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21 12:03

국사 교과서의 모순, 그리고 그 의도 雜想



초중고등학생들, 그리고 대다수의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들은 국사 교과서를 통해서 역사를 배운다. 이런 교과서에 만족하지 못해서 다양한 분야와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하나 같이 교과서를 비판한다.

유사역사학, 소위 재야사학이라 부르는 계열의 잘못된 역사(?)를 배운 사람들은 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축소한다고 비판하고, 반대로 각종 사료와 기성 역사학계의 입론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배운 사람들은 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과대포장한다고 비판할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간극이란... 휴.


어쨌거나, 적어도 역사를 올바로 보는 방법을 교육 받은, 혹은 공부한 사람들은 대체로 국사 교과서의 성향에 대해서 비슷하게 입을 모을 것이다.

교과서는 1차적으로 민주사회의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의미에서 "객관적인 진실의 전달"은 2차적 목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교과서의 일만은 아니며, 대다수 국가들의 교과서가 비슷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진다.

이러한 목적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표적인 교과서라면 역시 세계사 교과서일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알아둘 필요가 있을만한 세계적인 역사만 다루고 있을 뿐, 동남아사, 남미사, 아프리카사 같은 제3세계(?) 역사는 주마간산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짧게 지나간다. 심지어 세계 역사에 분명하게 거대한 족적을 남긴 국가라고 해도 현대 사회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아주 간략한 언급으로 끝날 뿐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중세 이후 세계사 교과서는 사실상 "서유럽사"와 "중국사"만 배운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다들 알 것이다. 대다수 서양의 세계사 교과서에는 "비정상적"으로 일본사가 많이 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사에 남긴 족적으로만 보자면 일본사는 근대 이전까지 그야말로 변방 중의 변방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적인 영향력과,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문제로 인해 일본사의 비중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각설하고, 일단 내가 이해하는 한도 안에서 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짚어 보자면 대략 이렇다.

1. 민족 및 국가 중심적이다. (삼국을 같은 민족으로 강조하는 점, 신라 혹은 고려의 민족통합정책을 강조하는 점 등)

2. 민족 및 국가가 자주적으로 성립했고 성장했음을 강조한다.

3. 외침을 받고 극복하는 역사를 강조한다.

4. 반대로 우리가 침략하거나 확장한 역사는 미화되거나 은근슬쩍 넘어간다.

5. 세계 최초, 세계 최고를 강조한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체요절, 훈민정음 등)


국사교과서에서 대표적인 사실 왜곡 사례로 꼽힐 만한 것으로는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근왕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동학농민전쟁이 반봉건-근대적 개혁의 표상으로 서술된 것은 가히 가공할만한 왜곡이다. 실학에 대한 서술도 왜곡이라 할만 하다. 사실 근현대사, 특히 일제강점기의 서술은 근대사를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문제점이 눈에 띌 정도로 애매하거나 오류를 가진 부분이 많다.

고대사 역시 문제의 소지가 될 내용은 많다. 백제의 요서진출설과 같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주장이 당당히 실려 있기도 하며, 산동 진출설과 같은 명백한 '위설(僞說)'도 가감없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고대사 관련 내용에서 가장 불만이 많은 부분 가운데 하나는 고구려의 요동 정복에 대한 부분이다. 고구려가 요동을 정복하게 된 때가 광개토왕 때이건만, 국사교과서의 지도나 서술 태도에는 광개토왕 이전에 요동이 고구려의 영토로 나타나며 서술하고 있다. 광개토왕 최대의 업적이라면 백제 정벌과 요동 점령인데, 이 가운데 하나를 공중분해시켜버린 셈이다.

광개토왕의 시호는 누가 보아도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 국사교과서와 역사부도 등 중고교 학력의 사람들이 접해보게 되어 있는 역사물들을 통해서 살펴보게 되는 광개토왕 때의 지도는 그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대체 광개토왕이 넓혔다는 영토, 정복지는 어디란 말인가? 광개토왕 이전 근초고왕 대의 지도와 비교해보면 한반도 일대가 확대된 것을 제외하면 영토 확장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래놓고 광개토왕의 정복 운운 하고 있으니... 중고등학생들이 환빠의 길에 빠져드는 것이 결코 그들의 잘못 때문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며칠 전까지 역밸을 뜨겁게 달궜던(?) 한군현 관련 서술은 어떠한가? 과연 교과서 집필자들이, 소위 강단사학자들이 자중지란을 일으킨 정신나간 서술인가?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고조선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려 하였으나, 지역 토착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드디어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되었다(313)
-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中


