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6 00:46

오호망양(五胡望洋) 35 - 선양(禪讓)으로 가는 길 역사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최고 권력자가 되었더 유유(劉裕). 그는 차근차근히 지존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환현의 찬탈을 막아 재조지공을 세웠고, 남연을 멸망시켜 북방의 광대한 영토를 개척했다. 남으로는 광주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였고 서로는 촉에서 7년 가까이 자립해 있던 후촉 정권을 무너뜨렸다. 안팎으로 유유의 위세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이토록 엄청난 전공들조차도 유유가 황제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더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하다. 진(晉) 정권의 구도, 중국의 영원한 수도 낙양과 장안을 되찾는 것보다 완벽한 한 방은 없을 것이다. 마침, 이렇게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낙양과 장안을 장악하고 있는 후진 정권은 내분으로 인해 휘청대고 있었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유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416년 8월 12일, 유유의 대군이 다시 북벌을 개시했다.

왕진악(王鎭惡)과 단도제(檀道濟)가 이끄는 보병 군단은 회수를 따라 서진하여 허창과 낙양을 동쪽에서 압박하였으며, 주초석, 호번의 군단은 형주에서 북상하여 낙양을 남쪽에서 압박했다. 심전자, 부홍지는 무관을 압박하였고 심임자, 유준고의 수군은 황하를 거슬러 올랐다. 지키는 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포위망이었다.

유유는 본군을 이끌고 건강에서 북상하여 팽성을 거쳐 황하를 따라 전진할 계획이었다. 선봉이었던 왕진악과 단도제는 연전 연승을 거두며 낙양 동쪽 지역을 차례로 평정해 나갔다. 한편, 황하를 항해 나아가던 왕중덕의 군대는 작은 해프닝을 일으켰다. 당시 황하 이남의 활대는 위 정권이 하남에 가진 교두보였는데, 북벌군이 다가오자 그 수비군이 성을 버리고 황하를 건너 도망쳐 버린 것이다. 왕중덕은 활대를 점거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진(晉)은 본래 포백 7만 필을 주고서 위(魏)에 길을 빌려달라고 하려 했다. 위의 수비대장에게 성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한 적은 없다." 황하를 사이에 두고 탁발사가 파견한 사신과 왕중덕-유유는 서로 침략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우호(?)를 다졌다.


한편, 이에 맞서는 후진 정권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북방에서 발톱을 세우고 있는 혁련발발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북방의 최전선 안정의 병력은 움직일 수 없다. 게다가 요필의 반란으로 산산조각이 난 왕실은 믿고 맡길 사람 하나 없을 정도로 어수선했다. 관동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낙양은 배반으로 인해 허무하게 떨어져 버렸고, 황하를 틀어막는 중요 거점이었던 포판과 하동에서는 요의(姚疑)가 모반을 일으켰다. 일치단결해서 맞서도 부족할 마당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런 막장이 또 어디에 있으랴.

다행히 요의의 반란은 요홍이 적시에 숙부 요소(姚紹)를 파견해서 토벌하는데 성공하여 한숨은 돌렸다. 포판을 틀어막고 있는 한 장안은 안전하다 할 수 있다. 요흥이 숙부 요서를 믿었던 것처럼, 요홍에게도 숙부 요소는 거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선봉 왕진악과 단도제는 낙양까지 함락하자 일단 진격을 멈췄다. 유유는 아직 팽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리고 길었던 한 해가 저물었다.

417년, 새해가 밝자마자 요홍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안정을 지키고 있던 요회(姚恢)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요회는 안정을 버리고 남진하여 장안을 접수하려 하였다. 거의 모든 병력이 포판과 동관을 지키는데 투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장안은 무인지경이었다. 다행히, 요회는 장안 주변을 장악하느라 시간을 낭비했고, 그 사이 요소와 요찬(姚讚)이 되돌아와 요회를 격파하여 요홍은 다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 동안 유유는 팽성을 떠나 황하를 거슬러 올라오기 시작했고, 왕진악과 단도제도 진격을 개시했다. 황하를 건넌 단도제는 포판을 압박했고 왕진악은 동관을 위협하고 있었다. 후진의 군대와 왕진악·단도제의 군대는 일진 일퇴를 거듭했다.

한편, 황하를 거슬러 오르던 유유는 위 정권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강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서는 강기슭에서 밧줄로 배를 끌어당겨야만 한다. 그러나 황하 건너편은 탁발씨의 땅이니 한쪽에서밖에 끌 수가 없었다. 이로 인해 배는 물살에 떠밀려 북안으로 흘러가기 일쑤였고, 북쪽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던 탁발부의 군대는 배를 접수해서 군대를 학살하고 약탈했다.

결국 유유는 북방의 군대를 물리치기로 결정했다. 소규모의 군대를 상륙시켜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하고, 뒤이어 계속 군대를 상륙시켰다. 그리고 수레를 이용해 방벽을 치고 진지를 구축하자 위협을 느낀 위군이 대대적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수레까지 동원해서 단단한 진지를 구축한 북벌군은 이 공격을 완전히 격퇴했고, 결국 탁발사는 군대를 물렸다. 유유의 진군을 막는 장애물도 사라진 것이다.



유유의 대군이 낙양에 도착하자 보급로가 충실해진 왕진악·단도제는 사기충천하여 후진군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요홍의 유일한 조력자 요소도 진중에서 분사하고, 결국 동관과 포판도 떨어졌다. 한편 남쪽의 무관을 압박하고 있던 심전자, 부홍지의 군대도 무관을 함락하고 관중으로 북진을 개시했다.

