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1 18:10

중앙집권과 왕권 강화, 그리고 당쟁. 역사

회사에서 주말 근무를 하며 써보는 잡담. 철저한 뇌내망상에서 비롯된 글이므로, 반론과 비판을 환영함.


1.

종종 중앙집권화와 왕권 강화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과서를 비롯한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개설서는 한국사 또는 세계사의 발전 방향을 "중앙집권"을 이뤄나가는 과정으로 설명하곤 한다. 그래서 중앙집권이 무너진 중세 유럽은 암흑기가 되며, 지방통치가 일원화되지 않은 고려보다 조선이 발전된 국가로 설명된다.

그리고 이러한 중앙집권화는 곧 "왕권 강화"와 일견 함께 가는 것처럼 보인다. 고려는 왕권이 호족 세력을 제압하는 과정을 거쳐 전성기를 맞이하고, 근대 유럽은 절대왕정기를 통해 강력한 국가를 선보인다.

그러다보니, 왕권 강화가 곧 중앙집권화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 있으니, 조선을 "왕권이 약했다"라고 까는 것이다. 일전에 모 블로거와 논쟁을 벌였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 같다. 모 블로거의 주장(?)은 이러했다.

"조선은 중종 이후로 존재 가치가 없었다."

그 근거로 들이대는 것은 역시나 전가의 보도 "당쟁".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중앙집권과 왕권 강화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2.
전근대사회에 있어서 왕은 분명 국가와 동일시되는 중요한 존재다. 그러다보니 국가의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고대국가들은 왕권의 강화와 중앙집권화가 함께 진행되게 된다. 통치 조직이 아직 정비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법치가 확립되지 않은 고대 국가는 귀족/호족들의 전횡을 막을 방법이 딱히 없다. 호족들은 자기 세력권/영지에서는 왕이나 마찬가지고, 그 안에서 지지든 볶든 국가나 왕은 어쩔 수 없다. 지방의 호족(또는 귀족, 봉건영주 기타 등등)들을 강력한 권력으로 휘어잡고 휘두를 수 있는 것이 곧 중앙집권이며, 이를 위해서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적어도 치밀한 통치 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고대 국가에서는.


그러나 국가가 치밀한 통치 체제를 갖추게 되면,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화는 약간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특히 동양의 유교 문화권에서는 이런 모습이 더욱 두드러진다. 치밀하고 강력한 통치 체제를 실질적으로, 그리고 사상적으로도 뒷받침해주는 유학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왕권과 국가는 오히려 별개의 존재가 된다.


조선시대 조정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왕이 무슨 말을 한다. 그러자 신하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외친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왕의 말에 감히(?) 토를 다는 신하들의 모습이다. 일부 조선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통탄을 할지도 모른다. 감히 왕이 하는 말에 반대를 해? 이런 썩을 유학자 놈들....


그러나 생각을 거꾸로 해보자.


유학이든 관료제든 뭐든 간에, 강력하고 세련된 통치 체제를 갖춘 국가가 있다. 강력한 정부가 있고, 잘 정비된 법과 관료 조직이 있다. 이런 국가라면, 자기 영지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호족/영주가 존재할 수 없다. 엄정한 법과 관료 조직은 사적인 권력을 감시하고 제한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사적인 권력이 많다면 엄정한 법과 관료 조직이 정비되기 어렵다.

이런 나라의 국왕은 어떤 존재일까?

나라의 운영은 훌륭한 관료 조직과 치밀한 법치를 통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료 조직의 최종 결재권을 가진 것은 왕이다. 이런 나라의 왕이 걸을 수 있는 올바른 길(?)은 딱 둘 뿐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최종 결재권자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고 능동적으로 국가 운영에 참여하는 길, 그리고 그냥 도장만 찍어주는 기계가 되는 길.

