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2/09 00:01

오호망양(五胡望洋) 38 - 하(夏)의 몰락 역사

420년대 화북의 상황은 정족지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시기였다. 관동의 위 정권, 관중의 호하 정권, 강남의 유송 정권. 세 정권의 대치 상황은 30년 전의 후진·후연·동진, 50년 전의 전진·전연·동진의 대치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 당시보다 남쪽의 세력이 훨씬 강대해졌다는 점, 그리고 동쪽의 세력이 새외까지 뻗어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일까. 아니, 동쪽과 서쪽의 양대 세력이 독특하게도 생번(生蕃)이었다는 점도 차이일 것이다.

천하삼분지계라는 거창한 말로 그 안정성(?)이 칭송되는 정족지세이지만, 5호16국시대의 정족지세란 그다지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정족지세가 유지되려면 3대 세력이 서로 적대하고, 끊임없이 견제해야만 한다. 그러나 실상 이 시대의 3대 세력 가운데 남쪽의 세력은 언제나 동·서의 패권 다툼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종종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어느 한쪽이 강해지는 것을 견제하고 몰락하는 쪽을 도울 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위촉오 삼국의 정족지세는 수십 년씩 유지되었지만 이 시대의 정족지세는 10년을 넘기기 어려웠다. 때로는 남쪽의 무관심으로, 때로는 외부의 심대한 위협으로, 때로는 어느 한쪽의 삽질로 금방 무너져 버리기 일쑤다. 이번에 일어난 일은 세 번째의 일이었다.


호하는 북위와 마찬가지로 생번, 즉 유목민족 특유의 요소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도를 건조지대인 통만에 두고 있었고, 각지에 유목 군단이 배치되어 혁련발발의 일족이 이를 이끌고 있었다. 정교한 통치체계를 갖춘 중원의 한족 국가들은 지방의 군사력을 통제할 방법 또한 정교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생번에게 그런 것을 바라기는 무리다. 게다가 호하는 북위와 달리 다른 소수 부족들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권위가 부족했다. 그래서 호하는 유목 귀족들에 의한 적절한 세력 배분이나 한족 관료를 기용하는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고, 혁련씨 일족에 의지한 통치가 이루어진 것 같다.

이는 곧 군사력이 군단을 통솔하는 여러 개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족이기에 믿고 맡기는 것이지만, 도리어 일족이기에 적절한 견제가 없어 사병화가 더욱 심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 내분이 찾아왔다.

424년 말, 호하의 태자는 혁련괴(赫連瑰)였는데, 혁련발발은 어린 아들인 혁련륜(赫連倫)을 총애해서 태자를 교체하려고 했다. 혁련괴는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소유한 군대를 동원해서 혁련륜을 공격했고, 혁련륜은 싸움에서 패해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혁련륜의 형(어머니가 같은 형제인 것으로 보인다) 혁련창(赫連昌)이 다시 병력을 동원해서 혁련괴를 죽였고, 혁련괴의 군대를 병합해서 엄청난 세력으로 성장했다.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혁련발발은 혁련창이 승리하자 기뻐하며 그를 태자로 세웠다고 하는데, 과연 이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혁련발발의 괴팍한 성격, 생번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믿지 못할 것도 없긴 하지만, 그보다는 혁련창의 군사력에 혁련발발이 꼬리를 만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어쨌든 혁련발발은 혁련창을 태자로 세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425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한편, 이 무렵 서방의 정세는 혼란스러웠다. 걸복치반이 이끄는 서진 정권은 북쪽으로는 북량 정권, 동쪽으로는 호하 정권, 서쪽으로는 토욕혼 정권에 둘러싸여 많은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토욕혼이나 북량과는 서로 일격을 주고 받으면서 버티는 상황이었고, 동쪽의 호하 정권과도 적대 관계에 있었다. 이에 걸복치반은 위 정권에 접촉하여 호하 정권을 견제하려 하였고, 2차례나 호하 정벌을 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항해서 북량의 저거몽손은 호하와 우호 관계를 맺기도 했다.

426년, 걸복치반은 북량 공격에 나섰다. 저거몽손은 이를 막는 한편 혁련창에게 사신을 보내 구원을 청했다. 혁련창은 서진의 빈틈을 타서 농서 일대를 공격했고, 걸복치반은 농서 일대를 점령당하는 타격을 입고 옛 남량의 영토를 경계로 하의 군대와 대치를 시작했다. 그런데, 변방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호하가 서진을 정벌하고 있는 틈을 타서 탁발도(拓跋燾)가 침공을 결의한 것이다.

