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20 09:37

오호망양(五胡望洋) 39 - 먼치킨, 비상하다 역사

태조 도무제의 광증으로 인해 휘청대고 있던 탁발위 정권은 2대째인 탁발사(拓跋嗣)의 치세에서 차근차근 국력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탁발사 역시 한식산을 복용하였기 때문에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광증으로 나라를 망쳤던 도무제와 달리 탁발사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일찌감치 맏아들 탁발도(拓跋燾)를 태자로 삼고, 자신은 뒷선으로 물러나 앉아 태자에게 나라를 다스리게 했던 것이다. 또한 선대로부터 나라를 보필하던 한족 출신 관료 최호(崔浩)를 비롯하여 현명한 신하들로 정사를 이끌게 하였으니, 탁발위의 국력은 날로 충실해져 갔다.

422년 5월, 송 왕조의 창건자 태조 무제 유유가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은 것은 17세의 유의부. 탁발사는 송 정권이 국상으로 인해 심란해진 틈을 타서 대대적인 정벌을 벌이기로 마음먹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최호의 진언도 무시한 채, 탁발사는 그해 겨울에 부하 해근을 파견해서 황하를 건넜다.

첫번째 공격 목표는 낙양으로 향하는 교두보였던 활대와 진류였다. 기습을 당한 송의 수재들은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무너졌고, 해근은 호뢰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숙손건이 이끄는 일단의 군대는 청주와 연주를 공략하였다. 연주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청주는 겨우 버티고 있는 형편이었다. 423년 정월, 위군의 거센 공격에 낙양은 허무하게 떨어졌다. 유유가 수십 년 만에 회복했던 구도 낙양은 채 10년도 유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송의 판도에서 영영 사라졌다.

3월에 이르러서야 겨우 송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는데, 그나마도 병력이 부족하여 이미 무너져버린 사주 지역은 포기하고 청주로 향해야만 했다. 청주를 공략하던 숙손건의 군대는 전염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므로 구원군이 나타나자 미련없이 포위를 풀고 서쪽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하여 5호16국시대 내내 항상 이민족의 손에 있었던 청주, 즉 산동반도는 이때의 승리(?) 덕분에 잠시나마 더 한족의 손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한편, 호뢰관은 위군에 완전히 포위되어 200여 일을 처절하게 농성한 끝에 결국 함락되었다. 위군은 사주와 예주 일대를 평정하고 허창에서 종성까지를 경계로 하여 황하 중류 일대를 완전히 평정하였다. 이로써 송은 완전히 위축되었고, 먼치킨 위 정권의 거침없는 비상이 시작되었다.


423년 11월, 태종 명원제 탁발사가 세상을 떠나고 태자 탁발도가 16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탁발규, 탁발사에 이어 3대째 10대의 황제가 즉위하였던 셈이다. 위 정권 황제들의 단명(?) 덕분일까? 어쨌든 10대의 혈기왕성한 황제는 충만한 생명력 만큼이나 적극적이었다.


424년에서 425년에 걸쳐 유연을 공격하여 크게 승리하였으며, 426년에서 427년까지는 호하를 공격하여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기도 했다. 호하와의 1차 전쟁은 이전 포스팅에 상세하게 소개한 바 있다. 428년에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1차 전쟁의 결과는 통만성 함락, 호하의 황제 혁련창의 체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때 체포된 혁련창은 평성에서 억류되어 살았는데, 젊은 탁발도는 혁련창을 대동하고 사냥을 다니는 등 거리낌없이 행동하면서 그를 조롱했다. 429년에는 다시 유연을 공격하여 최종적인 한 방을 먹이는데는 실패했지만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세월은 살같이 흘러 430년의 해가 밝았다. 평성에 남방의 사신이 찾아왔다. 일전의 전쟁 이후 송 정권과는 화친이 성립되었던 시기였다.


"하남은 옛날에 송의 땅이었으나 중간에 저들에게 침략된 바 있으니, 지금은 마땅히 옛 경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고 하북에는 관심이 없소이다."

河南舊是宋土,中為彼所侵,今當修復舊境,不關河北。


황하 이남의 땅을 내놓으라는 엄포이자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송 정권의 새로운 황제였던 유의륭이 전 황제인 유의부 시절에 빼앗긴 하남 일대를 되찾아 설욕하겠다는 의미였다. 탁발도는 분기탱천해서 즉각 방어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송군의 진격은 거침없었고, 하남 일대에 주둔한 위군은 너무 병력이 부족했다. 결국 탁발도는 무의미한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 모든 수비군을 황하 너머로 철수시켰다. 송군이 승리한 것이다. 물론 싸우지는 않았지만.


이 승리 덕분에 송군은 기고만장했다. 사신을 파견할 때까지만 해도 하남만 내놓으라던 그들이었지만, 이렇게 싸우지도 않고 이기고 보니 황하 이북도 넘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황하를 건너 파견한 군대는 단숨에 전멸당했지만, 송군의 자만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편, 관중에서 간신히 한숨을 돌린 혁련정은 송군이 북벌을 벌이자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고 협공을 벌이기로 합의한다. 위를 멸망시키고 황하 이북의 태행산을 경계로 땅을 나누자는, 참으로 거창한 계획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탁발도는 송군은 일단 내버려두고 호하 정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탁발도가 이끄는 위군은 호하의 거점이었던 평량을 공격하였다. 평량은 수비 태세를 굳혀서 함락시킬 수 없었지만, 마침 하의 황제 혁련정이 평량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 오는 것을 포착한 탁발도는 중도에서 이를 맞이해서 완파하는데 성공했다. 혁련정은 상규로 달아났고, 탁발도는 여세를 몰아 안정과 장안을 점령함으로써 호하의 숨통을 사실상 끊어 버렸다. 평량도 오랜 농성전 끝에 떨어졌다.


