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1 16:49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 병림픽


※ <삼국사기> 태조왕 때의 기록들
三年 春二月 築遼西十城 以備漢兵
3년(55년) 봄 2월에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아 한나라 군사의 침입을 대비하였다.


五十三年 ... (中略).... 王遣將入漢遼東 奪掠六縣 太守耿夔出兵拒之 王軍大敗
53년(105년)... (중략)...왕은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요동에 들어가 여섯 현을 약탈하였다. 태수 경기(耿夔)가 군사를 내어 막으니, 왕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五十九年 遣使如漢 貢獻方物 求屬玄菟
59년(111년) 사신을 한나라에 보내 방물(方物)을 바치고 현도에 속하기를 구하였다.

六十九年 春 漢幽州刺史馮煥·玄菟太守姚光· 遼東太守蔡諷 等 將兵來侵...(中略)....遂成因據險以遮大軍 潛遣三千人 攻玄菟·遼東二郡 焚其城郭 殺獲二千餘人
69년(121년) 봄, 한의 유주자사 풍환(馮煥), 현도태수 요광(姚光), 요동태수 채풍(蔡諷)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략해 왔다....(중략).... 수성은 그로 인하여 험난한 곳에 의지하여 대군을 막고 몰래 3천 명을 보내 현도·요동의 두 군을 공격하여 성곽을 불사르고 2천여 명을 죽이고 사로잡았다.

七十年 王與馬韓·穢貊侵遼東
70년(122년) 왕은 마한·예맥과 함께 요동을 쳤다.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요동"하고 전쟁을 대체 몇 번을 한것인가.... 참 안정적이기도 합니다.

아, 아니구나. 공손씨가 서기 60~100년대 살던 사람인가 봅니다. 그래서 언제인지도 모르지만 요동을 빼앗기고 피튀기게 싸웠나봅니다.

아니면 빨간색과 파란색은 서로 다른 나라의 기록인가 봅니다. 아, 고구려는 스파르타처럼 자기 나라를 정기적으로 공격해서 노예들을 학살하는 풍습이라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얘네들은 대체 저 땅을 어떻게 지배했을까?
※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얘네들은 또 어떻게 사신을 교환했을까?
※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이상. 저분들 가운데 하나의 주장에 따르면 열심히 짜장면을 배달하고 있을 어떤 이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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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리얼스나이퍼 2010/03/21 16:54 # 답글

    아니 그러니까 귀하께서는 요동을 아예 확보하지못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리저리 싸우다가 뺏고 뺏긴 것 아닙니까?
    그리고 요동의 위치도 우리 측에서야 요동반도지만 중국측은 그냥 동쪽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니 그들의 요동은 요동반도가 아닐 수도 있고.
  • ㄲㄲㄲ 2010/03/21 17:01 # 삭제

    요동(遼東)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요하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서 생긴 것. 그러므로 요동은 요하의 동쪽에 위치한 요동 반도를 포함한 지역이 될 수밖에 없음.
  • 리얼스나이퍼 2010/03/21 17:09 #

    아닙니다.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이라고 한 게 아니라 요동은 중국인 입장에서 보면 영토 가장 동쪽끝, 즉 극동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예컨데 사기에는 지금 북경 근처 난하 유역의 갈석산 지역을 요동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중국인에게는 난하가 요동이었지요.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는데 일일히 올리려니 쩝,,,
  • 야스페르츠 2010/03/21 17:13 #

    참신하군요. 이거 난하요수설의 신기원인걸요? 갈석산은 낙랑 아니었나? 풉!
  • 마광팔 2010/03/21 17:12 # 답글

    야스페르츠님 제 덧글을 캡쳐하셨기에 님이 저를 불청객으로 여기시는 것은 잘알지만 방문해서 덧글을 남기는 결례를 범하니 양해바랍니다.
    그럼 야스페르츠님은 저당시 고구려가 오나라와 어떤 방식으로 사신을 교환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 ㄲㄲㄲ 2010/03/21 17:15 # 삭제

    당연히 압록강에서 배를 띄워서 황해로 나간 거지...꼭 말로 설명해 줘야 아나?

