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9 15:58

分天下以爲三十六郡 역사

한서 지리지의 秦置 군의 개수 => 이 포스팅의 보론으로 써 보는 글


위 포스팅은 漆園 님의 의문에 대해서 심심풀이로잠시 짬을 내서 답변이랍시고 한서 지리지를 검색해 본 결과물입니다. 포스팅의 의도 자체도 그렇고, 별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사기집해>와 <한서> 지리지의 일치 여부"만 따져본 것이죠. 그 결과, <사기집해>의 아래 36군과 한서 지리지는 검중군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군이 모두 등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지요. 1개 군(장군)이 秦置라 명시되어 있지 않은 채 단순히 고지명으로만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秦置로 나타난 군 가운데 3개 군이 통일 이후에 추가로 설치된 군, 즉 원래 36군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이후 모 블로거 님의 비밀 댓글 및 전화 통화를 통해 36군의 정체에 대한 모종의 음모(?)를 전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왕에 전해 들은 것이니 약간의 자료를 더 찾아보고 보완하여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포스팅 내용에 대한 학계의 연구나 논문에 대해서는 전혀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또한 음모(?) 가운데 일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제쳐두고 포스팅할 것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36개라는 숫자의 성립 배경이라던가.) 한마디로, 그냥 사료 검색 조금 해서 끌적이는 뇌내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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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十六郡者,三川、河東、南陽、南郡、九江、鄣郡、會稽、潁川、碭郡、泗水、薛郡、東郡、琅邪、齊郡、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代郡、鉅鹿、邯鄲、上黨、太原、雲中、九原、鴈門、上郡、隴西、北地、漢中、巴郡、蜀郡、黔中、長沙凡三十五,與內史爲三十六郡.
<사기집해> 진시황본기 中

<사기집해>에는 진(秦)이 중국을 통일한 직후 설치한 36군에 대하여 위와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삼천군에서 장사군까지 35개 군, 그리고 경기(京畿)에 해당하는 내사(內史)를 합쳐 36군이죠.

<집해>는 유송(劉宋, 420-479) 시기 배인(裴駰)이 종합한 주석서입니다. 집해의 해당 부분, 즉 36군에 대한 서술은 어느 시기의 주석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유송 시기 이상 올려 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일단 36군이라는 숫자 자체는 <사기>의 서술이므로 어느 정도 분명한(?) 사실이겠지만, 36군의 목록은 경우가 다릅니다. 왜인고 하니, <한서>와 <후한서>, 그리고 <집해>에 서술된 목록이 모두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죠. 자세한 것은 아래 첨부한 엑셀 파일을 참조하세요.

Book2.xls


간단한 검색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세 사서는 모두 36개 군의 숫자를 정확하게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6개라는 숫자만 맞을 뿐, 설치된 군의 목록은 모두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36개 군이라는 숫자만 내부적으로 완성시켜 놓았을 뿐, 실제 36개 군이 무엇 무엇인지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앞서 포스팅에서는 <한서>와 <집해>만 비교했었는데, <한서>의 경우 명백하게 통일한 이후-36군 설치 이후-에 설치된 3개 군이 36군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36개의 숫자는 완성시켰지만, 사료를 교차검증해 보면 어긋나는 것이죠. 추가로 비교해 본 <후한서> 역시 마찬가지로, 추가 설치된 1개 군이 36군으로 꼽혀 있습니다.

