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31 20:04

오호망양(五胡望洋) 37 - 숨고르기 역사

숨가쁘게 달려온 역사의 대하(大河)에서 잠시 눈길을 돌려 크고 작은 지류(支流)들을 살펴보자.

먼저 머나먼 서역, 옥문관 밖에서 나라를 세운 서량(西凉)에 눈을 돌려 본다. 이고(李暠)가 400년에 건국한 서량은 주천(酒泉)을 수도로 하여 서역을 통제하며 20년 동안 번영을 누렸다. 하서 회랑의 입구인 주천을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남쪽 장액(張掖)에서 웅거하고 있던 북량(北凉)과의 오랜 전쟁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또한 남량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여 북량을 남북에서 압박하였고, 이런 실력을 배경으로 오랫동안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414년 남량이 멸망하고 북량이 고장을 점령하면서 양주의 패권은 급격하게 북량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고의 치세 동안에는 별다른 사건 없이 유지되던 서량이었다.

417년에 이고가 죽고 아들 이흠(李歆)이 즉위했다. 북량의 저거몽손은 이고가 죽은 뒤부터 서량에 대한 공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거의 매년 침공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흠은 이고와 다르게 형벌을 가혹하게 하고 사치를 즐겼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서량의 국력은 급격하게 쇠퇴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420년, 저거몽손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북량의 군주 저거몽손은 401년에 왕위를 찬탈한 이후 서량과도 오랫동안 전쟁을 벌였고, 남량이 고장을 차지한 후인 406년부터는 남량과 지리한 싸움을 벌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남량과 북량의 전쟁은 일종의 다람쥐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항상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거의 매년 싸워댔던 것 같건만, 언제나 같은 과정을 거쳐 거의 같은 결과로 끝이 났다. 유일한 예외(?)라면 410년에 고장을 점령한 사건일 것이다. 사실, 이 사건 역시 북량이 고장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남량이 고장을 버렸고 그것을 주워 먹은 것이니 예외라고 할 수도 없을게다.

고장을 장악하여 양주의 패권을 장악한 저거몽손은 이후 수 년 동안 남량과 다람쥐 쳇바퀴를 다시 돌렸다. 국력의 향방이 뒤바뀌었는데도 똑 같은 전쟁을 되풀이 한 것이다. 도대체 두 나라는 왜 싸우는지, 또 싸워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지는 쪽도 피해가 크지 않아 보이고, 이기는 쪽도 얻는 것이 없는, 그래서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전쟁. 참 기묘한 나라들이다.

여하튼 414년에 남량이 서진에 의해서 멸망하면서 이 지루한 전쟁은 끝이 났다. 그리고 전쟁의 대상은 다시 서진으로 바뀌었다. 북으로는 서량, 남으로는 서진을 공격하는 지루한 패턴의 반복이다. 그리고 운명(?)의 420년이 밝았다.


420년, 저거몽손은 서량 정벌을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그런데, 밖으로 공포한 목적지는 정 반대였다. 서진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군대도 실제 남쪽으로 이동해 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량의 이흠은 빈집털이를 하기로 했다. 낚시에 제대로 낚인 것이다.

저거몽손은 이흠을 안심시키기 위해 남쪽에서 전투가 벌어져 승리했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이흠은 이 소문을 그대로 믿고 더욱 깊이 진격하였고, 몰래 되돌아와 군사를 매복시켰던 저거몽손은 손쉽게 이흠의 군대를 격파했다. 이흠은 진중에서 죽고, 저거몽손은 주천을 점령하였다. 돈황도 저거몽손의 손에 떨어졌으나 이흠의 동생이었던 이순(李恂)이 돈황을 탈환하고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동안 버티는 것에 불과했다.

421년 3월, 저거몽손은 돈황마저 점령하고 마침내 서역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었다. 397년부터 시작되었던 양주의 분열이 마침내 끝이 난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관중이나 중원의 패자에는 미치지 못하는 변방의 군소 정권의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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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때는 관동의 패권을 장악했던 모용씨의 연나라, 그러나 탁발부의 위 정권에게 화북을 빼앗긴 이후 내분을 거듭하다 고구려 출신의 장군 고운(高雲)에게 왕위를 빼앗기면서 연나라 역시 그저 그런 잉여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역사 속에는 북연이라 알려져 있는 정권이다.

북연의 군주는 고운이었지만, 실제 북연의 실권은 반정을 주도했던 풍발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고운은 풍발을 견제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육성하였는데, 이렇게 육성한 측근들이 오히려 모반을 일으켜 고운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풍발은 이들을 제거하고 자신이 천왕(天王)에 즉위한다.

이후 북연 정권은 풍발 일족에 의해서 통치되었는데, 위 정권과 종종 대립각을 세웠던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 애초에 북연의 세력 자체가 워낙에 축소되었기에 감히 위 정권과 정면 대결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동쪽의 고구려를 건드리자니 이쪽도 사상 최대의 국력을 자랑하던 광개토왕-장수왕 시절이었으니 북연 정권은 그저 위 정권과 고구려 사이의 완충지대로 겨우 존속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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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진짜 이 연재에서 듣보잡 취급이었던 잉여들에 대한 간략한 정리도 곁들인다.