    그 시대에 지금처럼 해상으로 군사 분계선이 설정돼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압록강 하구에 경비정 띄워서 일일이 출입을 다 감시할 수도 없는 일...

    현재의 상황을 과거에 투영하려 하니까 저런 오류가 생기는 거임 ㅉㅉㅉ
  • 마광팔 2010/03/21 17:16 #

    압록강 하구 유역이 고구려 것이 아닌데 어떻게 압록강으로? 나참...
  • 야스페르츠 2010/03/21 17:21 #

    귀하도 대답해 보시지요.

    진(秦)은 제(齊)·연(燕)과 어떻게 통교했을까요? 프로이센은 어떻게 라인란트 지역을 다스렸을까요? 혹시 진이 제나 연을 공격했던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삼진으로 가로막혀 있던 진나라가 무슨 수로 제나라를 공격했을까요? 상앙의 영지가 어디인지는 아십니까? 한(韓)과 위(魏)의 영토가 어떻게 겹쳐 있는지 아시면 쓰러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ㄲㄲㄲ 2010/03/21 17:23 # 삭제

    ㅋㅋㅋ 그런 식으로 따지면 고구려가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

    요동군과 낙랑군, 대방군이 모두 공손씨의 관할이라 고구려를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었는데 고구려는 도대체 어떻게 위나라와 사신을 주고 받았을까?
  • 마광팔 2010/03/21 17:25 #

    허 대답을 못하시니 말장난식으로 나오시는군요.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제대로된 토론이 안되지요.
    크게 기대했던 바는 아닌데.
    그냥 시간 낭비하지말고 가겠습니다.
    님도 제가 불청객이니 가는 걸 바라실 듯.
    그럼...
    .
  • ㄲㄲㄲ 2010/03/21 17:28 # 삭제

    대답은 분명히 해 드렸음.
    그냥 압록강 하구로 나간 거라니깐.
    압록강 하구가 고구려의 영토가 아니기 때문에 지나갈 수 없다는 건 댁의 생각일 뿐.
  • 야스페르츠 2010/03/21 17:52 #

    마광팔 // 사신이라는 것이 무슨 군대 정도나 되는 것은 아니지요. 결국 배 한 두 척만 가면 되는 일. 압록강 하구를 지배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곳을 통과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지금의 영토 개념을 고대에 투사한 위험천만한 발상입니다.

    중국에는 4세기 무렵까지도 중국 한복판(하북성, 하남성)의 산과 들 속에 진짜 "야만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지요. 지금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깜짝놀랄 일이지만, 고대의 지리와 영토 개념을 알고 보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닙니다.
  • moduru 2010/03/21 17:15 # 답글

    요동이란 어휘가 생긴 전국시대엔 극동이란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지만,

    이미, 진한대 이후 엄연히 요동군이 있고 요서군이 있는 판에,
    요동이 난하 이동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한서지리지조차도 안 읽었다는 말입니다.

    쩝.
  • 리얼스나이퍼 2010/03/21 17:22 #

    노노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의 고구려전에는 고구려는 요동으로부터 천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됨.
    이것은 당시 요동이 지금의 요동이 아니라는 말임.
  • moduru 2010/03/21 17:23 #

    그냥 언제 한번 한서와 후한서 지리지 번역해서 올릴께요.
    알아서 공부하세요.
  • 리얼스나이퍼 2010/03/21 17:27 #

    공부는 댁이나 하세요.
    나참.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1 #

    요동군치인 양평 - 지금의 심양 -에서 천 리면 에누리도 별로 필요 없이 국내성에 떨어집니다만. 귀하께서 주장하신 갈석산 운운에서 국내성이던 고구려 어디건 2천리도 넘을 것임.