치밀하게 잘 운영되는 정부 조직이 존재하게 되면, 왕은 그냥 병풍으로 전락하기 쉽다. 훌륭한 관료들이 최선의 정책을 내놓고 국가를 훌륭하게 운영해 나가는데 왕이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저 관료 조직이 잘 만들어다 주는 결재 서류에 도장만 잘 찍어주면 끝이다. 아니면, 열심히 공부해서 관료들과 토론하고, 때로는 관료들을 통제해 나가면서 "명군"이 되는 방법도 있다. (병풍 국왕은 관료제가 부패하게 되면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어 나라가 멸망한다는 부작용이 있을수도 있긴 하다.)


그리고, 이런 나라의 왕이 갈 수 있는 잘못된 길(?)은 하나다. 관료 조직을 무시하고 강력한 왕권을 자랑하는 일. 한마디로, "내 마음대로 할꺼야!"


역사는 이런 국왕을 가리켜 폭군이라 한다.


즉, 중앙집권이 잘 된 국가에 있어서 왕권의 강화는 오히려 중앙집권에 해가될 수 있다.



덧붙여,
조선사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긴 하다만, 그래도 한 번 둘러나 보자.


3.
조선은 동 시기 세계의 어떤 나라와 견주어도 결코 꿀리지 않을 잘 정비된 통치 조직을 갖춘 훌륭한 "중앙집권국가"이다. 조선이 이렇게 뛰어난 중앙집권국가를 완성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조선 초기의 지배계층을 두고 훈구파라고 부르며, 최소 성종 이후의 조선 역사는 기득권층인 훈구파와 이에 도전하는 신진 계층인 사림의 대립을 통해 전개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사실 훈구파라는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잘 정비된 중앙집권국가"의 지배계층이 되기에는 아주 이질적인 존재다. 중앙집권국가의 제1 조건이라면 아마도 관료제를 들 수 있으며, 조선왕조는 "과거"라는 "공무원 시험"을 통해 뽑은 사람들로 관료제를 운영했다. 그런데 훈구파는 관료가 아니다. 훈구파는, 왕을 즉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서 권력을 얻은 일부 권력 집단이다. 한마디로, 낙하산이자 배후세력이다.

즉, 훈구파는 사적 권력집단에 가깝다. 중앙집권국가에 있어서는 안될 존재이다. 그리고 사림은 이러한 훈구파에 맞서 훌륭한 사상으로 무장하고 과거를 통해 정당하게 관료 집단으로 올라선 이들이다. 그러니 중종 이후 훈구파가 사림을 탄압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관료제가 완벽하게 굴러가면 자신들의 설자리가 없어질테니까.


선조 시기에 사림이 완전히 집권하게 됨으로써, 조선의 중앙집권은 드디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그렇다면 당쟁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 대한 훌륭한 설명은 수없이 많다. 세간에는 여전히 당쟁을 무가치한 권력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한다는 사실에 종종 좌절하긴 하지만.


파벌을 이루어서 싸우는(?) 것은 거의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한국 놈들은 어디에서든 지들끼리 뭉쳐서 치고 받고 싸운다."라고 편견을 가지는 이들을 보는데, 사실 살펴보면 이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그런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파벌을 이루고 싸우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궁정의 암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사 드라마·영화의 단골메뉴고, 의회라는 독특한(?) 권력 기구를 만들어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역사는 사실상 당쟁의 역사이다. 삼부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라.


그런데 유독 당쟁은 망국의 원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게 다 찢어죽일 식민사학의 폐해다.



다시 위에서 말한 "관료 조직에 의해 잘 정비된 중앙집권국가"를 살펴보자.


관료제라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제도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부정부패가 생기기 쉽다는 것. 그리고 부정부패가 상층부에서부터 생기게 되면 이를 제어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 전근대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관료 조직을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은 오로지 국왕 한 사람뿐이다. 만약 국왕이 병풍으로 전락해버린 중앙집권국가라면? 부패를 통해 나라는 그대로 막장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렇게 멸망으로 치달아버린 나라가 많다.

이러한 관료제의 약점을 막을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존재를 두는 것. 아니면, 관료들 사이에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도록 서로간에 견제하도록 하는 조정기구를 두는 것. 국왕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후자에 해당하는 것은 의회나 붕당이라고 생각한다.

