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1 13:09

오호망양(五胡望洋) 41 - Brand New Age 역사

북연 정권의 군주는 한족인 풍씨 가문이었다. 풍발이 고운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래, 북연은 요서에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발톱을 곤두세운 고양이마냥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414년, 위의 탁발사는 우십문(于什門)을 연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때 기묘한 힘겨루기가 있었다.

북연은 위 정권의 적국인 유연, 호하과 동맹을 맺어 위 정권을 적대시하는 것을 분명하게 한 바 있다. 그런데 풍발은 연왕의 지위에 있었고, 탁발사는 어쨌든 황제다. 황제의 조서를 가져온 우십문은 풍발에게 "조서에 예를 표하고 풍왕이 직접 받을 것"을 요청했고, 풍발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에 풍발은 강제로 우십문을 대궐로 끌고와 절까지 하게 만들었고, 끝내 폭언을 퍼붓는 우십문을 옥에 가두고 만다. 우십문이 너무 고지식(?)한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풍발은 위 정권과 같은 하늘을 이고 있을 생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북연이 사신을 억류하는 벼랑끝 외교(?)를 선보이며 삐딱선을 탔으니 위 정권은 당연히 북연을 공격하였는데, 그다지 성의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사신을 억류한 것이 414년인데, 이후 몇 년간 2차례의 공격이 있었지만 모두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고  - 물론 잽 2방에 북연은 떡실신 할 뻔 했지만 - 이후 10년이 넘도록 연은 깨끗하게 무시를 당했다. 워낙에 세력 자체가 별볼일 없었고, 동방의 강대국 고구려와의 관계도 염두에 있었을 것이다. 완충지대로 남겨두는 편이 정벌하는 것보다 나았다는 판단일 것이다. 게다가 위 정권은 별볼일없는 연에 신경을 쓰기에는 너무 바빴다.

가시를 잔뜩 곤두세운 채 한결 같이 위 정권에 적대하는"나 님을 존중하라능!" 북연 정권의 왕 풍발은 그렇게 근근히 살다가 430년에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은 것은 태자 풍익을 죽이고 쿠데타로 집권한 풍홍(馮泓)이었다. 풍발은 나름 삐딱선을 타면서도 국제 정세의 틈바구니에서 평화를 누렸지만, 뒤를 이은 풍홍은 경우가 달랐다. 풍홍이 즉위한 이듬해, 위 정권이 거의 모든 적수를 격파해 버린 것이다.

431년, 호하가 토욕혼에게 멸망하면서 화북의 패권은 완전히 위 정권에게 넘어갔다. 북량 정권은 일찌감치 위에 사신을 보내 복속을 청하였고, 토욕혼 역시 사로잡은 혁련정을 송환하면서 우호 관계를 맺었다. 남방 송 정권의 공격도 물리쳤고, 북방의 유연도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 탁발위는 명실공히 화북 최강, 아니 중국 최강의 세력이 된 것이다.

이제 멀리 동쪽에서 귀찮게 굴던 잉여를 처리할 시간이 왔다. 탁발도는 432년부터 북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북연은 수도를 제외한 지역은 거의 포기, 수도에서 근근히 농성으로 버틴다. 공격하는 위 정권 측도 그렇게 성의있는 공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북연 쯤은 정벌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일 정도의 무성의한 공격이었다.

432, 433년의 두 차례 공격으로 북연은 완전히 피폐해졌다. 결국 434년, 풍홍은 위에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고, 그 대가로 21년 전에 억류하였던 사신 우십문을 송환했다. 21년 동안이나 절개를 굽히지 않은 꼰대충신의 귀환이었다. 탁발도는 우십문의 귀환을 책문으로 종묘에 알렸을 정도로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천하에 이를 널리 알렸다.

그러나, 북연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 태자를 입시할 것을 명했으나 이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위의 무성의한 공격이 계속되었다. 풍홍은 위에 사신을 보내 사죄하기도 하고 고구려를 의지하거나 남방의 송 정권에 신속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살길을 모색했다. 436년, 마침내 탁발도는 북연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였고, 풍홍은 고구려로 망명하는 길을 택했다. 3명의 군주, 30년 동안 존속하였던 북연 정권의 멸망이다.



