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4 01:29

요동의 위치가 변화했을까 역사

날짜를 넘기면서 야근하는 기념으로 하는 포스팅.


일부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난하요수교수님을 비롯한 분들의 학설을 철저하게 추종하여, 난하=요수라는 관념을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그런 주장은 고고학 레벨에서 이미 택도 없는 소리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대체로 그분들은 소위 "짱깨 고고학"은 절대 믿지 않으시는지라 - 하지만 홍산 문명은 믿는다능! ㄷㄷㄷ - 말해도 들어 처먹지를 않으신다. 그리고 오로지 문헌만 들입다 파서 결론을 내려 하신다.

어차피 그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분들인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분들의 "실낱같은 근거"까지 모두 쳐부수지 않으면 솔깃하는 분들도 종종 계셔서그냥 짓밟아버리고 싶어서 깔 때는 철저하게 깔 필요가 있다. 요수난하설에 대한 많은 고찰이 있었고, 그것으로도 충분한 반박이 될 것이지만, 밤이 깊었고 회사 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기념으로 뻘글이나 싸질러본다.

이런 젼차로, 그냥 닥치고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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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제 블로그에서 직접 키배를 나눈 비로그인 사용자 "허걱스" 씨는 요동군의 위치에 대한 주장이 흔들리게 되자 이렇게 변명했다.


불초소생이 감히 해석해 보건대, 전국시대 및 진나라, 한나라 초기의 원래 요동은 "동쪽 끝"이라는 의미였으니 지금 요동과 다르며, 무제 때 지금 위치(라고 해석하고 싶지만 또 뭐라 말을 바꿀지 모르겠군요.)로 옮긴 것이라는 말씀인 것 같다.

물론, 저런 주장을 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허걱스 씨는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해서 뭔가 근거 같은 것을 가져 오시긴 했으나 그건 근거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이러한 기록, 이러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이치되었을 것이다"라는 추측이 담긴 자료가 무슨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이동되었다는 사료가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는 이상, 정황이나 기록 상의 모순 등의 추론은 이치되었음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렇게 따진다면, 당시 존재하는 모든 군현에 대해서 같은 검증을 해야 한다. 뭐, 뒷감당을 할 수 있다면 누군가 한 번 해보시길.


그렇다면 요동군의 정확한 설치, 그리고 변천은 어떠한가? 순암은 <동사강목>의 지리고를 통해 요동군의 제반 사항을 검토하여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기록을 한 번 살펴보자.


기씨(箕氏)가 쇠하자, 연(燕)의 장수 진개(秦開)가 조선의 서쪽 땅 천리를 탈취하여 만번한(滿潘汗) 지역으로 경계를 삼고 장성(長城)을 조양(造陽) 상곡(上谷)에 있다. 으로부터 양평(襄平)에 이르기까지 쌓았고 비로소 요동군(遼東郡)을 두었다. 연(燕)이 망하자 진(秦)에 병합되었다. 〈진에서는〉 요수 동서를 나누어 2군을 만들고, 한(漢)의 초기에는 진(秦) 때의 것을 따르다가 무제(武帝) 때에 동부교위(東部校尉)를 세워 동이(東夷)를 거느렸고 이어 조선을 멸하고 사군(四郡)을 두었으며, 소제(昭帝) 때에 진번(眞番)을 없애고 현도(玄菟)를 요동 동북의 땅에 옮겼는데, 왕망(王莽) 때에 와서는 요서가 오환(烏桓)에게 점거되어 요동의 경지가 날로 줄어들었다.
동한(東漢) 때에 다시 속국도위(屬國都尉)를 두고, 헌제(獻帝) 때에 요동태수(遼東太守) 공손도(公孫度)가 요동·요서를 점유하고 스스로 요동후(遼東侯)와 평주목(平州牧)이 되니, 동방 제국(東方諸國)이 많이 붙었는데 3세(世) 50년 만에 망하였다.
위(魏)에 와서는 동이교위(東夷校尉)를 두고 양평(襄平)에 있게 하고 평주(平州)를 설치하였다가 얼마 뒤에 다시 합쳐서 유주(幽州)를 만들었는데, 진씨(晋氏) 곧 진(晋) 나라이다. 도 그대로 따랐다. 얼마 뒤에 모용씨(慕容氏)에게 점거되었고, 자주 고구려와 싸워 서로 침탈하였다. 모용씨가 쇠하자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다.
※ <동사강목> 요동군고(遼東郡考) 원문은 타이핑하기 귀찮아서 생략


사실 요동군의 설치 자체는 연나라 때의 일이다. 하지만 이때는 군현제가 확립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진시황이 통일한 후 군현제를 전국에 실시하면서 비로소 요동군을 비롯한 군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순암은 요동과 요서의 분리가 시황제 시기의 일인 것처럼 적고 있는데, <사기> 흉노열전의 기록으로 보건대 조금 의아한 기록이다.

여하튼, 순암의 검토에 따르면 요동군 자체의 위치에는 변화가 없다. 현도의 이치로 인해 요동군의 지경이 변화했던 사실이나 요동속국의 설치 등 요동군의 변혁에 대해서도 모두 서술하고 있는데, 요동의 위치 변화라는 중요한 사실을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세운 사실만 보아도, 무제 때 요동군의 위치가 변화하거나, 혹은 지경이 더욱 확대되는 일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요수의 위치를 바꿔보려 하는 것도 그다지 신뢰받기 어렵다. 이미 앞선 포스팅에서 보았듯이, <후한서> 군국지의 거리 기록으로만 보아도 요서와 요동은 유주의 다른 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낙랑은 더 멀다. 요서의 군치가 조양 지역이고, 이 지역의 위치로 볼 때 군국지의 거리 기록은 더욱 신빙성이 있다.

