㅠㅠ
  • 2010/10/15 10:12 # 답글

    낙랑 금석문이 이리도 많다니;;;;; 좋은 거 알고 갑니다. 요즘음해서 겨우 까막눈을 면한지라;;
  • 야스페르츠 2010/10/15 10:21 #

    ^^ 감사합니다.
  • 들꽃향기 2010/10/19 00:10 # 답글

    이런 낙랑 유물들을 죄다 약탈해와서 평양에 남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면 참 놀라운 일입니다. ㄷㄷ 무려 약탈해온게 신라시대 금석문 수량과 맞먹으니 그저 후샏이라능? (쿨럭)
  • 야스페르츠 2010/10/19 11:15 #

    벽돌은 뭐하러 약탈해왔을까요? ㅋㅋㅋ
  • 동방변군만세 2010/10/20 14:57 # 삭제 답글

    오랫동안 위대한 중화민족이 한반도 북부를 400년 가까이 지배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경하드리옵니다.
  • ㄲㄲㄲ 2010/10/20 17:19 # 삭제

    1. 그 당시엔 "중화민족"이라는 것 자체도 없었고,
    2. 식민지 개념도 없던 시대에 "일방적으로 지배당하기만 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에러올시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위대한 라틴 민족이 지중해를 500년간 로마의 호수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경하드려야 하나? ㅉㅉ
  • 처사 2010/10/26 10:51 # 삭제 답글

    그럼..정말 한사군이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이 사라지는 군요..
    저는 역사 교육이라는 것이
    첫째 자긍심을 키워주는 것.
    둘째 사실을 알리는 것.
    세째 비판하는 것.

    이라 생각해서리..쩝...

    비전공자의 말씀드렸습돠..
  • 야스페르츠 2010/10/26 10:59 #

    1. 한사군 이전에 고조선이라고 있습니다만... 우리 역사의 시작이 고조선이라는 건 상식을 넘어서 명백한 사실인데.

    2. 역사는 첫째도 사실, 둘째도 사실, 셋째도 사실입니다. 자긍심 같은 것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바로 동북공정이고 황국사관이죠.

    3. 2000년 전에 외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이 지금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훼손한다면, 이 지구상에 자긍심을 가질 나라는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지배를 단 한 번도 받지 않은 나라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요?
  • 처사 2010/10/26 10:56 # 삭제 답글

    낙랑군 수성현 -->황해도 수안군

    맞는 이야긴가요?

    쩝..비전공자라 책읽기 무지 힘드네여...
  • 야스페르츠 2010/10/26 11:00 #

    이병도 박사가 그렇게 추측했지만, 현재는 인정되지 않는 단순한 추측일 뿐입니다.
  • 처사 2010/10/26 11:10 # 삭제 답글

    이문열씨가 쓴 사기이야기(초한지)라는 책 표지 뒷편에 있는 지도가..
    만리장성이 한반도 내부까지 그려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만..
    집에가서 확인을 해봐야 할 듯...쩝..
  • 야스페르츠 2010/10/26 11:22 #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이 청천강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한반도로 들어온 만리장성의 실체입니다. 물론 황해도에는 턱없이 미치지 않으니, 수안군에다 만리장성을 그려 놓은 이덕일의 지도는 거짓말입니다.
  • 처사 2010/10/26 11:15 # 삭제 답글

    역사 교육에 자긍심을 빼라..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힐 필요가 없겠어요...쩝..
    동북공정도 황국사관도 자긍심과는 거리가 있을 듯..아니 관계가 있나?
    갑자기 머리가 아파와요..쩝..
  • 야스페르츠 2010/10/26 11:24 #

    역사를 교육하는 이유는 과거를 앎으로써 미래에 과거의 잘못을 범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자긍심 따위를 "날조"하기 위해 역사를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작해야 "날조된 사실"로 고양된 자긍심이 과연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날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자긍심이 절망감으로 변하거나, 아니면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더 날조에 몰두하겠지요. 그것이 바로 환빠라는 족속들입니다.
  • 처사 2010/10/26 11:17 # 삭제 답글

    고조선이 우리 역사의 시작이 사실이다..
    이덕일님과 야스페르츠님의 견해의 차이는 정확이 무엇인지?
    쩝...
  • 야스페르츠 2010/10/26 11:27 #

    이덕일은 책을 팔아먹기 위해 거짓말을 한 사람이지요. 견해랄 것도 없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덕일은 "고조선은 만주 전체를 지배한 초강대국, 중국 쯤은 껌으로 여겨 밟아 줄 만큼 쎘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함으로써 책을 팔아먹으려 하는 것이죠. 저는 학계의 연구와 증명을 받아들여, "그런 투명드래곤 같은 졸라짱쎈 고조선은 허구다"라고 말하는 것일 뿐, 고조선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고조선은 허구다"라고 받아들이는 일부 부류가 있어서 답답합니다.
  • 처사 2010/10/26 11:34 # 삭제 답글

    잠깐만요..
    님께서는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들어왔다는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시는 것인가요?
    사실인가요?
    음..잠깐 햇갈리네여..