    기본은 좀 갖추고 와서 덤비시기 바랍니다.
  • 리얼스나이퍼 2010/03/21 17:50 #

    사료를 찾는다고 답글이 좀 늦었는데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전에는 '고구려는 요동의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접했다. 땅은 사방 2천리다."라고 나옵니다.
    그럼 고구려가 땅이 사방 2천리라고 하는데 님말대로라면 요동에서 천리떨어지고 다시 2천리를 더해야하는데 그럼 고구려는 동해 바다에 있었나요?
    님이야말로 기본은 좀 갖추고 궤변을 하시던가 ㅉㅉㅉ...
  • 야스페르츠 2010/03/21 17:56 #

    리얼스나이퍼 // 地方二千里 의 뜻이나 제대로 알고 오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직접 "사방 2천리"라고 써 놓고서 하시는 말씀이 "다시 2천리를 더해야 하는데"라고 하시면 참 좌절스럽습니다. 한글을 놓고 해석해도 그런 말씀은 못하실텐데. 사방이 무슨 뜻인지 모르시는지요?
  • 리얼스나이퍼 2010/03/21 18:06 #

    역시 논리가 밀리니 말장난으로 나오는군요.
    뭐 키배하기도 지겹고 가면서 한마디만 하지요.
    요동은 댁들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진나라 이후에도 요동에 속한 군이라는 의미와 동쪽 경계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한가지만 더 예로 들어드리죠.
    한서 장진왕주전에 보면 한나라의 신하였던 연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추격하여 만리장성에이르고 상곡군, 우북평군, 요동군, 어양군을 평정했다는기사가 나오는데 이기사에 따르면 당시 한나라 요동은 만리장성 부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이 가르쳐줬으니 배우세요.
  • 야스페르츠 2010/03/21 18:17 #

    리얼스나이퍼 // 한나라 때 만리장성은 요동 부근이 맞는데요? 만리장성을 요동까지 쌓았다는 <사기>의 기록은 쌈싸드셨나봐요. 훗. 물론 저 때의 만리장성과 지금의 만리장성은 10만 팔천리 쯤 떨어져 있다는 건 아시리라 믿습니다. ㅉㅉ
  • 지나가는이 2010/03/21 18:36 # 삭제

    아니 그러니까 야스페르츠님은 요동을 지금의 요동으로만 보는데 남들은 그걸 지적하는데 그걸 모르면 얘기가 자꾸 쳇바퀴도는 것이고 저기사는 한고조때니 만리장성이 지금의 요동까지 있다는 건 말도 안되고
    잘은 모르지만 만리장성은 요동까지 뻗은 거 아니지않나?
    지금의 만리장성은 계속 증축되서 연장된 것이고.
  • 야스페르츠 2010/03/21 18:41 #

    지나가는이// 그건 댁들의 착각일 뿐. 하다못해 사기에도 만리장성을 요동까지 쌓았다고 되어 있건만 말이오. 지금의 만리장성은 동단은 오히려 축소되어 축조된 것이외다. 댁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을 두고 남을 비난하는 건 공부가 부족한 게요.
  • 라미실무좀약 2010/03/22 00:53 # 삭제

    그러니까 한유방때 벌써 요동은 물론이고 압록강까지 만리장성이 쌓였단 말인가요?
    대단한 공상 능력이십니다.
    그 대단한 능력에 감탄합니다.
  • ㄲㄲㄲ 2010/03/22 01:00 # 삭제

    공상은 무슨. 연진(燕秦) 장성의 동쪽 끝은 엄연히 압록강변까지 뻗어 있었는뎁쇼.
    지금 남아있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쌓은 것으로 진한 시대의 것과는 다름.

    그리고 이미 진나라 때 중국은 청천강까지 진출했답니다. 믿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ㅋㅋㅋ
  • 라미실무좀약 2010/03/22 01:16 # 삭제

    허걱 진나라때 청천강까지?
    이거 너무 통이 작으시군요.
    적어도 낙동강은 되야 ㅋㅋㅋ
  • ㄲㄲㄲ 2010/03/22 13:04 # 삭제

    낙동강까진 변한의 무적 철기 부대가 두려워 못 간다능!
  • hyjoon 2010/03/21 17:17 # 답글

    저 난하 떡밥은 윤내현 교수가 뿌린 이래로 쉬지도 않으니 참.......ㅡㅡ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2 #

    사실,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은 더 가열찬 거였는데, 일하느라 바빠서 대충 싸질렀습니다.