위 인용문은 논란을 불러왔던 모 블로거가 직접 인용한 한군현 관련 내용이다. 사실 웬만큼 난독증이 심하지 않은 한 저 서술을 읽고서 "한사군이 아예 없었다"라고 판단하거나 "강단사학자들이 미쳐서 헛소리 한 것"이라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한군현 관련 설명은 저 2줄 정도로 끝이 아니다. 바로 옆페이지에는 이런 설명이 등장하며,
고구려의 미천왕이 낙랑군을 축출한 사실 역시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분명 한군현의 영향력이나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대단히 과소하게 평가하도록 되어 있는 서술임은 분명하다. 대체로 국사교과서에서 한군현에 대한서술 방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비중이 작아지고,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고 서술하는 경향이다. (옛날 국사교과서를 지금 찾아볼 길이 없어 정확하게 증명해가며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국사교과서의 집필진은 아니니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아마도 한군현 관련 내용은 "민족의 자주성"이라는 국사교과서 최대의 테마를 훼손하는 것으로 판단될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제외한다면 거의 유일한 "외부 국가/민족의 지배 경험"일 테니까. 사실상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던 원간섭기 고려에게도 "주권을 지켜냈다"라 서술하고 있는 것이 국사교과서인데, 한군현이 얼마나 껄끄러웠을까.

아마도, 그런 이유로 한군현에 대한 내용이 지속적으로 비중이 작아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학계의 연구 성과 - 내가 감히 말할만큼 잘 알지는 못하지만 - 는 점차 한군현의 실체를 밝혀 나가며, 한군현과 우리의 고대 국가 성립이 가진 밀접한 관계, 그 영향과 의미를 통해 우리 고대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애써 감추려고 하는 교과서와는 이미 엄청난 간극이 벌어진 것 같다.

중국 군현세력의 지배를 받은 것이 과연 우리 자주성을 해치는 일인가? 아니, 그보다 자주성이란 무엇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만이 자주적인가? 세계 최초, 세계 최고만이 자주적인가? 크고 아름다운(?) 역사만이 자주적인가? 중국이라는 세계 최강의 먼치킨 옆에서 싸우고 타협하고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고,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아간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 과연 "자주성"이 없는 모습일까?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고 감춰져 있다는 웅혼한 역사를 찾아 헤매는 것이 과연 "자주적"인 모습일까?


오늘도 그분들의 열등감에 탄식하며, 주말에도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는 불쌍한 중생이 두서없이 이렇게 찌끄려본다.




핑백

  • 피카츄 : <민족과 근대의 이중주> - 지수걸 2010-11-03 18:24:57 #

    ... 보기라 할 수 있다. 『국사』가 ‘식민지적 근대화’나 ‘근대 주체’. 혹은 친일 세력이나 민족 개량주의 세력의 실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것도 이 같은 자가당착적인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more

덧글

  • hyjoon 2010/03/21 12:08 # 답글

    사실 국사교과서를 망친 제일 큰 원흉은 80년대에 있었던 국사교과서 청문회일 겁니다.....(...)
  • 초록불 2010/03/21 12:13 #

    청문회는 별 거 아니었습니다.

    그보단 80년대 중반에 벌어진 조선일보의 공세가 컸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1 13:06 #

    조선일보는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보단 BC20세기 우리 민족의 탄생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도주)
  • 들꽃향기 2010/03/21 12:27 # 답글

    사실 동학농민운동의 성격을 논하는 논쟁은, 오지영의 『동학사』를 사료로 볼 것이냐 말것이냐에 크게 좌우될 것 같습니다. (...) 그런데 동학사 까면 정말로 학계의 난타를 맞을수도 있다는 후문이(...)

    그리고 저 때의 일이긴 하지만, 사료로는 한두줄 나온 백제의 요서-산동경략도 실어줬던 기억이 납니다. 이만큼 민족주의적인 역사 교과서가 천하에 어디 있나요 (....)
  • 야스페르츠 2010/03/21 13:06 #

    그러게 말입니다. 이건 더 이상 심하기도 어려운 민족주의적인 교과서인데 말이죠.
  • 아야소피아 2010/03/21 12:42 # 답글

    외부 세력의 지배를 단 한번도 받지 않은 일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자주적이고 알흠다운 나라입니다. (← 역시 매식자.....퍽!)
  • 야스페르츠 2010/03/21 13:07 #