위의 황제 탁발도의 친정으로 426년의 1차 호하 정벌은 시작되었다. 탁발도가 이끄는 본군은 평성에서 황하를 건너 오르도스의 통만성으로 직진했고, 해근, 주기 등이 이끄는 별동대가 포판을 거쳐 장안 방면을 공격하게 하였다. 탁발도의 통만 공격은 때마침 황하의 물이 얼어붙는 호재도 겹쳐 완벽한 기습이 되었다. 동지를 맞아 연회를 베풀고 있던 혁련창은 통만성 앞에 나타난 탁발도의 대군에 당황하고 말았다. 즉각 군대가 편성되어 반격을 개시했지만 기세를 잃었던 호하 군단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패주의 혼란 속에서 일군의 무리가 통만성으로 난입하기도 했다. 물론 성 자체가 워낙에 견고했기 때문에 난입한 군대는 궁궐에 불만 지르고 재빨리 탈출해 나오긴 했지만. 어쨌거나 통한의 기습을 허용한 혁련창은 성 안에 틀어박혀 농성을 시작했다. 탁발도는 통만성이 견고했기 때문에 점령은 포기하고 막대한 약탈품과 함께 귀환하였다.

그런데, 탁발도가 통만성을 포위하고 있던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당시 포판을 수비하고 있던 혁련을두는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통만성에 사신을 파견했다. 그런데 통만성에 도착한 사신은 성이 포위된 것을 보고 놀라 곧바로 돌아오고 말았다.

"통만에서는 이미 패하였습니다."
"統萬已敗矣。"

혁련을두는 사신의 보고를 받자마자 장안으로 도주했다. 또한 장안을 지키고 있던 혁련조흥도 혁련을두가 도망쳐오자, 함께 안정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관중의 중심 장안이 어이없게 떨어진 것이다.


=====================

해를 넘겨 427년, 혁련창은 설욕을 위해 동생 혁련정(赫連定)에게 장안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혁련정과 위의 해근 등은 장안에서 대치에 들어갔다. 탁발도는 다시금 통만 정벌군을 일으켰다. 기습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탁발도는 다시 기습을 할 요량이었다.

황하를 건너자 탁발도는 치중과 보병대를 뒤에 내버려두고 일단의 경장기병을 이끌고 통만으로 내달렸다. 통만 근처의 골짜기에 병력을 감추고, 소수의 병력만으로 성 앞으로 나서서 유인 작전도 펼쳤다. 그러나 이미 한 번 호되게 당했던 혁련창은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혁련정이 장안을 함락하고 돌아오길 기다릴 요량이었다.

이에 탁발도는 군대를 거짓으로 퇴각시켜서 혁련창을 유인하려고 했다. 때마침 하의 군대에 포로로 잡힌 위군 병사의 증언도 이어졌다.

"위의 군대가 식량이 다 떨어져서 병사는 나물을 먹고 치중은 후방에 있습니다. 보병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의당 속히 공격해야만 합니다."

위군의 상황은 일개 병사라면 충분히 이렇게 오해할만 하다. 거짓 증언은 아니었을 것이다. 혁련창에게도 고무적인 소식은 분명했다. 결국 혁련창은 3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성을 나섰다. 퇴각하던 위군을 추격하던 혁련창은 곧 복병을 만나 치열한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복병에 당했다고는 하지만, 워낙에 병력의 차이가 분명했기에 전투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갓 스무살의 황제 탁발도는 전투를 진두에서 지휘하며 거세게 몰아쳤다. 황제의 위협을 무릅쓴 지휘 덕분에 결국 위군은 하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혈기왕성한 탁발도는 패주하는 적을 맹렬하게 추격했고, 작년에 일군의 무리가 보여주었던 활극까지 직접 재현했다.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 추격을 거듭해 통만성 안에까지 돌입했던 것이다. 작년의 활극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번의 활극은 결국 성의 함락으로까지 이어졌다.

혁련창은 상규로 퇴각했고, 오르도스는 완전히 위 정권의 손에 떨어졌다. 장안에서 대치하고 있던 혁련정도 상규로 도주했고, 안정마저 떨어지고 말았다. 탁발도는 해근에게 호하의 잔당 토벌을 맡기고 평성으로 귀환하였다. 호하에게 남은 것은 상규를 중심으로 한 진주 지역과 지난해 서진 정권으로부터 빼앗은 농서 지역 뿐이었다.


다시 시간은 흘러 428년이 되었다. 해근의 토벌군은 전염병으로 인해 말을 거의 잃어버렸고, 마침 이어진 혁련창의 반격으로 패주하여 안정에서 농성을 벌이게 되었다. 해근은 패배로 인해 수비를 고집했는데, 부장 안힐은 기습을 주장하였다. 해근이 계속 이를 허락하지 않자 안힐은 독단으로 병력을 이끌고 출진하였다.