당쟁이라는 것은, 관료제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국가의 수반들이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여 독단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일, 국정의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가의 수반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합의를 거쳐 결정하는 일. 이것이 바로 당쟁이다.

당파라는 것 자체는 사적인 조직, 사적인 권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당파도 과거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권력을 잡을 수는 없으며, 당쟁을 펼치는 인물들이 결국 이렇게 정당하고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관료 조직의 정점에 오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당쟁은 사실상 "공식적인 조정기구"라고 생각한다. 아니, 실질적으로 그렇게 기능했다.

아무리 국왕이라고 해도 독단으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없었고, 아무리 헤게모니를 장악한 당파라고 해도 당론만으로 정책을 결정짓지는 못했다. 조선이라는 국가의 시스템 자체가 이러한 "토론을 통한 정책의 결정"을 중요시했다. 토론, 그리고 당파는 관료의 부정부패를 훌륭하게 막을 수 있었다.


5.
물론, 당쟁은 그다지 효율적인 조정기구는 아니다. 처음에는 정치적, 사상적인 견해 차이로 벌어진 당파이기 때문에 정책이나 학문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과 견제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다보면 당파라는 것 자체가 살아서 포효하게 된다. 오로지 당파의 이익을 위해서 중대한 정책에도 반대를 하게 되고, 오로지 당쟁의 승리를 위해 토론은 안드로메다로 갈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그러한 당쟁의 폐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예송논쟁"을 꼽는다. 상복을 입네 마네 하는 "민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 때문에 국가 수반들이 치고받고 싸웠던 사건. 당쟁망국론자들이 예송논쟁을 보는 시각이다.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송논쟁의 실상은 그와 다르다고 많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는 점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지식이 일천한 관계로 여기서 그러한 것을 보여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과연 그렇게 쓸데없는 일 때문에 싸운 일이 "유독 조선만 병신이라 그랬다"고 보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다른 예들을 보여주고 싶다. 이혼 한 번 하자고 종교를 바꾼 어떤 나라라든가, 예수가 신인지 인간인지 때문에 세상을 피로 물들인 어떤 종교라든가...


6.
예송논쟁이 쓸데없는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예송논쟁이 "민생은 제쳐두고 지들끼리 치고받고 싸운 것"이라는 주장은 솔직히 무리가 있는 것 같다.

내가 본 조선이라는 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통치 시스템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예송논쟁과 같이 겉으로 보이는 사건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민생을 살폈던 국가 조직 또한 있다.

예송논쟁은 오히려 국가가 평화롭고 민생이 평안했기 때문에 벌어진 배부른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7.

이상으로, 본인의 뇌내망상을 써갈겨 봤다.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잡다한 생각을 거칠게나마 녹여 본 것 같다. 이제 글은 내 손을 떠났으니, 강호제현들의 비판과 질타를 기다려본다.





덧 1. 길게 싸지른 뇌내망상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이웃들께 드리는 보너스.

위와 같은 사실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그리고 역사를 니미 똥으로 알면 아래와 같은 괴악한 주장까지 하게 된다.



봉건제하 일본 농민들은 존니 잘 살았쪄염 뿌우!



덧 2. 이런 생각을 하고, 포스팅까지 하게 만든 두 편의 서평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조선의 힘> VS <망국의 역사, 조선>




덧글

  • 앨런비 2010/09/11 18:38 # 답글

    간단한 태클 하나. 조선은 이것 하나는 까여야됩니다.
    500년간이나 갈만한 놀라운 완성도의 정치체제는 만들었지만 그게 너무 오래갔어요.
    결국 18세기쯤되면 기존의 통치체제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당쟁이나 과거나 당쟁이나 중앙집권이나 슬슬 문제와 한계가 보입니다만.
    18세기에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19세기라는 암흑의 시대로 넘어갔죠.
    그나마 대원군이 그동안 쌓인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나. 그 다음은
    ...어느 부부에 의해서 와장창.
    고로 완벽한 체제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죠. 아무리 발달한 체제라도 결국 오래가면 그 모순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 asdf 2010/09/11 19:29 # 삭제

