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5 01:01

한서 지리지의 秦置 군의 개수 역사

깜빡할 뻔 했다.

진시황의 36군에 대해

오늘 회사에서 남는 시간에 해 봤던 작업을 올리고 자야지.

<한서> 지리지에서 진나라가 설치한 군을 찾아 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서 <한서> 같은 기초 사료는 위키문헌을 통해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고, 검색이라는 편리한 기능을 사용하면 그 수를 파악하는 것은 손쉬운 일.

그래서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한 번 해 봤다.

Book1.xls

<한서>에 秦置라고 기록되어 있는 군이 27개 군. 이들 가운데 남해군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26개 군은 <사기집해>와 일치한다.

<한서>에 故秦XX郡이라 기록되어 있는 군이 9개 군. 이들 가운데 계림군과 상군(象郡)을 제외한 나머지 7개 군이 일치.

<한서>에 그냥 故XX郡이라 기록되어 있는 군이 몇 개 있는데, 이 가운데 장군이 <사기집해>의 36군과 일치.

마지막으로 경조윤은 36군의 필두(?)인 內史.

도합 35개 군이 사기와 완전히 일치한다. 빠진 군은 검중군 하나 뿐.


검중군이 왜 빠졌는지까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

이상.


참, 남해군, 계림군, 상군은 시황제가 통일한 직후 세운 36군이 아니라, 후에 지경을 개척한 후에 추가로 설치한 군이라 36군에 포함되지 않음.

핑백

  • 야스페르츠의 墨硯樓 : 分天下以爲三十六郡 2010-03-29 15:58:40 #

    ... 한서 지리지의 秦置 군의 개수 =&gt; 이 포스팅의 보론으로 써 보는 글 위 포스팅은 漆園 님의 의문에 대해서 심심풀이로잠시 짬을 내서 답변이랍시고 한서 지리지를 검색해 본 결과물입 ... more

덧글

  • 들꽃향기 2010/03/25 01:03 # 답글

    근성의 역습....ㅎㄷㄷㄷㄷㄷ
  • 야스페르츠 2010/03/25 09:36 #

    ㄷㄷㄷㄷㄷㄷ
  • 현암 2010/03/25 01:18 # 답글

    역시 사람은 못하는게 없나 봅니다.... 랄까 대단하심...;;
  • 야스페르츠 2010/03/25 09:36 #

    이거 진짜 딱 10분만에 찾은 건데. ㅋㅋ 생각보다 이런 건 어려운게 아니에요.
  • ㅋㅋㅋ 2010/03/25 01:27 # 삭제 답글

    허걱 얘 다시 등장 ㅋㅋㅋㅋㅋㅋㅋㅋ
  • 에드워디안 2010/03/25 02:18 # 답글

    시황제 사후 진 제국이 멸망하자, 남해(南海), 계림(桂林), 상(象) 등 3군에 주둔했던 진군(秦軍) 50만 병력을 밑천 삼아 남해군위(南海郡尉) 조타(趙陀)란 자가 독립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가 바로 남월국(南越國)이었다 하네요. 이후 5대 93년간 존속했는데, 기원전 111년 한 무제가 이를 멸망시킨 후 그 땅에 9개의 군현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한사군과 유사한 성격이었던 듯...
  • 야스페르츠 2010/03/25 09:37 #

    옷! 비엣트남의 탄생? ㅎㅎ
  • matercide 2010/09/10 20:32 #

    그런데 강남(한반도의 강남이 아니라)은 끝내 한족의 강역에 포함되었네요. 영가의 상란으로 한족이 대거 강남으로 피난와서 그런 걸까요?
  • 에드워디안 2010/09/11 19:58 #

    matercide/

    漢代 이래 중원에서의 이민이 꾸준이 증가하였고, 삼국시대에 오나라가 강남을 기반으로 건국된 이후로 강남은 한족의 영향력에 완전히 포함되었습니다. 물론, 동진-남조시대까지 한인과 토착민 간 대립과 갈등(교구체제)이 지속되긴 했지만...
  • 漆園 2010/03/25 02:43 # 답글

    에드워디안님/ 50만 병력은 좀 신뢰성이 떨어집니다. 그려.
    야스페르츠님/ 진서(晉書)엔 한고조가 검중을 무릉(武陵)으로 고쳤다는 군요.
  • 들꽃향기 2010/03/25 03:09 #

    진서의 언급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잘 배우고갑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5 09:37 #

    그렇군요.
  • 에드워디안 2010/03/25 10:37 #

    기원전 218년 진시황이 도휴(屠睢)를 사령관에, 조타를 부장에 각각 임명해 그들에게 50만 대군을 주어 영남(광동, 광서일대)공략에 나서게 했습니다. 도휴가 전사하자 임효(任囂)란 자를 새로 사령관으로 보내, 4년간의 전쟁 끝에 마침내 영남을 평정할 수 있었고 그곳에 설치된 진의 3군이 바로 남해군, 계림군, 상군 이었죠. 저 때 파견된 진군 50만명이 새로 점령한 영남에 그대로 주둔했다는데, 저는 그걸 토대로 '50만'이라 추정해서 말한 것입니다. 물론, 조타가 남월을 건국할 당시엔 주둔병력숫자가 다소 달랐수도 있지만...

  • 2010/03/25 02:5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5 09:38 #

    필터링만 제거하시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으실텐데.
  • 2010/03/25 07: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hyjoon 2010/03/25 08:50 # 답글

    저는 언젠가 『난중일기』를 집계낸 적이 있어요. 이순신이 몸이 불편했다는 기록을 통계낸 적이 있는데........그 결과 매달 아팠다는 것이 구라여다는 결론을 냈었어요.
  • 야스페르츠 2010/03/25 09:38 #

    컼ㅋㅋㅋ
  • Warfare Archaeology 2010/12/21 00:04 #

    ㅋㅋ 새로운 사실! 감솨~
  • Allenait 2010/03/25 09:50 # 답글

    근성의 역습....ㅎㄷㄷㄷㄷㄷ(2)
  • 야스페르츠 2010/03/25 11:12 #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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