때마침 하의 황제 혁련창이 직접 공성전을 독력하기 위해 나섰고, 이를 알아본 안힐을 결사대를 이끌고 혁련창에게 육박하여 그를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하군은 완전히 무너져 패주하였고, 위 정권은 다시 관중에서 위세를 떨쳤다. 체포된 황제는 평성으로 이송되었고, 남은 하 정권의 잔당들은 평량에서 혁련정을 옹립하였다. 거의 멸망 직전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위 정권의 토벌군 사령관 해근은 이 상황이 불만이었다. 패주한 것으로도 모자라 일개 부장에 불과한 안힐이 독단으로 적의 수괴를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으니 자존심이 상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해근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치중도 버려두고 무리하게 혁련정이 숨어 있는 평량으로 진격했다.

사실, 하 정권은 사실상 멸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렇게 무리한 진격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혁련정은 첩보를 통해 해근이 가진 약점을 정확하게 꿰뚤었다. 결국 매복에 걸려든 해근은 완패하였다. 해근의 패배는 관중 지역의 위 군대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고작해야 1만 정도에 불과한 병력이었으니. 그런데, 해근이 패배한 사실이 전해지자 안정의 구퇴가 안정을 버리고 도망쳤고, 구퇴가 장안에 이르자 장안의 탁발예도 함께 도주해 버리는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사실상 평량의 산 속에서 멸망을 기다리고 있던 하 정권에게는 하늘이 도운 격이었다. 결국 혁련정은 장안을 회복하고 관중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멸망 직전에서 간신히 부활한 셈이다.




덧글

  • 른밸 2010/02/09 00:55 # 답글

    아 정말 정신없는 시기네요...살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정신없었을까요? 이제는 쫓아가기도 힘들...ㅠㅠ
  • 야스페르츠 2010/02/09 09:22 #

    저도 겨우 겨우 따라가고 있습니다. ㅡㅡ;;
  • Allenait 2010/02/09 01:18 # 답글

    ..진짜 이런 정신없는 시대의 진정한 피해자는 민초들이겠군요
  • 야스페르츠 2010/02/09 09:23 #

    민초들의 고충은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는 것이 가슴 아프지요.
  • hyjoon 2010/02/09 08:22 # 답글

    중국은 이런 식으로 분열이 되면 폭력이 판을 치는 시기가 되어 버려요. (다른 나라도 늘상 그렇지만) 그래서 현재 티베트나 위구르에서 독립요구 나오면 무자비하게 대하는 것도 이런 기억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 야스페르츠 2010/02/09 09:23 #

    그런가요...... 흠
  • 들꽃향기 2010/02/09 15:05 # 답글

    왠지 저 당시 하의 지도층들은 물고문 당하다 숨이 끓어지기 직전에 고개가 쳐들어진 느낌을 받았을 듯 하군요. ㄷㄷ 그런데 저 당시 하의 군세가 북위를 크게 위협하거나 대응하지 못하고 대체로 밀리는 듯한 느낌이네요. 쿨럭.
  • 야스페르츠 2010/02/09 15:26 #

    그래봤자 곧 끊어질 목숨이라능. 쿨럭.
  • 지나가던 손경수 2010/02/09 22:22 # 삭제 답글

    군사력으로 아버지 위협이라… 콩가루 집안이군요. 그리고 하나 북위나 저 도주가 일으킨 영향은 엄청났을텐데, 도주범들은 처벌 받나요?
  • 야스페르츠 2010/02/10 11:33 #

    호하는 모르겠지만 북위의 도주범(?)은 목이 달아났지요. 관중을 통째로 버리고 도망쳤으니 목이 달아나는 것도 당연한 결과....
  • paro1923 2010/02/09 23:20 # 삭제 답글

    호하 사신이나, 북위 사령관이나, 둘 다 참...
    이 시대의 특징이랄까, 후세인의 입장에서 보면
    '성공의 수확은 잠깐이지만, 삽질의 댓가는 좀 많이 작용한다'는 느낌이... (...)
  • 야스페르츠 2010/02/10 11:34 #

    그것은 이 시대만이 아니라 역사의 법칙인 것 같습니다.... ㅎㅎ
  • 세계사는내친구 2010/02/10 10:40 # 삭제 답글

    서진이 북량을 치자 호하가 서진을 치고, 다시 북위가 호하를 치는군요. 마치 1차대전 발발시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치자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치고, 다시 독일이 러시아를 친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너무 아는척해서 죄송합니다.^^
  • 야스페르츠 2010/02/10 11:35 #

    아, 안그래도 그런 이야기도 하려고 했습니다. 5호의 동란도 이 무렵이 되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국제적으로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일이 자주 벌어지죠. ㅎㅎ
  • 똥필 2010/02/10 23:41 # 삭제 답글

    나라가 망하고 부활하는게 참 쉽죠잉~?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유사역사학 방지

얼마블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