    저도 동감입니다.
    하나의 정치체제로 500년을 갔다는것만으로 충분히 인정받아야하지만
    그것의 한계가 보였다면 바꿔야하는데 누덕누덕 땜질만 하려고했다는점이;
  • hyjoon 2010/09/11 19:38 #

    솔직히 '안정'과 '정체'는 한끝차이라는 것이 조선사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 중 하나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9/12 08:35 #

    오래 버티고도 한계가 없다면 진짜 먼치킨이죠. 어느 나라나 말년은 막장이기 마련입니다. ㅎ
  • 앨런비 2010/09/12 09:58 #

    제 지적은 중간에 일종의 경장을 안했다는게 매우 아쉽다는 것입니다.
    선조때부터 바뀔 필요가 있었고 광해군-정조 시기도 개혁을 꽤나 할만한 시기인데.
    물론 안한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시스템적 변경은 못했다는 것이죠.
    물론 동양의 특성상 유교라는 보수적인 사상의 문제로 이는 왕조의 변경이라는 방법으로 되는게 일반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내부에서도 경장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라는면에서 아쉽긴 아쉽습니다.
  • 앨런비 2010/09/11 18:39 # 답글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선에서 양난과 18세기라는 일종의 경장이 가능한 시기를 놓쳤다는 면에서 좀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그동안의 자학사관의 반발로 재평가가 충분히 이뤄지나, 재평가도 지나치면 문제일 따름이죠.
  • asianote 2010/09/11 18:48 # 답글

    뻘짓은 조선만 한줄 아는 모양이더군요. 중국 청나라의 뻘짓도 조선 이상이었는데 말이지요. 일본은 그래도 아시아에서 열강의 대열에 합류해서 대우받는 모양인데 그 일본국이 러일전쟁에서 한 뻘짓(예 203 고지)을 자세히 살피면 글쎄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지요.
  • 에드워디안 2010/09/11 19:15 #

    러일전쟁시기의 일본과 19세기 이전의 조선을 비교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닌지요? 차라리, 에도시대라면 모를까...
  • matercide 2010/09/11 19:21 #

    러일전쟁 때 일본의 뻘짓이요. 제가 알기로 일본의 근대화가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실제로 민중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거기다 안으로는 억압하고 밖으로는 팽창했으며, 그걸 못 고치다가 결국 1945년 8월 15일의 패망을 맞이했다는 것 뿐입니다만
  • 에드워디안 2010/09/11 19:50 #

    matercide/

    메이지 시대 부국강병정책이 많은 일본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한 건 사실이지만, 민중의 생활수준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말씀엔 수긍할 수가 없네요. 청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서민층도 느리게나마 근대화의 혜택을 받았고, 다이쇼 이후론 정부도 나름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 의료보험을 비롯한 기초적 복지제도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PS. 일본제국과 비슷했던 나라가 이탈리아 왕국이었죠.
  • 야스페르츠 2010/09/12 08:36 #

    자학 사관은 만국 공통인 것 같기도.... ㅡㅡ;;
  • hyjoon 2010/09/11 18:56 # 답글

    식민사관타파를 외치면서 '당쟁망국론', '조선은 X같은 나라'같은 식민사관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뇌 구조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9/12 08:36 #

    그들은 신실한 식민사학의 추종자거든요. ㅋㅋ
  • 김라면 2010/09/11 19:02 # 답글

    오죽하면 훈구들조차 사림으로 변화하려고 애를 썼겠습니까~
  • 야스페르츠 2010/09/12 08:37 #

    그렇지요. ㅎㅎ
  • 스즈카 2010/09/11 19:05 # 답글

    당쟁이 망국의 원인이라면 왜 당쟁이 없어진 19세기에 조선이 막장이 되었는지부터 설명해야 할 겁니다.

