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13 00:41

오호망양(五胡望洋) 34 - 원소와 유표의 일 역사

태조가 또 일찌기 좌우를 물리치고 가후에게 물었는데 가후는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태조가 말하길 "내가 경과 함께 말하려 했는데 답을 하지 않는구려. 어찌된 것이오?"라 하니 가후가 말하였다. "적통에 대해 생각한 바가 있어 즉시대답하지 못하였습니다." 태조가 "어떤 생각이오?"라 묻자 가후가 말하였다. 원본초(袁本初 : 원소)와 유경승(劉景升 : 유표) 부자를 생각하였습니다." 태조가 크게 웃고, 마침내 태자를 정하였다.
太祖又嘗屏除左右問詡,詡嘿然不對。太祖曰:“與卿言而不答,何也?”詡曰:“屬適有所思,故不即對耳。”太祖曰:“何思?” 詡曰:“思袁本初、劉景升父子也。”太祖大笑,於是太子遂定。
《삼국지》 <가후전>


후진 정권의 군주 요흥은 적자인 요홍(姚弘)을 태자로 삼았다. 그러나, 요흥이 총애하는 아들은 따로 있었다. 광평공 요필(姚弼). 요필은 요흥의 총애를 등에 업고 많은 권력을 획득했다. 요필을 중심으로 도당이 형성되었고, 요필은 태자인 요홍을 몰아내고 태자가 될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요필은 일단 요흥의 마음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태자 요홍이 총애하던 부하 요문종을 무고하였던 것이다. 요흥은 요필의 무고를 듣고 화가 나서 요문종에게 죽음을 내렸다. 요흥은 그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요필의 전횡이 시작되고, 요흥의 주위에는 점차 요필의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요필을 아끼는 것이 그에게는 재앙을 내리는 것과 같으니, 바라옵건대 그의 주위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그의 위엄과 권위를 줄이십시오. 이렇게 하면 비단 요필만 안전해 지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종묘와 사직도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주변의 충신들이 목숨을 건 진언을 올렸지만 요흥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반대로, 요필의 도당들이 요홍을 폐립하고 요필을 태자로 세울 것을 주청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렇다고 폐태자를 논한 이들을 벌하지도 않았다.


414년, 요흥의 나이도 어느새 쉰에 가까워 간다.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요흥은 점차 쇠약해져 갔다. 나라는 혁련발발과의 전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위수 북쪽은 흉노의 말발굽이 무인지경으로 짓밟고 다녔다. 최전선은 안정(安定)을 위시한 지역. 이보다 북방은 모두 하 정권의 영역이었다.

나라는 점점 약해져 갔고, 그와 함께 요흥의 병도 악화되었다. 요흥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요필이 행동에 나섰다.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키려 한 것이다. 요필의 반역 모의가 전해지자 수도 인근의 번진이 들썩였다. 포판, 낙양, 옹 등 중요 거점의 군사들이 장안을 예의주시하며 군사를 모았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다행히 이번에는 요흥이 일찍 병이 나으면서 흐지부지하게 무마되었다. 요흥은 요필의 직위를 일시 해제하고 근신하도록 하였으며, 각지의 근왕병들도 안정되었다. 물론 근왕군을 일으키려 했던 여러 중신들과 종신들이 요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였지만, 요흥은 아예 듣기를 거부했다.

"너희들이 바로 요필의 일을 논의하고자 할 뿐이라면, 내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세월은 살 같이 흘러 415년 겨울이 되었다. 요흥은 다시 병이 도져 발작까지 일으켰다. 이 소식은 금세 요필에게 전해졌다. 어느새 근신도 풀리고 다시금 권력을 추구하고 있던 요필이었다. 즉각 군대를 모아 모반을 일으키려 한다.

이 소식은 간신히 병이 진정된 요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요흥은 화를 내며 요필의 도당 가운데 일부를 주살하였다. 요필은 유폐되고 요필의 남은 무리들도 주살될 뻔 했으나 태자 요홍이 용서해 줄 것을 청하여 간신히 살아 남았다. 요필의 음모는 여기서 끝이 나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새해가 되자 요흥의 병은 더 이상 회복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요홍은 사실상 국가 정사를 위임받았고 요흥은 장안을 떠나 서궁(西宮)에서 요양하였다. 그러나 더 병이 깊어지자, 요흥은 마지막 임종을 위해 장안으로 무거운 몸을 옮겼다. 요흥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요홍도 이를 영접하기 위해 나서려고 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신하들은 이를 만류했다.

"주상은 병으로 위독하시고 사악한 신하는 곁에 있으니 전하께서 지금 나가신다면, 나아가도 주상을 뵙지 못할 것이고 물러나도 재앙이 도사리고 있을 것입니다."