    어허. 백제 쨔응이 지배한 역사가 자그마치 2천년이거늘. (도주)
  • 프랑켄 2010/03/21 13:01 # 답글

    저는 무엇보다도 그놈의 고조선 연대 2333년좀 고쳐야겠다고 생각되는데요. 아니 세상에 전설상의 인물인 우 즉위년에 단군이 태어났다고 연대를 매기는 나라가 어디있는지????
  • 야스페르츠 2010/03/21 13:07 #

    그거야 말할 필요도 없죠. 이걸 참고...

    http://xakyntos.egloos.com/2268208
  • 2010/03/21 13:30 # 답글

    산둥 요서 진출설을 교과지도서를 보니 설이 아니라 아에 법칙 같은 식으로 서술을 해놔서 혼이 탈출을 --;;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5 #

    저도 혼이 탈출을...
  • 解明 2010/03/21 13:32 # 답글

    전 그래도 교과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본문에서 언급한 오류가 남아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고쳐지고 있으니까요.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5 #

    더 고쳐져야 겠지요. ㅎㅎ
  • asianote 2010/03/21 13:47 # 답글

    일본이야 듣보잡 중 상 듣보잡이지만 그래도 서양과 꽤 긴 교류기간이 있기 때문에 서양 애들이 쳐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양 애들이 제대로 상대해준 몇 안되는 독립세력이었으니까요.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5 #

    이제 우리나라 역사도 좀... 굽신굽신
  • 불온 2010/03/21 13:52 # 답글

    국사교과서가 2007년 7차 교육과정에서 아주 망했습니다.

    그냥 잡생각인데...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서 '환빠'를 키우려는 것은 아닌지 할 때도 있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5 #

    컼.... 10만양환설.
  • moduru 2010/03/21 14:43 # 답글

    제 경험으로는 강단사학만큼 민족주의적 세력이 없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6 #

    아니죠. 소위 강단은 그래도 많이 탈색되었습니다. 교과서가 좀 더 심한 것이지요.
  • Mr 스노우 2010/03/21 15:01 # 답글

    집필 목적 자체를 이미 민족주의적으로 설정해놓은게 문제일 것입니다. 이미 목적을 정해놓고 역사를 공부하니 모순이 뒤따를 수밖에요. (그러고도 환빠에게 까이니 안습..-.-)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6 #

    사면초가로군요.
  • 진성당거사 2010/03/21 15:33 # 답글

    현행 국사교과서는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물론 환빠님들과는 다른 의미로 말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6 #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겠지요.
  • 을파소 2010/03/21 16:12 # 답글

    문제는 있지만 그래도 시중에서 역사책 베스트셀러로 오르는 몇몇 책을 읽을 바에는 교과서 읽는 게 차라리 낫죠. 교과서보다 좋은 역사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7 #

    조 to the 망...
  • ㄲㄲㄲ 2010/03/21 17:09 # 삭제 답글

    한사군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정말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일제 강점기의 서술도 국사 교과서에서 제외시켜 버려야 할 것입니다.

    겨우 35년간의 식민 통치도 국사에서 중요한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마당에(물론 가까운 시기라는 점도 있지만), 400년이나 존속한 한군현의 지배를 다루지 않다니요?
    통치자가 이민족이라고 해서 우리 역사가 아니라면 일제 강점기도 우리 역사가 아닌 것인데요....

    저는 낙랑군 등 한 군현의 역사도 우리 역사에 당당히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대체 왜 부끄러운 일이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0년도 더 전의 일인데 그까짓 400년이란 시간이 현재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저렇게 애써서 감추려고 하는 건지 모를 일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1 17:37 #

    동감입니다.
  • matercide 2010/09/12 23:50 #

    왜 부끄러운 일이 되는 거냐고요? 이병도의 [한국고대사연구] 99쪽을 인용하죠.

    "곧 한의 동방 군현이 설치된 이후 산만적이고 후진적인 동방 민족사회는 전자(漢)의 부절(끊이지 않는)한 자극과 영향을 입어 정치와 문화에 있어 새로운 반성과 향상에의 한 모멘트를 가지게 되었다...(중략)...그리하여 당시 중국의 발달된 고급의 제도와 문화-특히 그 우세한 철기문화-는 이들 주변 사회로 하여금 흠앙欽仰(우러러봄)의 과녁이 되고, 따라서 중국에 대한 사대사상의 싹을 트게 한 것도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즉, 동방변군이란 식민통치기구의 설치는 동방 민족사회에게 축복이었습니다. 동방변군 덕분에 후직적인 조선은 선진적인 한문화의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국에 식민통치기구가 들어선 것을 이렇게 찬양하는 기술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이병도는 조선을 "후진적"으로 비하하고 매도했습니다. 동방변군이 "고급의 제도와 문화"를 가져왔다 단정짓고 후진적인 조선은 그것을 흠앙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결론 : 고대판 식민지근대화론
  • 굔군 2010/09/13 02:29 #

    matercide//제 의견에 이렇게 직접적으로 반론을 제기하시니, 친히 덧글을 쓸 수밖에 없겠군요. (다름이 아니라, 위에 비로그인으로 덧글 올린 ㄲㄲㄲ가 바로 접니다.)