    어떤 나라든 길게 이어진 나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그것을 간과하고 조선을 까기만 하면

    Q. 조선은 그렇게 살기 힘든 나라였다면서 어떻게 500년 동안이나 갔나요?
    A. 조선인들은 저항할 줄 모르는 열등한 민족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일제 식민지배도 정당한 거임

    이런 결론이 나오는 거죠.

    식민사학에 빠져 조선을 무차별적으로 까는 이들이 반대쪽을 오히려 식민빠라고 부르는 더러운 세상이 한탄스럽군요.
  • 전직 환빠 Jes 2010/09/11 19:35 #

    어느 분께서는 "우리 조상은 잘났는데 지배층만 ㅄ", "민란이 성공 못한 건 조선이 조낸 탄압해대서 그렇다능"라고 말하곤 하죠. 아니 그럼 프랑스 대혁명은 정부가 설렁설렁 다스려서 일어났나?
  • 야스페르츠 2010/09/12 08:38 #

    세상이 더럽다 할 정도인가요? ㄷㄷㄷ 그래도 그분들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니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는 겁니다. ^^
  • 에드워디안 2010/09/11 19:10 # 답글

    에도시대, 막부가 농민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수탈은 말 그대로 전설(?)이지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농민을 참깨에 비유하며, 최대한 짜내야 한다고 공언했을 정도니... 몽고제국도 국가 자체가 거대한 수탈기구라 칭해질 정도로 민중에 대한 착취가 극심하기로 악명이 높았고, 절대왕정시대 유럽 각국도 거의 마찬가지... 적어도 18세기까지의 조선이 저들에 비해 훨씬 온건한 대민정책을 시행한 건 평가해 줄만 하죠.

    그렇지만 조선도 18세기 후반 이후 심각해진 삼정의 문란으로 농민생활이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19세기에 들어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다발한 민란이 그 증거아니겠습니까? 조선왕조는 5백년 이상 지속된 점만으로도, 역사의 소임을 충분히 다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자체적인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엔 솔직히, 회의적이네요. 특히 말기에 등장한 어느 막장 부부 덕에 더욱 그렇다는...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0 #

    5백년 넘게 가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는 나라가 있다면 그건 진짜 먼치킨이죠. ^^
  • 누군가의친구 2010/09/11 19:17 # 답글

    당쟁 자체가 견제에 견제가 오가는 상황이기에 어느 특정 당파가 일방적 독주를 하기 힘들었지요. 사건 하나 터져도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었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인식은 참...ㄱ-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0 #

    당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망국 운운하는 건 참....
  • matercide 2010/09/11 19:20 # 답글

    예송논쟁의 본질은 그 당시 국가원수(현종)의 정통성을 따지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사항이었습니다. 일본으로 치자면 정이대장군의 정통성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죠. 그런데도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예송논쟁을 쓸데없는 걸로 치부했고, 우리나라의 유사사학자들도 입으로는 식민사학을 욕하면서 (특히 後조선사에서는) 레알 식민사학으로 일관하죠. 이 모순을 어찌해야 합니까?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3 #

    정통성 문제는 아주 중요하죠.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툭하면 벌어지는 일이니...
  • matercide 2010/09/12 10:48 #

    어쩔 수가 없죠. 당장에도 건국절 운운하며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는데
  • 들꽃향기 2010/09/14 23:43 #

    공감합니다. 더군다나 현종의 왕통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결된사안..즉 효종의 정통성 문제가 이 상복문제에 걸려있었고, 더욱이 효종 스스로가 강빈사건에 대한 대응에서 보이듯이 정통성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ㄷㄷ

    그런 가운데서 상복문제를 통해서 이런 문제를 간접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은, 막 효종의 뒤를 이은 현종에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논란이었을 것입니다. ㄷㄷ
  • asdf 2010/09/11 19:33 # 삭제 답글