한편, 탁발도가 혁련정과 대결하는 동안 포판을 지키고 있던 안힐이 낙양을 기습해서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이 승리로 사주 일대가 차례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송 정권은 손쉽게 점령했던 하남의 영토를 고작 며칠만에 모조리 상실하고 말았다. 여세를 몰아 위군은 활대를 포위하여 청주 지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해를 넘기도록 계속된 청주 지역을 건 혈전은 위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결국 청주를 점령하는데는 실패하였다.


결국, 430년 한해를 꼬박 지세운 탁발위 대 유송의 전쟁은 애꿎은 호하만 개박살이 났을 뿐, 위와 송은 전쟁이 터지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430년 말의 형세




덧글

  • 海凡申九™ 2010/02/20 10:01 # 답글

    근디 궁금헌 것이 있어라
    쩌그 한식산이라는 것이 긍께 자수정이랑 인삼을 섞어 조제허는 거시기로서,
    먹으믄 몸이 발정난 거시기겉이 불타올라불어서 찬 음식만 먹어불게 하는 그 약 맞당가요잉?
  • 야스페르츠 2010/02/20 10:45 #

    인삼은 이때는 없지 않나요? 한식산의 성분은 거의 대부분이 광물질입니다. 특히 수은 화합물이 대다수... ㅎㄷㄷ
  • 海凡申九™ 2010/02/20 11:02 #

    紫石英, 石蜜, 蔘

    그럼 산삼인가봐유
  • 들꽃향기 2010/02/20 10:14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정말 이 시기 북위의 황제들은 불꽃같이 행동하고 불꽃같이 산화해갔던(마약으로;;;) 것이군요 ㄷㄷ

    나중에 대판 깨지게 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시기에 유송의 선전포고는 가오가 살아있었군요 ㄷㄷ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 야스페르츠 2010/02/20 10:46 #

    나름 가오가 살아 있습죠. ㅎㅎㅎ
  • 지나가던 손경수 2010/02/20 10:49 # 삭제 답글

    유의륭은 젊어서 그랬는지 허세가 쩔었군요…. 탁발사는 그래도 아버지가 보여준 행적덕분에 성공한 인생을 살았군요. (하지만 탁발도는….)
  • 야스페르츠 2010/02/22 09:42 #

    유의륭의 삽질은 악희님의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

    http://bulbbang.egloos.com/1503907
  • 페스츄리 2010/02/20 12:34 # 답글

    오오..한식산..오석산이라고도 하며 그걸 들이마시면 환각증상과 각성상태가 계속되면서 붕붕 뜬 느낌이 나서 육조의 귀족들이 그 비싼 산제가루를 즐겼는데, 이 오석산에 술은 데워서 먹어야 하고 음식은 차게 해서 먹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한다고 해서 "한식산"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지요.

    청담도 좋고 신선놀음도 좋지만 그거 먹고 온갖 추행이 난무했고 또 이것의 휴유증이 피부가 갈라지고 체온이 급상승하고 판단력이 상실되서..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서 팔팔 뛰다가 동지섯달 뜰의 연못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앉아 있었더니 열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음이 녹더라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2/22 09:42 #

    독약은 입에 씁니다. ㅎㅎㅎ
  • 마무리불패신화 2010/02/20 13:40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 야스페르츠 2010/02/22 09:42 #

    감사합니다.
  • hyjoon 2010/02/20 19:18 # 답글

    계속 좋은 글 올려주시네요. 전 조선수군과 명량해전에 대해서 약간의 혼선이 있는지라.....정리할 수는 있는데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OT가 코앞.......
  • 야스페르츠 2010/02/22 09:42 #

    힘내세욧! ㅎㅎ
  • Allenait 2010/02/20 21:07 # 답글

    ..하기야 그때까지만 해도 수은이 영약으로 취급되던 때였던 것 같군요(...)
  • paro1923 2010/02/21 20:22 # 삭제

    금속 주제에(?) 상온에서 액체인 것을 포함해서 '보기에 신기해 보이는' 녀석이니까요.
  • 야스페르츠 2010/02/22 09:43 #

    수은을 마시면 피부가 고와지고 장수한대요.... ㅎㄷㄷㄷㄷ

    그러고보면 당시 화장품도 수은....
  • 흑접시 2010/02/21 23:58 # 삭제 답글

    야르페르츠님 요새 살이 많이 찌셨네요. 먼젓번 안구에 테러한다며 검은 썬그라스 끼고 있을땐 두볼이 홀쪽 하더니만.... 안정감있고 여유있어 보이는 표정이 보기 좋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2/22 09:44 #

    ㅠㅠ
  • 른밸 2010/02/23 16:48 # 답글

    배너는 뭔가요 ㅎㅎ 사진 앍ㅋㅋㅋㅋㅋㅋ 흑접시님 말씀처럼 보기 좋습니다 ㅎㅎ 이제 오호망양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2/23 19:06 #

    이 달 안에 끝내버릴겁니다. ㅎㅎㅎ
  • blue 2010/03/28 21:48 # 답글

    이 시기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라 한 가지 기사에 대해 언급하려고 해도 여러 사서를 참고해야 해서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아무튼 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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