    그건 이병도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죠.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도 matercide 님 혼자만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고, 정작 인용하신 이병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요.

    이병도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이병도의 생각이 한국사학계의 정설이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이병도의 견해는 아직 고대의 변군 체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것입니다. 이병도의 그 견해는 현재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동방변군을 중국의 일방적인 식민 통치 기구로 규정하는 학자들은 현재는 거의 없습니다.

    matercide 님과 같은 생각이야말로 한사군을 중국의 식민지로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일단 한의 동방변군이란 것은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colony)와는 그 양상이 전혀 다릅니다.
    제국주의란 민족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한 근대 사회에서 태동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 나타난 '식민지'라는 것은 본국의 시장 확대와, 자원과 노동력의 공급처 역할을 하는 지역으로서, 기본적으로 '착취'와 '수탈'이라는 경제적인 목적을 띠고 건설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동방변군은 그 목적 자체가 전혀 달랐습니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동방변군을 설치했느냐 하면 그건 전혀 아니올시다 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병도의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네요. 물론 동방변군의 통치가 중국에 대한 흠앙과 사대 사상의 싹을 트게 했다는 발언은 약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는 봅니다만, 한반도 지역의 고대국가들이 다른 지역(예 : 일본)보다 비교적 선진적인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동방변군을 통해 한의 문물을 다른 지역들보다 더 먼저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거든요.
    이것을 부정하려면 고조선의 문화가 중국에 전혀 꿀리지 않는, "선진적"인 문화였다는 것을 먼저 입증해야 하는데, matercide 님은 과연 그러실 수 있을런지요?


    동방변군을 통해 한문화의 "유입"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병도의 발언을 인용할 것도 없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낙랑고분에서 발굴되는 유물들에서부터 이미 고조선의 토착민 사회가 중국계 정치 세력의 영향을 받아 "한화(漢化)"되어 갔던 과정이 여실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아예 한사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matercide 님처럼 동방변군 시절을 중국의 식민 통치 시기로 파악하면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우리 역사에서 빼 버리는 것 자체가 400년이나 되는 우리 역사의 허리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뚝 잘라 버리는 꼴이라는 거죠.
  • 슈타인호프 2010/03/21 18:02 # 답글

    간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요(웃음) 애매모호하게 기록하기가 이를데 없는.
  • 야스페르츠 2010/03/21 18:18 #

    컼 간도도 있었군요... ㅠㅠ
  • Allenait 2010/03/21 19:31 # 답글

    ...7차를 본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군요. 그리고 6차 내용도 거진 반 잊어버려서 말이죠(..)
  • 야스페르츠 2010/03/22 01:14 #

    다행히 7차는 국편위에서 서비스하더군요. ㅡㅡ;;
  • 돈키호테 2010/03/21 22:20 # 답글

    식민지배 기억이 안 좋은 역사라고 해서 없에버린다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로마 제국의 속주로 있었던 시기를 부정해야 하겠죠. ㅠ..ㅠ 어익후. 생각해보니 러시아 역사는 로마노프 왕조부터에요. ㅋㅋㅋㅋ

    바이킹 찌끄래기들의 류리크나 타타르한테 조공하던 시대는 어머니 러시아의 역사가 아냐!!!!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만행들을 교과서에서 생략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거리가 아니라니깐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01:15 #

    역지사지가 필요합니다....만 그들은 어차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지라. ㅡㅡ;;
  • matercide 2010/09/12 23:57 #

    로마는 얘기가 다르죠. 콘스탄티누스 때 동천했고, 그 뒤 로마의 서쪽 영역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를 이룬 종족들에게 정복당하고, 동방은 튀르크한테 먹혀서 명맥이 끊어졌죠.

    그러나 중국은 다릅니다. 400년 가까이 한강 이북을 지배한 나라의 후예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들은 오늘날 강대국으로 서서히 부상하고 주변의 여러 종족들을 식민지배하고 민족말살을 저지르고 있습니다.(갈구되 흡수하자)

    뭐 중국만 위험한 건 아니죠. 36년 가까이 지배한 천황의 일본. 그러나 일본도 사실은 미국의 대리국이였을 뿐이니까(2차대전 때 미국의 대리국에서 아시아의 맹주국으로 변신하려다가 실패했죠.) 진정한 위험은 미국이죠. 미국에 일본. 거기다 중국까지...