    역사를 교육함에 있어서 자긍심은 독이다..라는 말씀이신데..
    초중등과정에서 역사교육은 무의미 하겠군요..

    이덕일님도 고조선이 중국을 껌으로 여길만큼 강대했다고는 이야기 하지 않은 듯..
    걍..대등한 정도...쩝..

    오늘 넘 햇갈리네여..
    이제 막 읽기 시작한 책이 머리속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쩝..
    유익했습니다..
    자주 들러서 공부하겠습니당..^^
  • 야스페르츠 2010/10/26 20:04 #

    1. 저는 "중국의 주장"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2. 자긍심을 빼면 역사 교육이 불가능합니까? 왜 무의미합니까? 교훈을 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기능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한데 말입니다.

    3. 처사 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건, 이덕일의 주장은 거짓입니다.
  • 처사 2010/10/26 21:34 # 삭제 답글

    지금 기분으로는 그의 주장에 확 눈에 들어 오는데여..
    쩝..
    뭐 하나 하나씩 여쭤 볼께여..
    건강하세여...
  • 처사 2010/10/26 21:38 # 삭제 답글

    제가 비전공이라 지식이 짧아서 그러는데..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1.국내 학계에서 인정하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요?
  • 야스페르츠 2010/10/26 23:21 #

    저도 학식이 짧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송호정 교수의 <한국고대사 속의 고조선사>에 의하면, 일단 실제로 남아 있는 만리장성 유적은 요동 지역, 지금의 선양시 근방까지라고 합니다. 이는 "요동"에서 장성이 시작된다는 기록과도 거의 일치합니다.

    대체로 압록강 이북의 장성은 존재를 인정하는 분위기이며, 장성의 위치는 인정하지 않더라도 청천강 일대까지 진-한 시기에 지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은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기의 변화에 따라 청천강에서 압록강 건너편의 넓은 지역(대략 천산산맥 남쪽)까지 편차가 크므로 단순하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 처사 2010/10/31 10:2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여..처삽니다..

    질문1. 위의 지도대로라면..고구려는 현도군내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매우 힘들었을 듯합니담..

    질문2. 점제현신사비 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그런데..이 비석의 암질이 주변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 하던데..이는 어찌 이해해야 하나요?

    질문3. 요령군 금서시에서 발견된 봉니는 어찌 생각하세여..이것이 한사군의 재만주설의 결정적 증거가 된
    다던데..쩝..

    바른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 야스페르츠 2010/11/01 10:54 #

    1. 현도군은 고구려가 건국되기 수십년 전에 토착민의 저항 때문에 동북쪽으로 이동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현도군에 저항해던 토착 세력이 성장해서 고구려가 되었다고 봅니다.

    2. 그냥 음모론입니다. 본인들도 입증하지 못할 저열한 협잡일 뿐이죠.

    3. 고작 1개가 발견된 것과, 수백개에 달하는 봉니는 비교도 안됩니다. 그리고 요서에서 발견된 봉니는 "임둔군에서 보낸 문서"에 찍힌 것이 남은 것이라 볼 수도 있으므로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 처사 2010/10/31 10:37 # 삭제 답글

    저학년 대상의 초급 역사 교육에 있어서 자긍심은 매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대륙을 경영했고..이러 이러한 찬란한 문화를 남겼다..우리는 그런 민족의 후손이니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물론 사실에 입각한 내용으로..) 식의 교육은 동북공정 식민사관하고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한때 우리가 그들에게 문화를 전해준 적이 있었다는 우월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뭐 별거는 아니지만..)

    우견이었습니다...쩝..
  • 야스페르츠 2010/11/01 10:58 #

    1. "우리 조상들이 대륙을 경영했다" =>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파시즘적 발상입니다. 다른나라를 침략해서 지배한 것이 그렇게나 자랑스럽습니까? 바로 100년 전에도 우리가 그런 일을 직접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 경험을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으십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자긍심"이라 가르치는 일이라면 사양하고 싶습니다.