이제 양주의 북량 정권의 최후를 살펴볼 때다. 북량의 왕은 저거몽손. 401년에 즉위한 이래 북량 정권을 30년이 넘도록 이끌며 일개 군벌에서 양주의 패권을 장악한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시킨 일세의 영걸이다. 그러나, 북량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일개 주에 불과한 소국. 431년에 탁발위가 화북의 패권을 장악하자 저거몽손은 재빨리 위에 신속해서 목숨을 부지하였다. 저거몽손은 433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저거목건(沮渠牧犍)이 뒤를 이었다.

북량이 장악하고 있는 양주는 서역과의 통로였다. 북량은 위 정권에 신속하였으니 서역의 여러 나라들도 위 정권으로 사신을 보내왔다. 탁발도는 북량을 통해서 서역에 답신을 보내 패권을 확인하였고, 저거목건을 누이동생과 결혼하게 하여 우대하였다. 그런데, 이 결혼이 화근이었다.

저거목건에게는 죽은 형이 여럿 있었는데, 유목민족 특유의 형사취수 제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거씨는 흉노족이었다.) 형수인 이씨(李氏)와 통정하였다고 한다. 형제 세 사람이 돌아가며 사랑했다고 하니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씨는 저거목건의 왕후가 된 무위공주를 독살하려 하였다가 실패하였고, 탁발도는 이씨를 넘겨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저거목건이 이를 묵살했다.

 마침 이 무렵 서역에 갔던 사신도 돌아왔는데, 사신들은 북량이 유연과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하였다. 탁발도는 마침내 북량을 멸망시키기로 결의했다. 439년에 거행된 출정식에서 탁발도는 저거몽손의 죄목 12가지를 열거하며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 단언하였다.

저거목건은 유연에 원군을 청하고 고장 성에서 농성을 벌였다. 탁발도는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항복할 것을 촉구했는데, 마침 유연이 북방에서 노략질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저거목건에게 전해졌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저거목건은 항복을 거부했다. 물론, 이는 그저 삽질일 뿐이었다. 북방에서 유연이 분탕질을 친다고 해서 이미 수도에서 농성이나 벌이고 있는 저거목건을 놓아두고 돌아갈 탁발도가 아니었으니까.

결국, 고장성은 함락되었고, 저거목건은 체포되었다. 3명의 군주, 43년 동안 이어온 북량의 멸망이었다. 또한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위키백과가 전하는 화북 통일의 순간


304년, 흉노의 유연이 한나라를 건국한 이래 130여 년 동안 이어진 혼란이 마침내 일단락되었다. 그 동안 20개가 넘는 국가가 세워졌다 멸망했고, 수많은 영웅들이 별처럼 빛나다가 사라져 갔다.



그리고 탁발 위의 화북 통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大尾.






덧글

  • 한단인 2010/03/01 13:12 # 답글

    자! 이제 남북조 대결과 동위 서위 분열을 연재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북주, 북제 군주의 막장 짓거리를 서술하시면 독자들이 소소한 재미를 느끼겠지요.
  • 야스페르츠 2010/03/01 13:16 #

    그건 악희 님이 다 써먹어서 할 게 없다능! ㅎㅎㅎ
  • 한단인 2010/03/01 13:43 #

    연동해서 연재하시면 됩..
  • 악희惡戱 2010/03/01 15:18 #

    찾아보면 또 있겠죠^^;
  • 초록불 2010/03/01 13:28 # 답글

    배너 클릭 하고 감돠... 짝짝짝...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7 #

    너무 길었어효. 흑흑
  • 들꽃향기 2010/03/01 14:09 # 답글

    저거목건의 형수문제는 할말이 없군요 ㄷㄷ 저거목건은 뻥카를 쳤지만, 결국 본전이 없어 작살나고 ㄷㄷ

    이제 혼란스런 한 시대가 대충 마감되고, 다음시대를 준비하는 기틀이 마련되는 시기로 넘어갔군요. 그간 올리신 연작을 진심으로 잘 보았습니다. ^^ 이와 같은 16국 시기를 정리하는 것도 고역이셨을텐데 말이죠...다시한번 쓰신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베너 한번 누르고 갑니다. ( ..))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7 #

    감사합니다. ^^
  • 른밸 2010/03/01 15:33 # 답글

    짝짝짝-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남북조대결 연재로 들어가시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7 #