    이렇게 불온하고 사악한 이웃이 서린 시국을 해결하려면 여러 작은 나라들과 연합해야 하지만 동남아에서는 재벌을 필두로 여려 한국인들이 동남아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만 해서 원한을 안겨주고, 최근에 미국에 너무 빌붙어서 국제사회에 적만 만들고...(먼 산)

    결론 : 남북한&해외동포들은 아마 안 될 것입니다.(뭐가 안 될거라 하는지는 각자의 상상)
  • 굔군 2010/09/13 01:19 #

    matercide//당시 기독교의 수장인 로마 교황은 서로마에 있었는뎁쇼?
    그리고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현재의 중국도 이민족의 후예들이라니까요.

    저번에도 초록불 님의 포스트에 똑같은 내용의 덧글을 올리셔서 제가 반박해 드렸는데도 전혀 달라진 게 없으시군요.
    초록불 님 블로그에 "굔군 님의 자세한 설명이 고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역사관이 굉장히 보수적인 듯하네요"라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은듯한 뉘앙스로 덧글 다신 matercide 님과 여기서 덧글 다는 matercide 님은 다른 사람인가 보죠?
  • matercide 2010/09/13 01:25 #

    굔군 / 서방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로마 서쪽 땅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서방 카톨릭의 수장이지 로마의 국가원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동로마에서 주교를 임명하던 로마의 황제는 그럼 뭡니까?

    비록 제 역사관이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뭐 그래도 윤지당 임씨처럼 유비가 한나라 황족이 맞다고 우기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로마가 보스포러스 해협 서쪽의 누추한 곳에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동진이 한때 중원의 통일왕조인 서진과 같은 왕조이듯이 동로마도 로마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동로마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제가 쓴 댓글 셋째 문단에 대한 반박은 없네요.
  • matercide 2010/09/13 01:26 #

    추가 : 유교에서 정윤을 엄격히 가르는 사관을 떨치기는 쉽지 않을지도. 워낙 어릴 적에 접한 사관이라
  • 굔군 2010/09/13 02:58 #

    matercide// 그럼 서방에 있었던 서로마 황제는 뭔가요? 라고 묻고 싶어지는 댓글이군요.

    matercide 님의 논리는 콘스탄티누스가 동천했기 때문에 정통성은 동로마에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제 말은 그 논리에 대한 비유로써, 카톨릭의 수장인 로마 교황을 언급한 것인데, 이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네요 ㅡㅡ;;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야, 서로마에도 엄연히 국가 원수인 황제가 있었으니, 정통성이 없었다고 말할 것도 없지요.
    서로마 황제 역시 엄연히 테오도시우스가 임명한 서방의 "합법적"인 통치자입니다. 설마 서로마를 동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떨어져 나간 반역자 쯤으로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리고 강남으로 쫓겨난 동진 왕조 역시 결국에는 남북조를 거쳐 이민족 왕조인 수나라에게 멸망당하는데, 그럼 님이 말씀하시는 <서로마 - 이탈리아>의 계승 관계와 다른 게 뭔데요?
    님의 논리대로라면 이탈리아가 서유럽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듯이, 중국 또한 한반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셋째 문단에 대한 반박이라는 건 대체 뭘 말씀하시는 건지? 저는 기본적으로 님의 역사관에 대해서만 반박했을 뿐인데요. 뭐, 일본, 미국, 2차 대전에 관련된 내용도 반박을 원하시는 건가요? ㅡㅡ;;
  • 프랑켄 2010/03/22 15:58 # 답글

    위에 한사군 얘기 나와서 묻는데, 한사군이 초기엔 말 그대로 '한이 설치한 네 군현'이었지만, 중기를 지나 후한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실상 토착민 국가로 바뀌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더군다나 최후의 한군현이었던 낙랑군이 멸망한 시점은 313년 이 때는 후한도 망했고 위진남북조가 시작되는 대혼란기였으니 만큼 중국의 직접적 지배기간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 거 같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22 19:15 #

    낙랑군의 성격에 대해서 변군, 토착민과의 관계 등을 통해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긴 합니다..........만......