즉, 적어도 <한서>를 편찬할 무렵에 이미 36군의 목록이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일부 실전되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후한서>에서는 <한서>의 오류(?)가 일부 바로잡혀 있기는 하지만, 역시 1개 군은 <한서>와 같은 오류를 남기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사기집해>의 36군은 적어도 자체적인 모순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기> 진시황본기를 기준으로 비교해 볼 때, 후대에 설치된 군이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약간 의심스러운 것이 있기는 합니다. 몽염의 북방개척과 함께 추가로 설치된 14개 현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위치가 대략 구원군과 일치합니다. 즉, 구원군도 통일 이후에 추가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제가 찾아본 바로는 구원군 자체의 설치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내사'를 36개 '군'으로 꼽는 점도 모호한 부분입니다. <후한서>는 내사를 제외한 35개 군이 <집해>와 일치하고 있으며, 내사를 군으로 취급하기 어려웠는지 다른 군을 秦置로 꼽아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집해>는 내사까지 포함해서 자체적으로 큰 모순 없이 36군의 목록을 완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사를 과연 군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한서>나 <후한서>가 명백한 오류를 감수(?)하면서까지 내사를 36군과 별도로 서술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집해>를 기준으로 <한서>에서 누락되었던 지역은 장군(鄣郡)과 검중군(黔中郡)입니다. 장군은 명칭 자체는 등장하지만 설치한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채 "故鄣郡"이라 서술하고 있으며 검중군은 아예 누락되었습니다. 검중에 해당하는 무릉군은 高帝置로 되어 있지요. 검중은 장강 중류 유역, 장군은 장강 하류 남단으로, 둘 모두 변방이라 보기 어려운 지역입니다. 이런 지역의 건치연혁이 이렇게 누락되었던 점은 조금 의아한 일입니다. 반고가 아주 단단히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상의 검색(?) 결과를 놓고 뇌내망상을 펼쳐 보겠습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설치된 36개 군에 대해서는 약 33개 정도는 분명하게 전해지고 있으나 2~3개 정도의 군은 그 이름이나 위치가 모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36개 군의 설치"라는 것은 일종의 교범처럼 전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한서>나 <후한서> 어쩌면 <사기집해>까지도 36개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의도적 혹은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통설대로 서술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 담기양 지도집의 동한시기 지도 위에 표시해 본 진 36군 (<집해> 기준)과 추가 설치된 3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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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족입니다만,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이유로 36군의 목록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은 시각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36군의 대부분은 진시황본기에서 개별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이후 다른 사서의 지리지에서도 어느 정도 정립된 시각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36군 가운데 대부분이 최소 진시황 시기에 설치되었음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ps. 지도에 열심히 표시를 해 놓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담기양 지도집에는 진시기 지도도 있잖아... 이런 젝일.... ㅠㅠ

삽질한 결과물이 아까워서 그냥 올리긴 하지만... 이런 삽질을 하다니 ㅡㅡ;;

덧글

  • 漆園 2010/03/29 16:12 # 답글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딴일로 정신이 없어서 다 이해는 못했지만, 나중에 정독해 보지요^^
  • 야스페르츠 2010/03/29 19:08 #

    ^^
  • 들꽃향기 2010/03/29 18:00 # 답글

    저도 잘보고 갑니다.^^ 이것으로 한대의 군치 설치와 연혁에 대한 이해의 진전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겠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9 19:09 #

    그래봤자 뇌내망상... 어서 야근의 질주가 끝나야 할텐데 말입니다. ㅠㅠ
  • hyjoon 2010/03/29 18:20 # 답글

    유용한 정보제공 감사드립니다 ^^
  • 야스페르츠 2010/03/29 19:09 #

    ^^
  • 옛날이야기 2010/03/30 00:29 # 답글

    근데 진한교체기면 '검중군' 이나 '장군'은 정말로 변방이었던 것 아닌가요?
    특히나 저 동네라면 무릉만이라던가 서양오수만이라던가 하는 소수민족들이 제나라때까지도 직접지배를 거부하고 있어서 좌군현을 만들고 해대던 동네같은데....건치연혁이 누락되었다 해도 이상할 거까진 없지 않을까 합니다만....
  • 야스페르츠 2010/03/30 10:33 #

    그게 좀 애매한 것이, 검중군과 장군보다 거리가 먼 군이 36군 중에 있거든요. 회계군하고 장사군은 검중과 장군을 지나지 않으면 연결이 되지 않는 위치에 있어서스리... ㅡㅡ;;;
  • 옛날이야기 2010/03/30 18:14 #

    상강과 동동정호를 거치면 악양에서 장강본류와 합류하는 장사가 원수하구에서부터 동정호를 완전히 가로질러야 장강에 도달하는 무릉보다 형주에서 가깝지 않을까 싶었지만.......

