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5 23:08

오호망양(五胡望洋) 33 - 보은 역사

406년 11월, 남량의 군주 독발녹단은 양주의 중심지 고장(姑臧)으로 수도를 옮긴다. 397년에 건국한 이래 최대의 영토를 자랑(?)하고 있는 남량이었다. 그러나, 형제 상속을 거듭해 가면서 능력자(?) 독발녹단에게 왕위가 전하도록 하였지만, 남량의 상승세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407년, 독발녹단은 하왕 유발발의 침입을 받아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유발발의 기습에 동부 국경 지대를 약탈당했는데, 이에 반격하기 위해 무모하게 추격을 하다가 대패하고 군대가 몰살당한 것이다. 이 패배는 고장 인근의 여러 부락들이 동요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독발녹단은 반란을 진압하며 남은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새해가 밝자 독발녹단이 혼란을 수습하느라 바쁜 틈을 타 후진의 침략도 이어졌다. 후진의 침략은 어렵사리 막아내기는 했지만, 남량이 입은 타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한편으로 남량과 북량은 끊임없이 서로 대립하였는데, 기록된 사실만 놓고 보자면 남량의 독발녹단이 북량을 선제 공격하면, 북량이 반격하여 격파하고 도로 쳐들어 오는 형태가 계속된다. 남량이 고장을 접수한 이래 남량의 국력은 북량보다 훨씬 강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남량의 선공이 항상 이어졌을 것이고, 북량은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때로는 반격을 가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410년, 독발녹단은 5만의 기병이라 일컬어지는 대군을 이끌고 다시금 북량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또 다시 북량에게 크게 패배한 독발녹단은 거의 단기필마로 도망쳐 돌아왔다. 이어진 북량의 반격은 거세게 이어졌다. 수도 고장이 포위되고, 주변의 민호가 크게 노략질당하면서 독발녹단은 궁지에 몰렸다. 결국 독발녹단은 아들을 인질로 하여 화친을 청하였고, 저거몽손은 8천여 호를 탈취하여 돌아간다.

피해가 상당하긴 했지만, 이번 전쟁도 남량과 북량의 일상적(?)인 대립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남량에 전에 없던 변고가 발생했다. 남량의 본거지인 영남(嶺南)에서 절굴기진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다. 독발녹단은 본거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끼고 고장을 떠나 구도인 낙도(樂都)로 수도를 옮긴다.

독발녹단이 고장을 떠나자마자 반란이 일어났다. 고장은 반군이 점거했고, 북량의 저거몽손은 반군을 물리치고 고장을 점령하였다. 양주의 패권이 북량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후 남량은 지속적으로 몰락해간다. 독발녹단은 설욕하려는 속셈이었는지 계속해서 북량을 공격하였는데, 항상 패배하고 수도 낙도를 포위당했고, 아들을 인질로 보내고서야 포위를 풀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계속 되풀이했으니, 이건 독발녹단의 끈기를 칭찬해야 하는 것인지, 저거몽손의 자비를 칭찬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한편, 농서에서 자립에 성공한 걸복부의 서진 정권은 다시 힘을 기르는데 골몰하고 있었다. 주변의 군소 부락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가면서 후진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점차 예전의 세력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남량이 고장을 잃고 영남으로 쫒겨 오자, 남량에 대해서도 공격을 가해 많은 민호와 물자를 약탈하기도 했다.

412년, 태자 걸복치반이 남량을 약탈하러 떠난 사이 수도 원천(院川)에서 모반이 일어났다. 걸복건귀의 동생 걸복공부가 걸복건귀를 살해하고 도주한 것이다. 걸복치반은 즉시 귀환하여 원천을 접수하고 부한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리고 걸복공부를 공격하여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걸복부 정권은 새로운 군주 걸복치반의 영도 아래 계속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리고 414년, 운명의 해가 밝는다.

거의 매년 북량을 공격했다가 수도까지 털리기를 반복하던 독발녹단. 그의 무모한 작전 덕분에 남량은 완전히 피폐해져 있었다. 결국 청해호 너머의 을불부, 타계한부 등의 부락들이 반란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독발녹단은 이들을 토벌하기 위해 7천의 기병을 이끌고 수도 낙도를 떠났다. 낙도는 태자 독발호대가 지키고 있었다.