요홍은 마지막 군대를 이끌고 요격에 나섰다. 유유의 본군과 맞서기 전에 배후를 위협할지도 모를 무관 방면의 군대를 격파하려 한 것이다. 심전자 등이 이끄는 군대는 약 1000명, 의군을 만들어 병력을 과장시키긴 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군대였다. 당연히 심전자 군은 방어를 굳게 하고 버텨야 하는 것이 정석. 그러나 심전자는 오히려 선제 공격을 선택했다.

"여러분은 위험을 무릅쓰고 먼 곳에서 와 바야흐로 오늘의 전투로 죽고 사는 한 번의 결판을 구하게 되었으니, 봉후(封侯)가 될 수 있는 업적이 여기에 있다."

1000 대 수 만 명의 전투. 결과는 승세를 탄 1000명의 대승이었다. 요홍은 1만에 달하는 사상자를 남겨두고 패주하였고, 심전자는 항복해 오는 관중의 군현들을 접수했다. 사실상 후진 정권의 최후였다.

왕진악은 소규모의 수군을 이끌고 위수로 진격하여 장안을 기습하였고, 이로써 후진 정권의 숨통은 끊어졌다. 3대 33년을 이어온 강족의 유일한 국가가 최후를 맞은 것이다.


유유는 이 전공을 토대로 3년 후 선양을 받아 송 왕조를 개창한다. 그리고 북방은 통일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기 시작한다. 오랜 혼란의 끝이 가까이 온 것이다.




덧글

  • 消爪耗牙 2010/01/16 00:58 # 답글

    유유가 한민족인 것은 왜 계속 숨김?
  • paro1923 2010/01/16 20:36 # 삭제

    어허허, 오해이십니다... (쳐맞는다)

    * 왜, 왜 중단하시나이까...;;;;
  • 消爪耗牙 2010/01/17 21:31 #

    * 아무래도 인간의 악성을 계속 발현하고 있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 야스페르츠 2010/01/18 11:05 #

    유유의 본명은 ㅠㅠ라능. (퍽!)
  • Allenait 2010/01/16 01:45 # 답글

    포백 7만 필... 엄청난 양이로군요. 라곤 해도 핑계로는 조금 무리인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1/18 11:05 #

    그냥 핑계죠. 도망간 수비대장 목만 달아났을 뿐. ^^;;
  • dunkbear 2010/01/16 07:27 # 답글

    1천 : 수만명에서 1천이 이기다니... 허허... 이건 뭐 스파르타!!!도 아니고...
  • hyjoon 2010/01/16 10:14 #

    뭐 그보다 전에 신나라군과 한나라 부흥군도 만만치 않은 수적 차이였습니다. 신나라군 40만에 한나라 부흥군 1만명 정도인데 한나라 부흥군이 이겨서 후한이 세워졌다능.....
  • 야스페르츠 2010/01/18 11:06 #

    디스 이즈 ㅠㅠ!!
  • 른밸 2010/01/16 09:17 # 답글

    남조 정권 이상한게 헤롱헤롱하다가도 저렇게 정신차린 사람 하나 나오면 빠릿해진다는...다른 나라도 다 마찬가지지만 남조에서 막장플레이 한게 많아서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아직 인구와 경제력에서 강남이 강북을 따라잡기에는 멀었죠?
  • 야스페르츠 2010/01/18 11:07 #

    여러가지 면에서 강남의 경제력도 만만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강남 지역은 이상하게 중앙집권이 잘 안되는 느낌이에요. 형주나 촉은 아예 독립 정권이나 마찬가지... ㅡㅡ;;
  • 흑접시 2010/01/16 18:33 # 삭제 답글

    후진이 저래 망하는군요. 유유가 3년후 유송국을 세우면 오호십육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남북조 시대로 돌입하게 되겠군요. 뒷날 수나라가 통일할때까지 연재는 계속 해 주실거죠? 글도 잘쓰시고 내용도 너무 재미있어서요.
  • 야스페르츠 2010/01/18 11:08 #

    남북조시대는 제가 잘 알지 못해서 연재를 하지 않습니다.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는 그날이 연재 끗!
  • paro1923 2010/01/16 20:31 # 삭제 답글

    유유의 전공이 정말 크긴 크군요.
    하지만, 그 후대가 참...;;;
  • 야스페르츠 2010/01/18 11:08 #

    막장 남송의 이야기는 악희 님의 블로그를 참조하여 주세요. ^^
  • 들꽃향기 2010/01/17 07:56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북위와 후진, 남연을 모두 캐바른 유유의 북벌이 지금의 관점이나 이후 그 아들 유의륭(송문제)의 북벌에 비교한다면 왜 이리 눈부셔 보이는지 (물론 후진정권의 안습스런 내부사정이 이러한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근본적인 요인이었겠지만요 )ㄷㄷ

    그나저나 저 시기에 '왕사가 돌아왔다!'라며 환호하던 장안과 낙양의 한족 백성들이 나중에 맞이할 귀결을 생각하면 그저 한숨만...
  • 야스페르츠 2010/01/18 11:09 #

    장안 지못미... 그래도 낙양은 오래 간다능. ^^;;
  • 백인대장 2010/01/23 01:17 # 삭제 답글

    나뭇꾼 출신 유유는 정말 기회포착에 능한거 같습니다. 먼 한왕실에 후손이라죠. 그의 국제정세 분석 능력에 감탄이 나올 뿐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1/26 13:26 #

    장안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거의 유일한 실책이겠지요. 그래도 그에 대한 조치도 참 적절한 것이 진짜 능력이 출중한 군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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