    상호견제를 위해서 삼사를 비롯한 언론기관인데 이것마저 '과격화된 당쟁'에 이용될정도였으니....;
    애초에 실학자 이익이 자신의 저서에서 '과격화된 당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집었다는건 당시 지식인들도 당장의 원인을 충분히 알고있었다는건데 고칠 생각도 없었다는점이 참;

    여담입니다만 숙종도 알고보면 교활한 왕임에도 당쟁이 너무 저평가를 받는바람에 같이 저평가를 받는 왕중에 하나라고 하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3 #

    숙종 같은 왕은 정말 ㅎㄷㄷ
  • 시와랑 2010/09/11 20:35 # 답글

    중앙 집권이 완료되어 정부의 통제력이 강화될때, 그 수장이 왕이기 때문에 왕권강화에 동일시 보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인듯 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구분할건 해야겠죠.

    확실히 조선이란 나라. ㄱ- 그리 만만한 나라는 아니더군요. 참 대단해요.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4 #

    구분이 필요합니다. ㅎㅎㅎ
  • 초록불 2010/09/11 20:42 # 답글

    다른 걸 떠나서 당쟁이라는 건 왕의 총애를 누가 따느냐의 문제잖아요...^^

    당쟁 운운하는 사람들에게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라도 보라고 하는게... (중종과 숙종 편만 보아도...)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4 #

    사실 저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안봤다는... ^^;;
  • 自重自愛 2010/09/11 23:03 # 삭제 답글

    예송논쟁 당시의 조선이 (전란이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국가가 평화롭고 민생이 평안했기 때문에 벌어진 배부른 사건"이라고 보기는 좀 아닌 것 같은데요? -_- 당시 상황은 "가뭄·홍수·냉해·태풍·병충해, 5재(災)가 온 나라를 한꺼번에 덮친 상황"에 더 가까운 듯?

    http://www.kwnews.co.kr/nview.asp?s=301&aid=209082100057

    예송논쟁은 상복을 몇 년 입는가가 국왕의 정통성이 확보되느냐 결여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가로써는 당연히(?) 피터지게 싸워야 했던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생과 상관없었던 건 사실이지만요.

    예송논쟁과 비슷한 사례를 고르자면..... 근대 일본에서 남조의 천황과 북조의 천황 중 누가 정통이냐를 두고 싸운 사건이 비슷한 사례가 되지 않을지? -0-
  • 에드워디안 2010/09/11 23:41 #

    남북조정윤론보단, 중국 북송시대의 濮議가 조선의 당쟁과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5 #

    헐.... 그렇군요. 어차피 저도 그냥 추측을 해본 것이니... ㅎㅎ
  • 마무리불패신화 2010/09/11 23:05 # 답글

    당쟁 때문에 조선이 막장국가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뭐가 될까요?

    당쟁 때문에 조선이 막장국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정치체계를 민주제에서 1인 독재체제로 바꿔야겠네요.

    지금의 우리나라는 조선보다 더 하죠. 위정자들이 쌈박질이나 하고 있으니(...)


    현재 한국의 정치에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해서 막장국가가 아닌것처럼, 조선도 당쟁의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해서 막장국가가 아니죠.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5 #

    1인 독재체제 국가가 저기 북쪽에 하나 있지효. ㄷㄷㄷ
  • Mr 스노우 2010/09/12 00:10 # 답글

    사실 왕권강화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애매모호한 개념이지요. 국왕이 멋대로 할수 있는 자의적 권한만 강해지는 것이냐, 아니면 왕으로 대표되는 중앙정부의 공권력을 전국에 전달하고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이 강해지는 것이냐.. 그리고 후자라면 조선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국가였지요.
  • 야스페르츠 2010/09/12 08:46 #

    저런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겠습니까. ㅎㅎ
  • 만슈타인 2010/09/12 09:01 # 답글

    그런데 조선시대 훈구파가 득세한 것도 왕권 약화 이후라는 점에서 -_-;; 그리고 걔들도 아예 생짜배기 과거 안보고 올라온 케이스도 아니기에 전부다 낙하산이라 보기엔 좀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훈구파 특히 중종이후의 훈구파는 낙하산 세력이긴 하죠. 훈구파와 관학파 구분도 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야스페르츠 2010/09/13 15:57 #