    토착민 국가라니요..... 국가라니요..... ㄷㄷㄷㄷㄷㄷㄷ
  • ㄲㄲㄲ 2010/03/23 01:30 # 삭제

    후한 건국 쯤의 혼란기에 토착 세력의 반란으로 잠시 독립(?)이 이루어진 적은 있습니다만, 반란을 일으킨 그 토착인(즉 고조선계 낙랑인)은 스스로를 '대장군 낙랑태수'라고 칭했습니다(왕을 칭한 게 아님).
    게다가 얼마 못 가서 후한 광무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군사를 보내 반란을 평정하고 재정복이 이루어지죠.
    그러므로 잠시 중국의 군현 지배에서 이탈한 적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토착민에 의한 '국가'를 이루었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후 공손씨 정권에 의해 또 한번 중국에서 이탈하지만, 조위에 의해 재정복.
    서진 초기까지는 중국이 낙랑에 제후왕을 파견할 정도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물론 멸망 시점인 서진 말기에는 장통이라는 군벌 세력에 의해 중국에서 이탈한 상태였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0/03/22 22:55 # 답글

    고구려가 낙랑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중국본토에서의 혼란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일찍이 대무신왕이 낙랑을 점령한 바 있지만, 후한 광무제가 군대를 파견해 오는 바람에 다시 빼앗기고 말았다죠. 낙랑이 완전히 멸망한시기, 중국은 영가의 난으로 난장판이 되었던만큼 외부에 눈돌릴 여력이 없었지요. 황실이 아예 강남으로 도망갈 정도였으니... 만약, 서진이 중원을 계속 안정적으로 지배했다면 고구려가 낙랑을 정복할 수 있었을 지 의문입니다.

    덧. 동진-남조시대의 강남왕조들은 참파경략을 자주 시도하며 오늘날의 베트남 중부지방에 대한 식민지배에 열을 올렸다는데, 이는 동남아와의 남해무역루트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낙랑군의 경우도 국제교역루트의 한 부분이었고 그런만큼, 중국왕조들이 오랫동안 지배를 유지하려 했다는 설이 있는데 제 얕은 지식으로는 당시 낙랑이 교역의 중계지로 기능했을지 잘 모르겠네요.
  • ㄲㄲㄲ 2010/03/23 01:51 # 삭제

    사실 대무신왕의 낙랑 정복은 삼국사기에만 나오는 얘기죠. 신빙성에 의심이 간다는.

    토착인 왕조에 의한 반란을 평정한 건 AD 30년인데, 삼국사기에 나오는 광무제의 파병은 AD 37년으로 서로 연대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냥 낙랑군에 소속된 옥저 지역의 소국을 정복한 기사로 보는 게 옳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진이 영가의 난 이전까지 낙랑군을 안정적으로 지배했던 건 사실입니다. 조위 시절까지만 해도 고구려는 중국의 침공으로 허덕이고 있었던 게 사실이니까요. 낙랑군 정복 같은 건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죠.
    그리고 낙랑군이 국제 교역의 중계지로 기능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낙랑군 멸망 이전까지 남쪽의 삼한과 왜는 중국 본토가 아니라 주로 낙랑군을 통해 중국의 문물을 접했거든요.

    말하자면 낙랑군은 중국의 동방 진출의 거점이자 삼한과 왜로 중국의 문물이 전파되는 교역 창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3 10:14 #

    ㄲㄲㄲ님이 다 설명해주셨네요. ㅎㅎ
  • 현암 2010/03/22 23:17 # 답글

    하아 그러니 교과서를 다시 쓸 필요가 있는 겁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23 10:15 #

    그러니까 우린 국사 같은 건 배우지 말고 연아신을 응원해야 합니다.
  • 마무리불패신화 2010/03/24 00:26 # 답글

    언제부터인가 국사교과서를 보니 요동지역이 발해의 영토로 되어 있더군요.....

  • ㄲㄲㄲ 2010/03/29 00:04 # 삭제

    당나라 시대에 요동 지역에는 당나라가 고구려의 왕족을 왕으로 봉한 괴뢰국가인 소위 '소고구려국'이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지요.

    국사학계에서는 8세기에서 9세기 중반즈음에 발해가 소고구려국을 흡수 합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견해가 교과서에 반영된 게 2002년이나 2003년쯤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 무렵부터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발해 영토 지도가 요동까지 포함한 것으로 수정되었으니까요...