만약 요수를 난하라고 본다면, 요서는 지금의 산해관 이상 멀어질 수 없으며, 요동도 큰 차이가 없다. 상곡, 어양, 우북평의 위치를 산서성 쯤으로 옮기지 않는 한, 요서, 요동과 다른 군의 거리가 1000리 이상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종X 박사의 논문을 찾기 귀찮아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논문에서 거리 기록의 주요 자료 가운데 하나는 아마 <후한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박사의 실증은 엄청난 논리적 오류를 가진 셈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김박사의 고증(?)에 따른 지도를 보아도, 김박사는 요서군 이서의 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인지, 아니면 무관심했던 것인지는 알길이 없다.



이상으로, 잠결에 뭔가 앞뒤가 안맞는 말을 한 것 같기는 하지만  요수난하설에 대한 선학들의 많은 논파에 힘입어 후학이 어설프게나마 숟가락을 얹어 본다.


不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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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03/24 01:59 # 삭제 답글

    정말 끝이 없군요
    저들은 그냥 계속 말장난만 하는데요 뭐. 아스님 너무 무리하시는듯 ㅋ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1 #

    야근은 힘들어요.
  • 마무리불패신화 2010/03/24 02:27 # 답글

    환빠들이니까 가능한거라능..!!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1 #

    전 그냥 잉여 환까일 뿐.
  • 들꽃향기 2010/03/24 02:49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산 선생 역시 『대동수경(大東水經)』「淥水」2편에서, 금나라의 4경(四京)을 고찰할때 이런 말을 남기고 있더군요.

    "且金人所都。厥有四京。...(중략)...其東京。卽秦遼東郡。今之遼陽州也。: 금나라 사람들이 도읍을 정한 곳은 4군데인데...(중략)...그 가운데서 동경은, 즉 진(秦)이 설치한 요동군이니, 지금의 요양주이다."

    이걸 보면 역시 다산도 식민사학에 물든 악질 식민빠였거나. 아니면 금나라의 동경이 난하 동쪽-요하 서쪽에 정해진 것이었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이건 뭐 근세사까지 바꿀기세. ㄷㄷ(웃음)

    각설하고, 야근이시라니 무리하지 마시고 몸조리 잘하시길 빕니다. ㅠ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1 #

    감사합니다.
  • hyjoon 2010/03/24 06:54 # 답글

    안정복, 정약용 등도 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사학계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죠. 이제 매식사학을 비판할 단계까지 왔습니다. ㅋㅋㅋㅋ (응?)
  • hyjoon 2010/03/24 11:04 #

    아 그리고 역사밸리에 공헌하시는 건 좋지만 무리하진 마세요 ^^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1 #

    매식 실학 모르삼? ㅋㅋㅋ
  • Allenait 2010/03/24 09:11 # 답글

    야근이라니... 고생하시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1 #

    퇴근했습니다. ㅠㅠ
  • 른밸 2010/03/24 10:12 # 답글

    야스님 요즘 이리저리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2 #

    살려주세요. ㅠㅠ
  • 2010/03/24 11: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2 #

    DFTT...
  • 프랑켄 2010/03/24 14:19 # 답글

    한 장성이 청천강까지 뻗어 있었다니 좀 의아한 부분이 있군요. 근데 청천강 유역에서 한 장성 및 진 장성의 흔적이 발견된 적 있습니까?
  • 야스페르츠 2010/03/25 01:12 #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펴내는 책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海凡申九™ 2010/03/24 17:23 # 답글

    http://pds17.egloos.com/pds/201003/24/04/f0082604_4ba9cbdc68eed.png

    요동군고 원문 짤방(붉은 줄은 글 내에 삽입된 요동군고 내용 부분)
  • 궁금이 2010/04/06 00:41 # 삭제 답글

    인터넷에서 요동군, 낙랑군 관련 글들을 재미나게 읽고 있는 초학도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근데 저도 프랑켄님처럼 진,한대의 만리장성이 청천강까지 연장되어 있다는 게 의문이군요. 동북아역사재단의 책중에서 구체적인 이름 하나만 알려주실 수 있나요?
  • 야스페르츠 2010/04/06 15:34 #

    구체적인 책은 저도 지금 잘 기억나지 않네요. 사실 읽어본 것도 별로 없고... 제가 보기에는 송호정 교수의 '한국고대사 속의 고조선사'가 나을 것 같습니다.
  • 궁금이 2010/04/07 07:33 # 삭제 답글

    정보 고맙습니다.
  • wrk2 2011/04/25 17:40 # 삭제 답글

    난하설도 읽었고 요하설도 읽었고..
    연진장성에 관한 중국측 궈다순의 기록도 읽었고...
    국내 학자들의 반박도 읽었는데..
    난하설이 논파되었다는 님의 주장은 좀 어처구니없네요..
    고고학적 자료를 봐도 또 문헌 기록을 봐도 요하의 위치는 아직 미스터리에 가깝다는 게 정답인데..
    무조건 난하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우습지만 님도 좀 오버하시네요..
  • 부여 2015/09/05 01:32 # 답글

    식민사학이 감춘 '요동'의 진실을 알고 싶은 분들은 이곳으로 오세요.
    http://blog.naver.com/demon_illu/220470672814




















    는 월첰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ㄱ- 2015/11/30 02:24 # 삭제

    혹시라도 장난삼아서 윗 댓글 클릭하지 마세요 ㄱ- 뭔 같잖은 수를 걸어놨네

    픽 꺼져;;;

    바이러스 심었나?

    환까든 환빠든 저런거 클릭하지 마시길 ㄷㄷ

    뭔짓거리여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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