    케 바 케로 따지면 다 복잡한 뭔가가 있겠지요. ㅡㅡ;;;
  • Allenait 2010/09/12 09:42 # 답글

    사실 저걸 구분 못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한때는 그랬고...
  • 야스페르츠 2010/09/13 15:57 #

    어려운 문제입니다.
  • 앨런비 2010/09/12 09:59 # 답글

    다만 중앙집권적 부분에서 매우 높게 평가하기는 합니다.
    저는 임진왜란의 승리가 조선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시스템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점령지와 피난민을 관리가 통치하는 그런 나라가 도대채 얼마나 있는지(먼산)
  • 야스페르츠 2010/09/13 16:00 #

    세간에서 임진왜란을 너무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임진년과 정유년을 제외하면 조선군이 특별히 삽질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전선도 경남 해안 일대로 한정되고 지방 통치력도 나름 유지되었던 걸 생각하면... 조선의 저력은 대단하지요.
  • matercide 2010/09/12 16:01 # 답글

    그런데 아직도 "후後"조선을 까는 사람들이 있어요.(왜 뒤 후를 붙였냐면, 무릇 이름이 같은 나라가 여러 있으면 처음의 나라이름에 아무것도 안 붙이거나 앞 전을 붙이고 다음의 나라이름에 다른 말을 붙여서 구별하는 데 어째서인지 조선만큼은 뒤에 세워진 조선에 아무 말도 안 붙이고 처음 세워진 조선에 옛 고를 붙이더군요. 기괴한 현상입니다.) 또 이런 놈들이 입으로는 황국사관(일본의 유사사학 한민족에 대해서는 식민사학)을 저주해요. 이 모순을 어찌해야 합니까?
  • 야스페르츠 2010/09/13 16:02 #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댓글은 적당히 해 주세요... 쓴지 몇 년이 다 된 글까지 찾아가시면서 봐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만 이렇게 댓글 폭탄을 주시면 어지럽습니다. ㅡㅡ;;

  • matercide 2010/09/13 19:57 #

    하하하 그냥 스타는 이래서 괴로워하면서 넘기면 되지 않을까요?
  • 2010/09/13 15:3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9/13 16:16 #

    그런 수양을 재평가하는 현세태가 참 거시기한 1人... ㅡㅡ;;;
  • 들꽃향기 2010/09/14 23:41 # 답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못보다가 이제야 이 글을 보게 되었군요. 특히 개인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다는 점에서 공감합니다.

    1. 우선,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는 중앙집권과 왕권의 강화문제를 지적해주셨다는 점에서 매우 공감합니다.

    물론 '민족'이라는 개체가 개별 구성원의 헌신과 복종을 강요하여 '소명의식'을 불러들일 수 잇는 근대국민국가의 체제와 다르게, 전근대 국가에서의 중앙집권의 강화는 '왕'의 외피를 써야 가능했던 것도 현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중앙집권 내부에서 '왕권의 재량문제'가 반드시 중앙집권의 필수인 것은 아니니깐요.

    오히려 전근대 영국의 경우는 왕권은 약하지만 관료기구는 강성했고 중앙집권적이었으며, 그것은 의회의 공식권력 탈취 이후에도 활성화되었고.....결국 그 양상은 왕권과 왕권에 대항하는 세력 모두에게 중앙집권화가 '동시에' 일어났다는 페리 엔더슨의 지적은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에 유효한 것 같습니다.

    사실 오히려 진짜 '식민사학'이야말로 오히려 조선 후기를 '왕권의 전제'가 이루어지던 왕권중심의 사회로 보았었죠. ㄷㄷ 즉 왕권이라는 사적 전제권력이 사회에 전횡을 부리며 국가의 공적재정-정치의 인선 등에 제멋대로 간섭하는 고종시대의 모습을 조선왕조 전체의 모습으로 일반화시켰으니....ㄷㄷ


    2. 예송논쟁의 문제는 윗분으리 말씀대로 효종의 정통성 문제가 1차적으로 개입했지만, 그 심연에는 조선사회에서 "왕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개입해있다고 봅니다.