    그, 그런 거 모른다능!
  • 마무리불패신화 2010/03/01 16:22 # 답글

    남북조 시대를 기대하겠습니다.ㅎ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8 #

    그, 그런 거 모른다능! (2)
  • ㅠㅠ 2010/03/01 17:33 # 삭제 답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남북조 연재 재밌겠네요.ㅎㅎ.?!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8 #

    그, 그런 거 모른다능! (3)
  • 지나가던 손경수 2010/03/01 20:30 # 삭제 답글

    드디어 끝났군요. 참 북연이나 북량이나 위태위태한 상황에 허세는 쩔었군요…. 그동안 잘보았고 앞으로도 연재물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8 #

    이거 자꾸 왜들 이러십니카.
  • BigTrain 2010/03/01 21:18 # 답글

    그동안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8 #

    감사합니다. ^^
  • paro1923 2010/03/01 22:49 # 삭제 답글

    자아, 이제 책으로 내시는 일만 남았다능... (응?)
  • 야스페르츠 2010/03/01 23:18 #

    이런 걸 누가 책으로 내줍니까. ㅎㅎ
  • 슈타인호프 2010/03/02 00:52 # 답글

    고생하셨습니다. 아쉬운데 후속 시리즈를 계속~~^^
  • 야스페르츠 2010/03/02 11:05 #

    어허허. 오해십니다. ㅎㅎ
  • 바이욘 2010/03/02 09:49 # 삭제 답글

    지금까지 너무 잘읽었습니다
    5호16국시대는 책으로 사고싶어도 자세하게 나온것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너무 고마웠습니다 지도까지 상세하게 그려주셔서 너무 많이 도움이되었네요
    다음 북제 북주도 많이 기대됩니다
    북제 북주까지 연재하시고 책으로 한번 출간해보시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02 11:05 #

    어허헣. 그, 그런 거 몰라효.
  • 네비아찌 2010/03/02 14:58 # 답글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도 후속 시리즈를 기대하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3/03 11:55 #

    어허허. 오해십니다.
  • 耿君 2010/03/02 15:22 # 답글

    연재 종결 축하드립니다 ㅋㅋㅋ
  • 야스페르츠 2010/03/03 11:55 #

    이제 떡춘을... ㅠㅠ
  • 야츠페르츠님 광팬 2010/03/06 11:25 # 삭제 답글

    이제 끝인가요? 정말 아쉽네요.....
    진짜로 130여년의 세월을 지내온 듯이......
    그동안 너무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책으로 출판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 야스페르츠 2010/03/06 15:00 #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이런 쪼렙의 글을 누가 출판해주겠습니까. ㅎㅎ
  • 에드워디안 2010/03/09 21:05 # 답글

    개인적으로 동진남조(東晋南朝)시대에 관심이 많지만 이 시대를 통틀어 가장 인상깊게 생각한 인물은 송무제(宋武帝) 유유(劉裕)입니다. 일개 밑바닥 하급군인으로부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황제가 되기까지, 그 파란만장한 생애는 둘째치더라도 그가 세운 일련의 업적들은 훗날 남조의 정치체제와 강남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지요. 후손들이 다소 막장이긴 했지만...

    유송(劉宋)왕조는 물론 그 뒤를 이은 소씨(蕭氏)의 제(齊)왕조는 중국역사를 통틀어 봐도 제실(帝室)구성원들이 유독 이상한 인간들이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인데... 이것에 대해 일본의 중국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는 자신의 저서 [중국중세사]에서 송의 유씨와 제의 소씨를 포함한 북방에서 강남으로 내려온 망명군인 가운데, 후한 말기 이래 화북에서 활동하던 북방 이민족군대의 영향을 농후하게 받은 자들이 강남으로 내려온 후에도 계속 그 기질을 이어온 결과가 아닌가하는 주장을 내놔 자못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 백인대장 2010/03/19 02:34 # 삭제 답글

    잘봤습니다.
  • 똥필 2010/05/03 01:11 # 삭제 답글

    수고하셔습니다. ㅎㅎ
  • 멧돼지 2014/02/03 20:15 # 삭제 답글

    정말 숨도 안쉬고 5호십육국 읽었습니다
    야스페르츠 님덕에 그 시대를 많이 알게 되엇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시는일 꼭 성취하시길 () 합장 ()
  • 야스페르츠 2014/02/05 00:06 #

    즐겁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유사역사학 방지

얼마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