    그러니까, "난하 떡밥으로 요동이나 요서를 옮겨놓으신 분께서 태조왕 요서 정벌은 지금 요서 지역으로 비정하시고 어쩌라는 거임?" 이런 내용을 쓰려 했건만... ㅡㅡ;;
  • 을파소 2010/03/21 17:22 # 답글

    그야말로 동쪽에 사는 종족이나 국가를 말하던 동이는 우리나라만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취급하는 족에서 요동은 고유명사로 인정 안하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4 #

    원래 내가 하면 로맨스인 겁니다. ㅎㅎ
  • 功名誰復論 2010/03/21 18:40 # 답글

    낙랑군 인정한다 해서 그게 고구려가 바다와 접하지 못했다와 같은 말이 의미가 되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낙랑과 요동이 있어도 압록강 쪽은 저런 중국 점령지 사이에 있고 그쪽을 통해서 오나라 같은 데와도 교류가 얼마든지 가능한 거 아닌지요.
  • 야스페르츠 2010/03/21 18:47 #

    아... 일단은 압록강 하구에 서안평현이 있었던고로 직접적으로 황해에 접한 땅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허나 아직 영토에 대한 면(面)의 지배가 확고하지 못했던 고대에 그런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요즘 같은 시대에도 멕시코의 히스패닉 계들이 미국 국경을 수시로 넘나드는데, 저 시대에야 말할 것도 없겠죠. ㅡㅡ;;
  • 功名誰復論 2010/03/21 19:09 #

    서안평이 있어도 압록 하구 아래쪽, 지금으로 치면 평안북도에서도 좀 위쪽의 바닷가 쪽으로 동천왕 시기 고구려가 조금이나마 바다와 접하고 있지 않았나 인식하고 있어서 한 말이었습니다. 중천왕 시기에 관니부인을 바다에 빠트렸다 같은 내용도 있고 하니까요.

    낙랑이 있다 해도 고구려가 오와 얼마든지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백퍼센트 저도 동의합니다.
  • 미스트 2010/03/21 19:07 # 답글

    어떤 지역이 특정 국가 영토가 되면 그 지역 지나가는건 불가능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너무 많이들 즐겼나 봅니다.

    포위된 도시(!)에서도 다른 도시로 사신을 보내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환빠들은 이런건 어떻게 설명하려나 -_-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8 #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포위된 도시에서도 보내는 사신인데.. ㅡㅡ;;;
  • 我幸行 2010/03/21 19:15 # 답글

    [BC 108∼BC 107년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그 고지(故地)에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 이게 뭔말인지 이해가 안되는 사람도 있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8 #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분들이므로 그런 건 눈에서 자동 필터링임둥
  • 앨런비 2010/03/21 19:24 # 답글

    이런 아들을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만 ㄱ-
    뭐 하긴, 상대 안해주기에는 이 동네가 너무 더러워지긴 하는데.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8 #

    더러워서 피하기에는 너무 난장을 피워놨어요.
  • Allenait 2010/03/21 19:37 # 답글

    ...어이구 이거 아주 커졌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9 #

    회사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딱이죠.
  • 크핫군 2010/03/21 19:37 # 삭제 답글

    고생하십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9 #

    ^^;;
  • 진성당거사 2010/03/21 19:40 # 답글

    키배가 점점 신선해지고 있습니다. 여하간 야스페르츠님 화이팅! 저런 개념없는 인간들은 그냥 계속 밟아놓아야.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9 #

    종종 개콘 뺨치는 신선한 개드립들이 나오는지라.
  • rumic71 2010/03/21 19:42 # 답글

    야스페르츠님 파이팅! 글구 짜장 두그릇 배달 부탁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9 #

    오늘 재료가 다 떨어져서 마감임둥.
  • 진성당거사 2010/03/21 20:04 # 답글

    참, 그러고보니 위의 저 키배야말로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 사이의 그 유명한 일화가 생각나게 하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00:59 #

  • 2010/03/21 20:46 # 답글

    툭하면 "논리가 밀리니까 말장난" ...정신승리의 표본 잘 보고 갑니다.