    근데 이게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고, <요사> 등에 발해가 요동을 영유했다는 간략한 기록이 나온다는 것 같더군요.
  • blue 2010/03/28 21:21 # 답글

    언젠가 국사의 시각에 대해 비판적인 책을 보게 되었는데, 요서경략설은 북조계 사서에는 전혀 언급이 없고 오직 남조계 사서에만 나오는 기사라고 하더군요. 왜 특정 기사가 한쪽 계통에만 치우쳐져 있는지 연구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을듯 합니다. 물론 북조쪽은 빼앗긴 영토에 대해 일부러 언급 안 했을 것이다 류의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만, 소위 '환빠'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이슈가 될 수 있으려나요.
  • ㄲㄲㄲ 2010/03/29 00:10 # 삭제

    사실 따지고 보면 백제 요서 경략설 떡밥이 나오게 된 것도 다 그놈의 한사군 때문이죠 ㅋㅋ
  • ㄱㄱㄹ 2010/04/07 22:46 # 삭제 답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증거가 어디 씌여있는가? 실증사학적 측면에서 밝히지도 못하면서 드립질들은....어떤 짱꼴라 새끼가 말하기를 진시황 때부터 만리장성이 닿았던 평양 이북은 지들의 식민지였다고 평양 이북은 원래 지네땅이라고 드립질이었구만. 그 새끼뿐만아니라 다들 교과서로 그렇게 배운다고 하는구만. 무슨 한사군의 식민지 드립이냐? 정신들 차려라.
  • 야스페르츠 2010/04/08 00:28 #

    쯧쯧.
  • MD 2010/05/15 16:20 # 삭제 답글

    한국에서 중학교 교육 받으면서 이 점이 제일 짜증났습니다.

    다만, 본문에서 밝히신 것과 같이 외국도 마찬가지더군요.
    캠브릿지 대학교에서 출판하는 그놈의 역사 교과서, 미화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대영제국 시대의 식민지 경영이라든지, 세계 일차대전을 보면 영국은 절대선.

    일본관련 역사를 크게 다루는 건 맞습니다만, 주로 세계 이차대전중의 만행을 다루는것 같더군요. 다만 역시나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영국의 역할이 일본을 막아내는데 아주(?) 비중이 컸던 걸로 가르치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5/16 12:03 #

    외국이나 왜국이나 우리나라나 뭐 거기서 거기죠. ㅡㅡ;;
  • 데카르트 2010/06/01 17:10 # 삭제 답글

    그런데 말이죠
    환빠들이 종종 즐겨 언급하는 '치우'말입니다.

    강단학계에서는 어떻게 취급하고 있나요? 환빠 쪽에서 얘기하는 것만 들어가지고
    정식으로 어떻게 인정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ㅎ
  • 야스페르츠 2010/06/01 18:24 #

    외국의 신화 속 등장 인물을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무슨 신경을 쓰겠습니까. 그냥 옆나라 고대 신화로만 취급될 뿐이죠. 한국사에서는 아예 언급될 필요가 없고, 중국사를 하는 사람들이나 좀 훑어볼 뿐입니다.
  • 4 2010/06/30 21:47 # 삭제 답글

    현재 교과서는 광개토대왕 이전에 요동정벌을 한것으로 가르치고 있나요?
    근초고왕대의 지도와 비교해보라는 말씀이 뭔지 잘 이해가 안되네요..

    제가 5차교육과정을 배웠는데
    아마 민족주의적 역사서술은 제가 배운 이 과정에서 강화된듯 싶더군요
    동이의 강역을 요동 요서 산동까지 표기한점
    백제의 요서 산동진출..
    모두 이때의 일로 기억합니다.

    제가 배운 교육과정에서도 한사군에 대해선 교과서에 그리 큰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참고서에서나 나오구요
  • 야스페르츠 2010/07/01 09:36 #

    교과서는 요동 정벌에 대한 언급이 딱히 없습니다. 그런데 광개토왕 이전의 고구려 지도에는 요동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에는 낙랑군 지역까지 고구려의 원래 영토로 그려진 경우가 많습니다. 근초고왕대의 지도를 보시면 요동이 고구려의 영토로 그려져 있지요.
  • 파랑나리 2010/11/21 16:28 # 답글

    결론 : 한국사 교과서('국사'라는 말 자체가 일제의 용어라서, 또 상대성이 빠져서 쓰기 좋지 않습니다.)를 국정교과서에서 해방시키고 교사들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질유키 2012/05/21 22:38 #

    중국,한국과 달리 일본은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도 한국사를 배운 경험으로 보면 대표적으로 김부식-신라계승, 묘청-고구려계승이라는 공식과 조선시대에선 당파싸움을 부각하는 내용이 거슬렸습니다.
  • 파랑나리 2012/05/21 23:08 #