    2. 문화적으로 자긍심을 가질수도 있겠지요. 그 자긍심이 "우월감",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일본)에 대한 멸시로 발전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제 아이를 남을 멸시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 아놔 2011/01/05 02:34 # 삭제

    정말 답답하군요 저 처사라는 분 -_-
    "역사 교육에 있어서 자긍심이 무지 중요하다"는 답글 몇번째 다시는 겁니까?
    앵무새 훈련시키는 것도 아니고
    쥔장분 입장이 확고 하잖습니까 "역사란 첫째도 사실이요 둘째 셋째도 사실이다"
    저 또한 쥔장분의 논지에 동감하며

    저 "처사"라는 분께 남기고 싶은 말은
    왜 자긍심을 굳이 지나간 역사에서 찍어내고자 하시냐구요
    우리나라 현재 GDP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고 이것은 과거의 질곡의 역사를 극복하고 온 국민이 이뤄낸 "진짜 업적"입니다.
    없는 사실조차도 날조하면서 얻고자 하는 자긍심과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자긍심의 원천이 될 수 있는데 왜 이런건 그냥 냅두고 저런 과거에서 금맥찾듯이 "그래도 그래도"를 남발하시는지 원.
  • 위구태 2013/02/21 09:45 # 삭제 답글

    제가 환빠는 아닙니다만 진번군의 치소였던 잡(霅)현이 해당 군이 폐지된 후 요동군으로 현이 이전되었는데요(한서지리지에는 잡현이 아니라 답씨(畓氏)현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응소가 이에 대해 씨(氏)는 물(水)을 나타내며 음은 장답의 반절음(잡)으로 읽는다고 하였습니다 )독사 방여기요에 따르면 이 답씨현이 지금의 대련 지방에 있었다고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3/02/21 21:22 #

    잡현이 아니고 삽현입니다. 그리고 삽현은 이전되지 않았습니다. 이전되었다는 것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오히려 궁금하네요. 《한서》 〈지리지〉에는 답현이 이전된 잡현(?)임을 보여주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만.
  • 굔군 2013/02/22 07:56 #

    이름만 비슷하다고 해서 이치된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요동군에는 '번한현'도 있었는데, 그럼 진번군이 이리로 이치된 겁니까?

    삽霅이 그리 흔하게 쓰이는 글자도 아니고, 낙랑군 안에 삽양부, 삽양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이상, 삽현은 낙랑군으로 편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 위구태 2013/02/21 09:47 # 삭제 답글

    야스페르츠님, 답변 부탁해여
  • 위구태 2013/02/22 09:51 # 삭제 답글

    제가 말을 잘못 전달한 부분이 있네여, 이전되기보단 진번군이 폐지되는 과정에서 낙랑군이 아닌 요동군에 속하게 되었다는 얘기인데.. 그리고 굔군님 삽양부는 잘 모르겠는데 삽양장은 상하장 아닌가요? 삽양부와 삽양장이 기록된 원문이 어떤것인지 궁금합니다.

    ps.네이버 지십백과 보니까 다 잡현이라고 하던데.. 지식백과가 잘못된 것인가요?
  • 굔군 2013/02/22 11:15 #

    진번군은 낙랑군보다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요동군에 통합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http://kyonkun.egloos.com/2852663


    그리고 상하장이 아니라 삽양장(霅陽障)이 맞습니다.

    중국의 운서인 『廣韻』과 『集韻』에 낙랑군에 삽양부, 삽양장이 존재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 굔군 2013/02/22 11:20 #

    당시 반절로는 '잡'으로 되어있지만, 현대음이 '삽'이기 때문에 보통 삽현으로 읽습니다.
  • 위구태 2013/02/22 12:13 # 삭제 답글

    죄송합니다만 삽양장에 대해 언급한 구체적인 기록이 어떤것인지 궁금합니다. 또 대방군이 낙랑의 동쪽에 존재한다는 기록은 있지만 진번군이 낙랑의 남쪽에 있다는 기록은 없는것으로 압니다 제 주장의 요지는 진번군은 지금의 대련지방에 있었던것으로 추정된다는 얘기였습니다
  • 굔군 2013/02/22 12:53 #

    죄송합니다만 출처까지 알려드렸으면 직접 찾아보시는 게 예의 아닙니까? 원문을 직접 타이핑하기가 귀찮아서 그러니, 구체적인 기록을 알고 싶으시면 <낙랑군 호구부 연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방군은 낙랑군의 동쪽이 아니라 남쪽입니다.

    진번군의 위치에 대해서는 이병도의 <한국고대사 연구>에 매우 자세히 논증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굔군 2013/02/22 13:00 #

    특히 이병도는 님이 주장하는 삽현=답씨현 설이나, 진번=번한현 설에 대해서도 모두 비판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정독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 위구태 2013/02/22 13:40 # 삭제 답글

    제가 많이 부족했네여.. 님덕에 많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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