    리플은 처음 답니다만 야스페르츠님 이글루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01:00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 슈타인호프 2010/03/21 21:02 # 답글

    궁금한 것 :

    "그럼 그 요서의 10개 성은 그 뒤로 계속 유지되었나요? 누가 성주를 했다거나, 그 성을 거점으로 더 서쪽으로 군사원정을 했다거나 하는 기록이 있나요?"

    누구에게 하는 질문인지느 아시리라 믿으며 :)
  • 야스페르츠 2010/03/22 01:00 #

    저, 저는 그런 거 몰라효.
  • 라마살 2010/03/21 21:02 # 삭제 답글

    마광팔이나 리얼스나이퍼같은 인간들이 저지르는 오류는 고대 국가의 국경을 현대 국가의 국경개념과 똑같이 놓고 생각한다는 점....
    현대국가에서는 땅 한평 한평까지도 정확하게 측량이 되어 국경이 정확하게 구분되어 선이 그어져 있지만 당시 고대국가의 정부에서는 그런 식으로 국경을 그을 능력도 개념도 없었다.

    즉 마광팔이나 리얼스나이퍼같은 인간은 국경을 '면' 의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거...
    근데 고대국가에서는 국경의 개념이 '면' 이 아니라 '선' 과 '점' 으로 이해해야 한다니깐?
    왜냐하면 고대국가들은 넓은 땅덩어리를 지금처럼 전부 커버할 만큼 정부의 파워가 세지도 않았고, 애초에 사람이 농사를 짓고 살만한 쓸만한 땅 자체가 지금에 비해 워낙 적어서 방어하기 좋은 중요한 길목이나 중요 도시, 군락등에만 병력을 배치해 놓는게 대부분이었다.

    즉, 뭐 수천 수만의 군대를 보내지 않는 이상, 기껏해야 수십명 수준도 안될 터인 사신 보내는 것은 서로 국경이 인접해 있지 않았다 해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ㅇㅋ?
  • 라마살 2010/03/21 21:06 # 삭제 답글

    심지어 지금처럼 국경개념이 명확한 현대에서도 알카에다같은 놈들은 수시로 다른 나라 국경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멕시코인들은 미국으로 뻔질나게 밀입국에 성공하고, 북한주민들도 북한 당국의 삼엄한 경비가 있어도 매년 수백~수천명이 중국으로 밀입구한다.

    근데 지금보다 훨씬 국가의 힘이 약했고 군대의 주둔지역도 좁았던 고대에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사신을 못보낸다고? 푸핫!!!
  • 라미실무좀약 2010/03/22 00:50 # 삭제

    그냥 공상소설을 쓰시는 것이?
  • 야스페르츠 2010/03/22 01:01 #

    전국시대 한과 위의 영토가 겹쳐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저분들은 기절할 것임.
  • 돈키호테 2010/03/21 22:12 # 답글

    역사 게임에서도 동쪽에 처박힌 엄백호가 저 멀리 내륙에 처박힌 마등한테 사신을 잘만 보냅니다. -_-;;;
  • 야스페르츠 2010/03/22 01:02 #

    따그닥 따그닥... 그러고보니 6편인가에서는 사신도 가다가 도중에 나포되는 경우가 있었지요. ㅎㅎ
  • 을파소 2010/03/21 22:38 # 답글

    블로그에 한사군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하며 식민빠를 비웃는 분이 만리장성을 사전에서 찾아보실 생각은 못 하셨나 보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01:02 #