    묘청의 자주성 드립이야 묘청이 내세운 근거의 비합리성만 살펴도 의심스러운 거고 당파싸움드립이야 학계에서 오래전에 논파된 썩은 떡밥인데 이거 아직도 대중에게는 따끈따끈한 새 떡밥이어서 답답합니다. 저 또한 이 두 가지 떡밥에 헤롱거렸고요. 그 덕분에 조선을 멸시하는 감정이 유지되고 백지원 같은 사기꾼이 날뛸 수 있고요.
  • 질유키 2012/05/21 23:22 #

    그리고 신라가 같은 민족국가를 배신해 통일했다는 말도 시대착오의 오류라고 밝혀졌지만 아직도 그게 사실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이 명과 청에 비굴했고 무능했다는 말도 일제시대 식민사학의 잔재입니다.
  • 파랑나리 2012/05/22 10:39 #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 백제를 없애고 통일(발해가 있기 때문에 이 말은 틀렸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되었지만 아직도 꿋꿋이 살아있습니다.)한 것을 비판하는 게 오늘날 남한이 미국, 일본과 손을 잡고 북한과 대립하는 모양새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면 그 취지야 공감하지만 나당연합군을 한미일삼각동맹과 비교하는 건 신라에 대한 모독입니다. 신라는 당나라와 싸워서 이겼잖아요.

    그리고 조선에 대한 모함.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대중은 굳게 믿습니다. 진중권 말대로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설득시킬 자신이 없습니다. 거기다 조선의 사대부는 거의 무능했고 그래서 유능한 사무라이가 다스리던 일본에게 먹혔다는 주장, 옛날에는 저도 그 떡밥을 믿고 열패감에 빠졌지만 이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안쓰럽게 쳐다봅니다. 당장 그 유능한 사무라이가 다스리던 일본이 얼마나 병맛 쩌는 나라였는지 안다면 그렇게 말 못할텐데. 당파싸움? 천황의 지배하에 탕탕평평한 일본은 군부가 당파싸움하느라 쿠데타가 두 차례나 일어났거늘. 대다수 한국인은 이걸 모릅니다. 그래서 답답합니다.

    결론 : 한국도 역사교과서를 교사가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 질유키 2012/05/22 13:35 #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 백제를 없애고 통일

    <-국사책에 나오는 통일,배신,외세라는 단어들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판단한 시대착오의 결과입니다.
    당시 신라인들은 고구려,백제,왜의 압박때문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당과 손을 잡한 것 뿐이고 신라가 해왔던 전쟁도 통일전쟁이 아니라 영토확장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외세는 당뿐만 아니고 고구려,백제도 신라입장에선 외세였습니다.


    조선에 대한 모함.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대중은 굳게 믿습니다.

    ->이글루스의 의식있는 역사가들이 아무리 조선에 대한 편견을 지적해도 대중들의 편견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법입니다. 박노자는 그 원인을 19세기 사회진화론과 약육강식론의 영향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박노자 말에 공감하는데 그 이유가 학교교육만해도 경쟁부터 강조하고 있고 이에 영향받은 아이들이 힘약한 나라는 병신국가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토가 넓고 개마무사라는 철갑중기병까지 갖춘 고구려를 가장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 파랑나리 2012/05/23 01:13 #

    1. 공감

    2. 마찬가지. 조선을 멸시하는 원인은 비뚤어진 감정인데 이 비뚤어진 감정의 근원을 제대로 지적했습니다. 사회진화론과 약육강식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입니다.(짐승은 약한 것을 짓밟아도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이 말은 짐승에게 모욕일 수도 있겠네요.) 다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북한의 교육은 남한처럼 학교교육에서 피말리는 경쟁을 강요하지 않는데(거기도 입시제이지만) 거기서도 조선까독이 남한과 같습니다. 조선을 민족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없애버리고 싶은 역사로 여깁니다. 일제의 식민사학에 반발하면서 식민사학의 정수에 깊이 빠져있는 까닭은 저로써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북한이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제국주의의 생태계 파괴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북한의 공상과학 소설은 제국주의적 팽창욕구와 자연을 인간에게 굴복시키려는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일제와 맞서면서 일제의 해독에 물든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질유키 2012/05/23 09:39 #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스탈린식 파시즘국가였습니다. (물론 북한은 스탈린주의를 극단화한 파시즘 국가입니다.)

    파시즘의 공통점이 힘과 경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북한도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북한은 내부적 경쟁이 아닌 외부와 경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남한과 다릅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니 공자가 의봉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는데 의봉인은 정의를 내세워 당시 부정부패한 관료들을 척살했다고 말했지만 공자는 그건 힘의 논리로 생긴 문제를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미봉책이고 이분법에 빠져있다고 비판했습니다.
  • 파랑나리 2012/05/23 20:08 #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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