    서인을 옹호하는 연구자(지두환 선생님 등)이나, 남인을 옹호하는 연구자(김준석 선생님 등)이든 간에...당시의 논쟁은 '왕사동례(王士同禮)'의 문제가 근본적인 인식차가 있었다고 보니 말이죠. ㄷㄷ

    즉 왕과 사대부를 같은 예가 적용되는 동일한 대상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왕은 사대부와 다른 특별한 개체로 규정하여 예의 적용을 다르게 해야한다는 주장의 대립이었으니깐요.

    결국 지금도 국가수반의 성격문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논의중이고 이슈가 되는 정치적 과제인데, 하물며 예라는 것은 그런 성격을 외재화하고 규정하는 성격의 것이었으니...


    각설하고, 뒤늦게 이런글을 읽고서 공감하는 바가 많아 이리저리 첨언의 말을 길게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히려 야스페르츠님을 번거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죄송스럴 따름입니다. ㄷㄷ
  • 야스페르츠 2010/09/15 09:37 #

    오오... 의견 감사합니다. ㅎㅎ

    예송논쟁이 왕사동례의 문제라면.... 정말 혁명적(?)인 논쟁이었군요. (ㅡㅡ;;)
  • 지금도 2010/09/24 21:20 # 삭제 답글

    결국 지금도 붕당 정치의 연장선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네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역시 사상적으로 나누어지고,
    정책적 대결 뿐 아니라

    예송 논쟁과 비슷한 논쟁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김대중 전대통령, 국민장 문제나,
    서울광장 개방 논쟁 따위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붕당정치가 현재의 정당정치와 일맥 상통하는 것 같고

    결국 그 결말은 어떻게 되는 가는 우리가 직접 선택하는 길을 따라서 이어질 것 같습니다.

    역사가 단순하게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반증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도 기사화된 대통령의
    "기왕 ..어쩌고 하는게"

    예송논쟁하고 똑같은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9/26 00:11 #

    전 세계에 지금 붕당정치를 하지 않는 나라는 저기 북쪽의 김정일 왕국과 같은 독재국가를 제외하고 단 하나도 없습니다. 현대 민주주의와 붕당정치는 사실상 같은 거에요.

    뭐랄까... 제 글을 읽지 않으셨거나 완전히 오해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 잘읽었습니다. 2010/10/18 11:45 # 삭제 답글

    사림의 당쟁이 좋은 측면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다 들어왔습니다.
    제 기억으로 사림하면 덕이어쩌구하며 국방말아먹고, 외교는 북벌론으로 말아먹고, 향약,서원으로 나라살림 거덜내고 중앙통치를 무시하면서, 당쟁으로 자기들끼리 뜯어먹는 존재였는데. 그나마 당쟁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군요.
    김정일 왕국도 드문 케이스지만, 괴뢰당이 이렇게 오래 해먹는 붕당정치도 드물겁니다...;
  • 야스페르츠 2010/10/19 11:16 #

    1. 사실, 님게서 말씀하신 "부정적인 측면"은 당쟁이 격화된 후기에나 나타난 부작용이죠.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인식이 잘못되신 겁니다.

    2. 괴뢰당이라 하는 게 무얼 말씀하시는 건가요? ㅡㅡ;;
  • 子宮母腸 2010/12/06 06:28 # 삭제 답글

    노송이 하도 곧고 푸르러 꺽을수가 없더라
    쌍으로 심어 바람을 가두려 하노니
    가지가 서로엉겨 한몸을 이루더라
    죽으면 죽으리라 버팀목이 답답을 넘어 서누나.
  • 괴뢰당은 2013/01/04 11:59 # 삭제 답글

    북한의 어용야당을 말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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