※ 구지(仇池) 정권

양씨 일족이 이끄는 저족들이 세운 이 정권은, 국가라고 보기에는 민망한, 부족 집단에 가까운 정권이다. 5호16국시대 초반부터 등장했던 이들 구지는 워낙에 단 한 번도 메이저로 언급된 적이 없는 잉여 중의 잉여인지라, 연재 초반에는 그 위치도 잘못 알고 엉뚱한 곳에 표시하기도 했다. 청해성에 있던 정권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 구지 정권은 중원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감숙성 남동쪽 끝에 위치한 이들은 관중을 장악한 세력과 한중을 장악한 세력 사이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면서 오랜기간 존속할 수 있었다. 주로 한중 지역은 동진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중의 패자는 구지 정권을 세력 균형을 위해 별 간섭을 하지 않고 남겨두었던 것 같다. 이들은 전진 정권과 후진 정권의 혈전에서 전진 편에 서서 싸우기도 했고, 한때는 한중을 점령하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다지 별볼일 없는 노정을 걸었다.

※ 토욕혼 정권

토욕혼을 건국한 이는 정말 의외의 인물이다. 이름은 모용토욕혼, 무려 모용외의 이복 형이다. 모용토욕혼은 모용외에게 모용부의 후계자 지위를 넘겨주고 머나먼 발해만 근처에서 산넘고 물건너 만 리의 길을 지나 청해성 깊숙한 곳에 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5호16국시대 초반에는 토욕혼은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후반에 접어들면 청해성 지역에서 건국한 남량 정권도 등장하고 해서 종종 모습을 나타낸다. 그런데 의외로 토욕혼이 주로 마찰을 빚었던 국가는 남량 정권보다는 걸복부의 서진 정권이었다. 걸복부의 위치상 토욕혼과 전쟁을 벌이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정확한 상황은 파악하기 어렵다.

※ 유연 정권

유연 정권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주로 탁발부와 마찰을 빚었던 기록이 전해지는데, 기록의 면면만 놓고 보자면 유연은 몇 번도 넘게 멸망했다. 탁발십익건 시기의 탁발부는 유연을 발라버리고 북방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탁발규가 위 정권을 성립시킨 초기에도 유연은 탁발부에 밀려서 사막 너머로 쫒겨갔다고 한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어느새인가부터 몽골 고원이 유연의 영역으로 바뀌어 있다. 위 정권은 이후로 계속해서 유연에게 시달렸다. 유연의 문제도 있고, 황제 탁발규가 한식산에 중독되어서 나라를 망쳐 놓은 일도 있어서 위 정권은 후연을 무너뜨린 이후 수십 년 동안 확장을 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위 정권이 휘청대는 동안에도 위 정권이 장악한 황하 이북을 침탈한 나라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때 황하 이북을 침탈한 나라가 있었다면, 화북 통일의 주인공은 그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덧글

  • 초록불 2010/01/31 20:10 # 답글

    유연은 후삼국지의 서막을 알리는 인물...(으잉, 종족이었다닝...)
  • 야스페르츠 2010/01/31 20:59 #

    유연이 참 많더군요. 고려, 조선시대에도 한 명씩 나오더라는...
  • ㅎㅎ 2010/02/01 07:13 # 삭제

    그 유연은 '오호의 쟁패 - 2'에서 출연했죠 ㅋ
  • dunkbear 2010/01/31 21:13 # 답글

    이흠 : 사치나 하면서 처박혀서 폭군 행세나 할 것이지 왜 머리는 굴려서... 끌끌...
  • paro1923 2010/01/31 21:36 # 삭제

    뭐어, 그래봤자 당장 망하느냐 좀 있다 망하느냐의 차이이겠지만요.
  • 야스페르츠 2010/02/01 09:12 #

    캐낚인 이흠 근조.
  • 지나가던 손경수 2010/01/31 21:17 # 삭제 답글

    439년에 화북통일이 완료되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요.
  • 야스페르츠 2010/02/01 09:13 #

    이제 몇 편 안 남았습니다. ^^
  • 행인1 2010/01/31 22:12 # 답글

    그야말로 온갖 나라들이 나타났다가 없어지는 시기였군요.
  • 야스페르츠 2010/02/01 09:14 #

    그나마 여기서 언급이라도 한 나라는 메이저 급입니다. 진짜 스쳐지나갔던 존재도 더 있지요. ㅡㅡ;;
  • Allenait 2010/01/31 22:32 # 답글

    진짜 이때는 국가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게 순식간이었군요
  • 야스페르츠 2010/02/01 09:15 #

    그래도 이제 혼란도 어느 정도 끝입니다요.
  • 른밸 2010/01/31 23:08 # 답글

    유연은 정권이라기보다는 돌궐과 마찬가지로 부족연합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제대로된 정권이 세워진 것은 남북조 시기 때고...북연이 방어막이라고는 해도 있으나마나 해서 고구려는 유연을 이용해서 북위를 견제했다...전 이렇게 봤습니다 ㅎㅎ 드디어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 야스페르츠 2010/02/01 09:15 #

    고구려 킹왕짱! ㅎㅎㅎ
  • 들꽃향기 2010/02/01 13:04 # 답글

    정말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굴러가는 량주의 실정이었군요 -_-;; 그런데 전통적으로 관중을 제압한 정권은 농서와 량주로 진출을 노리는데, 혁련하도 그런 테크와 개입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 남연아~ 2010/02/01 16:42 # 삭제

    혁련하도 그러려고 노력했다고 기억합니다. 출처는 위키...
    그리고 서진하고도 투닥투닥하다가 다 망해가는 와중에야 꿀꺽.
  • 야스페르츠 2010/02/03 12:05 #

    서진 쪽으로 진출 시도는 자주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탁발위에게 관광크리...
  • 똥필 2010/02/10 23:36 # 삭제 답글

    혁련발발은 북위 혼란기때 똥싸고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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