"신하이자 아들로서 군주인 아버님이 병으로 위중하신데 단정히 앉아서 나가지 않는다면 어찌 스스로 편안하겠는가?"

"몸을 보존하여 사직을 안전하게 하시는 것이 효행의 으뜸입니다."



한편, 요흥을 수행하던 신하들 가운데 요필의 도당들은 요홍이 나오면 그를 죽이고 요필을 옹립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요필이 나서지 않자 계획을 바꿔 요흥이 탄 수레를 요필이 유폐된 집으로 이끌어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직 요흥이 살아 있었으니, 이들의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요흥은 궁으로 들어갔다.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요필의 무리는 요흥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고, 요홍 역시 요흥이 죽고 나면 반역이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다. 요흥이 의식불명에 빠지자 궁 안에 있던 첩자가 요필파에게 알렸다.

"주상께서 이미 돌아가셨으니 마땅히 재빠르게 계획을 결정하십시오."

드디어 반란군이 궁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궁의 병사들과 금군이 힘써서 막아 전투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때, 전장으로 한 사람이 힘겹게 다가왔다. 겨우 의식을 차린 요흥이 병을 무릅쓰고 나타난 것이다. 지키는 이들은 용기백배하여 반격을 시작했다. 반면 공격하는 이들은 요흥이 살아 있음을 깨닫고 사기를 잃었다. 요흥은 요필에게 죽음을 내렸고, 마침내 요필의 난은 진압되었다. 통쾌한 승리, 하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다음날, 요흥이 죽고 요홍이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한다. 그리고 후진 정권의 최후도 코앞으로 찾아왔다.





덧글

  • 2010/01/12 23: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야스페르츠 2010/01/13 11:20 #

    그건 요흥이 아니라 요장이라능. 그런 운명론적인 역사관은 지양합니다.
  • 라라 2010/01/13 00:02 # 답글

    ....손권과 비슷한 크리,,역사는 반복되는 모양
  • 야스페르츠 2010/01/13 11:21 #

    손권 씨도 있군요. 역시 역사는 무한 반복인가 봅니다.
  • Allenait 2010/01/13 01:13 # 답글

    그리고 이제 후진도 막바지로 흘러가는군요
  • 야스페르츠 2010/01/13 11:21 #

    이제 연재도 막바지로 흘러갑니다아아아아 ㅎㅎ
  • 른밸 2010/01/13 13:00 # 답글

    이래서 뒷처리는 언제나 깔끔하게 해야된다는 교훈이군요..??
  • 야스페르츠 2010/01/14 16:41 #

    휴지가 좀 많이 필요할 듯... (응?)
  • 현암 2010/01/13 17:25 # 답글

    아아 이거슨 뫼비우스의 띠 같군요
  • 야스페르츠 2010/01/14 16:42 #

    비슷한 일들이 언제나 어디선가 벌어지죠.
  • 2010/01/13 17: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들꽃향기 2010/01/14 13:45 # 답글

    사실 각 나라마다 '장자상속'을 명목화 시켜도, 재능있는 자손에게 물려주고 싶었던 것은 언제나 반복되는 무한루프인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장자상속이 가끔 깨어져도 크게 흔들리지 않은 후대의 왕조들에 비해서 이 시기에는....ㅎㄷㄷ
  • 야스페르츠 2010/01/14 16:43 #

    사실 이번 건은 재능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냥 자식 편애하는 몹쓸 부모에 대한 이야기입지요. ㅎㅎ
  • 지나가던 손경수 2010/01/14 16:50 # 삭제 답글

    요흥이 거의 멸망을 시켜버렸던 전진의 초대군주였던 부건과 최후가 비슷해보였던 건 왜일까요…
    그나저나 군주는 자식사랑도 마음대로 못하는군요. 군주만 그런건 아닐테지만…
  • 야스페르츠 2010/01/14 17:57 #

    편애는 역시 자식 교육에 좋지 않습니다. ^^;;
  • 흑접시 2010/01/14 22:15 # 삭제 답글

    쯔쯔.. 못난 애비 같으니..
    그렇게 편애하려면 일찌감치 제위를 물려 줘 버리등가..
    후조의 석호도 자식을 편애하더니 자식들끼리 제위다툼을 벌이는
    참극을 벌이다 결국 염민한테 먹히고 말았지요.
    나라도 망하고 집안도 망치고...
    그런 선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하거늘..
  • paro1923 2010/01/15 09:30 # 삭제 답글

    손제리보단 좀 나은 결말이긴 하지만, 헛되이 분란을 일으킨 것은 똑같군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냐만서도, 그렇기에 오히려 후계자 문제를 확실히 했어야 했거늘...
    정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말 그대로입니다.
  • 똥필 2010/02/10 23:23 # 삭제 답글

    중앙집권제는 물건너 간 세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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