    어차피 찾아봐도 자동 필터링... ㅡㅡ;;
  • 초록불 2010/03/21 22:56 # 답글

    뭐, 그나마 난하를 중심으로 왔다갔다 하는 건 산서성 "요"를 중심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들에 비해서 양반이고, 산서성 "요"를 중심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도 지중해까지 섭렵하는 것들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 야스페르츠 2010/03/22 01:02 #

    컼...
  • 미친다 2010/03/22 00:20 # 삭제 답글

    내가 보기에는 야스페르츠가 궤변만 일삼고 있는데 무슨 저능아들 편먹고 놀이도 아니고 ㅋㅋㅋ
    하기는 각자 홈링의 이점이라는 것이 있겠지. 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0/03/22 01:03 #

    뭐가 궤변인지 입증이나 하시고 그런 편먹기 놀이를 하시던지. 쯧쯧
  • 들꽃향기 2010/03/22 01:43 # 답글

    적절하신 비유네요 ㅎㅎ 안정적으로 확보했다는 요동과 도대체 몇번의 전쟁을 벌인거냐는 일갈에서 뒤집어졌습니다. ㄷㄷ

    사실 근대적 '국경'의 개념으로는 네트워크에 가까운 당시의 국경-강역 개념을 이해할 수 없을텐데, 참 할말이 없군요. 하긴 그런 '근대적 개념'을 역사 아무데에나 가져다 쓰는 것이 문제라는걸 알 사람들이라면 애시당초 환빠가 되지 않았겠지만요. ㅋ
  • 야스페르츠 2010/03/22 11:15 #

    긍휼히 여겨줍시다.
  • ㄲㄲㄲ 2010/03/22 13:01 # 삭제 답글

    사실 요하는 ㄷ자처럼 곡류하는 하천이기 때문에, 반드시 요동을 거치지 않고서도 요서로 갈 수 있습죠.
    태조왕 때의 요서 진출은 이것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 꼭 요동을 확보해야만 요서로 갈 수 있는 건 아님.
  • 야스페르츠 2010/03/22 19:13 #

    말해야 입만 아프죠... ㅡㅡ;;;
  • 킬킬 2010/03/22 19:04 # 삭제 답글

    환빠들 자기네 쥐구멍에서 노는 꼴이 과관.
  • 야스페르츠 2010/03/22 19:13 #

    ㅋㅋ
  • 에드워디안 2010/03/22 22:49 # 답글

    전국시대 진 소양왕(秦昭襄王)의 외삼촌되는 양후(穰侯) 위염(魏冉)의 영지가 진의 본토에서 뚝 떨어진 산동지방의 도(陶)란 곳에 있었더군요. 진 본국과 위염의 영지 사이엔 삼진(三晋)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위염이 멀고 먼 산동의 자기 영지를 넓히려 제를 공격하다 범수(范雎)의 탄핵을 받아 실각한 건 사기열전을 읽어도 알 수 있는데, 저 친구들은 도대체 뭘 읽었는지...-_-;;;
  • paro1923 2010/03/22 23:25 # 삭제

    그들에게 사기열전은 '되놈'들의 역사조작일 뿐이라능... (......)
  • santalinus 2010/03/23 00:54 # 답글

    심리학에는 다음과 같은 용어가 있습죠...'인지 부조화'라는;;;
  • 야스페르츠 2010/03/23 10:14 #

    전형적이죠.
  • 카노네스 2010/03/23 12:08 # 답글

    고생많으시네요... 앞으로 무운을 빕니다~!
  • 마무리불패신화 2010/03/24 00:39 # 답글

    삼국지에서 오나라와 요동지방은 붙어있었나 봅니다.

    오나라에서 공손연한테 사신 보낼려고 하다가 삽질했으니..
  • 2013/03/24 17: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4 17:4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게으른 바다표범 2017/09/12 07:38 # 답글

    후한서 군국지를 보면 요서군과 요동군의 거리는 300리입니다. 요서-현도는 700리 거리이구요.
    오늘날의 요하 에는 후한의 현도군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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