    진짜 그럴까 헷갈려서 위키를 뒤져보니 중국어 위키에는 초성왕이 무릉을 치소로 무릉-장사에 걸쳐 검중군을 설치했고, 진나라가 초나라를 정복한 후 검중군에서 장사군을 분할시켰다고 되어있네요. 그리고 한 고제 때 검중군의 이름을 고쳐서 무릉군을 설치했다고 써 있는데.... 요게 맞다면 문제가 풀리는 듯 싶지만 출처는 적어놓지 않았군요. ^^

    장군의 경우엔 한무제가 장군을 단양군으로 고쳤다고만 되어있는데...진시황36군신고 라는 2006년 중국어 논문이 출처로 나와있는데 그걸 찾아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_-
  • 에드워디안 2010/03/31 00:26 # 답글

    전국시대후기인 기원전 278년, 진나라 대량조(大良造) 백기(白起)가 초나라 정벌에 나서 그 수도인 영(郢:지금의 호북성 강릉)을 함락시키고 장강 중류 일대를 평정하여, 그곳에 남군(南郡)과 검중군(黔中郡)을 설치했는데 남군과 검중군외에도 진나라가 6국을 공격할 때마다 새로 획득한 점령지에 군을 설치했다고 하니, 36군중에 이미 통일이전부터 설치된 군이 다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초나라 정벌의 공적이 인정된 백기는 소양왕으로부터 무안군(武安君)에 봉해졌다네요. 반면 큰 국토를 상실하고 도성까지 옮겨야 했던 초나라는 춘신군(春申君)의 집정시기를 제외하곤, 이후 줄곧 비실거리다 결국 진나라에 완전히 병탄당하고 말았죠...

    전국말기의 지도를 본 적이 있는데 이미, 진나라 영역이 6국 영역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것 같더군요. 시황제의 증조부인 소양왕의 치세때 이미 진의 천하통일대세가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소양왕의 휘하에 유능한 재상이 있고 보다 적극적으로 통일전쟁에 나섰다면, 굳이 시황제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통일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 지 자못 궁금하네요. 소양왕의 주도로 통일이 되었다면, 통일제국이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나라가 특유의 법치주의로 후세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변방의 작고 낙후한 소국에서 대륙을 평정한 제국으로 발전한 것을 볼 때, 대단한 저력을 가졌던 나라라 생각합니다. 상앙변법이 확실히 효과가 상당했던 듯... 더불어, 역대 군주들도 유능한 사람들이 많았지요. 중국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왕조가 아니었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Reset04 2010/03/31 05:03 # 답글

    36이라는 숫자를 맞춘데에는 아무래도 한대에 유행하였던 수술학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사와 천체운행을 숫자로서 설명하려 하는 수술학은 한대에 크게 유행하였기 때문에 한서와 사기의 서술이 경기를 끌어들이면서 까지 억지로 숫자를 끼워맞춘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후대 역사가들이 사기에 들어있는 70열전 과 30세가의 숫자에 주목하여 '사마천이 각각 72라는 숫자와 28수의 숫자를 열전과 세가의 구성에 끼워넣었다(공자와 진섭을 사실상 열전으로 본다면)'고 해석을 하듯이 36이라는 숫자도 사마천이 수술학적으로 천하의 군을 맞추려고 하는데서 유래하지 않았나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근데 사실 이런 숫자분석은 유사역사학쪽에서 잘 하려 하는거 같아서 섣불리 언급하기가 조심스럽네요)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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