"저거몽손은 근래에 떠났으니 별안간 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침저녁으로 염려되는 것은 오직 걸복치반 뿐이다. 그러나 걸복치반의 군사는 수가 적어 방어하기 용이하니, 너는 신중히 낙도를 지키면 나는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독발녹단의 충고는 남량 정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로 얼마 전에도 저거몽손에게 수도가 털렸던 안습한 현실. 어쨌거나 독발녹단은 기병을 이끌고 날듯이 달려 반란을 일으킨 부락들을 모두 진압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걸복치반은 독발녹단보다 더 빠르고 강했다. 걸복치반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낙도를 습격하여 단숨에 함락해 버렸다. 독발녹단은 귀환하던 발걸음을 돌려 을불부 지역을 차지하고 재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바램과 달리 병사들은 금세 지리멸렬, 와해되어 버렸다.

"저거몽손과 걸복치반이 옛날에는 모두 나에게 위질(委質)했는데, 지금은 귀순하려고 가니 역시 비루하지 않은가? 사해가 넓어도 몸을 받아줄 곳이 없으니 얼마나 비통한가....(중략).... 내 나이 늙어서 가고자 한들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차라리 아내와 자식이나 보고서 죽겠다!"

독발녹단은 마침내 걸복치반에게 항복하였다. 3대 17년을 이어온 남량 정권의 최후였다.

독발녹단은 걸복치반의 환대를 받았다. 걸복치반과 독발녹단.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걸복치반은 독발녹단의 인질이었다. 여러 번 죽음의 위기가 있었지만 독발녹단의 자비로 목숨을 건졌던 걸복치반이다. 그 은혜갚음은 결국 그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으로 끝이 났던 것이다. 아니,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1년 후, 걸복치반은 독발녹단에게 은밀하게 독을 써서 살해하였다.

"내가 병들었는데, 어찌 의당 치료해야 하겠소?"

중독되어 몸져 누운 그를 의원이 치료하려 하자, 독발녹단은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맞았다. 난세의 효웅. 변방에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도 못했던, 그저 그런 군벌의 최후이다.




덧글

  • 른밸 2010/01/05 23:19 # 답글

    당췌정신없는 이놈의 5호 16국...다시 한 번 정주행을 해야되는 신세 ㅠㅠ 언제 어디서 무슨 식으로 뒷통수 맞을지 모르는 무서운 시대군요..
  • 야스페르츠 2010/01/06 09:37 #

    정주행 해도 모를 꺼에요. 안될꺼야. ㅠㅠ
  • 我幸行 2010/01/05 23:24 # 답글

    독발녹단은 인질로 보낼 아들이 많아야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10/01/06 09:38 #

    실제로 인질로 보낸 아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인질로 보내서 철군시켜놓고 돌아가는 북량군의 뒤통수를 치려다 깨지기도 했죠. ;;;;;
  • 들꽃향기 2010/01/06 00:01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ㄷㄷ 걸복씨를 보면 왠지 난세의 틈에서 적절한 처신을 한거 같기도 하고....ㄷㄷ
  • 야스페르츠 2010/01/06 09:39 #

    걸복부가 의외로 가늘고 길게 오래 갑니다. ㅎㅎㅎ
  • Allenait 2010/01/06 01:00 # 답글

    진짜 이 시대는 너무 정신이 없군요
  • 야스페르츠 2010/01/06 09:39 #

    정리하는 저도 정신이 없어요. ㅠㅠ
  • 똥개 2010/01/08 00:26 # 삭제 답글

    이시대는 정말 반란의 시대군요. ㄷㄷ
  • 야스페르츠 2010/01/08 09:40 #

    좀 정신이 없지요.
  • paro1923 2010/01/08 11:08 # 삭제 답글

    반전이랄지, 반어법이랄지... 독발녹단의 최후가 참......
  • 야스페르츠 2010/01/08 17:34 #

    배신의 계절... (응?)
  • 흑접시 2010/01/08 20:29 # 삭제 답글

    독발녹단은 꼭 모용보와 같은길을 걸었군요.
    뭐 하나 되는거 없고
    기량은 차치하고 운도 지지리도 없다능...
  • 야스페르츠 2010/01/09 09:57 #

    하긴.. 모용보랑 비슷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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